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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대구대)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

평촌0505 2021. 3. 5. 19:40

1. 문제 제기

 

2021년은 대구대 특수교육 60주년이다. 회갑을 맞는 대구대 특수교육은 그간 무엇을 했나? 앞으로는 어찌할 건가? 노자는 되돌아보는 것이 도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랬다. 에드워드 사이드(E. Seid; 1935-2003))는 『오리엔탈리즘』(1978/ 박홍규 옮김, 1999)에서 지식인은 스스로를 열어가는 방법으로 “재귀적으로 자신을 비판적 도마 위에 올려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동양을 비롯한 제3세계의 지식인은 사이드의 이 말에 부단히 자신을 되짚어 볼 수 있어야 한다.

왜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인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굳이 ‘미국’에서 혹은 ‘유럽’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를 고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세계’라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단신으로 ‘전쟁반대 평화통일’을 외치며 눈물가진 사람을 찾던 김낙중(1931-2020) 선생은 『인류문명의 전환을 위하여』(2013)를 유언처럼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유라시아 동쪽 끝에 있는 우리나라가 수천 년 동안 지구촌에서 형성된 인도문명, 중국문명, 지중해문명 모두를 흡수․체험하고 살아온 데에 주목한다. 해서 한반도의 분단은 인류문명의 전환을 위해 세계사적 안목에서 풀어야 할 과제라 했다. 선생의 화두는 우리에게 과연 그런 안목과 철학이 있는가를 반성하게 한다.

 

필자는 동양철학(동아시아사상사)의 맥락에서 우리나라 동학사상에 주목하여 <한국 특수교육철학의 정립>(김병하, 2019)을 논한 적이 있다. 여기서 최제우(崔濟愚; 1824-1864)의 『동경대전』에 나타난 ‘개벽’의 한국특수교육철학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개벽’은 하늘과 땅이 새로 열린다는 ‘천지개벽’에서 나온 말이지만, 여기서 ‘개벽’은 곧 인문개벽이다. 원광대 불교사상연구원에서는 『근대 한국개벽종교를 공공(公共)하다』(2018)에서 한국의 개벽종교 시원으로서 동학에 주목한다. 이어 이 연구원은 <근대 한국종교의 토착적 근대화 운동>(2018)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나라의 토착적 근대화 운동으로 동학의 개벽사상에 주목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의 역사적․사상사적 함의를 짚어 볼 수 있다. 필자는 다시 대구대 특수교육과 설립 60주년에 즈음하여 ‘대구(대구대)’라는 지역(특정대학)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가 갖는 각별한 함의에 주목하고자 한다. 세계 속의 대구(대구대) 특수교육이 갖는 함의와 그 위상을 정립해 보겠다는 문제의식에서 『대구특수교육사』(김병하, 2007)를 기필했다. 평소에 필자는 한국특수교육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지역 특수교육사로 ‘대구특수교육사’와 ‘평양특수교육사’가 우선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광복 후 대구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메카였고, 그 중심에는 대구대 특수교육이 있었다. 이것이 본 논문의 주제에서 굳이 <‘우리나라(대구대)’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 라고 표기한 이유다.

 

2. 왜 특수교육 ‘철학하기’인가?

 

초기에 수운 최제우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학 지도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동학하는’ 사람이랬다. 그들은 그냥 동학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동학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 자신을 ‘신인간’(동학살이의 존재)으로 다시 개벽하고자 했다. 철학 교수로서 칸트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함을 배우라”(백종현, 2010)고 늘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제 발로 서기를 요구했다.

이홍우(1987)는 듀이 교육사상의 핵심을 나타내는 명제를 “이론은 실제에서 파생되며 실제에 적용되는 한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말로 집약했다. 여기서 ‘이론적인 것’은 ‘보는 것’(seeing), 다시 말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실제적인 것’은 ‘하는 것’(doing), 즉 모종의 조치를 취하는 것, 또는 ‘행하는 것’이라 했다. 듀이는 행하는 것으로서 ‘경험’의 부단한 재구성과정이 곧 교육이랬다.

그는 자신이 의미하는 ‘경험’은 ‘실험’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면서, 실험의 결과는 반드시 그것과 관련된 지적 침전물(이론)을 남겨 놓는다고 했다(이홍우, 1987). 이런 맥락에서 듀이는 “철학은 교육의 일반이론이고, 교육은 그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장(즉, 실천적 증거)과 같은 것”이랬다. 그 자신이 『민주주의와 교육』(1916)을 ‘교육철학 입문’이라고 부제를 단 것은 이 책(1장 삶의 필연성으로서의 교육에서 26장 도덕의 이론에 이르기까지)에서 주요 교육적 관심사를 일관되게 철학적 담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철학하기’는 행하는 것의 실제를 부단히 철학적(이론적) 기준에 비추어 반추해 보는 것이다. 불학에서 말하는 ‘반조’(返照)와 같은 것이다. 『중용』1장에는 하늘의 지엄한 명령으로 모든 사람에게 품부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본래성이고, 이 성(性)이 시키는 바에 따라서 사람이 가야할 마땅한 길이 곧 도(道)랬다. 교육은 이 길(道)을 부단히 닦는 과정이랬다. 길은 닦아야 길이 된다. 이처럼 『중용』첫 머리에는 교육이 있어야 할 자리를 큼직하게 내걸고 있다. 그리고 이 도(道)는 잠시도 나를 떠날 수 없는 것이고,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도(道)가 아니랬다. 해서 홀로 있을수록 자신을 가다듬는, 즉 내 존재의 내면적 심화인 ‘신독’(愼獨)을 강조했다. 비대면 시대에 ‘신독’의 함의가 새롭다.

이어『중용』1장에는 ‘중화’(中和)를 말한다. 여기 ‘중’(中)은 인간의 희노애락 감정(情의 모든 가능성이 性이다)이 발하기 이전인 미발(未發)의 원초적 상태로서, 천하의 대본(大本)이 되는 기준이랬다. 감정이 발현되기 이전의 상태란 무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모든 감정이 동적인 평형성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화’(和)는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이 발현되어 상황의 절도에 들어맞는 중절(中節; 적중한다는 것))을 일컫는데, 이것은 천하 사람들이 달성해야 할 도(達道)이다. 도올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항상 ‘불화’(不和)한 것이어서 여기 ‘화’(和)는 달성되어야 할 이상이자 그것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문명의 프로세스”(도올 김용옥, 2011)라 했다. 교육은 곧 달도(達道)의 지속적 과정이다.

주희는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중(中)은 도(道)의 체(體)이고, 화(和)의 달도(達道)는 도(道)의 용(用)이라” 했다. 여기서 동양철학의 기본개념인 이른바 ‘체용론’(體用論)이 제기된다. 동양철학에서 ‘체’(體)는 형이상의 세계이자 나무의 뿌리와 같은 것이다. ‘용’(用)은 형이하의 세계이자 나무의 줄기나 잎과 같은 것이다. 미발의 기준인 ‘중’(中)은 체(體)의 세계이고, 발현되어 절도에 맞는 ‘화’(和)는 용(用)의 세계다.

『중용』 1장 말미에서는 “중화’(中和)를 지극한 경지에까지 밀고 나가면 천지가 바르게 자리를 잡고(天地位焉), 천지간에 있는 만물이 잘 자라나게 된다(萬物育焉)”고 했다. 해서 ‘중화’라는 개념은 인간의 심성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천지우주론적인 차원으로까지 연관된다. 즉 인간존재를 우주론적 존재로까지 끌어 올린 게다. 기후위기 시대에 인간존재의 진정한 실존성을 되짚게 한다.

이 대목에서 도올은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의 중(中)이 바로 사람이며, 이 사람의 행위에 따라 천지의 위(位)도 영향을 받는다고 파악한 것”(김용옥, 2011, p.251)이라 했다. 해서 “치중화(致中和)하면 천지가 위언(位焉)하고 만물이 육언(育焉)한다는 이 메시지는 『중용』사상이 21세기 서구문명과 동아시아문명의 과제상황에 던지는 최대의 숙제”(김용옥, 2011, p.253)라는 게다. 여기 ‘치중화’(致中和)는 21 세기 인류세(anthropocene)의 도래에 따른 기후위기 상황에서 지구를 살리는 천인합일의 생태문명을 극명히 제기한다.

 

본 연구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는 특수교육 실천과정에서 ‘본말전도’(本末顚倒)를 바로 잡기 위함이다. 교육에서 지말(支末)에 꺼달려 근본을 간과하는 경우 반드시 재앙(시행착오)을 면치 못한다. 특수교육에서 ‘본말전도’의 전형은 사람을 곧 장애(사람=장애)로 대치하는 데에 있다. 체(體)로서 사람을 간과하고 드러난 ‘장애’의 현상 자체를 곧 사람으로 전치시키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게 관행이 될 때, 특수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이를테면 특수교육을 ‘치료’행위 그 자체로 착각․오도하는 데서 오는 ‘본말전도’다. 물론 특수교육에서 치료적 지원은 필요하고 때론 긴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지원’이다.

이런 관행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필자는 진즉에 ‘교육본질의 복원’으로서 특수교육 정립을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늘의 지엄한 명령으로 본래성이 품부되어 있고, 이 성(性)에는 학습하는 힘(가능성)이 내장되어 있다. 해서 칸트는 인간을 교육받지 않으면 안 되는 유일한 존재로 규정했다. 여기서 ‘교육본질’은 사람을 사람 되게 이끄는 ‘심성함양’이자 ‘본성회복’이다. ‘심성함양’에서 ‘함양’(涵養)은 없는 것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니, 심성함양은 곧 본성회복과 다르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특수교육 행위(실천)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철학하기’에 대한 부단한 성찰이 긴요하다. 우리에게 ‘철학하기’는 ‘본말전도’를 바로 잡기 위한 부단한 성찰 혹은 사유형식이다. 어떻게? 미발의 본래성 자리 혹은 그 기준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행위의 발현을 잠시 물러서서 되비춰 ‘반조’(返照)하는 것이다. 이른 바 ‘솔성’(率性)의 자리에서 사람이 가야할 마땅한 길인 도(道)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게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선험적 도덕률을 정언명령으로 수용하는 삶이다. 말하자면, 삶의 형식으로 Meta-praxis(초실천)가 내면화 혹은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라는 질문에서 흔히 동양철학은 서양철학에 비해 방법론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냥 거두절미하고 커다랗게 화두를 던질 뿐, 그 실천 방법론 혹은 분석적 전략이 없다는 게다. 과연 그런가? 『중용』은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에서 ‘솔성’(率性)의 방법론으로 ‘성’(誠)을 제기한다. 흔히 『중용』을 ‘성’(誠)의 철학이라고도 한다. 『중용』21장에는 철학하는 방법으로서 ‘성’(誠)의 문제를 다음처럼 제기한다.

 

자기 몸을 성실하게 하는 것에는 방법이 있으니, 선(善)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몸을 성실하게 할 길이 없다. 성(誠) 그 자체는 하늘의 도(道)이고, 성실해지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중략) 성실해지고자 노력한다는 것(誠之)은 선(善)을 택하여 굳게 잡고 실천하는 것이니 보통사람의 경지다. (그 실천 방법에는 순서가 있으니)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히 묻고(審問), 깊이 생각하고(愼思), 분명히 말하거나 쓰고(明辯), 그리고 돈독히 행하라(篤行).

 

도올은 동양철학은 ‘몸의 철학’이랬다. 『대학』의 8조목에서도 ‘수신’(修身)을 그 중심으로 삼는다. 노자는 “나에게 큰 환란이 있는 까닭은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몸이 없는데 이르면 나에게 무슨 환란이 있겠는가!”라 했다. 노자에게는 우리의 존재성 자체가 ‘나의 몸’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서 존재가 곧 몸이요, 몸이 곧 존재다. 도올은 “노자에게서 인간존재는 ‘몸의 존재’로 이해되지, ‘마음의 존재’로 이해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편, 불교철학자 박성배(2007) 교수는 동양철학의 ‘체용론’(體用論)에서 체(體)와 용(用)을 ‘몸’과 ‘몸짓’으로 바꾸어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체’(體)를 ‘몸’이라고 하고 ‘용’(用)을 ‘몸짓’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몸이 움직여 일을 하며 드러나는 것이 몸짓이다. 그러므로 생명 있는 몸이라면 반드시 몸짓이 나온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몸짓뿐이다. 그러나 몸짓이 몸과 별개로 벌어지고 존재할 수는 없다. 몸이 있으면 반드시 몸짓이 있고, 몸짓이 있으면 그것은 반드시 몸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몸과 몸짓은 (개념적으로) 일단 구별할 수는 있지만 원래는 하나인 것이다(박성배, 2007).

 

동양철학에서 체(體)와 용(用)은 몸과 몸짓의 관계처럼 본래 하나(不二)이다. 그는 체용의 논리를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로 말한다면, ‘체’는 ‘돈’(頓)이지만 ‘용’은 ‘점’(漸)이라 했다. 사람은 원래 체적(體的) 존재이기 때문에 문득(단박에) 깨치는 ‘돈’(頓)을 동원하지 않고 그 모습이 제대로 드러날 수 없으며, ‘체’는 항상 ‘용’과 함께 있기 때문에 사람은 꾸준히(점차로) 수행하는 점적(漸的)존재라는 게다.

박성배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생활의 청산은 누구에게나 시급한 일”이라면서, 자신은 몸짓 문화와 결별하고 몸 문화를 부단히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여기서 그는 ‘철학하기’를 몸과 몸짓의 비유로 말한 게다.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는 삶이라야 ‘철학하기’의 전형이 드러난다.

 

‘철학하기’의 방법론은 『중용』의 ‘성’(誠)론에서 체계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선(善)을 택하여 굳게 실천하는(擇善固執) 삶, 즉 ‘철학하기’의 방법적인 순서가 다섯 단계에 걸쳐 순환적 논리로 제기되고 있다. 이른 바, 박학(博學)―심문(審問)―신사(愼思)―명변(明辯)―독행(篤行)으로 나아가는 과정적 단계다. 『중용』에서 말하는 ‘택선고집’(擇善固執)은 ‘철학하기’의 전범이다.

그 과정적 순서로 먼저 두루 배우는 ‘박학’(博學)을 말한다. 여기서 널리 배운다는 것은 폭넓은 독서행위를 지칭한다. 읽으면 그 속에서 질문을 생성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진정한 공부는 질문 생성이자 질문 오르기다. 이른 바 자세히 묻는 ‘심문’(審問)이다. 학문(學問)은 곧 배우고 묻기다. 질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해 가는 과정이 ‘신사’(愼思)다. 퇴계는 학문하는 마음가짐으로 ‘잠심자득’(潛心自得)을 말했다.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한다는 것은 듀이의 ‘반성적 사고’(reflective thinking)와 다르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부단히 성찰하지 않는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질문을 통해 생각이 자기 것으로 내면화 된 이후라야 분명히 말하고 쓰는 ‘명변’(明辯)이 가능하다. 고미숙(2019)은 읽기는 거룩하고 쓰기는 통쾌한 것이라 했다. 우리는 읽으면 쓰고, 쓰기 위해 읽어야 한다. 읽고 쓰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명변’은 말이나 글로 자기를 적극 표현하는 것이니 창발적이고 통쾌한 일이다. 세계를 해독하는 사람은 세계를 고쳐 쓰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명변’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말한 대로 행동하는 ‘독행’(篤行)으로 이어져야 한다. ‘철학하기’의 전범으로서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는 삶”이란 바로 “말한 대로 살고, 살아 온대로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앎이 삶이 되는 사람이다. 해서, 우리에게 ‘철학하기’는 끊임없는 수행(修行)의 과정이다. 공자도 “말은 반드시 행을 돌아보고, 행은 반드시 말을 되돌아보는 것(言顧行, 行顧言)”(『중용』, 12장)을 강조했지만, 자신도 이것이 독실하게 체현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한탄했다.

『중용』에서 ‘성’(誠)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으로서 ‘성지’(誠之)의 삶은 곧 우리에게 ‘철학하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학(學)―문(問)―사(思)―변(辨)―행(行)’이 하나로 심화․순환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결국 학문(學問)-사변(思辨)-행(行)으로 엮여지는 것이 이른바 ‘철학하기’다. 필자가 보기에는 철학의 방법론을 이처럼 체계적이면서 명쾌하게 제기한 것을 서양철학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게다.

여기 ‘철학하기’가 우리에게 주는 중대한 함의는 ‘학(學)―문(問)―사(思)―변(辨)―행(行)’이 어느 지점에서 멈추거나 중도에 포기한다면 아니함만 못하다는 것이다. 『중용』에서 이르기를,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진대 능하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말고, …(중략)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대 독실하지 못하거든 도중에 포기하지 말기”(有弗學, 學之弗能弗措也. …(中略) 有弗行, 行之弗篤弗措也.)를 강조했다. 문제는 ‘호학역행’(好學力行)의 삶이 어떻게 평생토록 한결같이 이어지게 하느냐이다. 특수교사에게 ‘철학하기’는 필생의 업으로 체화 되어야할 삶의 과정이자 문제다.

 

3.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 무엇을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에는 두 측면의 문제의식이 공존한다. 하나는 역사적 시공간에 방점을 두고 이곳 한반도에서 우리 자신의 특수교육 철학을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철학적 논리와 방법으로 하나의 본새가 될 만한 ‘철학하기’를 어떻게 정립할 것이냐의 문제다. ‘철학하기’의 방법문제는 앞 절에서 다루었기에 서로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특히 ‘우리나라’라는 시공간적 특수성에 연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 절의 내용을 어떻게 전개할지 고민하던 중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종의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필자는 박한식 교수(조지아대, 명예교수)의 ‘한반도 통일 실천방안’에 대한 기획특집 <길을 찾아서>를 계속 애독해 왔다. 그러던 중 <‘범민족 통일 추진위’ 꾸리고 개성에 ‘평화․통일대학’ 세우자>(한겨레, 2020.12.07)라는 기획칼럼을 읽으면서 문득 어떤 감이 잡히는 듯했다. <한민족 통일 실천방안, 45회>에서 지금은 남북한 간의 이질성이 너무 깊어졌기 때문에 박한식 교수는 하나의 대안으로 해외 800만 동포(남북을 떠난 제3의 세력인 디아스포라) 대표자들로 구성된 ‘범민족 통일 추진위원회’를 제의한다. 그는 이 위원회에서 다룰 의제로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One nation, Two states, and three governments) 통일모델과 ‘평화․통일대학설립’을 제안한다.

 

통일은 절체절명의 민족과제라는 사명을 가지고 남과 북 두 국가의 현존체제가 상호존중 아래 존속하면서, 제3의 정부, 즉 통일정부를 구성․수립하자는 방안이다. 남과 북이 각각 자기모순(남은 빈부격차와 불평등한 분배, 북은 가난과 국제적 고립)을 성실하게 극복하면서, 제3정부는 남과 북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질성을 진작시켜 (변증법적으로) 합을 만드는 통일 이상촌을 건설하는 새로운 실험형태의 정부가 되는 것이다(한겨레, 2020.12.07).

 

박한식 교수는 제3정부는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고유영토로 관장하면서 이산가족, 재외동포, 그 외에 누구든 원하는 사람에게 공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주체적인 ‘독자정부’ 구실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15년 이상 통일의 과정을 실험한 경험이 있는 개성에 ‘평화․통일대학’을 설립하자고 제안한다. 이 통일대학을 통해 통일을 향한 정치체제와 통일문화를 창출하는 산실로 활용하자는 게다. 참 신선한 제안이다.

그는 영국의 퓨리턴(청교도)이 신대륙에 건너와 미국 최초의 대학인 하버드대학을 설립(1636년)한 것에 주목한다. 미국의 새로운 국가 건설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한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하버드대학에 버금가는 교육기관이 통일한반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다. 우리에게 통일은 이념적 명분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 합리적 구상이면서 미래지향적인 실험적 대안과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미리 결과를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유의 문제의식에 자극을 받아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의 실험적 대안으로 그간 필자가 공부해온 여정을 중심으로 ‘특수교육 철학하기’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내 스스로 구안해서 해보지도 않고 당위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면 후학들에게 공허하기 들리기 십상이다. (이게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철학 전문서적을 처음 저술한 사람은 황원영(1997) 교수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육학부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수학하고 학위를 취득한 후, 단국대 특수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학원과정에서 ‘특수교육철학’을 강의했다. 황원영은 이 책의 서장에서 서구의 역사적 추이에 의거해 특수교육의 이념을 다음처럼 기술하고 있다.

 

특수교육의 이념과 가치관의 기저는 기독교적 자선주의가 위치하고 있고, 특수교육의 실천과 행위체제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특수교육의 목적론은 실존주의의 공존윤리 이념과 규범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특수교육의 이념과 규범에 관한 연구는 적어도 이 세 가지 체계, 즉 이념과 가치관의 기저, 특수교육의 방법론, 특수교육의 목적론 등에 관계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교육의 이념과 규범에 관한 학문방법론으로써 특수교육철학은 일반교육철학과는 마땅히 연구방법론에서도 달라져야 한다(황원영, 1997, p.3).

 

그는 유럽, 특히 독일의 학문적 전통에 의거하여 특수교육 이념과 가치는 기독교의 박애정신, 목적은 실존적 공존윤리, 방법론은 과학적 방법에 기초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특수교육철학은 일반교육철학과 연구방법론에서 달라야 한다고 했지만,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책의 말미에서 황 교수는 방법론적 문제로 현상학적 방법론, 해석학적 방법론, 연역적 방법론, 변증법적 방법론, 경험적 방법론을 열거하고, 각방법론들 간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 담론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어서, 이런 담론은 그 자체로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한편, 90년대에는 대구대 특수교육과 중심으로 Thomas M. Skrtic 교수(University of Kansas)의 저술(1991, 1995)을 접하면서 특수교육철학 담론이 활발히 개진되기 시작했다. 후에 Skrtic의 저서는 김정권과 김병하가 편역하여 『특수교육 패러다임: 특수교육이론에 대한 비판』(1999)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김정권은 “특수교육은 교육과정, 교수학습, 교육평가 등에 대한 단편적 지식 축적에 심혈을 기우려 왔으나, 이런 교육활동에 대한 이론적 비판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고 자평했다. 이 무렵 김정권 교수는 『완전통합교육과 학교교육의 재구조화』(1997)라는 저서를 통해 장애아동의 통합교육을 위한 학교교육의 재구조화를 폭넓게 논의했다.

이 무렵 필자도 Skrtic 교수의 저술과 장애학(Disability Studies) 담론에 자극을 받아 기존의 『특수교육의 역사적 이해』(1977, 1983)에 덧붙여 『특수교육의 역사와 철학』(2002)을 출판했다. 이 책의 9장에서 15장까지가 ‘특수교육철학’ 부분인데, 그 목차는 “(1) 철학적 방법으로서의 특수교육과 특수교육(학)의 학문적 성격, (2) 특수교육에 대한 기능주의와 해석주의의 관점, (3) 특수교육에 대한 구조갈등주의와 진보적 휴머니즘의 관점, (4) 포스트모더니즘과 특수교육의 재구조화, (5) 21 세기 특수교육론: 한국적 과제, (6) 특수교육의 윤리, (7) 특수교육의 정체성: 보편성과 특수성 논쟁”(김병하, 2002, pp.263-360.)등으로 구성했다.

 

이상을 개관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는 1990년대 말까지는 주로 구미의 특수교육 철학담론을 우리나라에 소개․번안하는 데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황원영은 독일을 중심으로, 김정권과 김병하는 미국의 Skrtic 교수의 특수교육철학 담론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다만 이런 기반 위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철학 정립과제를 문제제기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 무렵 장애인단체 중심으로 ‘장애학’ 담론이 제기되기 시작했으나, 장애학과 특수교육의 상생적 연관에는 이르지 못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특수교육철학 담론 생성과정에서 한국의 역사적 현실 혹은 현장에서 우러나는 담론(이른바, grounded theory)에 대한 관심이 제기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인문사회 학문세계에서는 진작부터 학문의 탈식민화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 졌으나, 실제로 학문내용에서 주체적 학문담론을 생성해 내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테면 학술단체협의회에서 미국중심 학문패러다임 이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우리 학문 속의 미국』(2003)을 냈다.

이 책의 <철학의 탈식민화>에서 연효숙(2003)은 「식민․탈식민 시대의 주체와 타자」라는 논문을 통해 ‘탈식민시대 나는 누구인가’를 문제 삼아 “나는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가? 또 나는 주체적으로 학문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이 질문은 곧 오늘 우리 특수교육학인들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에게 근대화과정은 곧 주체적 자기정립과정이라 해도 좋겠지만, “동양문화권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타자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자화상을 일방적으로 규정당하거나 주체의 자리를 탈취 당했기 때문에, 주체의 자리를 찾는 일이 시급해졌다.”(연효숙, 2003, p.348)는 게다. 연효숙은 이렇게 말한다.

 

동양은 후진적이고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서구 오리엔탈리즘과 일본의 굴절된 오리엔탈리즘을 우리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이 이제는 ‘박제화 된 오리엔탈리즘’이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이를 흉내 내고 이에 감염되어 ‘복제 오리엔탈리즘’을 계속 우리 속에 내면화하고 생산해 내는 것은 아닌가. 다만 식민 현실에서는 일본이라는 거대 타자를 욕망하고 동일화하면서 그 모델을 내면화해 왔다면, 이제 탈식민화시대에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는 미국이라는 거대 타자로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타자를 욕망하고 모방하면서 자기 내면화하려는 관성은 그대로 남아 있음직하다(연효숙, 2003, p.361).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일본으로부터 굴절된 오리엔탈리즘을 이중적으로 내면화한 상태에서 자기 정체성 혼란을 중층적으로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한국의 특수교육학계를 들추어 말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경우 이런 정체성 혼란을 한참 겪어왔다. 그러는 중에 필자는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가 제기한 『우리학문의 길』(1993)에 깊이 공감하면서, 나름 한국에서 주체적으로 특수교육 ‘철학하기’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문사회학문으로서 우리나라 특수교육학도 이제는 수입학문의 수준을 스스로 탈피하는 학문의 탈식민적 고민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적인 화두로 삼게 되었다.

1997년 가을에 공주대학교에서 한국특수교육학회와 대한특수교육학회를 통합하는 통합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학술대회에서 필자는 <특수교육학의 학문적 성격정립과 그 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이 발표에서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이 이제는 수입학문의 성격을 벗어나 자립학문의 기반을 닦아가는 한편, 모더니즘에 기반한 담론에서 포스트모더니티를 향한 담론에도 지적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에서 이화여대 신현순 교수가 자신은 한국특수교육이 수입학문에 머문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기 어럽다면서, 다소 격앙된 어조로 반응했다. 한반도 안에서도 어쩌면 ‘한국’사회학문은 그 때만 해도 아직 ‘디아스포라’였는지 모른다. 후에 나는 이화대학의 특수교육 학풍에 비추어, 왜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스스로 풀리는 듯 했다. (학문세계에서 다른 것은 다른 것대로 서로 존중되어야 할 터이다.)

 

광복 후 한국특수교육의 메카로 자리 잡은 대구특수교육의 ‘특수성’(지역성)을 세계특수교육의 ‘보편성’에 의미연관 지우는 작업의 일환으로 필자는 『대구특수교육사』(2007)를 기필했다. 한국전쟁 와중에 대구 대명동 공동묘지 터에 장애영역별로 5개의 특수학교가 설립되고 그 안에서 대구대 특수교육과 재활과학이 하나의 캠퍼스를 형성해 온 독특한 실천사례(외국에서 결코 비슷한 사례를 꼽을 수 없는 대구특수교육의 역사성과 실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어 필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의 정체성 정립을 위한 그간의 노력을 『한국특수교육론: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의 정체성』(2011)으로 정리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장애학과 한국특수교육의 재구조화, 불학과 성리학의 한국특수교육 철학적 함의,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특수교육과 동아시아 모델”의 모색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의 길을 찾고자했다. 그러고 정년 후에는 한국특수교육 ‘철학하기’의 뿌리로서 ‘체’(體)를 정립하는 일에 관심이 쏠렸다. 그런 입장에서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 이름으로 『유학․불학․프로테스탄티즘의 한국특수교육론』(2013)을 펴냈다. 한국특수교육 ‘철학하기’의 뿌리(즉, 體論) 정립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유학과 불학, 그리고 프로테스탄티즘이 주는 특수교육 철학적 함의를 밝히고자 했다.

2014년부터 필자는 <지식과세상>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동양고전 읽기를 공부하던 중에 동학의 『동경대전(東經大全)』으로부터 깊은 종교적․철학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진즉에 김상봉 교수(전남대 철학과)는 동학을 한국철학의 시원으로 설정했고, 도올 김용옥은 『동경대전』이야말로 우리나라가 가진 유일한 바이블이라 했다.

이에 공감을 얻어 필자는 「‘개벽’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2019)을 발표하고, 내친 김에 「한국 특수교육철학의 정립: 희망과 존엄의 교육」(2019)을 발표했다. 이로써 동양철학(<중용>과 <대승기신론>에 정초한)과 동학사상에 기반하여,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의 담론을 열어가고자 했다.

 

코로나 환란의 팬데믹 이후 언필칭 ‘대전환’이 회자되고 있다. 이에 필자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산물로 내면화된 ‘서도서기’(西道西器 )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학문담론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하기’의 한 시도로 「동도서기(東道西器; oriental spirit & occidental technology)의 한국특수교육 담론」(2020)을 기필했다. 이 논문은 필자가 <지식과세상>의 책읽기교실에서 에드워드 사이드(E. Seid)의 『오리엔탈리즘』을 공부한 것이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서도서기’에서 ‘동도서기’로 나아가 마침내 ‘동도동기’로 전환하기 위한 ‘철학하기’의 실험이었다.

 

박노자는 <한국, 안과 밖>칼럼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정자본주의가 낳은 ‘중산계급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위기 속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파탄을 맞았다. 이 파탄이 가장 가시화된 곳은 바로 신자유주의를 세계적으로 선도해온 미국이다. 전후 ‘중산계급 사회’와 함께 구미권의 세계적 헤게모니도 이제 드디어 본격적인 종말을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제 아시아의 개발이 구미권의 독점권을 깸과 동시에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개발’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고 본다. 그는 “아시아 시대의 핵심국가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모델을 완전히 벗어나 친환경 복지국가로 가지 않는 이상 자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바깥 세계에 모범을 보여주지도 못할 것”이라 했다(한겨레, 2020.12.09). 과연 한국은 세계적 선도국가로 발 돋음 할 수 있는가? 그에 상응해 세계적으로 특수교육 ‘철학하기’도 선도할 수 있는가? 목하 한국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의 과제다. 30대의 신세대는 이제 한국사회가 추격의 시대에서 ‘추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장담한다. 이것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현명한 낙관론’이란다.

 

 

4. ‘대구대’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의 학맥 이어가기

 

대구대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의 깃발은 성산 이영식(星山 李永植; 1894-1981) 목사가 꽂았다. 독립운동가로 2년간이나 옥고를 치른 성산 이영식 선생은 광복기념사업으로 남이하지 않는 장애인교육을 대구 대명동 공동묘지 터에서 시작했다. 이영식은 스스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정신”으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이영식의 특수교육이념은 대구대의 건학이념이기도한 ‘사랑․빛․자유’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는 장애아동을 ‘사랑’으로 보듬어, 그들이 세상의 ‘빛’이 되게 함으로써, 장애인 스스로 자기이유(自由)를 실현하게 했다.

이영식은 인간 존엄의 이상으로 ‘인광(人光)주의’를 말했다. 인광주의는 그늘에 가려진 소외계층에게 우선적으로 사랑과 자유의 빛을 쪼이게 하자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자면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사랑을 나누어야 할 때가 있다. 특수교육이야말로 ‘땀과 눈물과 사랑’으로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영식, 1986)이랬다. 그는 인광주의로 살 때 우리는 신의 형상을 닮고, 신성은 내 몸과 마음속에 내재하는 것이라 했다(김병하, 2014).

이영식은 ‘인광주의’에 입각한 자신의 인간관을 일곱 가지로 집약했다. 즉, (1) 인간은 우주의 주인이다. (2) 인간은 우주의 빛이다. (3)인간의 정신(영혼)은 영원하다. (4) 인간의 낙원은 ‘지금 이곳’의 지상에 있다. (5) 인간의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다. (6) 인간은 사랑의 사자다. (7) 인간은 작지만 위대한 존재다. 이처럼 그의 인간관은 인간존엄의 극치를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 이영식은 이 땅에서 인광주의의 실천가이자 특수교육주의자의 표상이 되었다.

 

성산 이영식 선생이 대구특수교육의 실천 깃발을 꽂았다면,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창파 이태영(滄波 李泰榮; 1929-1995) 총장은 대구대 특수교육과를 설치한 주역으로 특수교육 지도자 양성에 그 선구자가 되었다. 이태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대학에서 특수교육학 강의를 하였고, 역시 최초로 『특수교육개론』(1963)을 저술했다. 필자는 1960년대 중반에 직접 이태영 선생으로부터 <특수교육원리>와 <특수교육행정>강의를 들었다. 이태영은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제정>에 산파역을 하였으며, 특히 대명캠퍼스에 5개 특수학교의 정비와 재활과학대학 설립(1988)을 주도하여 이곳을 장애인의 성지(聖地)로 만들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했다.

이태영은 『특수교육개론』(1963) 말미에서 ‘특수교육학’의 성격에 대해 “필자는 특수교육을 교육학의 일 방법론으로 인식해 왔으나, 특수성이 많고 다방면의 지식과 전문적 기술이 응용되기 때문에 특수교육학으로서 체계가 서야한다.”고 했다. 특수교육학을 단지 교육학의 한 하위영역으로 보지 않고, 다중패러다임으로서 ‘특수교육학’의 독자적 성격을 강조한 점에서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그는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IYDP)를 전후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에서 장애인복지와 특수교육에 대해 많은 발표를 하였다. 당시 발표한 글들을 모아 『사회복지와 특수교육』(1984)을 단행본으로 발간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이태영은 “복지사회를 향한 역사적 당위성에 대한 자각에서 필자는 불리한 처지에 있는 약자를 위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의 가치와 그 필요성을 지난 30년 동안 꾸준히 주장해왔다.”고 했다.

그는 1987년 4월 미국특수아동협의회(Council for Exceptional Children)가 시카고에서 주최한 제65차 연차대회에 초청되었다. 이 때 <대구대학교와 그 부속장애아교육기관들에 의해 주도된 한국의 특수교육과 복지활동>이라는 주제로 전체 본회의장에서 발표한 것이 안타깝게도 마지막 공식 활동이 되고 말았다. 그는 평소에 “자기만이 해야 할 독특한 천부적 사명을 깨달아서 남이 안 할 때, 남이 안하는 일을 남이 안하는 방법으로 성공의 샘물이 솟아날 때까지 끝까지 파헤쳐 나가는 것이 자기창조의 열쇠”라 했다.

 

한편, 대구대 특수교육과 초창기 교수로서 안태윤(1962-1972년 재직)은 학과장으로 초기에 학생중심의 학회지인 <특수교육과학>을 간행하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초기에 안태윤 교수는 특수교육 강의 자료가 전무했던 까닭에 프린트 자료로 <맹교육론>, <농교육 및 심리>, 그리고 <중등교육론> 등을 직접 제작하였다. 당시 함께 학과에서 일한 김정권 교수는 “안 교수는 성품이 강직하고 성실하여 매사에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능력 있는 분이었다. 학교에서 바른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나, 학교발전에 헌신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정권 교수는 1964년에서 2002년까지 대구대 특수교육과에 재직했다. 자신의 표현대로 특수교육의 원시시대에서 포스트모던까지 다 겪은 기간이다. 대구대 특수교육과에서 정신지체교육을 처음 개발했고, 국가수준 특수학교교육과정개발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4차, 5차, 7차 등 세 번이나 특수학교교육과정 개발책임자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 중 제7차 교육과정 개정작업에서 지적장애아를 위한 ‘기본교육과정’에서 교과 간 통합단원을 구축하고, 운영중심의 교육과정으로 학생개인을 위한 ‘보편적 학습설계’가 가능토록 하였다. IEP 구성과 운영에서 교사에게 교육내용 편집에 재량권을 주기 위해 전자교과서(e-book)를 만든 것도 주요 성과였다. 이 일에 김용욱 교수도 적극 참여하였다.

1998년에는 발달지체인의 ‘자기권리주장운동’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관련 책자를 발간하고, 격년제로 권리주장대회를 개최해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피플 퍼스트’(People First) 운동에 선풍을 일으켰다. 이 운동을 통해 부모는 부모의 문제를 해결하고, 장애인에게는 당사자로서 자기권리를 주장하는 경험을 제공해주고자 했다. 이로써 ‘장애학’에서 강조하는 장애인당사자 중심성을 발달지체인들에게까지 그 지평을 넓히는 데에 기여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김정권 교수는 많은 저서를 냈지만, 그 대표적 저술은 『완전통합교육과 학교교육의 재구조화』(1997)가 아닌가싶다. 이 책은 김정권 교수의 특수교육철학이 가장 포괄적으로 반영된 대표적(최종적) 저술로 평가된다. 이 책을 통해서 탈산업사회에서 학교교육의 재구조화와 더불어 그런 맥락에서 장애아동의 통합교육의 철학과 실제를 정립하고자했다.

 

초창기에 특수교육과에 재직한 교수 가운데 서석달 교수는 언어치료 강좌를 개발했고, 이규식 교수는 청각학을 개발하고 후에는 치료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70년대에 접어들며 특수교육과가 확장됨에 따라 새로 교수진도 확충되었다. 이상춘 교수는 정신지체교육과 복지 분야를, 안병즙 교수는 지체부자유교육 분야를 개발했고, 원영조 교수는 청각장애교육과 언어지도 분야를, 김병하는 특수교육역사․철학 쪽을 개발했다. 특히, 원영조 교수는 대구대국제부 일을 전담하면서 <일본청각장해자복지협회>와 공동으로 청각장애아교육 강습회를 1981년부터 14회나 이끌어 왔다.

교육행정을 전공한 송화섭 교수는 특수교육행정을 맡았고, 여광응 교수는 정신지체아심리와 지도방법 쪽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 김정권 교수와 함께 여광응 교수는 초기에 특수학급담당 교사들의 연수교육에 많은 기여를 했고, 그들 교사를 위한 뉴스레트도 매월 발간했다. 세계장애인의 해(IYDP)를 기념해 특수교육과에 특별히 임용된 임안수 교수는 시각장애교육과 점자지도 쪽에 많은 기여를 했고, 특히 한글점자 표준화에 크게 기여했다. 임 교수는 정년 후에도 『한국 시각장애인의 역사』(2010)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그 후(80년대 말) 박화문 교수는 지체부자유영역을 중심으로 감각․운동치료교육 분야에 기여를 하였고, 90년대에 김용욱 교수는 특수교육공학과 학습장애아교육 분야를 개발하였다. 그 뒤에 조인수 교수는 특수교육과로 와서 장애학생전환교육 분야에 기여했다. 김용욱 교수는 필자와 함께 두뇌한국(BK)21 특수교육연구단(단장: 김병하)에서 참여대학원생들의 국제학술대회 발표를 독려․지도하였다.

7년 동안 이 연구단에 참여한 대학원생들 가운데 약 20명 이상이나 전국의 특수교육분야 현직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BK21연구단 사업의 결실로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이 등재학술지로 20년 째 이어져 오고 있으며, 연구단사업의 후속조치로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를 설립(2006)해 특성화연구소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수교육과 설치 6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대구대 특수교육과(대학원 특수교육학과 포함)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 그런 만큼 교수들의 책임이 크다.

 

 

5. 맺음: 세계 속의 한국 특수교육철학 정립을 위해

 

우리나라(대구대)에서 특수교육 철학하기가 세계 특수교육의 ‘보편성’에 의미연관 되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할 것인가는 ‘방법론’의 문제이고,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 속에 채워 넣어야 할 ‘내용론’의 문제다. 방법론에 대한 일반적 문제제기는 앞에서 논의하였다. 필자는 학술담론으로 ‘한국특수교육론’을 정립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세 갈래의 주안점(논지)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한국특수교육 담론이 구미의 특수교육 담론과 수평적으로 소통되게 하기위해 (1)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우러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론, (2) 좁게는 동아시아에서 넓게는 구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르면서 회통(會通)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방법론, (3) 동아시아문명 속에서 한국사상의 전통을 21세기(당대)에 창발적으로 이어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방법론을 정립하자고 했다.

 

이런 방법론적 특성이 잘 반영되게 하면서 특수교육 담론의 내용을 어떻게 구안하고 채워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한국특수교육학인 각자의 몫이다. 이것은 각자의 지적 관심사에 따라 지속적으로 천착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결과물이 말해준다. 문제는 발표된 논문이나 저술이 얼마나 두루 읽혀지고 인용되느냐에 그 생명력이 달려 있다.

길은 닦아야 길이 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논문이나 저술의 양적인 편수(업적 올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필생의 업으로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한 우물을 얼마나 꾸준히 파들어 가느냐가 중요하다. 해서 자기 색깔과 목소리가 차별 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게 긴요하다. 필명을 보지 않고도 읽는 사람이 이것은 누구의 글이네 라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해야 한다.

 

특수교육에서 ‘철학하기’의 실천적 대안으로 필자는 인도의 여성학자인 가야트리 스피박(G. Spivak; 1942- )의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1988) 라는 논문을 떠올리게 된다. 스피박이 제기한 “서발턴(subaltern)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우리나라 특수교육철학은 성실하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본질의 복원으로서 특수교육은 장애아동이 스스로의 목소리(언어)로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스피박이 지칭하는 ‘서발턴’은 인도 빈민계층 여성으로서 자기 목소리로 말 걸기를 하지 못하는 침묵의 집단이다.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은 또 하나의 ‘서발턴’이다.

스피박은 그의 질문에서 부정적으로 답했지만, 우리는 서발턴니티(subalternity)로서 장애아동일지라도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로 발언할 수 있게 교육다움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에게 장애아동은 침묵하는 관리대상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말하게 하는 것이 특수교육의 존재이유다.

동시에 우리는 이 질문에서 당연히 따라붙는 “우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으로 열린 채로 남아 있는 질문 앞에 한 없이 겸손해져야 한다. 특수교육은 모든 장애아동들이 자기 목소리(언어양식)로 말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하지만, 동시에 모든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말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인내해야 한다. 말은 당사자(발어인)의 세계이자 사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애아동과 대면하는 현장에서 특수교육을 철학한다는 것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먼저 철학한다는 것은 현실에 작위적으로 개입하기에 앞서, 그 실천이 얼마나 보편타당한 기준에 합당한가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이른바 Meta-praxis(초실천) 차원에서 자기점검하기다. 과연 지금 내가 실천하는 교육과정활동이 교육이 본래 있어야 할 본질적 기준과 합치하는가를 엄중히 따져보는 것이다.

노자는 되돌아보는 것이 곧 도(道)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랬다. 잠시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실천이 스스로 설정한 철학적 기준에 일치하는가를 되물어보는 것이 철학하기의 첫 단계다. 다음에는 그 기준이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되게 현실 개입을 하느냐의 문제다. 이른바 독행(篤行)의 문제다. 『중용』에 이르기를, “말(言)은 반드시 행(行)을 돌아보아야하고, 행은 반드시 말을 돌아보아야 하니(言顧行, 行顧 言), 그리하면 반드시 독실(篤實)해지지 않을 수 없다.”(『중용』, 13장)고 했다. 우리에게 철학하기는 부단히 자기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