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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교육 100년,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평촌0505 2020. 4. 13. 10:10

 

 

  우연히 <데프미디어(Deaf media)>에서 제작한 『한국농역사』(박재현 감독) CD 자료를 보았다. 그 중 내가 관심 있는 <1부, 교육편: 농인의 이름으로 깨어나다>와 <4부, 인권편: 농인의 이름으로 쟁취하다>를 뽑아서 보았다. 농인들의 이야기여서 듣지 않고 보기만 하는 수어와 한글 자막으로 편성 된 게 이 미디어의 특징이다. 나는 1960년대 중반에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평생 모교(대구대)에서 교수노릇하고 정년한지 벌써 10년 가까이나 된다. 특수교육학 분야 중에서도 나는 특수교육역사․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하위 전공은 농교육 분야였다.

 

<교육편>이 나의 주된 관심사였기에 먼저 보았으나, 그 뒤에 본 <인권편>이 훨씬 감동적으로 와 닿았다. 농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기록을 보던 중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 1호가 농인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해산하라는 방송 소리를 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서 있다가 그냥 참사를 당한 게다. 그 농인은 단지 구경꾼이었는데도 듣지 못한 죄로 첫 번째 희생자가 된 게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되고 말았다. 듣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지만, 희생된 당사자에게는 목숨조차 빼앗긴 엄청난 죄악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네 역사다. 우리에게 인권의 존엄은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위(지평선)에 있다.

 

<인권편>(런닝 타임 120분)을 쭉 보아오던 중 “2009년 특수(농)교육 100년, 우리는 실패했습니다.”라는 대목에서 나는 가슴 여미는(아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에 잠시 잠겼다. 아! 이리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구나. 농인 당사자들이 특수교육으로서 농교육을 향해서 “우리는 실패했습니다.”고 했을 때, 그 ‘우리’는 누구인가? 여기 ‘우리’는 곧 ‘나’이기도 하여,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질책이기도 하다. 나는 언필칭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인의 1세대로 평생 특수교육(농교육) 분야에서 교수 노릇하면서 가르치고 연구해온 사람이다. 교수로서 그 명예를 누린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막중한 터.

 

그래도 내 딴에는 1981년 8월부터 1년간 세계적 농특성화 대학인 걀로뎃(Gallaudet)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머문 적이 있었고, 이 게 인연이 되어 우리나라에서 수화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강조하는 토털 커뮤니케이션 접근을 소개했다는 나름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리오넬 에번스(L. Evans)의 『토털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전략』(1984)을 번역해 펴내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재판을 찍어 낼 정도로 생각보다 많이 읽혀졌다. 하지만 농인의 언어권으로서 토털 커뮤니케이션은 ‘철학“으로서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실천과정에서 하나의 절충적 방법(구화와 수화를 동시에 사용하는 동시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농문화 속에서 소통되는 자연수어의 사용을 중시하는 소위 2Bi(bicultural/bilingual)접근이 제기되었으나, 인공와우이식(CI)이라는 최신의료공학 시술의 위력 앞에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농교육계에서는 여전히 구화 대(對) 수화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나 냐냐(or/either) 논쟁은 그 끝이 없다. 해서 일찍이 원효(元曉)는 ‘화쟁’(和諍)을 말했다. 싸움을 말리려면 그 싸움을 멈추게 하는 상위기준에 호소해 봐야한다. 어찌 보면 농교육에서 구화냐 수화냐 하는 논쟁은 다분히 소모적이다. 발에 맞는 신발이 필요하지 신발에 발을 맞출 수는 없지 않는가. 듣는 언어(구어)냐 보는 언어(수어)냐 라는 선택권은 농아동 당사자의 생존권이자 학습권의 문제다. 우리는 언필칭 당사자중심 혹은 학습자중심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다수라는 대세가 일방적으로 강요되기 십상이다.

농아동 당사자가 자연스럽게 획득할 수 있는 언어양식, 그것을 도구로 삼아 가장 학습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부모와 교사들이 해야 할 일차적 책무다. 결단코 부모 기준으로 혹은 교사기준으로 강요치 말아야 한다. 최선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최악을 초래하는 게 이런 경우다. 마침내 농인사회에서는 수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특수교사를 농학교에 발령하는 특수교사임용제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제는 농학교에 농인교사 임용을 늘려야 한다고 그들은 거듭 주장한다. 농인 당사자로서 강주해 목사는 진즉에 이런 주장을 줄기차게 해왔다. 특수교사양성대학들은 농인계의 이런 주장을 겸허히 수용하고 성의 있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알기로는 현재 서울농학교에는 장진권 선생과 이재연 선생 두 사람의 농교사가 있다. 이들은 모두 모교에서 자랑스러운 농교사로 후배들을 잘 가르치고 있다. 서울농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2013.10.24)에서 내가 <농교육의 쟁점과 과제: 5W1H론과 한국 농교육>이라는 주제로 기조발표를 했다. 이어 장진권 선생이 <서울농학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로 능숙한 수화로 열정에 넘치는 발표를 해주어 참 보기에 좋았다.

 

우리나라 농학교에 농인교사의 진출이 왜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하나는 교사임용제도 자체가 엄청 까다로워서 농학생 처지에서는 하늘의 별따기다. 다른 하나는 농교육 내부에 그 원천적인 책임이 있다. 현행 교사임용 제도를 아무리 탓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우선 그 근원적인 책임은 농교육 자체에 돌릴 수밖에 없다. 농교육계에서 구화 대 수화의 소모적 논쟁은 필연적으로 농학생에 대한 교육력 결손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어째서인가? 우리 인간은 자연스럽게 모어로서 언어양식에 관계없이 1차언어가 안정되게 획득되어야, 2차적으로 읽고 쓰는 문해(문식)능력이 안정되게 구축될 수 있다. 문해능력은 학교에서 교과학습의 기본도구이다.

 

근데 대부분의 농학생은 출생 후에 1차언어 획득이 퍽 불안정하기 때문에 학령기 무렵에 2차언어로서 문자언어(읽고 쓰기) 획득은 더더욱 부실할 수밖에 없다. 해서 농학생은 자신의 학습가능성을 구현하는 기본도구가 부실하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능력 지체는 눈 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교사들의 부실한 수화구사 능력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학생의 학습결손을 재생산한다. 농교육의 실패는 결국 교과교육의 실패다.

 

  농인들이 농교육을 향해 “우리는 실패했습니다.”고 질타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농교육에서 교과교육의 실패를 적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농인 당사자의 “농교육이 실패했다"는 질책 앞에 우리 특수교육(학)인들은 스스로 특수교육의 존재이유를 엄중히 되짚어 봐야 한다. 노자는 되짚어 보는 게 도(道)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랬다.

모든 인간에게는 학습하는 힘이 본래부터 내재해 있다. 다만 우리가 그런 학습가능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적절한 방편(方便)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일본은 특수교육을 ‘특별지원교육’으로 개명했다는데, 나더러 작명하라면 특수교육을 ‘특수방편교육’이라 하겠다. 특수교육으로서 농교육은 듣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모든 농아동이 잘 배울 수 있는 방편을 적절히 맞춰주는 데에 그 존재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교사들은 농아동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으로 교과내용을 ‘친절히’(능수능란하게) 가르쳐 낼 수 있어야 한다. 해서 교사는 교과를 가르치는 동안 그자신이 곧 교과의 화신(化身)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본질 복원으로서 농교육이 ‘교육다움’의 반열에 든다. 일차적으로 농교육의 실패는 학생들이 잘 못 배우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잘 못 가르치는 데에 있다. 나쁜 교사는 있어도 나쁜 학생은 없다는 말이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에서 가르침(敎)이 반듯하게 선행되어야 그에 상응한 배움(學)이 따라붙게 되어 있다. 해서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competency)을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때문에 교직은 지난(至難)하다.

 

 

  인도 출신의 가야트리 스피박(G. Spivak; 1942- )교수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1988)라는 에세이(논문)에서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서발턴(subaltern) 개념을 제기해 진보적인 역사관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 ‘서발턴’은 역사무대의 뒤편에서 침묵하는 하층집단을 일컫는다. 인도 하층계급의 여성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장애인들은 또 하나의 ‘서발턴’이다. 스피박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자체의 질문에서 결국 부정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특수교육의 교육다움을 통하여, 장애인일지라도 세상을 향해 자기언어로 당당히 발언할 수 있게 교육력(즉, 학습의 힘)을 수행․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농아동들이 자신의 언어(양식에 관계없이)로 세상을 향해 발설할 수 있게 하는 게 농교육의 실존이유다. 동시에 우리는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당연히 수반되는 “우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으로 열린 채로 남아 있는 질문에 한없이 겸손해져야 한다. 청인들은 농인들의 말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를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거듭 고민하고 인내해야 한다.

 

  김도현은 『장애학의 도전』(2019)에서 커뮤니케이션 참여자들은 각기 자기 정체성에 뿌리내리기(rooting)와 다른 주체들과의 교류와 공감을 통해 옮기기(shifting)를 하는 ‘횡단의 정치’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하나의 ‘공동체’(共同體)를 넘어서는 ‘공동체’(共動體)되기를 말했다. 장애인의 ‘말할 수 있음’과 비장애인의 ‘들을 수 있음’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특수교육과 장애학 담론은 함께 상생하는 길을 걷는다. 해서 청인세계와 농인세계는 상호주관(inter-subjectivity)이 만나 쌍방 소통하는 ‘공동체’(共動體)여야 할 터이다.

 

농인들이 농교육을 향해 “우리는 실패했습니다.”라고 발설하는 현실 앞에 모든 특수교육인들은 깊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부단히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나아가 농인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농교육의 존재이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일어 설 때에 진정 사람일 수 있다. 여성해방은 여성이 하고 흑인해방은 흑인이 하듯, 장애해방은 결국 장애인이 해야. 그들의 해방이 마침내 역사가 되게 하려면, 우리는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