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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일 교수의 <부러진 독화살>

평촌0505 2022. 6. 1. 16:34

80줄에 들어선 김춘일 교수가 <부러진 독화살>이라는 자전적 장편소설을 보내 왔다. 그림도 그리고 그간 책과 논문을 많이 발표한 김 교수가 노년에 자전적 소설을 썼다. 마침내 그는 글쓰기의 형식을 가로지른다. <애틀랜틱 먼슬리> 심리학 특집에서 죠슈아 셍크는 “추상적 개념에 꿰어 맞추기에 인생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불가사의하며, 난해하고 모순투성이다. 진짜 삶에 접근하려면 예리한 과학의 칼날을 ‘이야기’의 힘으로 둥글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네 삶은 과학적 설명 이상의 하나의 독특한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기 삶의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려면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시 노년에 김 교수의 결기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나보담 대구대 특수교육과 1년 선배이지만, 그가 80년대 중반 대구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오기 전에는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서로 살아온 여정이 달랐던 게다. 이번에 김 교수의 <부러진 독화살>을 읽고 그의 젊은 시절 교직생활에 이어 서울서 출판 편집 일에 열정적으로 활동한 내력, 그리고 교육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일들을 전체적으로 꿰어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는 크게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하나는 김 교수의 자전적 소설 묘사 능력이 그림으로 실물을 묘사하듯이 눈에 선하게 드러나도록 묘사하는 능력이 글로 전치되는 데에 놀랐다. 그의 예술(미술)감각이 글쓰기 감각으로 회통되는 재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러진 독화살>을 읽고 예술과 문학은 심층에서 그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소통(만남)이 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 김 교수의 삶의 여정을 통해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운 좋게도 석사과정에서 교육철학을 공부하고 일찍부터 모교 특수교육과 교수로 평생 한 직장에서 교수 노릇했다. 참 행운이었다. 나는 정년 고별강의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교수이고, 가능하면 모교 특수교육과 교수이고 싶다고 했다. 김춘일 교수는 거창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서 교육 잡지사 편집자로 옮겨 출판사 일을 거쳐, 교육개발원 연구원으로 활동하다가 뒤늦게 모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자리 잡았다. 그만큼 다양한 경력을 쌓고 열정적으로 살아 왔기에 나보담 경험도 다양하고 사람관계도 폭넓게 쌓아왔다. 말하자면 삶의 폭과 경험이 나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그만큼 역동적인 삶이었다.

 

사실 장선(章仙)이 자전적 소설 제목을 <부러진 독화살>로 표현한 것은 소설로서 함축적인 의미는 있으나, 좀 자학적 의미가 깔린 것 같아 나는 제목을 <휘어진 화살>로 했으면 싶다. 노년에 정도의 차이일 뿐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20대에 위궤양으로 고생을 했다. 근데 김 교수가 간염을 앓은 건 짐작이 가는 데, 정년 후에 심장시술을 받은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이 들어 건강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노년에 객관적 건강 상태도 무시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관적 건강인식이라 한다. 노화는 자연현상이니 나이 들면 누구에게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기 마련이다. 그냥 대범하게 내 스스로가 녹여내야 할 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장선이 금산 추부에서 품위 있는 노년을 향유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