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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끝에 손녀랑 만남

평촌0505 2024. 6. 6. 11:24

모처럼 아들이 포천 산정호수 쪽 한화리조트에 예약을 넣었다. 함께 있던 손녀가 서울로 대학을 가고나니 우리 내외가 국내여행이라도 한 번 했으면 싶었다. 대전에 있는 처제 내외랑 함께 가기로 집사람이 미리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였다. 일상에서 탈피하는 게 여행이다. 나이 들면 이래저래 여행 떠나기가 쉽지 않다. 집사람이 다리가 불편해 망설이다가 모처럼 잡아놓은 여행일정을 취소할 수 없어 그냥 떠나기로 했다.

 

경산서 포천까지는 다섯 시간 이상이나 소요되는 장거리다. 경부고속을 타고 가다 중부내륙고속으로 빠져 서울외곽 순환도로를 거쳐 구리 포천 고속을 타고 가는 300킬로 이상의 장도다. 포천 길목 휴게소에서 대전 동서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리조트 근처 우둠지 숯불갈비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냇가에 식당 위치가 좋았다. 모처럼 생갈비와 양념갈비에 막걸리를 곁들여 푸짐하게 점심식사를 했다. 바로 옆에 딸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풀었다.

 

한화리조트 431호에 짐을 풀고 침대에 잠시 누워 쉬었다. 침실이 하나뿐이어서 두 사람은 거실에 잠자리를 마련하도록 침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좀 불편했지만 거실에서 따로 식사를 준비하지 않고 편하게 사용하도록 했다. 늦은 오후에 한탄강 하늘다리 일대를 관광했다. 걸어 다니기에 무리가 있어 집사람은 나중에 휠체어를 빌려 이용해야 했다. 모처럼 여행을 나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하는 아내가 참 안타까웠다. 나이 들면 누구나 휠체어에 다반사로 몸을 의지하기 마련이라지만, 막상 아내 모습을 보니 안스러웠다. 우리 내외에게 노화는 현실이다.

 

처제는 한탄강 둘레 길을 걸어보고 싶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녁 식사는 산정호수 근처 식당에서 도토리전과 도토리 맛 국수에 옥수수 막걸리를 곁들였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자연히 노년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지식과 세상>에 참여하는 보람과 내가 노년의 마지막 관심사로 ‘기후생태 위기의 인문학’ 교실에 나름 에너지를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집사람은 쓰레기 줄이기 실천의 생활화를 강조했다.

 

둘째 날에는 처제가 속이 불편하다고 해서 이래저래 스케줄을 느슨하게 잡을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동서랑 함께 산정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산정호수에 오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호수 물이 맑고 주변 경관도 좋았다. 물과 숲이 좋으니 심심이 상쾌했다. 이번 여행에 읽고 있던 『생명을 이어온 빛: 광합성의 신비 』(라파엘 조빈, 2024)라는 책을 들고 왔다.

 

숲과 바다가 광합성의 신비를 통해 지구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기후생태 위기의 완화와 극복가능성을 찾을 수 있어 퍽 다행이다. 저자는 “광합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하고 독자적인 탄소 네거티브기술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광합성 늘리기에 참여할 수 있고, 다른 탄소 저감 대책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하나의 종으로서 성공을 이어가면서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말했다. 제발 그리 되길 바란다.

 

동서가 자기가 철원에서 군대생활 한 추억을 말하면서 그쪽을 가보고 싶어 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철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는 길에 화개산 도피안사(到彼岸寺)를 들렸다. 절이 아담하고 한적했다.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 간 것을 의미하는 ‘도피안’(到彼岸)이라는 절 이름이 인상 깊었다. 사바에서 열반으로 건너가는 게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지금 나는 사바세계에 몸담고 있지만 열반으로 건너가는 길(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해서 ‘돈오점수’(頓悟漸修)는 노년의 내 삶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토요일 9시경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서울로 가는 길목인 포천 아트밸리를 들렸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니 산중턱에 작은 호수가 아늑하게 자리 잡아 있다. 아마 인공호수인 것 같다. 채석장을 가다듬어 아트밸리로 가꾼 숲속공원이다. 포천일대 관광을 마치고 우리 내외는 서울로 손녀 만나러 가고, 동서와 처제는 대전으로 갔다. 집사람은 손녀에게 뭘 챙겨준다고 자동차 트렁크에 짐을 엄청 실어 놓았다. 사실 우리 내외는 속으로 여행 끝에 서울서 손녀를 만나는 일에 더 무게를 둔지도 모른다.

 

포천서 구리를 거쳐 손녀가 있는 회기동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손녀가 사는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다. 저쪽에서 손녀가 자다가 나오는 얼굴이었다. 나는 양팔을 벌리고 반가움을 표했다. 손녀도 빙긋 웃었다. 거처하는 공간이 원룸치고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으나, 정리정돈이 허술했다. 도착하자마자 집사람은 방이 지저분하다면서 바닥 여기저기를 깨끗이 닦았다. 나도 눈에 보이는 대로 침대 밑과 창문 틈의 먼지를 닦아냈다. 그러는 사이에 손녀는 샤워를 하고 나왔다.

 

모처럼 만났으니 어디로 갈까하다가 손녀 의견대로 광화문 북촌 쪽으로 갔다. 집사람이 걷기가 불편해 택시를 이용했다. 해질 무렵의 북촌 거리와 오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헌법재판소 건너 편 길가에 생맥주와 닭튀김 요리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길가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맥주 마시는 분위기가 이색적이었다. 게다가 손녀랑 함께 맥주를 마시니 한결 기분이 좋았다. 여행 중에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 행복은 이런 순간적 즐거움에 내재한다. 그냥 좋다는 느낌 자체가 소중한 게다.

 

집사람은 손녀에게 뭘 해주고 싶어 노심초사다. 몸이 불편함에도 계속 이것저것 일을 챙긴다. 이튿날 저녁 식사를 밖에서 하고 싶었으나, 결정하기가 마땅치 않아 집사람이 준비해온 것으로 오붓하게 집밥을 먹었다. 손녀도 맛있게 잘 먹어서 보기 좋았다. 집밥은 가족관계의 원천이다. 집사람과 손녀가 설거지도하고 함께 일하는 게 아름다웠다. 집사람은 손녀에게 부엌일하는 방법을 자상히 일러주었다. 할머니의 내리사랑은 끝이 없다.

 

월요일 아침에 우리가 막상 떠나려니 손녀가 집사람에게 하루만 더 있다가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번 여행 끝에 서울서 손녀를 만나 세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이틀 밤을 함께 보낸 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