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disability studies)은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고 권리의 주체로 대등하게 포용하자는 담론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장애학과 대등론의 만남을 생각한다. 김도현은 『장애학의 시선』(2025)에서 장애학을 “누구도 남겨지지 않는 세계를 향한 비전”(leave no one behind)으로 정의했다. 누구도 제외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대등한 포용의 사회는 정의 사회를 향한 지속적인 노력의 과정에 내재한다. 누구도 포기하지(남겨지지) 않는 세상은 장애학의 비전이고, 모두를 하나로 포용하는 것은 대등론의 비전이다.
장애학은 비장애를 표준으로 삼는 사회적 기준(정상성) 혹은 규범을 질타한다. 대등론에서는 장애와 비장애를 따로 구분할 수 없는 대등한 연속체로 일원화한다. 장애학은 장애와 비장애의 다름을 차별화하는 사회적 구조를 문제 삼는다. 대등론에서는 장애와 비장애의 다름을 서로 상생하는 통로로 삼는다. 장애학은 차별의 철폐를 화두로 삼지만, 대등론은 다름을 상생(相生)의 자원으로 삼는다.
장애학과 대등론은 어떻게 다르면서 같은가? 장애학 담론에서는 ‘장애’(disability)를 개인의 병리적 문제로 환원해 의료적 모델로 삼는 것을 비판한다. 장애는 원천적으로 당대 사회가 구성한 사회의 병리 문제로 보는 게 장애학의 기본 입장이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게 아니라, 사회가 차별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게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장애의 벽을 허물기만 하면 누구나 떳떳이 살 수 있다는 게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통해 구축된 사회제도는 비장애인을 정상적 표준으로 삼는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 이에 저항하는 장애학 담론은 소수의 급진적 주장으로 격하되기 일수였다. 장애학 담론은 그 역사도 일천 하거니와 기득권 사회의 관행을 허무는 데 여전히 한계가 있다. 해서 장애학 담론과 기존 사회제도의 간극을 줄이는 게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 당사자의 정당한 세력화(empowerment)와 그 실천적 운동의 힘으로 장애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대등론’은 장애인 차별의 철폐 이전에 (혹은 그와 함께) 원천적으로(발상의 출발점으로) 대등한 공존의 사회를 지향한다. 이때 ‘대등’은 모두가 하나로 상생하는 길이다. 조동일은 『대등의 길』(2024)에서 ‘만인대등-만생대등-만물대등’으로 나아가는 대등의 보편성 확대를 말했다. 기후생태 위기를 초래한 인류세(anthropocene)에서 지구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만인대등에서 만생대등으로, 다시 만생대등에서 만물대등으로 나아가야 모두가 상생하는 진정한 인류세가 구현될 수 있다.
나는 장애의 개인적 의료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의 강조점 이행을 수용하되, 다시 대등론으로 모두를 하나로 포용하는 상생(相生)의 길을 열어가기를 바란다. 개별 장애인이 겪는 ‘장애’(disability)를 개인의 실존적 문제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관행과 제도를 장애가 없는 쪽(barrier free)으로 부단히 개선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장애-비장애가 대등하게 상생하는 세상이 열린다. 이른바 개벽의 세상이다.
차별 철폐로서의 획일적 평등은 결국 경쟁을 통한 차별의 재생산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차별에서 평등을 넘어 다시 대등으로 나아감으로써, 장애학 담론이 그 지평(전문성)을 한층 넓힌다. 삼각형의 밑변이 길어야 꼭지점이 안정되게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