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대학을 가니
손녀가 수능시험을 치고 꼭 한 달이 되니 입학할 대학의 윤곽이 드러난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 18년간 함께 살았던 손녀가 경산 우리 집을 떠난다. 축하할 일이지만, 맘 한 구석 허전하고 이래저래 걱정도 된다. 내 경험으로는 대학 1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경제적으로도 그랬고, 정서적으로도 그랬다. 그 시절(60년대 중반)의 나에 비해 손녀가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을지라도, 정서적으로는 어떨지 가늠하기 어렵다. 각자도생하는 당대의 살벌한 경쟁체제를 손녀가 어찌 해쳐갈지 걱정이다.
오늘은 손녀랑 그동안 대학입시 공부하느라 손녀가 쌓아놓은 책들을 모두 정리해 버리는 일을 하기로 했다. 시험이 끝나면 폐기처분하는 일회용 수험서들이다. 나는 대학시험을 끝내고 부산서 공부하던 책들을 들고 고향집으로 옮겼다. 그런 후에 그 책들을 어찌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손녀처럼 그냥 버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손녀가 그간 학교에서 일회용으로 버리는 공부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우리사회가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잔인성을 체제화 해온 과정을 되짚어 본다. 마침내 그런 시험체제가 우리네 삶을 강고하게 지배하는 질서가 되어 버렸다. 부디 그 질서에 손녀가 주눅 들지 않길 바란다. 대학입시를 전쟁처럼 치룬 손녀를 보면서, 손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존엄한 삶’ 혹은 ‘인간다움’의 문제를 다시 반추하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손녀가 자라고 공부한 과정을 한 집에서 먹고 자고 부대끼면서 교감하는 특별한 경험을 가진 ‘행복한’ 할아버지다.
그러고 보니 그간 손녀는 우리 집 오아시스였다. 손녀를 중심으로 가정의 만남과 화목이 훨씬 좋게 이어져 왔다. 할머니로서 집사람의 손녀 사랑은 지극정성(이른바 치성致誠) 그 자체였다. 내가 보기에 격대(隔代)교육의 모범사례로 꼽힐만하다. 집사람은 손녀의 대학합격 소식을 듣고 처음엔 멍멍했으나 혼자 있으니 자꾸 눈물이 나더란다. 그 눈물 속에는 많은 사연이 녹아 있다. 이렇게 손녀가 자라는 동안 우리 내외는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세상살이는 흐르는 물과 같다. 해서 노자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고 했다.
나는 우리 곁을 떠나는 손녀 지현이가 당차게 자기 삶을 일구어 갈 것으로 믿는다. 손녀는 착하지만 한 칼 하는 자기 고집이 있다. 그 고집이 내면의 나침반으로 선순환 하는 동안 품위 있는 인격으로 승화될 게다. 나는 손녀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지금 손녀에게는 인생도 길고 예술도 길다. 게다가 손녀에게는 인생을 예술처럼 살 수 있는 가능성마저 무진장하다. 눈앞의 시험경쟁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멀리보고 살아가야한다. 길고 짧은 건 끝이 말해준다. 우보호시(牛步虎視)랬다. 소처럼 느린 걸음으로 뚜벅뚜벅 걷되, 호랑이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살이를 통찰(洞察/通察)해야 할 게다.
손녀가 타고난 본래의 심성(하나인 마음)으로 세상살이 하는 과정에서 폭 넒은 공감을 체득할 터이다. ‘공감’은 연민의 감정이입이다. 역지사지하는 능력이다. 그 감정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걸 조절(이른바 중화中和)하기 위해 이성적 판단(지혜로움)이 따라 붙는다. 해서 손녀에게 삶의 과정은 곧 문제해결의 과정일 터이다. 그 과정이 때로는 인고(忍苦)의 세월일 터이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손녀는 ‘존엄한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게다.
이제 손녀는 ‘대학’(大學)에서 크게 배우는 공부 길을 스스로 열어가야 한다. 그 공부는 평생에 걸친 삶의 과정이자 삶 자체다. 아마도 그것은 손녀 자신을 내율(self-discipline)하는 과정(선택적 결단)에 다름 아닐 터이다. 그런 과정에 손녀다운 지현(志炫)이가 내재할 게다. 모쪼록 할아버지 할머니 곁을 떠나는 ‘금쪽같은’ 우리 손녀가 자기 날개로 세상살이를 당차고 곧게 펼쳐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내리사랑은 그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