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호국다리 붕괴
왜관 호국다리 붕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백년이상을 버텨 온 왜관의 낙동강 다리가 이번 메아리 태풍이 몰고 온 비로 붕괴되고 말았다. 이보다 훨씬 큰물을 견뎌 온 역사의 다리가 어이없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지켜온 ‘고난의 역사’가 무너지는 듯 참담하다. 왜관 낙동강 다리를 ‘호국(護國)의 다리’로 이름 붙인 것은 이곳이 6.25 전쟁 때 대구 사수의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이다. 인민군 전차부대가 내려오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미군들이 폭격해서 다리를 끊었다. 그래서 결국 대구는 살아남았고, 그러는 동안 인천상륙작전이 성공리에 수행될 수 있었다.
왜관에서 구미를 끼고 선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고아(高牙)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 낙동강 변의 평촌(坪村)이 내가 태어난 마을이다. 6.25 전쟁 때 나는 겨우 여섯 살이었으나, 조그만 가방을 등에 지고 낙동강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다. 걸어서 영천을 거쳐 청도까지 피난 갔다가 돌아왔다. 그 피난길이 어린 나에게 얼마나 무리였던지 집에 돌아와서 약 한 달간 걷지를 못하고 방에 누워 있어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덕분에 지금도 내 다리는 건각(健脚)이다. 내가 자랄 때 홍수 때문에 나룻배가 떠내려가면 대개는 왜관 철교나 다리 교각에 걸려 있는 것을 다시 찾아오고 한 것을 내가 들어서 알고 있다. 또 내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방학이 되어 열차를 타고 왜관 철교를 지나면 이제 구미역이 가까운 줄 알고 내릴 채비를 서둘곤 했다.
그래서 왜관 낙동강 다리는 우리에게 호국의 다리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고향에 이르는 징표이자 삶의 애환이 담긴 다리이다. 옛사랑은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왜관 낙동강 다리는 표표히 그 강물을 지켜보고 있었을 터인데... 어느 날 갑자기 너마저 무너져 내리니 내 가슴이 내려앉는 듯하다. 단언컨대 4대강 사업의 토건(土建)질이 다리 교각의 붕괴를 초래했다. 무리한 토건국가 건설이 자연을 훼손하고 마침내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허물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할 건가? 94세의 스테판 에셀은 우리에게 ‘분노하라’(2011)고 일러주었다. 그에 의하면, 창조는 분노이고 분노는 창조를 가져온다고 했다. 왜관 호국다리 붕괴를 보면서 나는 분노를 넘어 무자비한 ‘토건질’을 저주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자연과 생명을 앗아 가고, 문화와 역사마저 허무는 이 허기진 자본의 횡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함께 걱정하고 나서면 길은 뚫릴 터이니 말이다. 김병하(201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