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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애국주의와 가족주의의 폐해

평촌0505 2022. 11. 17. 06:33

 

어제는 박찬석의 <지리산책> 교실에서 ‘보어전쟁’을 들었다. 이 전쟁에서 영국의 잔인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영국은 대영제국의 이름으로 총동원령을 내려 대대적 반격을 펼쳤다. 영국은 보어군이 게릴라전으로 대응하자, 게릴라의 근거지인 농촌 마을을 모두 불질렀다. 잔인한 초토화 작전이었다. 게릴라의 근거지를 잃은 보어군은 1902년 마침내 항복했다. 영국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쏟아졌다. 이 전쟁에서 영국군은 2만6천명이 죽었다. 이것은 보어군 희생자의 4배가 넘는 숫자다. 전쟁에 이기고도 영국군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전형적인 소모전이었다.

 

박찬석 선생은 이 강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아공 보어전쟁은 금과 다이아몬드를 두고 벌린 전쟁이었다. 금은 백인이 가져갔다.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애국자들 때문에 전쟁을 해야 했다. 국가를 만들면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본성이 생기는 모양이다. 모든 국가는 나쁜 국가이다. 좋은 국가는 없다. 무정부주의자인 미하일 바쿠닌(M. Bakunin)은 어떤 형태든 국가를 만들면 전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국가가 있는 한 국제간 전쟁은 피할 수 없다. 명언이다.” 우리에게 국가는 필요악인가? 정말 선한 국가는 없는 걸까? 북구의 핀란드, 덴마크 같은 나라는 작지만 좋은 나라로 꼽힌다. 내가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서로 행복을 공유하는 부탄 같은 나라도 좋은 나라이다.

 

안중근은 우리에게는 애국자이고 의사(義士)이지만, 일본에서는 어찌 평가할까? 그는 동양평화를 위해 하얼빈에서 이토를 저격했다. 김훈은 소설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고,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의 몸속에 총알이 박히는 순간 안중근의 삶은 총에서 말로 전환한다. 결행 직후 안중근은 “이토가 죽었다면, 나의 목숨이 이토의 목숨 속에 들어가서 박힌 것”이랬다. 문제는 강대국이 제국의 힘을 확장하기 위해 약소국을 침탈하는 데에 있다. 인류 역사에서 강대국의 흥망이 그 굴곡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나는 좁은 애국주의도 문제지만 좁은 가족주의의 집착에도 내부적으로 적잖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가족공동체는 핏줄로 이어진 혈연공동체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안식처이다. 그래서 가족 간의 화합과 돌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른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그러나 가족의 굴레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식구만 챙기는 이기주의자가 되고 만다. 어찌 보면 인간불평등 기원도 지나친 가족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가족 간에도 서로 정신적 의지처로 상생해야지, 물질적 의지처로만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학벌의 폐해는 지나친 가족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재능을 결정하는 기막힌 현실도 따지고 보면 지나친 가족중심주의의 산물이다. 가족공동체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지만, 그 공동체의 벽이 너무 높거나 강고한 것이 문제다. 지나친 애국주의도, 지나친 가족주의도 우리 스스로 경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