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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야 할 이유: 삼의휴(三宜休)

평촌0505 2023. 7. 31. 12:44

중국 당나라의 사공도(司空圖)라는 선비가 나이 들어 관직에서 물러나 쉬어야 할 세 가지 이유로 ‘삼의휴’(三宜休)라는 정자를 짓고 노년을 조용히 보냈다. 그가 말하는 쉬어야 할 세 가지 변명인 즉 이렇다. 첫째 자신의 재능을 헤아려보니 쉬어야겠고, 둘째는 자기 분수를 헤아려보니 그렇다는 게다. 마지막 셋째는 늙고 눈마저 어두우니 쉴 수밖에 없다는 게다. 참 단아한 선비다. 나이 들어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그 말이 그 말인데도 어디에나 나서서 말하길 좋아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피곤하다.

 

지적으로 비축된 자신의 ‘연령 점’(age point)를 스스로 정직하게 깨쳐야 한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자기 분수를 지켜야 한다. 나의 가형(家兄) 묘비에는 ‘守分知足’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조카들이 살아생전에 형님께서 이 말을 즐겨 사용했던 걸 용케 기억한 게다. 형님은 말년에 건강은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나 의연히 분수를 알아 자족하면서 죽음을 맞았다. 사공도는 마지막으로 늙고 눈마저 어두우니 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 내 경우 안경을 끼면 보는 데에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70대 후반부터 노인성 난청이 온다. 해서 작년 여름부터 오른 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했다. 속절없이 늙은이가 된 게다.

 

해서 80 줄을 바라보는 내게 쉬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쉬엄쉬엄 노는 듯 일하는 게 지금의 나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이것이어서 아직 일손을 놓지 못하는 게 두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지식과세상>사회적 협동조합에 참여하면서 강의도 듣고 지식 기부하는 일이다. 약 10년 정도 참여하고 있는 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조합에 나가야 사람을 만난다. 나이 들수록 관계유지가 중요하다.

 

다른 하나는 내 블로그에 글 올리기다.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지금 한참 탄력이 붙고 있다. 블로그(김병하넷)에 올린 글이 390 꼭지가 넘고 누적조회는 47,000회를 넘어서고 있다. 정년 후 나의 지적 재산이자 보고(寶庫)다. 쓰고 읽고 산책하기는 내 일상의 세 기둥이기에 나는 ‘삼의휴’(三宜休)에 대응해 ‘삼의지’(三宜持)를 말하고 싶다.

 

해방둥이인 나는 쉬는 듯 일하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쉽지 않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신경 쓰이는 일은 끊이질 않는다. 살아 있다는 자체가 일이자 고(苦)인 걸 어찌하랴! 노년에는 노는 듯 일하기가 딱 좋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