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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와 함께하는 즐거움

평촌0505 2012. 1. 22. 10:06

손녀와 함께하는 즐거움

 

  두불 손이 더 귀엽다는 옛말이 맞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손녀랑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우리 집에서 손녀 지현(志炫)이는 오아시스다. 손녀는 대구대 부설 영광유치원에 다니고 있어 나랑 함께 등원하고 퇴원한다. 아침에 나는 출근시간에 쫓길 일이 거의 없는데, 지난여름 하양에서 경산으로 이사한 이후는 손녀 유치원 등원 때문에 온 식구가 바쁘다. 그래도 손녀 손잡고 집을 나서 대학로를 따라 영남대 앞을 지나 대구대까지 차를 몰고 오가는 동안의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도 다음 주에 사이판으로 여행 떠나는 일로 손녀가 차안에서 내게 이것저것 묻는다. 비행기에서 밥은 주는지, 수영은 어디에서 누구하고 하는지, 거기 가면 아는 사람이 있는지... 등등 궁금한 게 많다. 사실 이번 구정 지나고 내게 박사학위 지도 받은 사람들 가족과 함께 3박 4일(2012.01.26-29)로 사이판으로 나를 위한 졸업(?)여행을 가기로 했다. 내게는 참으로 의미 있는 여행이자 고마운 일이다.

 

  손녀는 유치원생활을 퍽이나 즐기는 편이다. 정규반을 끝내고 종일반까지 하는데, 내게 늦게 데리러 오라고 신신 당부한다. 내가 연구실에서 일을 마치고 데리러 가서, 손녀가 유치원에서 하던 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면 나는 그냥 기다려 준다. 나를 밖에 세워두고 기다리게 하는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손녀 외에는 아무도 없다. 유치원 앞 동산에서 문천지를 내려다보고 맑은 공기에 바람을 쐬면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하다. 집으로 가면서 보면 자동차 뒷자리에서 양팔이 아니고 양쪽발이 천장에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가 조용하다 싶으면 언제 잠들었는지 꼬부라져 잔다.

 

  차에서 곤히 자는 걸 보면 손녀가 유치원에서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짐작이 간다. 집에 다 와서 일어나라고 깨우면 잠결에 무작정 업어달란다. 어쩌다 한 번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집에까지 업고 온 적이 있지만, 그건 처음 이사 왔을 적이고 그 뒤로는 그러지 않는다. 집사람이 그러지 말라고 손녀에게 간곡히 당부한 탓이다. 손녀랑 함께 엘리베이트를 타고 오면 지켜보던 일행이 보기에 “그림이 좋다”고 한다. 그런 날은 속으로 기분이 한결 좋다. 요즘 손녀는 나와 제 할머니에게 달포 전에 태어난 남동생 경현(鏡炫)이도 영광유치원에 다니게 하면 좋겠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건의한다. 이처럼 손녀는 자기가 다니는 유치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손녀는 아침 9시 경에 등원해서 유치원 종일반을 마치는 시간이 오후 6시까지다. 그러니까 나는 손녀 덕분에 강의가 있으나 없으나 매일 아침 9시 경부터 오후 5시 반경까지는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교수노릇 40년에 손녀 덕분에 정년을 앞둔 내 연구실 생활이 어느 때보다 알차고 즐겁다. 강의가 없는 날은 오후에 시간을 할애하여 교내 종합복지관 휘트니스에 가서 헬스를 한 시간 남짓하고 오면 한결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처음에 손녀가 유치원에 들어가서 “대구대학교 영광유치원! 사랑, 빛, 자유...” 라면서 원가(院歌)를 초롱초롱하게 부를 때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내게는 그럴만한 내력이 있다. 1965년에 내가 한국사회사업대학(오늘의 대구대 전신) 특수교육과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인연이 되어 평생을 모교에서 교수노릇하며 살아왔고, 딸 태영(泰怜)이도 대구대 유치원을 다녔고 대구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광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게다가 손녀 지현(志炫)의 어멈도 대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니 내리 3대(三代)가 대구대와 이연을 맺어 살아온 셈이니 그 가사(歌詞)가 내게 특별히 와 닿을 수밖에 없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주말이면 우리 가족이 손녀랑 가장 쉽게 그리고 자주 찾는 곳이 대구대 진량 캠퍼스다. 성산(星山)홀 앞 잔디밭은 넓게 탁 틔어서 공놀이를 하건 산책을 하건 아이들 놀기에 아주 적격이다. 손녀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손녀와 우리 가족은 대구대 캠퍼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진량 캠퍼스를 벗어나 손녀랑 우리 가족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경주다. 특히 첨성대-반월성-안압지-계림 숲 일대는 우리 가족이 손녀랑 산책하고 연날리기 하면서 노는 주 무대다. 바람 부는 날 연 날리기 하자고 조르는 것은 손녀이지만 막상 연날리기를 즐기고 그 주도권을 행사하는 쪽은 할아버지인 나다. 어릴 때 나는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산으로 들로 야생마처럼 뛰어 다니면서 연날리기를 무척이나 즐겼다. 첨성대 옆 잔디에서 바람결에 연날리기를 하면서 나는 어릴 적 고향 산야의 추억으로 아련히 젖어든다. 특히 계림 숲 뒤편 왕릉 근처 잔디밭에서 겨우 걸음 자국을 뛰던 손녀가 꿩 병아리처럼 끊임없이 걷다가 엎어지고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면 집사람과 나는 눈시울이 시려온다. 손녀는 집사람의 분신이다. 그로부터 나는 손녀에게 마누라를 빼앗긴 셈이다. 그래도 나는 손녀만 보면 그냥 즐겁다. 왜 그런지 설명할 도리가 없다. 언어분석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 할지어다.” 라고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말을 지어냈다.

 

  손녀가 잠자리에 들 때면 어김없이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란다. 그것은 내가 손녀를 위해 두터운 옛날이야기 책을 한 권 구입해 둔 탓이다. 지금은 집사람이 손녀에게 “할아버지한테 이야기 책 읽어 달래라”하면 잠자러 가라는 말로 통한다. 내가 지은 자업자득이니 꼼짝없이 읽어줘야 한다. 대개는 이야기 하나를 읽어주고 두 번째 이야기로 옮겨지면 중간에 잠들기 일쑤다. 그런데 간혹 이야기를 두 개나 읽어주어도 잠들지 않으면 내가 어서 자라고 일러준다. 그러면 손녀가 할아버지도 자기 옆에 누우란다. 그러다가 둘이 함께 잠들어 버린다. 아침에 침대 머리맡에서 집사람이 70을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손녀와 꼭 같이 잠을 많이 잔다면서 핀잔을 준다. 이렇게 우리 둘은 잠도 잘 잔다. 어떨 때는 손녀가 할머니랑 함께 자다가도 깨서 나를 오라고 부른단다. 그러면 집사람은 가차 없이 내가 잠자는 방에까지 와서 벼락같이 나를 깨워 손녀 곁에 가란다. 다른 일로 잠을 깨우면 내가 신경질을 부리기 일쑤이지만 아무소리 않고 손녀 곁에 가서 나는 금방 잠이 든다. 어떤 때는 손녀가 할아버지 코 그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그러면서 우리는 함께 다시 잠이 든다.

 

  도올 김용옥은 「논어한글역주」(2009)에서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멀리 크게 내다보고 살라고 권한다. 일상의 작은 일에 너무 끄달리지 말고 “할아버지․할머니로서 사는 모습 그리기”를 하라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서 살기는 우리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삶을 안겨준다. 자라나는 손자 손녀에게는 손 씻어라, 공부해라는 등의 일상적 잔소리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애로운 마음으로 던지는 한 마디가 그들의 삶을 훨씬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세상을 관조하는 철학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손녀와 손자는 나의 반면교사인지도 모른다. 김병하(201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