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는 흘러간 가요 제목이다. 그런데 어쩌다 내가 다움에 블로그(김병하넷)를 개설하면서 이 ‘봄날은 간다’를 배경 음악으로 넣었다. 한영애가 부르는 이 노래가 듣기에 참 좋다. 어느 날 신문에서 책 소개 난을 보다가 신화 속에 떠난 이윤기를 그리며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교보에 신청을 넣었다. 이윤기는 우리에게 ‘로마신화’라는 거작을 남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47년생으로 나랑 호적으로는 동갑이면서 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 책이 손에 잡히자 우선 이윤기가 남긴 단편 ‘봄날은 간다’를 읽으면서 금방 작품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소설류는 한 번 읽고 대개 덮어두기 일수 인데 제목에 끌려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주요 대목에 연필로 표시까지 해두었다. 그러는 동안 내친김에 내가 ‘봄날은 간다’는 에세이를 하나 쓰기로 작심했다.
이윤기의 ‘봄날은 간다’ 줄거리는 대체로 이렇다. 주인공이 신학대학의 선배인 김민우를 약 30년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나 그에게 묘목을 구입하기로 한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전개된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에다 다는 방울 같은 것이다. 나무라는 것이.”라는 말이 툭 튀어 나오면서 김민우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시간에 방울을 달아 놓으면, 설사 그것이 쇠 방울이라고 할지라도, 세월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은방울로 되기도 하고 금방울로 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세월을 잘못 보내면 쇠 방울은 녹슨 쇠 방울로밖에는 되지 못할 테지. 세월에 주머니를 채워 놓으면, 그것이 빈주머니라고 할지라도 세월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주머니가 은돈으로 차기도 하고 금돈으로 차기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방울을 매달지 못했고 주머니도 채우지 못했다. 당신 말이야,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왜 그 오랜 세월 잊히지 않고 불리는 줄 알아?”
그러고는 그 노래를 “시간에 방울을 달지 못한 자들의 노래”로 규정한다. 내가 어쩌다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를 부르고는 꼭 토를 달아 ‘봄날은 갔다’고 하소연조로 말하면, 듣기 좋아라고 옆에 있는 제자나 후배는 “교수님의 봄날은 아직 가지 않았어요.”라며 애써 나를 격려(위로?)해 준다. 작가 이윤기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시간에, 세월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봄날은 간다>만큼 잔인한 노래는 없다. ...(중략) <봄날은 간다>를 가장 잘 부르는 인간들은 아마도 시간에 방울을 달지 못한 인간들일 것이다.”고 했다. 꼭 나보고 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내게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 이윤기는 김민우라는 주인공 입을 통해 나무를 심는 일은 시간에다 가장 확실히 방울을 다는 일에 해당된다고 거듭 말한다.
“나무는 나의 종교가 되었다. 비로소 나는 종교를 얻은 것이다. ...(중략) 부활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와 나무밖에 없다. 당신이 그러지 않았나? 칠십 년 된 잣나무에 떨어진 씨앗이 발아하더라고. 보라고. 잣나무는 처음 열매를 매단 그해부터 세세연연 부활했던 거다. 나는 평화를 거의 찾은 것 같다. 나는 나무로 부활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렇게 실토한다. “장관지내고, 국립대학교 총장 지낸 내 형과 아우는 정신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인데 나는 현재 진행형으로 펄펄 살아 있다.” 이처럼 후배에게 펄펄 살아 있는 자신의 삶을 자랑 삼아 내세우면서 말미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나무에) 매단 방울이 어떤 방울로 변할 것인지 그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와 나누는 영적인 교감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나무는 내 재산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내 실존에 속할 것이다.” 마지막 이 한 마디에 이윤기라는 작가의 무게와 깊이가 더욱 느껴진다.
시간에 방울 달기? 이를 위해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나무를 심고 숲을 걸어 볼까. 아마 책 읽고 글 쓰면서 손수 심은 나무가 우거진 숲을 거니노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테지. 내게 봄날은 가지만(혹은 갔지만) 다시 돌아오는 게 봄날이다. 정년 후에 수륜 밤산에 무슨 나무를 좀 심어 볼까 생각하니 벌써 내 가슴이 펄펄 살아나는 것 같다. 그리고 당분간 <봄날은 간다>는 여전히 나의 애창곡이 될 듯싶다. 김병하(2011.09.25)
<추기>
나는 끝내 수륜 밤산에 나무 한 거루 더 심질 못했다. 있는 나무도 관리하기에 힘이 부쳐 몇년 전에 아예 밤산을 처분해 버렸다. 그대신 햇살 좋은 날 숲속을 거니는 산책은 즐긴다. 그리고 아직도 읽고 쓰기는 내 삶의 기둥이 되고 있다(20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