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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평화통일: 그 소망은 유효한가?

평촌0505 2010. 12. 1. 09:53

남북 평화통일: 그 소망은 유효한가?

 

최근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태를 보면서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은 꿈만 같다. 요즘 같아선 그런 꿈을 가지는 것조차 부질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남이 보기에 환상처럼 여겨질지라도 꿈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만약 포기한다면 나는 한반도에 몸담은 지식인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특별담화(2010년 11월 29일)를 통해 “협박에 못 이긴 ‘굴욕적 평화’는 결국 더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면서 “지금은 백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일 때”라고 했다. 그 행동이 평화를 위한 행동인지 전쟁도 불사한다는 행동인지는 천당과 지옥을 넘나드는 것의 차이다. 나는 여섯 살에 6.25동란을 직접 체험하고, 그 나이에 자그마한 봇짐을 등에 걸치고 고향 평촌(선산 고아) 나루터에서 낙동강을 건너 군위 효령을 지나 영천을 거쳐 청도까지 몸서리나는 피난을 갔다 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란 통에 길에서 헐벗은 차림으로 우는 아이 모습을 보면 옛날의 내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그 피난길이 얼마나 고되었던지 집에 돌아와서 한 달간이나 걷지를 못하고 방안에 누워 있어야 했다.

 

장준하 선생이 어떤 명분으로든지 우리에게 분단에의 기여는 악의 편이고, 통일에의 기여는 선의 편이라고 규정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모든 전쟁은 악이고, 모든 평화는 선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연평도 사태’ 이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첫 단계로 ‘갈등의 서해’를 ‘평화협력의 서해’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지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이번 연평도 사태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데, 그 1단계는 서해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드는 것입니다. 긴장과 충돌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야 해요. 그게 첫 걸음입니다. 문제는 이 정부에 그럴 의지가 있느냐는 데 있습니다(프레시안, 임동원 인터뷰, 2010. 11. 29).

 

이 시점에서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인 그의 입장이 돋보인다. 지금은 ‘갈등의 서해’를 어떻게 하면 ‘평화협력의 서해’로 바꾸느냐가 최대 현안문제이다. 그래서 지금 서해상에서 갈등과 전쟁을 부추기는 어떤 군사훈련도 그것이 평화에 기여하지 못하기에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지금도 서해상에서 미국항공모함 조지워싱톤호가 한미연합작전훈련 수행 중이다. 왜 하필 지금인가? 이게 갈등의 서해를 위한 것인지 평화의 서해를 위한 것인지 몹시 불안하고 마뜩찮다. 이 대통령은 ‘굴욕적 평화’가 더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모든 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과 살생을 가져온다는 것이 훨씬 엄혹한 역사의 교훈임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차제에 필자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앞장서 ‘한반도의 영구중립평화통일’를 남북통일 담론으로 본격적으로 의제화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 내부에서 밑으로부터 평화세력이 튼튼하게 구축되어야 한다. 남북의 민중들에 의한 평화세력 구축을 위해서 이 땅의 지식인들은 평화통일의 원리와 사상에서부터 그 실천적 대안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미국의 ‘한반도 문제를 걱정하는 학자 모임’에서는 “한반도를 파괴하고 전 세계를 핵 재앙에 휩싸이게 할 전쟁은 피할 수 있으며, 반드시 피해야 할 전쟁”이라는 요지의 공동성명을 11월 27일자로 발표했다. 이 공동성명에 참여한 학자들의 면면을 보니 미국인이 3명이고 한국인 학자가 7명이다. 이 성명에서는 북한, 한국, 미국 세 나라 정부에 평화협상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긴장을 완화하고 한국전쟁을 궁극적으로 끝내기 위해 협상을 즉시 재개할 것을 세 정부에 요청한다. 최근에 발생한 연평도 사건은 한반도가 충돌이 지속되는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상기시켜준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이 분단된 이래, 전쟁상태의 지속은 포격전과 국경 충돌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평화협정을 채결해 한국전쟁을 최종적으로 끝내지 않는다면 고조된 충돌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평화협정은 국경을 상호 인정하고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깨지기 쉬운 정전상태를 평화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바탕을 둔 영속적인 평화구조로 바꿀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상태에서 회담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시작하기 가장 어려워 보일 때 회담이 가장 필요한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프레시안, 2010. 11. 30).

 

재미학자들이 절박한 시점에서 평화협상의 필요성을 한국, 북한, 미국 세 정부에 공동으로 제기하고 있어 주목을 끌게 한다. TV 앞에 앉아 지켜 보기만하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우리는 휴전상태가 한반도 전쟁 억제를 위해서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어찌하든지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전쟁과 분단 대신에 평화와 통일을 안겨주어야 한다. 이것이 당대 지식인들의 사명이자 책무이다. 이 시대의 모든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는 일체의 발언부터 자제하는 양식과 인내를 지녀야 한다. 서해 연평도에 가서 직접 똬리를 틀고 살고자하는 각오가 없다면 더 더욱 그렇다. 지금은 말이 씨가 되지 말게 해야 할 엄중한 때이다.

김병하(201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