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생태 위기와 조동일의 대등론
이즘 나는 기후․생태위기 문제를 인문학적 안목으로 담론화하는 일에 관심이 쏠린다. 당장 기후행동도 긴요하지만 나로서는 그에 대응하는 한 방편으로 기후생태 문제의 인문학적 접근에 나름 힘을 보태고 싶다. 이것은 노년에 내가 몸담은 지구와 후손을 위한 천명(天命)인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는 카르마와 같다. 작년 가을에 <지식과 세상>에서 ‘기후위기의 인문학’ 교실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이런 교실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찾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평소 내가 좋아하는 조동일 교수의 『대등의 길』(2024)을 손에 들었다. 조동일 교수는 동아시아문명의 심층을 찾아 『대등한 화합』(2020)을 낸 적이 있다. 그 연장에서 이번에 인류역사의 새 지표로 『대등의 길』을 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말하는 ‘만물(萬物)대등론-만생(萬生)대등론-만인(萬人)대등론’의 연장에서 기후생태문제의 대등론을 떠올리게 된 게다.
이 책은 ‘대등’론으로 동서고금의 문사철을 아울러 만인에서 만생으로 나아가 만물대등의 길을 찾아 우리네 삶과 역사를 반추하게 이끈다. 책의 ‘개막 시’에서 저자는 이렇게 읊는다.
동서고금
별별 꽃들
두루 찾아 모아오고,
별을 헤며 빛을 보태
깊고 깊게 농축한 꿀,
막 올라
대등의 길로
찾아가는 길양식.
그는 시대나 장소가 아주 다른 노래가 한결같이 ‘별을 헨다’고 한 것은 신기한 꿀이랬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둘, 별 셋 나 셋”이라 한 것은(나도 어릴 때 그랬다) 별과 내가 대등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찬연히 빛나는 수많은 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게서도 찾을 수 있어 경이롭다는 게다. 별과 나의 대등을 동양철학에는 ‘천인합일’(天人合一)로 명명했다. 책에는 이것을 ‘만물대등’(萬物對等)으로 다시 명명했다. 별을 헤며 확인하는 ‘만물대등’은 누구나 누리던 원초적 행복이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잃어버려 불행하다.
나는 조동일 교수의 ‘만인-만생-만물대등’으로 나아가는 길을 ‘천지인’(天地人) 삼합(三合)의 길로 집약한다. 사람이 하늘이고, 땅에서 나는 밥이 하늘이다. ‘천지인 삼합’의 대등한 길에서 기후생태위기의 인문학을 정립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작은 교실의 길이다. 이런 게 노년에 내가 떳떳하게 사는 길이 아닌가 싶다.
책에는 “주체성을 자각하면서 마음가짐을 스스로 다지는 게 대등론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랬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자기 마음을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랬다. 노년에 나 자신을 반조(返照)하는 과정에서 작금의 기후생태위기와 조동일의 대등론을 연계해 보았다. 이런 식으로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내 갈 길을 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