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형님의 죽음을 앞두고
5남매의 막내인 내게는 위로 형님이 세 분 계신다. 큰형님은 교통사고로 36년 전에 돌아가셨다. 평생 교직에서 일한 둘째형님은 2013년 내 생일날에 83세를 일기로 운명하셨다. 마지막 남은 셋째형님은 지금 87세로 병원에서 입원가료 중이다. 일전에 구미 순천향 병원에 들려 거의 식물상태로 중태에 빠진 형님을 뵙고 돌아 왔다. 말은 하지 못해도 의식은 살아있어, 나를 알아보고 눈시울을 적시셨다. 신장기능이 좋지 않아 투석을 10년 이상이나 하고 지병으로 고생해 오신 모습이 보기에 참 안타까웠다.
집안에 혼자 남게 되는 내 입장에서 명절에 차례 지내려 계속 큰댁에 가야 할 건가? 이미 조상 제사는 장조카가 한 날에 모아서 모신다고해서 그 이래로 나는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버지 어머니 제일(祭日)에 간단히 집에서 내 나름 제의(祭儀)를 올리고 있다. 선산에 산소관리는 해오던 대로 하면 되겠지만, 큰 형수씨가 돌아가시면, 그 때 조카들이 선조(내게 조부모와 부모님) 묘소까지 함께 어찌 처리할지 모르겠다. 조상 제사까지는 한 날에 모아서 하는 걸 내가 그냥 양해하고 넘어갔지만, 산소 문제는 좀 더 신중을 기해서 처리하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산소 자리를 잡아 상석까지 해 놓았는데, 굳이 봉을 없애고 손 델 필요가 있을까 싶다. 관리하기에 편하도록 한다지만 어차피 벌초는 해야 할 터. 묘지문화를 바꿀 필요는 있지만, 기왕에 자리 잡고 있는 조상 묘소를 공연히 손 데는 건 좀 납득이 가질 않는다. 부득이 이장을 해야 할 형편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형님들과 우리 대에서는 당연히 화장해서 뼈만 묻고 상석을 세우면 된다. 이미 둘째 형님 내외는 그렇게 처리했다. 그 다음 세대에 가서는 그들 세대가 알아서 할 터이고. 대대로 이어져 온 집안 묘지를 어떻게 관리 할 것인가는 후손들의 기본적 책무다. 편의성을 앞세워 간편화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조상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유지되어야 할 터.
형님이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고 저녁에 내가 당장 구미 순천향병원으로 가봐야겠다고 하니, 집사람이 좀 진정하라고 말렸다. 당장 어찌될 것도 아니니, 내일 밝은 날에 함께 가보자는 게다. 잠시 멈춰 다시 병원에 있는 조카에게 늦은 밤에 운전해 가기가 힘들다고 하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조금 있으니 질녀가 전화해서 내일 자기가 나를 태워 가겠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화급하게 서둘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마지막으로 남은 형님의 죽음 앞에 내가 받은 충격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집사람은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나무란다. 하지만 그 나무람이 내게는 쉽게 수용되질 않는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도 심층의 정서적 격차는 세월과 무관하게 쉽게 좁혀지지 않는가 보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실로 옮겨 말도 못하는 상태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형님을 보니 참 안타까웠다. 본인도 괴롭고 가족들도 고생이다. 해서 죽음의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세 분 형님들 가운데 죽음의 존엄을 가장 잘 관리한 분은 둘째 형님이다.
소일삼아 일하던 작은 과원에서 자기 할 일을 다 끝내고 조용히 쉬고 싶다면서 집에서 그냥 돌아가셨다. 평소에 ‘수분지족’(守分知足)을 강조하시더니 참으로 강단(剛斷) 있게 죽음을 맞이했다. 끝까지 자기 결정권을 당당히 행사했다. 나는 그 형님의 삶보다 죽음이 더 존경스럽다. 존엄한 죽음은 삶의 허물을 모두 덮는다.
메맨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