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나는 왜 쓰는가

평촌0505 2022. 8. 24. 12:50

우리에게 조지 오웰(G. Orwell; 1903-1950)은 소설 <동물농장>과 <1984년>을 통해 전체주의의 실상을 폭로한 작가로 두루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짧은 에세이 중 <나는 왜 쓰는가>(1946)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쓰는 것은 삶 자체이자 운명이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반추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교수인 내게 ‘나는 왜 쓰는가?’는 물음은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내 존재 자체에 대한 화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현직 교수시절에는 교수 노릇하기(정확히는 살아남기) 위해 논문 쓰고 책 쓰는 일을 그냥 당연한 책무로 여겼다. 물론 그 책무 속에 나름 쓰는 이유가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우선은 쓰고 발표하는 자체가 일차적 목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년 이후에 나의 글쓰기는 우선 교수로서 생존이유로부터 해방되었으니, 왜 쓰는지에 대한 나름의 내면적 이유가 있을 법하다.

 

정년 후에도 나는 책을 두 권 출판했고, 논문도 5-6 편정도 이런저런 이유로 발표했다. 현직에서 다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마무리 작업의 성격도 있고, 정년 후에 나름의 지적 활동에 대한 추가적 정리이기도 했다. 특히 나는 정년 무렵(2011)에 <김병하넷> 블로그를 개설해 거기에 올려놓은 글들이 지금은 약 320여 꼭지에 이른다. 내 블로그 글들은 서평과 사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산문 혹은 에세이에 속하는 글이다. 지금도 내 글쓰기의 생명줄은 이런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지 오웰은 아주 어린 나이에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니 그의 작가적 재능은 타고 났는가 보다. 오웰의 글은 뭣보다 자신이 체험한 삶에서 우러난 것이다. 해서 “오웰의 글은 에세이에서 시작하고, 그 에세이는 경험에서 시작”한다는 평을 받는다.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로 자기만족,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스스로는 정치적 목적보다는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더 크게 작용했다지만 정치적 목적이 분명했을 때일수록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오웰에 비추어 내게 글 쓰는 주된 동기는 뭘까? 나는 상대적으로 자기만족과 미학적 열정에 치우친 반면에 역사적 충동이나 정치적 목적이 글쓰기 동기로 그리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 같다. 내 경우 내 나름의 자기정체성 정립이라는 게 글쓰기의 주요 동기로 작용한 것 같지만, 크게 보면 오웰이 말한 자기만족과 미학적 열정 범주에 속한다. 오웰은 “명징한 언어로 써 내려간 공정한 사회비판”(허진, 2010)을 통해 “정치적 글조차도 예술로 승화” 시키기는 자신의 바람을 이루었다. 아마도 이것은 시대적 배경과 글 쓰는 사람의 개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탓일 게다.

 

이 대목에서 나는 수운 최제우 선생과 안중근 의사의 글쓰기 동기를 떠 올려 본다. 두 분은 죽음을 앞둔(예감한) 절박한 상황과 동기에서 글쓰기에 집중했다. 그 두 분은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이 남달리 분명했기에 탁월한 글쓰기가 가능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그런 글쓰기를 통해 자기만족과 미학적 열정까지도 체감할 수 있었을 게다. 수운은 글쓰기를 종교로 승화시켰고, 안중근은 자신의 총을 동양평화의 도구로 삼았다.

 

‘나는 왜 쓰는가?’ 우리 모두가 한번 쯤 숙고해 볼만한 삶의 화두다. 나는 나답게 살기 위해서 글쓰기를 계속할 작정이다. 읽고 쓰기는 그 자체가 정신적 성장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