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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노자, 석가

평촌0505 2012. 8. 12. 17:20

 

공자․노자․석가

 

 

최근에 모로하시 데쓰지(諸橋轍次)라는 사람이 100살에 쓴 책 「공자 노자 석가」(심우성 옮김, 2008)를 읽었다. 이 책을 손에 든 것은 저자가 100살에 이 책을 쓰고는 그 해 세상을 떠났다는 게 너무 기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권으로 충분한 동양사상 이야기’를 저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기에 더욱 호감이 갔다. 칼 야스퍼스는 1970년대 후반에 「소크라테스 불타 공자 예수」(황필호 옮김, 1980)라는 책을 내면서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역사상에 끼친 영향의 범위나 깊이에 있어 도저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될 수 없는 네 사람의 비범한 인물이 있다. 물론 어느 소수의 집단에게 있어 이들과 똑같은 중요성을 가진 위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지속적인 영향을 생각할 때 소크라테스, 불타, 공자, 예수를 능가할 위인은 하나도 없다(황필호, 1980, p.1).

 

위 네 사람 중 불타, 공자, 소크라테스는 약 2500년 전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이고 예수는 그들보다 약 500년 후에 생존한 사람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서 2000년 전에 살았던 네 사람의 성인(聖人)을 능가할 사람을 선뜻 꼽을 수 없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 까? 그래서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들 네 사람이 살았던 시기를 축(軸)의 시대(axial age)로 규정하기도 한다. 즉, 이 네 사람은 인류역사를 굴려 움직이게 하는 축의 역할을 해왔을 뿐더러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생존한 시대를 인류역사에서 ‘축의 시대’라 일컫는다.

 

야스퍼스는 이 네 사람을 ‘역사의 주역들’로 규정하여 소크라테스(469-399, B.C)-불타(560-480, B.C)-공자(551-479, B.C)-예수 순으로 각각 논의한 다음, 말미에 이 네 사람을 선택한 이유, 그 공통점과 차이점, 이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 등을 간략히 고찰하고 있다. 나는 이 네 사람의 차이는 너무 분명하고 크기에, 이 네 사람의 공통성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좀 실망스럽다. 이를테면 야스퍼스는 그 공통성으로 이 네 사람은 불타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민 출신이라는 것, 네 사람은 모두 남성적인 성격이었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들은 환상적 예언자가 아니라 인류 역사에 새로운 가능성과 정신세계를 제기했고, 이들 모두는 변용(transformation)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 때 ‘transformation'은 ‘변용’보다는 ‘변환’ 혹은 ‘전환’으로 옮기는 게 어울릴 듯하다.

이 ‘변환’에 대한 네 사람의 독특한 기여를 야스퍼스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변용은 사고의 변용이며, 불타는 명상과 명상에 의한 삶의 길을 제창했고, 공자는 단순한 배움(learning) 이상의 교육을 제창했고, 예수는 이 세상을 염두에 두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라고 가르쳤다(황필호 옮김, 1980, p.158).

 

여기서 야스퍼스는 역사적 ‘전환’에 이 네 사람이 미친 공통적 영향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이 네 사람이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그 ‘전환’에 미친 핵심을 잘 집약해 주고 있다. 이어 그는 이 네 사람이 죽음과 수난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가를 제기하면서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세속적인 권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불타는 죽음의 실재에 따르는 생애를 보냈고, 공자는 죽음을 쳐다보면서도 거기에 아무런 무게를 주지 않았다.” 고 평했다. 이 네 사람을 통해 우리는 인간 존재의 삶, 죽음, 고난에 대한 독특한 의미를 해독할 수 있다. 그리고 야스퍼스는 이 네 사람에게 있어 ‘인간애’(人間愛)는 보편적이며 무제한적이라고 했다. 그렇다. 공자의 인(仁 ), 석가의 자비(慈悲), 예수의 박애(博愛), 소크라테스의 무지에 대한 반성은 모두 그들의 고유한 방식에 의한 ‘인간애’의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야스퍼스는 이 네 사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논하면서 “그들은 우리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이지 우리가 ‘모방해야 할 모델’이 아니다.”고 하여 실존철학자로서 그의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한편, 모로하시는 야스퍼스와는 달리 공자 노자 석가 세 성인을 한 자리에 초청하는 대담형식의 (가상)토론회로 내용을 전개한 것이 돋보인다. 토론을 이끌어 가는 모로하시의 편집 의도는 세 성인과 맞장 뜨는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세 성인 간의 공감대 형성과 그 속의 입장차이가 흐르는 물처럼 무리 없이 이어지게 했다. 그는 삼 성인의 초청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부터 꽤 신경을 쓴 끝에 결국 중국의 여산(廬山)을 택하면서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초청 장소로 공자는 수레를, 석가는 흰 코끼리를, 노자는 파란 소를 타고 오는 것으로 묘사했다.

 

저자는 삼성회담(三聖會談)을 시작하면서 우선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 취미나 즐기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으로 운을 뗀다. 공자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나 과음하지 않는다 했고, 석가는 수행 중에 일체 금주절욕 했다지만, 노자는 맛있는 음식만 원하면 맛이 없어져 버린다고 했다. 이어 삼 성인은 산수(山水)에 대해 나름의 예찬을 펼쳤다. 공자는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면서 높은 곳에 올라가 광활한 생각을 품는 것은 모두 산의 덕택이라 했다. 노자도 산을 좋아하지만 굳이 한쪽을 택하라면 물이 더 좋단다. 노자는 높은 산보다는 그 반대로 계곡의 낮음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왜냐하면 만물은 모두 낮은 곳으로 모여들어 그 곳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란다. 노자는 계곡의 신(神)을 도(道)에 비유하여 “계곡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알 수 없는 생산자(즉, 현빈玄牝)”라 했다. 노자는 그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그 이상으로 아껴 ‘상덕약곡’(上德若谷)에 대응해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그 이유인 즉, 물은 진실로 부드럽고 유약하면서 다른 것들과 공적을 다투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물은 가장 겸허하여 낮은 곳에 임하므로 만물이 흘러 들어와 그것을 싸안아 저장하는 힘이 있다고 칭송한다. 해서 노자는 “강과 바다가 백 개나 되는 계곡의 왕이 되는 까닭은 그보다 더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도덕경, 66장)고 했다. 공자도 물을 예찬하지만 그 이유는 노자와 다르다. 공자는 강가에 서서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라고 탄식하면서 군자는 물을 본받아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는 맹자의 제자 서벽(徐辟)이 “공자께서 물을 찬양하여 ‘물이여, 물이여’라 하시었는데 물에서 무엇을 취한 것입니까?” 라고 질문하니, 맹자는 “근원이 깊고 풍부한 샘물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솟아 나온다.”라며 공자가 물을 찬미한 까닭을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물은 항상 순리에 따라 흘러 “웅덩이를 메우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 바다에 이른다. 근본이 있는 것은 반드시 이와 같으므로 이것을 취한 것이다.”고 말해 주었다.

 

공자와 노자의 물 예찬을 논평하여 석가는 “결국 공자님은 물의 적극성 혹은 점진성을 생각하여 이것을 군자의 수양으로 삼았고, 노자님은 물의 부드러움과 겸손함을 찬미하여 그 소극성을 찬미하는 것이 군요.” 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노자는 물과 마찬가지로 ‘갓난아기’를 대단히 좋아한다면서 “뼈는 약하고 근육은 부드러우나 쥐는 힘은 단단하도다.”고 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본질적 소중함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쥐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노자는 “쉼 없이 움직이는 혼백을 타고, 하나를 안고 능히 이 하나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운을 오롯이 하여 부드러움에 이르는 것을 갓난아기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노자는 “덕(德)을 머금은 것의 도타움이여! 비유컨대 갓난아기와 같도다.”면서 “갓난아기에게는 독충도 쏘지 않고, 맹수도 덤벼들지 않고, 사나운 새도 잡아채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는 대자연에 대한 삼성(三聖)의 이야기를 듣고자 화제를 돌린다. 공자와 석가도 자연 친화적이지만, 노자에게 자연은 ‘도’(道) 그 자체이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道法自然)고 했다. 노자는 여름에 우거진 나뭇잎이 가을에 뿌리로 떨어져 버리는 것을 ‘복명’(復命)이라면서, 그것이 초목 본래 모습이라 했다. 즉, 자연 현상의 본질은 뿌리로 되돌아감에 있다는 것이다. 해서 노자는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도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라 했다. 노자에 의하면 복명(復命)에 의한 자연의 순환이 도(道)의 본질이자 그 활동이다.

 

이어 저자는 세 사람의 생애를 따로 개관하고 있는데, 여기서 굳이 다시 살펴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삶의 태도나 관점을 서로 비교해 볼 때, 공자의 적극성(참여)과 노자의 소극성(은둔)이 대비되는 반면에, 석가는 깨침을 구하고 그 깨침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양면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출가 이후 석가의 6년 간 고행은 노자의 태도에 가깝다면, 깨친 후 45년간의 교화활동은 공자의 삶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의 삶의 태도는 서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드러진 독자성을 지닌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상적 인간, 좋아하는 삶을 토론하는 장으로 접어든다. 노자는 자족(自足)과 현덕(玄德)의 인간을 좋아한단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어떤 지점에서 그만두고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공을 이룩하고 이름을 떨치더라도 몸이 거기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功遂身退, 天之道)라 일렀다. 요는 “족함을 아는 자는 풍요롭다”는 것이다. 사시사철이 바뀌면서 운행되듯이 일이 이루어지면 떠난다(功成則移)고 했다. 이와 더불어 노자는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였다. “무엇인가 내놓고도 있다 하지 않고, 무엇을 시행해 놓고도 그것에 의존하지 않으며, 장성하게 해놓고도 주관하지 않으니, 이것이 ‘아득한 덕’(玄德)이다.”고 했다. 그래서 노자는 “본래 공이 있으나 스스로 그 공을 자랑하므로 다시 군더더기가 된다.”고 경고한다.

 

노자는 삶의 보배로 ‘인자(仁慈)․검소․겸양’ 세 가지를 들고, 아는 체 나서거나 문명의 이기(利器)는 까닭 없이 싫다고 했다. 그는 자연의 품에 안겨 도(道)를 음미하는 삶을 귀하게 여긴다. 한편, 공자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군자의 선비가 될지언정 결코 소인이 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군자는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만 뇌동은 하지 않는다(和而不同)”고 했고, “군자는 치우치지 않고 보편적이지만, 소인은 보편적이지 않고 치우친다.”고 했다. 공자가 가장 싫어한 사람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덕이 있는 사람(즉, 鄕原)이라 칭송 받으나 실제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덕의 도둑이라”면서 경계하여 마지않았다. 공자는 아픈 데를 찔러주지만, 노자는 아프지 않게 사는 길을 열어준다.

 

석가는 생과 사는 하나라는 생사관(生死觀)에서 우리의 삶을 되짚어 보게 한다. 그는 인과의 업(業)이라는 게 내가 나기 전의 전세(前世), 살고 있는 현세(現世), 그리고 죽은 후의 내세(來世)의 삼세(三世)에 걸쳐 물고 물리는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 공자는 제자가 죽음에 대해 묻자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 했다. 그만큼 공자에게는 살아가는 도리가 죽음보다 소중했다. 해서 그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이 삼성(三聖)의 기본사상을 석가의 ‘공’(空), 노자의 ‘무’(無), 공자의 ‘천’(天)으로 요약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석가의 공(空)은「반야심경」에 잘 나타나 있다. 즉, 그것은 큰 지혜로써 저 언덕(彼岸 즉, 해탈의 세계)으로 건너가는 마음공부이다. 그러므로 공(空)의 실상을 바로 보아 눈에 보이는 가짜를 진짜인줄 아는 번뇌와 집착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교의 종지다. 석가의 공(空)은 노자의 무(無)와 상통하는 면이 없지 않다. 노자에 의하면, 무(無)는 만유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도(道)다. 노자는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작이요, 이름 있는 것(有名)은 만물의 어미이다.”고 했다. 그래서 ‘유’는 ‘무’에서 생긴다. 그리고 도(道)는 무(無)의 절대성이자 보편성이다. 노자는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할지 알 수 없어서 억지로 도(道)라고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절대성이나 보편성으로 규정한 노자의 도(道)는 자신의 천(天)과 양립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사상이자 입교(立敎)의 바탕에는 석존님의 ‘공’, 노자님의 ‘무’와 같은, 소위 만물의 근원이 될 만한 것이 없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천’(天)이 그것입니다. 나에게 있어 천(天)은 만물의 본원이며, 만상을 지배하는 ‘도’인 것입니다. 단지 석존의 ‘공’ 노자의 ‘무’와 다른 점은, 내가 말하는 천(天)은 유(有 즉, 有의 기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천지 만물의 본원은 무엇인가, 만유를 지배하는 힘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나는 그것을 천(天)이라 대답할 것입니다(심우성 옮김, 2000, p.220).

 

 

그래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는 하늘이 명하는 것(天命)이 곧 인간의 본성이고, 이 성(性)에 따르는 것이 곧 도(道)라고 했다.

 

한편, 저자는 석존의 ‘중도’(中道)와 공자의 ‘중용’(中庸)에 대해 묻는다. 석가는 쾌락과 고행의 두 양극을 넘어서는 것으로 ‘중도’를 말한다. 그러나 이 ‘중도’는 타협이나 절충이 아니라, 하나의 정도(正道)이다. 불교의 실천윤리로서 ‘팔정도’(八正道)가 이에 해당된다. 즉, ‘팔정도’의 실천이 ‘중도’다. 이에 비해 공자의 ‘중용’(中庸)은 그 자체가 일상생활의 기준이다. 이 중용의 실천이 곧 ‘시중’(時中)으로서 “때에 알맞게 한다.”는 것이다.「중용」에는 “희노애락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하고, 드러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고 했다. 이 ‘미발(未發)의 중(中)이 곧 사람의 본래 성(性)이며, 이것은 하늘의 명(命)이자 곧 성(誠)이다. 따라서 불학에서 “중(中)은 정(正)이다”고 한 것과 유학에서 ‘미발의 중(中)을 성(誠)이라’ 한 것은 상당히 부합되는 면이 있다.

 

이어 저자는 인간의 주요문제로 배움(學) ․ 가르침(敎) ․ 다스림(治)을 들면서 먼저 공자의 말을 듣고자 요청한다. 공자는 배움(學)이란 도(道)를 배우는 것이며, 가르침이란 그 도(道)를 가르치는 것이고, 다스림도 결국 도(道)를 행하는 것이므로 이 셋은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이 셋은 서로 일치하지만 처음과 끝, 앞과 뒤는 분명히 있단다. 즉 정치에 앞서 교육과 학문을 생각하고, 법률이나 제도 정비에 앞서 덕행(德行)의 실천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를 되받아 노자는 “나는 무(無)로써 근본 토대를 삼고, 인위적이고 적극적인 모든 행위를 경계하므로 배움도 가르침도 다스림도 인위적인 것을 배격합니다.”고 했다. 이에 다시 공자는 “그러나 노자 「도덕경」의 5천여 언(言)의 말씀에는 난세를 구하고자 하는 비원(悲願)을 느끼게 합니다.”고 응수한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배움과 가르침을 필생의 과업으로 중시했다. 특히 그는 ‘유교무류’(有敎無類)라 해서 인간교육의 일체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공자는 인간 교육가능성의 계발(啓發)을 위해 문답법을 좋아했고, 상대에 따라 가르침을 다르게 하는 걸 좋아 했다. 그러나 노자는 여전히 말없는(無言) 가르침을 중시하여 “말하지 않는 가르침과 무위(無爲)의 이익에 따를 자 천하에 드물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노자의 교육관은 공자의 그것에 비해 차원과 방법이 다르다.

 

공자에게 정치는 교육의 연장이며 도덕의 실천이다. 그래서 그에게 정(政)은 정(正)이다.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면서 생선을 잘 익게 하려고 자꾸 뒤집으면 부서지거나 살이 떨어져 나간다고 경고했다. 조용하게 무위(無爲)로써 다스리면 천하가 태평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가 그리는 이상향은 “나라는 작고 국민이 적어 모두 자기 땅에서 생산되는 것을 먹고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삶을 즐기는 것이다. 닭 울음이나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서로 가까이 있어도 굳이 왕래할 일 없이 그렇게 자족하며 사는 것이다.”고 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서글퍼지기까지 하는 그런 이상향이다.

 

끝으로, 저자는 이 삼성(三聖)의 사상을 압축한 열쇠 말로 공자의 인(仁), 노자의 자(慈), 석가의 자비(慈悲)를 들고 있다. 결국 삼성의 열쇠 말을 하나로 엮으면 ‘인자’(仁慈)로 요약되지만, 그것을 다시 하나로 묶으면 결국 ‘자’(慈)로 귀결되지 않나 싶다. 즉, 인자(仁慈), 자애(慈愛), 자비(慈悲)를 꽤 뚧는 것은 ‘자’(慈)이다. ‘慈’를 파자하면 ‘玆’의 마음(心)인데, 이 ‘자’(玆)는 초목이 우거져 있는 것이다. ‘초목이 우거져 있는 마음’이라.... 좋은 것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 맑고 맑은 그윽한 마음이랄까. 결국 한 폭의 동양 산수화와 같은 그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삼성(三聖) 회담에서 저자는 모두에 공자에게 “인(仁 )은 사람의 성(性)인가 정(情)인가”라고 묻고, 말미에 다시 석존에게 “자비(慈悲)는 사람의 성(性)인가 정(情)인가”라고 묻는다. 두 사람 모두 “성(性)과 정(情) 모두 일 것이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 성(性)과 정(情)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붙어 있다. 마찬가지로 공자의 인(仁)과 노자의 자(慈), 그리고 석가의 자비(慈悲)는 같은 마음의 근원에서 나온 우리 인간의 성정(性情)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필자는 이 삼성(三聖)회담을 방청하면서 초목이 우거지듯 인간 성정(性情)이 자라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그런 세상을 그리게 된다. 김병하(201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