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적 담론과 운동
이제 우리에게 ‘기후변화’는 실존적 위기이자 재앙이다. 이것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자 위기다. 그 위기의 지표는 차고 넘친다. 마이클 E. 만은 <새로운 부정론에 저항하기>에서 “어머니 자연이 계속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계속 기록을 갱신하는 산불과 홍수, 폭염은 이제 기후변화가 미래에 닥칠 일이 아니라 당장의 현실 문제로 대두된 위기임을 알리는 신호”랬다. 그는 이런 현실이 부상함에 따라 화석연료 기업과 그들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위장단체나 보수정치인은 더 이상 기후변화를 신화 혹은 사기라고 강변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면적인 부정론에서 한발 물러나 그가 ‘새로운 기후전쟁’이라고 명명한 전술을 전개하고 있다. 그 전술은 (1) 기후행동 지지자들이 단합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분열 시키는 ‘분열 조장’, (2) 위기에 대응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절망감을 보편화하는 ‘절망감’ 조장, (3) 개인적 역할에만 집중하면서 정부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행동을 외면하게 하는 ‘관심 돌리기’ 등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총 탄소배출량의 70퍼센트가 단 100개의 거대오염 기업에서 배출되는 현실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깨친 시민들이 나서서 피할 수 없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적 담론과 그 방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실용적인 유토피아>는 많은 시사를 준다. 그는 “이것만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희망을 잃은 세상은 정말로 희망이 없다.”고 했다. 그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 작은 시도가 있다. 디스코(Disco)라는 온라인 쌍방향 학습 플랫폼에서 진행하는 사고실험인데, ‘실용적인 유토피아'(Practical Utopias)라는 프로젝트다. 기획의 핵심은 배출하는 탄소보다 더 많은 탄소를 격리하면서도 지금보다 더 공정하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 탐구해보자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이다. 따라서 해결책도 다원적이다. 또 그 해법이 성공하려면 다수의 사회구성원이 그것을 채택해야한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서바이벌맨>은 비행기 추락이나 바다에서 표류하는 위기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네 가지 생존요소로 지식, 적절한 장비/도구, 의지력, 행운을 든다. 인류는 기후위기 시대에 죽고 사는 문제에 당면해 있다.
우리는 위의 네 가지 요소를 각각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우리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지식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얼마나 내면화되어 있느냐가 문제다. 위기에 대응하는 장비나 도구도 이미 풍족하다. 우리에게 여전히 부족한 건 ‘의지력’이다. 의지력과 희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희망이 효과를 내려면 그 희망을 이루려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아무 희망이 없다면 위기에 맞서려는 의지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 장비, 의지력 모두를 갖추었더라도 행운이 따라줘야 한다. 좋은 날씨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이보다 좋은 행운이 있을까? “행운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데, 우리 손으로 행운을 빚어보자.” 이게 실용적 유토피아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당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적 의지’다. 깨친 시민의 조직적 힘이 역사를 바꾼다고 했다. 기후운동은 기후정의 차원에서 각계각층에서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기후정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분포와 계층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늘려 가느냐에 달려 있다. 사회과학에서 추정한 방식에 따르면, ‘3.5% 법칙’이 주목을 끈다. 그간의 역사적 사례분석 결과, 자국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대규모 비폭력 운동에서 전 국민의 3.5퍼센트가 시위에 참가한 경우에는 실패한 사례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까이는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이 그랬다.
기후운동이 전면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후행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까? 사회학자 데이먼 센톨라는 사회관계망의 영향연구에서 “모든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티핑 포인트는 25퍼센트의 헌신적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구의 25퍼센트가 자신의 관행과 규범, 행동에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킬 때, 기후운동의 성과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더 오래 지속되면서 더 큰 성과를 올린다. 그 성과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날을 고대한다. 우선 나부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천적 담론․운동에 적극 참여해야겠다. 이것은 노년에 내게 주어진 도덕적 책무이자 기후원죄를 탕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