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각
아버지 생각
나의 아버지 김홍상(金泓相; 1899-1969)님은
조선왕조 말기에 선산 평촌 전형적 농가에서 태어났다.
오남매의 막내인 나는 해방둥이로, 민주공화국 1세대로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살고 있다.
아버지는 농업사회의 마지막 세대로 가난을 짊어지고 평생
농부로 살았지만, 막내인 나는 교수노릇 40년이나 하고
풍요로운 탈산업사회를 누리고 있다.
아버지는 왕조말기 시대의 질곡에 고달픈 삶이었지만,
자식 농사 하나만은 제대로 하신 게다.
당신께서 개벽(開闢)의 세상을 여신 게다.
나는 서울서 철학과에서 하던 공부를 접고
대구에서 특수교육을 공부하느라 대학을 5년이나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두말 않고 등록금을 대주었다.
내가 대학졸업하기 직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버지 빈소에 학위증을 올려놓고 소리 내어 곡을 했다.
그래서 인지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사랑방에 쓸쓸히
누워계시는 걸 꿈속에서 가끔 본다.
막내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과 술 한 잔 아버지는 받으시질 못했다.
그런 게 내게는 잠재적 한으로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오후 남매지 산책길에 유독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편안히 모시질 못한 늦둥이 막내다.
우골탑 멍애를 의연히 감당하신 아버지 어머니 등골 빠지는
노동 대가로 오늘 내가 존재한다는 걸 뒤늦게 깨친다.
오늘에야 내게 산책길은 적정(寂靜)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하여 나이 들어 걷기는 철학하기다. (2018.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