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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과의 인연

평촌0505 2024. 5. 15. 13:59

5월 11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제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지난 1월에 말레이시아 여행 끝에 서영란 원장(경신청각언어장애연구소) 어린이집 옥상에서 양고기구이 파티를 가지기로 했다. 약속한대로 수도권에서 강창욱 교수 내외, 윤병천 교수, 김경진 교수 내외, 대구에서 김성곤 선생 내외, 그리고 경산에서 내가 참석했다. 집사람은 과일 등 준비한 것을 전해주고 다른 일로 먼저 자리를 떴다. 5월의 앞산이 투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대구대 대명 캠퍼스가 더 가까이서 보여 옛 추억이 되살아났다.

 

내가 80줄에 들면서도 여전히 제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되니 노년에 삶의 보람을 느낀다. 제자들이 내게 해주는 걸 보면, 내가 그들에게 한 것에 비해 훨씬 많은 걸 받고 있다. 교수생활을 마치고 정년한지 12년이 지났건만 제자들과 만남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년 초에는 제자들과 함께 케냐 여행을 가기로 하고, 이미 비행기 표까지 예약해 놓은 상태다. 노년에 제자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것도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자 행운이다.

 

제자들과 만남이 이어짐에 따라 교수로서 내 자신을 다시 반추해보게 된다. 노자는 되돌아보는 게 도(道)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랬다. 나는 1972년부터 내리 40년간 대학에서 특수교사를 길러내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많은 제자들이 이미 정년을 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제자들이 현직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을 게다. 그들이 현장에서 장애아동 교육을 교육답게 이끄는 한에서 교사양성이라는 직분에 한껏 보람을 느낀다. 해서 나는 정년 고별강의에서 다시 태어나도 교수이고 싶다고 했다.

 

작가 채만식은 좋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작가는 그냥 문학서기 혹은 문학사무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혹여 지식인으로서 나는 지식서기 혹은 지식사무원에 불과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직업으로서 교직은 생계수단 이상이다. <중용> 첫 머리에는 교육을 하늘의 지엄한 명령으로 전치(轉置)하고 있다.

 

교육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길을 닦는 것이고(修道之謂敎), 그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본래성에 따르는 것이며(率性之謂道), 본래성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늘이 명령하는 것(天命之謂性)이랬다. 이처럼 교육은 하늘의 지엄한 명령에 의한 것이므로, 이리저리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과연 나는 교직을 천명으로 알고 임했던가? 부끄럽다. 그럼에도 내게 지도받은 제자들이 나를 ‘스승’의 반열에 올려주니 노년에 지복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전주에 있는 제자가 ‘스승의 날’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고맙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