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 문제다. 그러나 그 위기의 책임은 지구 남반구보다 북반구의 잘사는 나라 쪽이 훨씬 크다. 불평등도 세계적 문제이긴 하지만, 나라 간의 문제라기보다 국가 내부적 문제로 그 심각성이 논의되는 경향이다. 불평등은 곧 ‘정의’(justice) 문제와 직결된다. 기후생태 위기에서 정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그만큼 잘사는 나라와 부유층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들의 모임인 ‘기후취약국포럼’(CVF)은 ‘지불연채’(Payment Overdue) 캠패인을 전개하면서, 선진국들을 향해 기후 부채를 갚아야 할 때라고 했다. 기후취약국포럼 회원국은 55개이고 인구는 총 14억 명으로 세계인구의 18%에 이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총량의 5%에 불과하다. 이들이 기후 채권국이라면 일찌감치 산업화에 나선 선진국은 당연히 기후 채무국이다.
우리나라도 기후 채무국 중의 하나다. 이른바 기후 악당에 속한다. 산업화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을 보면, 미국이 전체의 24.6%로 가장 많다. 유럽연합(EU)이 21.7%, 중국이 13.9%, 러시아가 6.8%로 그 뒤를 잇는다. 반면에 아프리카와 남미지역은 대륙 전체를 합해도 3%도 안 된다. 기후정의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나는 기후생태 위기가 전 지구 행성 차원의 문제라면 불평등 문제는 인간 사회가 구성한 문제로 본다. 해서 불평등의 심화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한다. 피케티(T. Piketty)는 『21세기 자본』(2014)에서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피할 수 없고 더 악화시킨다고 했다. 그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은 소득 격차로 자산 불평등이 심해짐에 따라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세습 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에서 조돈문 교수는 『불평등 이데올로기』(2024)를 다루고 있다.
국제 비교에서 우리나라 불평등은 얼마나 심하고, 그 양상은 어떤가? 한국의 상위 10% 소득은 전체 국민소득의 46.5%를 차지하는 반면에, 하위 50%는 전체 국민소득의 16%를 점한다. 우리나라의 불평등 수준은 서유럽보다 더 높고 미국과 비슷하다. 불평등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는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권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불평등 수준이 가장 심한 나라에 속한다.
197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고루 못 살았지만 지금은 가장 고르잖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1인당 GDP가 30배 이상 상승했지만 생활 수준이 그만큼 좋아졌다고 실감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경제적 풍요의 혜택이 일부 고소득층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조돈문 교수는 향후 불평등 심화 가능성에서 소득 불평등보다 더 우려되는 게 자산 불평등이랬다. 한국의 자산 대 소득 배율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클 뿐만 아니라 급격한 상승 추세를 보인다. 이것은 저자산·저소득층이 열심히 살아도 불평등 벽을 넘어 상승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가 되기 어렵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 사회는 부의 대물림이 구조화된 ‘수저 계급’사회가 되었다는 게다.
불평등의 심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기후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데도 꼴찌에 머물고 있다. 압축성장의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현 정부 들어서 더 노골적이다. 불평등 문제와 기후생태 위기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는 압축성장과 더불어 위기(성장의 그림자)도 압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이 심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