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현 교수를 추모하며
연초에 나보담 두 살이나 아래인 대구대 유아교육과 이기현 교수가 고인이 되었다. 칠십대 중반에 고인이 되었으니, 이즘 기준으로 치면 좀 아까운 나이다. 유아교육과에서 공부한 딸 태영이가 부음을 전해주었다. 나는 소식을 접하고 한참 심란했다. 사실 같은 사범대에서 근무했지만, 이기현 교수랑은 직접적인 교분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딸 태영이가 학과 교수 중 이 교수를 존경하는 터여서 속으로 친밀감이 갔다.
내가 이기현 교수와 직접 교분을 가지게 된 것은 대구대 영광유치원에 내리 3년이나 다닌 손녀 지현이 덕분이다. 어쩌다 손녀를 데리러 유치원에 들리다 보면 유치원 원장을 겸하던 이 교수와 마주칠 적이 있다. 그러면 일부러 나를 불러 유치원 교육프로그램과 시설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유치원 원장으로서 열정과 책임감이 돋보였다. 집사람도 내게 손녀 지현이가 좋은 원장을 만나 유치원 교육은 제대로 받았다고 했다.
게다가 손녀가 유치원을 졸업하던 해에 이기현 교수도 정년을 맞게 되었다. 손녀 유치원 졸업식장에 나도 집사람과 함께 참석했다. 원장 인사말을 하던 중에 이 교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별인사를 했다. 나는 연단에서 내려오는 이 교수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정년 후 어느 날 이 교수가 내 연구실에 잠시 들려 “정년 하니 끈 떨어진 인생”이라고 실토했다. 그만큼 현직에서 열심히 살았던 탓일 게다.
정년 후 4-5년 전에 창녕 써어드 에이지 실버타운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이 교수를 만나 반갑게 조우한 적이 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문상을 다녀온 딸이 전해 준 바에 의하면, 위암으로 갑자기 별세하셨단다. 아마 자녀들에게도 암이라는 것을 임종 막바지에 알려준 것으로 짐작 된다. 평소 이 교수의 성격대로 당신의 죽음도 깔끔히 정리한 것 같다. 그리고 평생 봉직한 대학에도 알리지 않았다. 장례가 끝난 후에 내가 명예교수회 카톡으로 조문을 전했다. 여러 교수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죽은 후에야 그 인품의 진가가 드러나는가 보다. 이기현 교수님!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