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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즈음

평촌0505 2023. 5. 8. 17:36

어버이날이라지만 찾아뵐 부모님은 모두 하늘나라에 계신다. 그것도 한참 되었다. 나는 5남매 중 막내로 해방둥이(1945)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 졸업할 무렵 1969년 정초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내가 회갑이 지나고 2006년 정초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수하시고 조용히 자연사하셨다. 80줄에 접어드는 내게도 죽음은 그리 멀지 않을 게다. 잘 죽기 위해서라도 여생을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 아들과 딸은 미리 모두 다녀갔다. 멀리서 왔다가니 고맙지만, 내가 보기에는 의례적인 행사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의례는 중요하다. 오지 않으면 정말 서운할 테니까.

 

해월 최시형 선생은 ‘천지부모’(天地父母)라 했다. 천지와 부모는 동격이라는 게다. 나에게 부모는 곧 하늘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난 게 38억 년 전쯤이다. 38억년 동안 공들여 진화된 끝에 내가 지구상의 태평양 동쪽 끝자락에 호모 사피엔스후예로 태어난 게다. 필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건 결코 우연이아니라 필연적 운명/천명이 내재할 게다. 그게 나의 존재이유이자 생명의 존엄일 게다.

 

내가 살아서 부모의 은덕을 새기고 또 자녀들에게 섬김을 받을 수 있는 세월이 얼마나 될까? 100세 시대라지만 오래 사는 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 고독사로 죽어가는 노인들이 일 년에 3400명쯤 된다니 하루에 8〜10명쯤은 돌보는 사람 없이 그냥 혼자서 쓸쓸히 죽어간다. 어찌 보면 참 잔인한 사회다. 언필칭 선진국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노인 빈곤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그만큼 불평등이 심각하고 노인복지가 허술한 나라다. 지금은 성장보다 공정한 분배가 더 긴요하다.

 

어버이날에 살아서 존엄한 노년을 보내고, 자녀들에게 부담주지 않는 존엄한 죽음을 생각한다. 허무하게 당하는 죽음은 싫다.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없는 지복이다. 어버이날에 찾아뵐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나 자신의 존엄한 노년과 죽음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생노병사의 어김없는 순환이 나를 고독으로 이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게 삶과 죽음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