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대학생이 되니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온 손녀 지현이가 이제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갔다. 손녀가 떠나고 한동안 집이 허전했다. 아내는 손녀를 보내고 이제부터는 확실히 안식년처럼 살겠다고 했다. 그러나 허전한 마음의 후유증 때문인지 무릎 통증으로 인해 지난봄부터 걷기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70대 후반) 노화 현상에 따른 문제여서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아내는 약 5개월 동안 일주일에 2회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다. 지금은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학기를 마친 손녀가 어제저녁에는 글쓰기 과제 3개를 읽어봐 달라고 메일로 보내왔다. 어쩌다 주말에 손녀가 교양과목 리포트 글을 읽어 달라고 하면 나는 만사 제쳐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손녀 글을 읽고 간단히 피드백을 준다. 그러고 나면 손녀 키운 보람으로 기분이 좋다. 이런 게 할아버지의 내리사랑이다.
<나는 어떤 대학생인가>에서 손녀는 “그저 흔한 학생으로 머무르기보다, 나만의 의미와 색깔을 찾아가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아직은 일학년으로서 경영학적 지식이든 Hospitality 산업에 대한 지식이든 많이 부족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 불확실한 방황의 과정에서 손녀다움의 길이 차츰 다져질 게다. 나 자신도 대학 시절 엄청나게 방황했다.
<20년 후 나의 모습>에서 손녀는 “마흔 살의 나는 엄마로서, 직장에서 일 하는 직장인으로서 그 무게와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스무 살 때의 그 풋풋한 감성을 간직하며, 가족과 함께 소소한 순간을 즐기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이제부턴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고 보완해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평범하지만 야무진 미래 설계다. 손녀 세대의 미래를 위해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근데 20년 뒤에 나는 살아 있기나 할까?
마지막으로 보내온 리포트 <행복의 본질을 찾아서: 내가 원하는 삶과 사회>에서 손녀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였을 때 보람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선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녀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성장 동력으로 삼으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고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놀랍다. 손녀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면서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고 싶단다. ‘내면의 평온’을 노년의 내가 손녀로부터 배워야겠다. 그게 자존의 삶이자 평상심의 유지다.
어지러운 세상살이에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혼란과 다중 위기의 시대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를 넘어』(2013)에서 물성화된 시대에 특정 종교에 의존치 않는 ‘내적 가치’의 삶을 강조했다. 달라이 라마에 의하면 ‘내적 가치’는 도덕적으로 조화로운 세상의 근원이자 모두가 추구하는 개인의 마음 평화와 행복의 근원이라 했다. 내가 보기에 손녀가 말하는 ‘내면의 평온’과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내적 가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신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