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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특수교육(학)의 정체성: 그 정립과 과제

평촌0505 2026. 5. 21. 16:03

 

1. 머리말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이 시작된 것은 약 130(1894) 전쯤이고, 대구에서는 80년 전에 광복기념사업으로 이영식 목사가 처음 시작했다. 광복 후 대구맹아학교(1946)가 연원이 되어 대구대(1956)가 출범하고, 1961년에 특수교육과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치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압축성장을 했다. 그에 상응해 대구대 특수교육도 압축발전을 했다. 그 양적인 성장에 비추어 대구대 특수교육이 질적인 발전은 얼마나, 어떻게 했는지 되짚어보기 위해 대구대 특수교육()의 정체성정립과 그 과제를 논의한다.

본 발제에서는 먼저 대구대 특수교육() 담론의 정립 과정을 (1) 광복기념 사업으로서 대구 특수교육의 성립과 그 담론 형성, (2) 대구대 특수교육() 담론의 형성 기반을 크게 일본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이행한 것으로 대별 해 보고, (3) 대구대가 축적한 한국 특수교육() 담론 생성의 주요 성과를 다시 () 학회 활동에 반영된 성과, () 학술 세미나를 비롯한 주요 저서와 논문에 반영된 성과, 그리고 () 두뇌한국(BK)21 특수교육연구단 활동과 그 후속 성과 등 세 갈래로 나눠 제한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어 세계 속의 대구대 특수교육() 정체성 정립 과제를 (1) 동아시아문명론·철학에 기반한 특수교육() 정체성 정립을 위한 노력과 그 과제, (2) ‘대등생극론’(對等生克論)에서 본 특수교육() 정체성 정립 과제 중심으로 제한적인 범위에서 논의한다. 모쪼록 이 발제가 향후 대구대 특수교육()의 정체성을 나라 안팎으로 분명히 드러내는 데 후학들에게 지적인 자극(자긍심)을 보태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으로 삼겠다.

 

2. 대구대 특수교육() 담론의 정립 과정

 

2.1 광복기념사업으로서 대구 특수교육의 성립과 담론

 

이영식(李永植; 1894-1981) 목사는 광복기념사업으로 대구에서 1946년 대구맹아학원을 설립했다. 그는 3.1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서울과 대구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815일 조국광복을 맞이해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경제는 경제인에게 맡기되, 자신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장애아동 교육사업을 하기로 작정했다. 이로써 장애인을 사랑으로 보듬고, 이들을 세상의 으로 삼아, 자기 존재 이유를 깨치는 자유로 거듭나게 하고자 했다. 대구맹아학원의 설립 동기를 영광학원 50년사(1998)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영식 목사가 장애아동의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자랄 때 모친이 한 때 실명 했던 일과 3.1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어 옥중에서 농인을 만난 것은 그에게 ‘맹아학교’ 설립 의지를 싹트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영식 목사의 독립운동 참여, 민족해방을 계기로 한 새로운 사회봉사 활동의 모색,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개인적 요인과 장애인에 의한 맹아학교 설립 제의, 오래전부터 있은 대구지역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맹아학교 설립 요청 등 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동기가 되었다.(영광학원50년사, 1998, P. 11)

 

이처럼 이영식 목사는 독립운동 참여와 옥중에서 농인을 만나 교분을 나눈 것, 그런 연장에서 민족해방을 맞아 조국광복 기념사업으로 정국이 혼란한 와중에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로 벙어리·봉사사업을 떠올린 게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근대적 특수교육은 1894년 평양에서 미국 감리교 의료선교사인 Rosetta S. Hall(1865-1951)에 의해 처음 시작된 이래로 일제 치하에는 제생원(濟生院) 맹아부(盲啞部)에서 맹교육과 농교육을 서울에서 실시했다.

그러던 중에 대구에서도 1924412일 제일교회 당회록에 의하면, 이영식 목사의 장인 박문찬 목사가 담임목사로 재직시에 여자야학으로 명도학교의 설립을 발의하면서 맹아(盲啞)교육의 필요성을 제의하였다고 한다. 이는 제일교회 당회록에서 교인 김명도 씨가 맹아학교를 설립코자 청원함에 따라 본 당회는 찬성하고 노회에 제출키로 동의하고 가결하다.”(1924412)고 기록한 것에서 확인된다. 역사는 우연이 작용하여 필연을 창출한다.

1946420일에 출범한 대구맹아학원은 맹생부(盲生部)와 아생부(啞生部)로 나누어 수업연한은 6년으로 하고, 교과목은 맹생부와 아생부 공히 공민, 국어, 산술, 국사, 지리, 수예, 체조 과목을 개설하고, 맹생부는 음악, 아생부는 도화를 따로 개설했다. 개원 초기의 어려움 속에 맹부에는 제생원 맹부를 졸업한 박영생(朴永生) 선생 중심으로 맹교육을 이끌어 왔다. 농부 교사로 서울농아학교 출신인 조경건(趙慶健) 선생이 부임했다. 그는 우리나라 농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농인 대학인 Gallaudet 대학에서 유학해 1961년 박사학위를 취득해 모교인 Gallaudet 대학에서 평생 교수로 재직했다.

 

이상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대구맹아학원의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은 제생원 맹아부의 후신인 서울맹아(盲啞)학교 교육과정을 하나의 모델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구맹아학원 설립 10주년이 되는 19562월에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이태영(李泰榮; 1929-1995) 선생이 귀국함으로써, 대구맹아학교의 발전은 물론 대학에서 특수교육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4년제 대학설립의 전단계로 1956년에 한국이공학원을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오늘의 대구대학교 모태가 되었다. 그 후 정식 4년제 대학으로 19612월에 한국사회사업대학에 입학정원 20명의 단설 학과로 특수교육과를 설치했다.

한국사회사업대학 특수교육과는 4년제 과정으로 어렵게 출범하였으나, 5·16 군사정부의 대학 정비령에 따라 2년제 초급대학으로 격하되어, 1962년과 1963년에는 2년제 초급대학으로 학생모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964년에 다시 4년제 과정으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담론은 초기에 기독교의 박애정신에 입각하여 맹교육과 농교육 중심으로 행해졌다. 그 담론의 출처는 주로 일본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일본의 특수교육 담론도 구미(歐美)로부터 수입한 것이다. 이른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정책이 특수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광복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초기의 특수교육 담론 형성은 여전히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는 가운데 당시 우리나라 특수교육 담론은 우리의 고유한 홍익인간 이념 아래, 기독교의 박애정신과 민주적 근대교육사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되었다.

성산 이영식의 특수교육사상은 인간 존엄에 기반한 인광(人光)’주의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영식은 사람이 곧 세상의 빛이라는 인광주의에 입각해 그 구현 과정으로 장애아 교육을 실천했다. 이영식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자면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사랑을 쏟아야 할 때가 있다. 특수교육이야말로 땀과 눈물과 사랑으로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랬다. 이영식은 교육의 목적을 인간 본성(human nature)의 자각에 두고 있다. 그는 인광주의에 기반해 내가 의도하는 교육은 인간의 타고난 천성(天性)을 계발하는 것이랬다. ‘천성은 하늘이 모든 인간에게 품부한 것이기에 없던 것을 새로이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것을 복원하고 계발하는 것이다. 흔히 교육의 목적을 심성 계발이라지만, 그것은 본성의 자각혹은 본성 회복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이영식의 '인광주의'에는 교육의 본질이 내재한다.

 

2.2 대구대 특수교육 담론의 기반: 일본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이행

 

1961년 우리나라 최초로 대구대 특수교육과가 설치된 이래, 특수교육 담론은 일차적으로 맹교육과 농교육 중심으로 생성되었다. 필자가 1960년대 중반 대구대 특수교육과에 재학할 당시 교과 전공은 사회교육전공과 과학(화학)교육 전공으로 나누었고, 특수교육 전공은 맹교육과 농교육으로 나누었으나, 특수교육 전공 과정은 그 운영이 부실한 편이었다. 그 일차적 이유는 당시에 특수교육 전공 교수 확보가 어려웠던 탓이었다.

당시 한국사회사업대학 학장인 이태영(李泰榮; 1929-1995) 교수는 대학에서 특수교육학 강의를 최초로 하셨고, 특수교육 학술 저서로 특수교육개론: 문제아지도(1963)를 출판했다. 이 책은 초기(1960-70년대)에 우리나라 특수교육 담론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수교육개론(1963)1편 특수교육의 성립, 2편 특수교육의 분화, 3편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은 총론으로 특수교육의 발달과 본질, 특수아동 판별과 인격, 특수교육 행정과 재정, 특수아동 복지, 특수교육자 등으로 구성하였다.

책에는 특수교육사상의 두 축을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으로 집약하고 있다. 높은 휴머니즘에 입각한 민주주의 실현 과정으로 특수교육의 목적을 설정했다. 특수교육의 목표에서 인간교육의 일반적 목표는 특수교육도 동일하지만, 장애아동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상(補償)원리와 대상(代償)’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특수아동의 판별(진단)에서 정상과 이상의 구획은 상대적·연속적인 것이어서 장애종별(범주)과 정도에 따라 그 기준은 다양하지만, 교육 조치를 위해 그 기준을 표준화하도록 했다.

2편 특수교육 분화에서 각론으로 장애 영역별 특수성에 따른 교육 조치로 맹 및 약시아 교육, 농 및 난청아 교육, 정신박약아 교육, 성격이상아 교육, 지체부자유아 교육, 병허약아 교육, 언어장애아 교육, 우수아 교육 등에 걸쳐 논의하고 있다. 3편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과제로 7대 과제(목표, 제도, 아동, 내용, 교사, 재정, 복지)를 제기하고 있다. 제도에서 특수교육의 의무제 확립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천은 1977<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1994년 전면 개정)되고서야 단계적으로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장애아동 교육내용과 방법을 장애 영역별로 특성화하여 교사교육과 더불어 그 전문성 제고를 강조했다. 7대 과제와 별도로 특수학급설치 문제를 제기해 일반교육을 질적으로 개혁하는 방안을 제기했다. 이런 특수교육 과제가 이후 한국 특수교육 발전과정에 중요한 기준으로 반영되었다.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태영은 추기(追記)에서 특수교육학의 성격에 대해 특수교육을 교육학의 한 방법론으로 인식해 왔으나, 특수성이 많고 다방면의 지식과 전문적 기술이 원용되기 때문에 특수교육학으로서 체계가 서야 한다.”고 했다. 일반교육의 보편성 위에 특수교육의 특수성이 체계화된 특수교육학의 성격과 그 정체성을 진즉에 제기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에서 필자는 특수교육이 특수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편성)와 그럼에도 특수교육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특수해야 할 이유(특수성)를 말했다. 특수교육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생극(生克)의 관계로 상극이면서 상생하는 관계다. 그것은 개념적 구분일뿐, 실제로는 하나로 만난다.

초기의 대구대 특수교육은 선구적인 개척자 정신으로 우리나라 특수교육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해 왔다. 이태영은 특수교육개론(1963) 말미에서 특수교육의 전망에 대해 통찰력이 부족하고 요망적인 사항이 지나치게 표현된 것같다고 했다. 미개척 분야를 열어가자니 자연히 요망적인 사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기준은 주로 일본 특수교육으로부터 가져온 것이지만, 일본 특수교육 담론도 따지고 보면 구미(歐美)의 특수교육 담론을 수입해서 적용한 것이다. <특수교육진흥법>(1977) 제정 이전에 김동극 교장은 일본과 한국 특수교육의 격차를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입니다. 특수교육 진흥이 안 되니까 이태영 전 총장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획기적인 일을 해 보자는 뜻을 모아 정부를 몇 차례 설득하곤 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먼저 특수교육 시찰단을 구성해서 외국의 현황을 보고 건의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태영 학장님을 중심으로 해서 당시 문교부 관리, 교수, 현장 인사 등 모두 다섯 명이 일본 오사카, 도꾜를 15일간 시찰했습니다. 그때 일본과 우리나라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여서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장애인의 지옥 같았고, 일본은 장애인의 천국과 같았습니다. 많은 감동을 받고 본 것을 정리해서 돌아왔습니다. 비행기에서 일본 국토가 안 보일 정도가 될 때쯤 우리나라가 보입니다. 그때 내가 문득 “하늘의 섭리가 이렇게나 불공정한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비행기로 두 시간밖에 안 되는 사이를 두고 한쪽은 장애인 천국이 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장애인 지옥이 되도록 내버려 둔 하늘을 원망했습니다(김동극, 2005, P.479).

 

이처럼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특수교육 격차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라고 실토할 정도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200불도 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일본은 이미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상태였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경제개발과 국가안보를 앞세우면서 특수교육에 대한 시기상조론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7년 말에 마침내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자 우리나라는 압축적인 경제성장에 힘을 받아 특수교육 진흥도 놀라운 속도로 추진되었다.

이 무렵 대구대 특수교육학은 점차로 일본 중심에서 미국 중심의 담론으로 선회하면서 마침내 세계 속의 한국 특수교육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대구대에서 일본 중심에서 미국 중심으로 특수교육 담론의 이행을 가져오게 하는 데에 주도적 영향을 미친 것은 Samuel A. Kirk(1972)Educating Exceptional Children을 편역한 특수교육학(이태영, 김정권, 1975)이 기본교재로 활용되면서다. 이때부터 특수교육 담론에서 개인차문제가 두루 제기되는 가운데, 김정권 교수는 개인 내의 차’(intra-individual difference) 문제를 특수교육 중심원리로 제기했다. 이런 개인차 문제에 주목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특수학교() 교육과정의 운영 도구로 개별화교육 프로그램(IEP)’이 개발·운영되기에 이른다.

 

 

2.3 한국 특수교육 담론 생성의 성과

 

대구대에서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을 통해 우리나라 특수교육 정체성 정립에 특별히 영향을 준 주요 학술 활동과 저서 및 논문을 극히 제한적으로 개관해 보고자 한다.

 

(1) 학회 활동에 반영된 성과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 연구 활동을 목적으로 <한국특수교육학회>가 처음 결성된 것은 1969(초대학회장: 공병우 박사)이다. 그 후 대구에서 당시 한국사회사업대학 특수교육과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1975년에 <영남특수교육학회>(초대학회장: 이태영 학장)를 발족시켰고, 1984년에는 <대한특수교육학회>로 개편(당시 학회장: 김정권 교수)했다. 그 후 <대한특수교육학회>는 김정권-이상춘-이규식-안병즙-김병하-여광응 교수로 학회장을 이어오던 중 1998(당시 학회장: 김동연)<한국특수교육학회>와 통합됨으로써 사실상 대구대 중심의 특수교육 담론 생성이 크게 위축되었다. 흡수통합의 당연한 결과다.

<대한특수교육학회><한국특수교육학회>와 통합한 것은 하나로 합친다는 명분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대구대 특수교육학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 두 측면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 하나는 학회통합이 결과적으로 학술 활동의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통합 직전까지 <대한특수교육학회>는 학회지를 매년 3회나 발간하면서 왕성한 연구 역량을 발휘했으나, 통합 이후에 그런 역량은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특수교육학회><대한특수교육학회>가 나름의 학풍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존속했더라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특수교육 학술 활동이 훨씬 풍성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학회통합이 본의 아니게 학문 권력의 중앙 집중화를 촉진하는 데에 기여했다. 결국 지방은 서울의 지부로 존재하는 꼴이 되었다. 지방자치 시대라 하지만 대학과 그 학술 활동은 지나치게 중앙집중화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한특수교육학회>의 존속을 깊이 고민하지 못한 게 하나의 후회로 남는다. 그나마 <대한특수교육학회>는 대구대 중심의 한국 특수교육학 정체성 정립에 다음과 같은 편찬사업을 통해 주요한 성과를 보였다.

 

특수교육 용어사전(1986) 편찬: <대한특수교육학회>80년대 중반 학회역량이 확충되어 감에 따라 기존의 논문집 발간과 연차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 외에도 학회 차원의 출판기획을 하였다. 그 첫 번째 기획이 특수교육용어사전편찬이었다. 특수교육의 분화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용어가 많이 유입생성됨에 따라 용어 규정과 그 해설이 절실해졌다. 마침내 1986년에 교육부의 연구비 지원으로 김정권 교수를 편찬위원장으로 하고, 김병하 등 13명의 특수교육 용어사전 편찬위원(강위영, 김동연, 김영환, 배성수, 백운학, 안병즙, 여광응, 원영조, 이규식, 이상춘, 임안수, 최영하, 최중옥)을 구성하였다.

집필진은 전국에 걸쳐 특수교육과 관련분야 전문가로 약 50여 명이 참여하였다. 특수교육용어사전(대구대출판부, 1986.11)은 본문 531(색인 포함 전체 쪽수는 590 )에 총 2,336개 용어가 수록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학의 역사가 일천 하였음에도 이 정도의 용어를 선정하고 수록 정리한 것은 한국 특수교육학의 정체성 정립에 주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

특수교육용어사전<추천사>(1986.11)에서 초대학회장이자 대구대 초대 총장이신 이태영 박사는 학문으로서 특수교육의 지식체계는 의학,심리학, 교육학, 사회학, 공학 등 여러 인접 분야의 연구 성과를 원용하여 구축되었다. 그러나 인접 학문의 용어들이 특수교육에 내축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에서 건 특수교육적인 지적탐구를 통한 의미해석이 가해진 것이어야 하고, 그로 인해 용어 사용이 될 때, 특수교육 분야의 학문적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는 것이라 했다.

이어 김정권 편찬위원장은 <간행사>에서 특수교육학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학문이 아니고 수입된 것이며, 그 지식의 대부분을 다른 나라의 말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무척 다양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한특수교육학회>는 이 같은 용어의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1984년 경주 코오롱호텔에서 워크숍을 가진 바 있는데, 그때 이런 문제의 근본적 대책을 세우기 위해 용어사전 편찬을 위한 의지를 정하고, 이를 추진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특수교육백년사(1995) 간행: <한국특수교육 100년사> 정리는 2년간 교육부의 연구비 지원으로 <대한특수교육학회>가 추진했다. 연구 결과는 한국특수교육백서(1994)로 교육부에 보고하였다. <대한특수교육학회>는 백서 원고를 기반으로 <한국특수교육백년사> 화보를 따로 정리하고, 일부 내용을 보완하여 참여 집필자들의 허락을 얻어 대한특수교육학회(), 한국특수교육백년사(1995)를 출판했다. 이것은 한국 특수교육 역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함과 더불어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정체성을 종합 정립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특수교육백년사간행위원장은 김정권(대구대) 교수가 맡았고, 간행위원으로 당시 학회장인 김병하(대구대 교수)를 비롯해서 김영환(한국특수교육협회장), 김원경(교육부, 연구관), 김동극(수봉재활원장), 안병즙(대구대 교수), 여광응(학회 부회장, 대구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총무간사는 당시 <대한특수교육학회> 간사인 강창욱(강남대학) 교수가 맡아 수고했다.

 

한국특수교육백년사는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시대구분은 다섯 갈래로 나뉜다. 1장 특수교육의 전사는 개화기 이전의 왕권시대를 묶어 처리했는데, 1장 전체는 임안수(대구대, 맹교육전공)가 집필했다. 특수교육의 전사(前史)라 했지만, 100년사 기준으로 볼 때 전사라 할 수 있으며, 일찍이 왕권사회에서도 넓은 의미에서 장애인복지와 특수교육(주로 맹교육 중심으로)이 행해졌다. 1장 특수교육 전사에서 임안수(대구대) 교수는 선사시대- 동서양의 장애자 사상-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에 걸쳐 구휼사업과 점복교육, 명과학 교육, 취재와 관직, 맹인기관(명통사, 맹청), 관현맹인 등에 걸쳐 왕조실록 등 문헌 기록에 의거 충실히 논의하였다.

2장 근대특수교육의 성립과정은 김병하(대구대)가 집필했다. 2장은 개화운동의 전개와 근대 특수교육의 소개, 개신교 선교사들의 도래와 특수교육의 시작, 1898년에서 1909(농교육 시작)의 특수교육, 특수교육 성립과정의 역사적 평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근대 특수교육의 성립 기점에 대해 1894년설과 1898년설로 불일치하고 있으나, 그 성립 기원을 1894년으로 보는 데 무리가 없다고 했다. 한국특수교육 성립과정의 역사적 평가에서 “100년 전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특수교육을 시작한 것은 분명 감동적인 역사적 진전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들 개신교 선교사들이 당시에 우리나라가 처한 전체적 역사 맥락에서 볼 때, 어떤 정치적 배경과 동기에서 그들의 업무가 수행되었느냐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이 책, p.124)."고 했다.

3장 수난기의 특수교육은 안병즙(대구대) 교수가 집필을 맡았다. 일제치하 수난기의 특수교육평양 맹아학교의 발전, 제생원 맹아부 설립과 운영, 1회 동양맹아교육회의, 훈맹정음의 반포, 특수교육 사학의 설립, 병허약아를 위한 특수학급 설치, 특수교육의 교류와 연구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장 전체의 내용은 안병즙 교수가 아니면 확보할 수 없는 사료들로 집필되어, 그 사료적 가치와 새로 밝혀진 내용들이 높이 평가된다.

4장 광복이후의 특수교육특수교육행정, 시각장애교육, 청각장애교육, 지체부자유교육, 정신지체교육등으로 구성했다. 5장 특수교육 진흥을 위한 국가정책의 수립과 전개에서는 4장의 1-5절을 그대로 이어가고, 6절 정서장애교육, 7절 관련교육활동을 추가하였다. 6장 특수교육의 현황5장의 1-7절을 이어가면서 8절 장애인 재활과 복지를 추가하였다. 7장 특수교육의 발전과제6장의 절을 그대로 반영했다.

4장에서 7장까지는 집필자의 전공과 관심 영역에 따라 집필을 배정했다. 4-7장에 참여한 집필진은 곽준기(삼육재활학교), 구본권(강남대), 권도하(대구대), 김동극(수원재활원), 김동연(대구대), 김영순(부산맹학교), 김영환(국립특수교육원), 김원경(교육부), 김정권(대구대), 김종인(한국재활과학연구소), 김종현(고신대), 김중선(대구대), 박화문(대구대), 백운학(영남대), 석동일(대구대), 송영혜(대구대), 여광응(대구대), 예종덕(부산배화학교), 우재현(대구대), 원영조(대구대), 윤점룡(전주우석대), 이규식(대구대), 이상복(대구대), 정봉도(대구대), 정재권(전주우석대), 정정진(강남대), 조인수(대구대), 한성희(공주대), 황도순(공주대) 등이 집필을 분담했다. 이들 집필자들은 지금 모두 정년퇴임을 했으며, 위 집필자 중에 벌써 6인이나 고인이 되었다.

간행위원장인 김정권 교수는 간행사에서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기독교 선교사가 도래한 것은 1880년대부터이며, 이들은 포교의 수단으로 의료와 교육사업을 펴나갔고, 이들에 의해 한국의 신교육은 성립되었다. 미국의 의료선교사인 Rosetta S. Hall은 한국에 올 때 점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와서 그녀가 18945월 평양에서 의료사업을 시작한 직후 오봉래라는 맹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 소녀를 그해 520일경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맹인에게 새로운 방법에 의한 교육을 시작한 연원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근대 특수교육의 기원을 비교적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당시 학회장으로서 필자는 특수교육 100주년에 즈음해 우리는 한국 특수교육에 대한 역사적 회고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위상을 점검해 보고, 현재의 위상에 대한 숙고를 통해 미래의 특수교육 발전 방향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대한특수교육학회>에서 한국특수교육백년사를 간행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특수교육백년사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함으로써, 후학들에게 한국 특수교육 정체성 정립의 길잡이(지침)가 되었다.

 

(2) 학술 세미나, 저서와 논문에 반영된 주요 성과

 

우리나라 특수교육() 정체성 정립에 한국을 명시적으로 드러낸 주요 학술 세미나, 저서와 논문 중심으로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 그 성과를 개관해 보고자 한다.

특수학급 설치와 특수교육 진흥 활동: 우리나라에서 특수학급 설치 문제는 1970년대 초에 중학교 무시험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국가적 정책과제로 관심을 끌었다. 이에 부응하여 당시 한국특수교육연구협회(지금의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전신)가 주최하고 교육부와 경상북도교육위원회가 후원해 대구 수성관광호텔(1973.09.20.-21.)에서 <1회 특수학급 설치와 운영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에서 이태영 학장은 심신장애아 대책의 기본방향: 특수학급을 중심으로라는 기조 발표에서 우리나라 특수교육 진흥대책의 하나로 특수학급 설치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김학수 교수(당시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특수학급의 기본적 과제에서 특수학급은 초등학교 수학 대상자 중 교육가능 정신박약아에 대한 교육계획과 활동을 수행하는 학급으로 규정했다. 이어 김정권 교수(대구대)특수학급의 아동 정치(定置)에서 교육가능급 정신지체아를 표적으로하는 아동 진단과 배치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종합토의에서 학계에서는 특수학급의 입급 대상을 이웃 일본과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교육가능급 정신지체아(EMR)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문교정책 담당자는 특수학급 대상은 넓은 의미의 학업부진아가 중심이어야 한다고 했다. 특수학급 입급 대상을 개념적으로는 분명하게 구획·설정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특수학급 설치과정에서 대구·경북은 그 선구가 되었다. 1973<1회 특수학급 설치와 운영> 세미나 결과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1974년에는 전국적으로 210개 특수학급이 초등학교에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전국적으로 특수학급이 증설됨에 따라 특수학급 담당 교사들에 대한 연수가 절실해지자 교육부에서는 대구대에 교사 연수를 위탁하였다. 김정권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1974년 특수학급 담당 교사 연수를 문교부가 대구대에 위탁하였다. 이 연수는 1974년 1월에 60시간을 했다. 이 분들을 현장에 보내면서 황무지에 어린아이를 보내는 것 같아서 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한국정신지체연구회>를 결성하고 뉴스레터를 통해 현장 통신을 함으로써, 이들의 교육활동을 지원하였다. 다음 해(1975)에도 전년도와 같이 전국 시군구에 특수학급을 1학급씩 증설함에 따라 이들 교사 연수 역시 대구대에서 담당했다. 나는 이 두 해의 교사 연수를 관리하면서 전국에 특수학급 중심으로 정신지체아 교육이 확산되는 초석을 놓았다(김정권, 2006).

 

전국적으로 특수학급이 계속 증설됨에 따라 대구대 특수교육과는 김정권 교수가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 특수교육 진흥에 크게 이바지하는 발판을 굳혔다. 특히 1977년 연초에 대구대 특수교육연구소와 한국특수교육협회(회장: 김동극)가 공동주최로 <특수학급 교육의 질적 개선과 효율적 운영>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3일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종합토의를 거쳐 9개의 건의 사항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로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초로서 <특수교육진흥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1970년대 전국적으로 특수학급 설치 확대와 더불어 특수교육진흥법’(1977)이 제정된 것은 한국 특수교육 발전에 획기적 전환을 마련했다. 그 전환의 중심에 대구() 특수교육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요 저서와 논문에 반영된 성과: 한국특수교육학의 정체성 정립에 기여한 성과 가운데 한국혹은 우리나라로 직접 명시한 저서와 논문 중심으로 극히 제한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안병즙 교수는 그의 석사학위논문 한국특수교육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1974)에서 한국 특수교육의 성립 기원에서부터 발전기(1960년대 이후)의 특수교육에 이르기까지 한국 특수교육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이 논문은 한국특수교육백년사(1995)가 나오기까지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표적 논문으로 한국 특수교육의 정체성 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임안수 교수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 한국 맹인 직업사 연구(1986)에서 맹인들에 대한 직업교육의 일환으로 조선 세종조(1445) 서운관(書雲觀)에서 점복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한 것을 밝히고 있다. 이 연구에 기반하여 맹인의 사회사 연구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오던 중에 임안수 교수는 정년하고 한국 시각장애인의 역사(2010)를 종합적으로 정리·발표했다. 이 책 1부는 시각장애인의 역사적 개관을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개관하고, 2부와 3부에는 조선시대 맹인의 직업과 맹인 인물전을 다루었다. 4부는 우리나라 근대 맹인교육 전개 과정을, 5부는 시각장애인의 재활 지원을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이 책은 약 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이다.

2001년 대구대 특수교육과 설치 40주년에 즈음해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40년사(2002)를 정리했다. 이 책은 서두에 사진으로 보는 대구대학교 특수교육 40년을 개관하고, 이어서 특수교육과 창설과 한국사회사업대학 출범(1961-1976), 특수교육과 전공체제로의 발전(1977-1989), 특수교육의 학과별 분화와 확대(1990-2000), 대학원 교육의 발전과 확충(1973-2000), 현황과 전망(2001- )으로 그 발전과정을 정리했다. 책의 편찬위원장(김병하,2002))은 발간사에서 대구대 특수교육은 60년대와 70년대에 국가수준 특수교육 발전계획을 입안했고, 70년대 말에는 <특수교육진흥법>을 제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80년대 이후에는 특수학교 교육과정을 제·개정하는 일을 교육부로부터 세 차례나 수탁받아 수행했으며, 2000년대에는 두뇌한국(BK)사업에 참여해 좋은 성과를 보였다.”고 했다. 이어 2012년에는 박화문 교수가 편찬위원장으로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50년사(2012)와 특수교육과 교수 개인별 회고 중심으로 대구대학교 특수교육 반세기 회고(2012)를 냈다. 이런 일련의 역사 정리를 통해 대구대 특수교육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후학들에게 그 전통을 이어가게 하고자 했다.

김정권과 김병하는 사진으로 보는 한국특수교육의 역사(2002)를 여명(1894-1944), 광명(1945-1979), 환희(1980-2002),로 시대구분하고 한글과 영문으로 간행했다. 이 책은 한국 특수교육의 발전과정을 사진과 한글·영문으로 함께 제시함으로써, 한국 특수교육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통로가 되었다. 우리나라 근대 특수교육 성립과정의 초창기 사진 자료는 김정권 교수가 Rosetta Sherwood Hall 선교사 유족으로부터 직접 입수한 귀한 사진들이었다.

우리나라 특수교육 발전에 기여한 28명의 인사들의 개인적 미시사(서사) 중심으로 김정권 교수는 한국 특수교육의 뒤안길에서: 따뜻한 영혼들의 만남(2006)을 편찬·간행했다. 책의 머리글에서 우리나라 초기 특수교육에 이바지한 선구자의 숨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미 작고하신 분들이 많아 아쉬움이 있지만 현재 생존해 계신 분들과 비교적 전국적 활동을 하신 분들을 선임하여 숨어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였다. 이 책에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특수교육계에서 활동하신 28의 글을 게재했다.”(김정권, 2006)고 밝혔다.

 

필자는 우리나라 지역 특수교육 역사로는 최초로 대구특수교육사(김병하, 2007)를 집필했다. 책의 서문에 지금은 세계화 시대이면서 지방화 시대다. 지방화가 없는 세계화는 거짓이고, 세계화에 소통되지 않는 지방화는 공허하다. 마찬가지로 대구 특수교육의 특수성은 세계 특수교육의 보편성과 소통되고 의미 연관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구특수교육사는 한국 속의 특수교육 역사이자 세계 속의 특수교육 역사라고 했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서울 특수교육사는 없어도 그만이지만, 대구와 평양 특수교육사는 있어야 한다고 믿어 이 책을 기필했다.

대구특수교육사의 연장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정체성 정립과 그 담론으로 한국특수교육론: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정체성(김병하, 2011)을 냈다. 책에서 한국특수교육론 정체성 논쟁과 학사적(學史的) 논의, 장애학과 한국 특수교육의 재구조화, 불교와 성리학에 기반한 한국 특수교육론의 함의, 마지막으로 세계 속의 한국 특수교육론 정립을 위해 동아시아 중심 특수교육 담론 형성을 제기했다.

이 책의 후속으로 필자는 정년 후에 한국 특수교육 담론 생성의 뿌리로서 그 체()를 정립하기 위해 유학·불학·프로테스탄티즘의 한국특수교육론(김병하, 2013)을 집필했다. 책에서 유·불학(儒佛學)의 상생적 만남과 프로테스탄티즘의 특수교육 실천에 기반한 한국 특수교육 담론의 창발적(독특한) 성과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어 최제우(崔濟愚, 1824-1864)가 창도한 동학의 후천(다시)개벽에 기반해 내친김에 유불학과 동학사상에 기반한 한국 특수교육철학의 정립: 희망과 존엄의 교육(2019)을 발표했다. 유학의 <중용>, 불학의 <대승기신론, 동학의 <동경대전>을 한국 특수교육철학 정립을 위한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삼았다. <중용>-<대승기신론>-<동경대전>은 절묘하게도 종교-철학-교육의 회통(만남)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기반하여 특수교육 철학 하기의 지침으로 희망과 존엄의 교육을 말했다. 왜냐하면 모든 아동에게는 누구나 그 자신의 고유한 학습 스타일(속도)과 가능성이 씨앗처럼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3) 두뇌한국(BK)21 특수교육연구단 활동과 그 후속 성과

 

1999년 말 대구대 특수교육연구단이 1BK21사업(1999-2006) 인문사회 분야에서 지방대학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우리 연구단은 7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최종 종합평가에서 우수연구단으로 선정됨으로써, 다시 한번 대구대 특수교육의 위상을 과시했다. 7년 동안 BK21 특수교육 연구단에 참여한 대학원 학생들 가운데 20명 이상이나 전국의 특수교육 분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 사업의 결실로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이 등재학술지로 선정되어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특수교육 연구단 사업의 후속 조치로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를 설립(2006)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어 보람으로 남는다.

하지만 국제학술지로 Journal of Asia-Pacific Special Education(2001)를 어렵게 발간했으나, 계속 이어지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우리 연구단이 월요세미나를 무려 90회나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수-학생의 학문공동체 형성에 기여했으나, 사업 종료와 더불어 계속 이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학문은 혼자서 하는 독백이 아니다. 월요세미나의 일환으로 김동극, 김영환, 김원경 선생을 초청하여 특수교육진흥법의 제정 배경, 제정과 후속 조치, 법 개정과 뒷이야기를 종합해 정리한 게 주요 성과의 하나로 기억된다.

BK21 특수교육 연구단에서 주관한 해외석학 초청 국제학술대회 가운데 <탈산업사회와 특수교육>이라는 주제로 경주 코롱호텔(2002. 08. 23-24)에서 독일(W. Dreher), 미국(C. Duncan, 김은자), 일본(T. Ochiai), 타이완(B. O’Connell), 한국(김정권) 등이 발표한 국제학술행사가 인상 깊게 남는다.

연구단 단장으로 필자는 BK21 특수교육 연구단 사업의 회고와 과제(2006)에서 남겨진 과제로 우리 연구단의 사업과 연구 활동은 한국 특수교육()의 정체성 정립에 의미 연관되도록 그 구심점을 잡아가야 한다. 인문사회학문 분야에서 구미 중심의 대외의존적인 종속적 학풍은 여전히 우리가 넘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중략) 우리에게 한국 특수교육론의 정립은 시작이자 끝이다.”(김병하, 2006, 18-19)고 했다. 세계 특수교육의 보편성과 한국 특수교육의 특수성이 대등하게 만나 상생(相生)하는 게 한국 특수교육론의 존재 이유다.

 

두뇌한국21 특수교육연구단은 마지막 사업으로 창파(滄波) 이태영 총장 10주기 추모행사를 주관하고, 이어 창파 이태영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는 창파 이태영 선생의 생애’(류상덕), ‘창파 이태영 선생의 사회복지사상’(전재일), ‘창파 이태영 선생의 특수교육사상’(김병하)으로 진행되었다. 말미에 창파 이태영 선생 회고’(쇼오지 사부로)가 있었다.

필자는 이태영 선생의 특수교육사상에서 특수교육에 대한 앎이 곧 삶으로 체화(體化)된 사람을 특수교육주의자로 명명하자면서, 이태영 선생은 단연코 당대 특수교육주의자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는 평생 장애인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위해 말하고 쓰고 행동한 사람”(김병하, 2005, P.103)이랬다. 이태영 총장의 특수교육사상은 높은 휴머니즘에 입각한 민주주의로 요약된다. 이에 기반해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계발(자기 창조의 열쇠)로서 특수교육론, 인류평화와 사회정의 구현으로서의 특수교육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두뇌한국21 특수교육연구단 사업이 종료됨에 따라 그 후속 조치로 설립된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는 제1창파 학술제에서 한국 특수교육()의 정체성 논쟁(2008)이라는 주제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필자는 이 세미나의 주제 발표 한국 특수교육()의 학문적 정체성에서 그 과제로 특수교육학의 이론적 토대로 미시-객관적인 기능주의, 미시-주관적인 해석주의, 거시-객관적인 구조갈등주의, 거시-주관적인 진보적 휴머니즘을 다양하게 반영하는 다중 패러다임을 제기했다.

발제의 토론에서 김남순(조선대) 교수는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인들은 한국 특수교육학의 학문적 정체성 정립에 참여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정용석(진주교대) 교수는 다중 패러다임에 대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 특수교육학의 지적 토대로서 객관적 지식의 제고, 특수교육 관련 지식으로서 심리학과 의학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을 말했다. 한현민(대진대) 교수는 한국특수교육론의 세계화를 위해 수입학의 대외 종속성으로부터 탈피해 시비학의 부활과 자립학의 개방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나라 특수교육학 정체성 정립이 견실해지고, 생산적 담론의 발현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 특수교육학인 각자가 선수로 나서서 뛰어야 한다. 학문 세계는 코치가 따로 필요 없다.

 

 

3. 세계 속의 대구대 특수교육학 정체성 정립 과제

 

3.1 동아시아철학에 기반한 특수교육학 정체성 정립

 

왜 동아시아 철학에 기반해 한국 특수교육()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간지대에 속한다. 동아시아의 공동문어는 한문(漢文)이다. 동아시아의 세계종교는 유교와 불교다. 유교를 대승적으로 살리기 위해 불교를 수용하여, 동아시아철학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유불론(儒佛論)을 정립했다. 이것은 동아시아철학의 세계적 장점이다. 지금은 지역에 기반한 세계화 시대(Glocalism). 즉 세계화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는 다변화 시대다. 조동일(2010)은 동아시아문명론에 기반한 세계화와 한국학의 과제를 이렇게 제기한다.

 

유럽문명의 충격과 수난에 대응하면서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毆)를 주장해, 동아시아문명은 버리고 자기네 고유문화만 가지고 유럽문명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중국은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동아시아문명의 공유자산을 자국의 사유재산이라고 우기면서 후대의 발전보다 고대의 원천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월남은 식민지 통치자 프랑스의 유럽문명에 맞서서 동아시아문명의 공유재산을 자각과 투쟁의 근거로 삼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 말 저 말 하면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했다(조동일, 2010, P.18)

 

우리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毆)를 부러워하면서 그 피해자가 되었다. 중국이 동아시아문명의 주인 행세하는 걸 경계하면서 월남이 유럽문명에 맞서 동아시아문명을 공유재산으로 계승하는 걸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그런 중에 한국은 정작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인문사회학문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에서 필자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한국특수교육 담론’(김병하, 2020)을 제기했다.

지금 여기(21세기 한국, 대구대)에서 왜 다시 동도서기론을 제기하는가? 우리는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피해자로 식민 통치를 겪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광복을 맞았으나, 우리에게 분단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최근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압축성장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한은 서도서기’(西道西器) 함정에 빠져들고 말았다. 뒤늦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서도서기의 종주국은 사실상 미국으로 압축되었다. 그렇게 된 역사적 추이는 정치경제적으로 동아시아권에 대한 신식민주의 정책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중층적이면서 현재진행형이다.

 

필자가 지금에 와서 다시 동도’(東道)를 소환하는 것은 동아시아사상사의 기반 위에 한국사상을 정초(定礎)하고, 그 위에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설정하기 위함이다. 동아시아문명권에서 우리는 유(/)의 삼교(三敎)를 회통하는 사상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왔다. 그 회통은 고구려와 신라의 풍류도(風流道)와 조선조 말 동학(東學)사상에 잘 반영되어 있다.

본래 동도서기’(東道西器)중체서용’(中體西用)이라는 말의 쓰임과 함께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대응하는 초기의 대응 논리로서, 적극적인 개방이나 개화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문명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서세동점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진 시대 상황에서 동도서기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서양 문물제도 수용과정에서 표출된 실사구시적인 주체적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학문의 주체화를 통한 보편성 정립을 위해 조희연(2006)은 우리 현실의 특수성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는 태도와 지적 안목을 강조한다. 우리 안의 보편성을 독해하는 것은 자신을 보편적 전범으로 삼는 서양 학문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 제한성과 특수성을 확인함으로써, ‘진정한 보편성의 발견과 구성을 통해 우리 고유의 주체적 몫을 감당해내는 것이랬다. 지적 식민성을 극복하려면 과잉 보편화된 서구 학술 담론의 특수화가 필요함과 동시에, 그동안 과잉 특수화된 한국적 특수성의 보편화가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 이 땅의 지식인들은 서도서기’(西道西器)의 학문 담론에서 동도서기’(東道西器), 나아가 동도동기’(東道東器)에 이르는 학문 담론의 주체적 생성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감당해 낼 건가? 그것은 전적으로 이 땅의 지식인 각자의 엄중한 몫이자 사명이다. 여기 동도’(東道)는 동아시아문명의 공동 유산인 유불도(儒佛道)를 기반으로 하면서, 좁게는 한반도의 동학을 중심으로 한 사상의 체()이다. 그런 사상과 철학을 로 삼아 서양의 기술인 서기’(西器)를 용()으로 적절히 활용하자는 게다.

본래 체용(體用)은 불이(不二)이지만, 개념적으로 구분해서 말하면 체()는 형이상의 이론 세계이고, ()은 형이하의 실천 세계다. 그리고 동도는 심층에서 동서를 아우르는 것이므로 동도서기가 완숙해짐에 따라 동도동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수교육 학술 담론에서 진정 우리 안의 보편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서도서기의 학술 담론을 넘어서 동도서기에서 동도동기로 이어지는 패러다임적 일대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 특수교육 학풍의 위상은 서도서기’(西道西器)인가, ‘동도서기’(東道西器)인가? 객관적으로 엄밀히 볼 때, 우리나라 특수교육학계의 주류 담론은 여전히 서도서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 담론은 외피적으로 서기’(西器)의 결과물을 유행처럼 따라잡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것을 지배하는 서도’(西道)의 맥락을 제대로 해독해내지 못하는 한계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맥락 없는 표층 담론의 나열이다.

세계의 보편성에 보탬을 주는 동아시아학문의 정립을 위해서는 학문을 매개로 동아시아 나라 간의 대등한 화합이 긴요하다. 조동일은 동아시아문명론을 내고 꼭 10년이 지나 동아시아문명의 심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협동적 화합이 자산이라면서, 최근 대등한 화합(조동일, 2020)을 냈다. 그가 말한 우리나라의 장점인 대담한 발상과 거창한 가설 세우기를 좋아하는 과감한 설계가 힘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정밀한 고증능력, 중국의 다양한 문화 체험, 월남의 세계적 충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학문적 소통을 활성화할 때, 동아시아 학술 담론이 마침내 구미의 학술 담론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한국특수교육 담론을 생성·발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한국특수교육론(2011) 마지막 장 <세계 속의 한국 특수교육과 동아시아 모델>에서 생산적 학술 담론으로 한국특수교육론을 정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과제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한국 특수교육론 생성이다. ‘실사구시론은 조선조 후기 실학자들의 개혁방법론으로, 개혁을 하되 조선의 역사적 현실에 맞게 방법론을 강구하자는 입장이다. 필자는 밑으로부터의 자생적인 구시폐(救時弊)의 종교적·사상적 실사구시로 제기된 동학의 다시 개벽’(開闢)에 주목한다. ‘개벽은 세상을 새로 여는 개혁으로 자생적 실사구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으로 <개벽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김병하, 2019)을 제기한 의도가 여기에 있다.

둘째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한국 특수교육론 생성이다. 여기서 화이부동의 방법론은 두 차원에서 제기된다. 그 하나는 동아시아문명 차원의 대등한 화합과 소통으로서의 화이부동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의 보편성에 한국의 특수성이 연관되게 하는 것으로서의 화이부동이다.

필자는 <BK21 특수교육연구단>(1999-2006) 사업을 하면서 세계 속의 동아시아특수교육 정체성 정립에 그 방향을 설정하고, 이 사업의 후속으로 <한국특수교육문제연구소>를 설립(2006)했다. 그 후 2011년 정초에 <동아시아 특수교육 공동체 구축을 위한 한일 특수교육의 역할과 과제>(2011.01.11)라는 주제로 창파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학술대회에서 일본의 나카무라(中村) 교수, 중국의 쥬우 지아챙(許家成) 교수가, 한국에서는 필자가 발표를 맡아 동아시아에서 통합교육 실천과 그 과제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일본은 특수교육 개혁을 향한 정밀한 검증을 통해 특별지원교육체제를 도입하였으나, 특수교육계 내부의 전문성과 과감한 추진력의 부족으로 과도적 혼란을 겪고 있다. 그에 비해 중국은 특수교육 개혁에서 후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분리교육으로 특수학교 설립 확대와 통합교육 교두보로서 특수학급 설치의 보급을 통한 동시적’(압축적) 발전을 통해 중국식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그 무늬는 통합교육 지향적이지만, 내면적 결절은 여전히 분리된 특수교육을 탈피하지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이런 갈등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두를 대등하게 포용하는 교육본질 복원으로서 특수교육 전문성을 정립해야 한다.

셋째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한국 특수교육 담론 생성이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유불도3교를 회통하는 가운데, 동학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의 충격까지 흡수함으로써, ‘온고지신의 지혜를 잘 발휘해 왔으나, 학문적 담론 형성에서는 그 성과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상에서 한국특수교육 담론 생성의 방법론으로서 실사구시, 화이부동, 온고지신을 말했다. 이런 방법론에 따라 그 내용을 채워가는 일은 한국 특수교육학인 각자의 몫이다. 각자의 학적인 관심에 따라 과감한 설계도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꾸준히 쓰고 말해야 한다. 그 추진의 일환으로 필자 등(2010)은 일본특수교육학회지(영문판)에 유불론(儒佛論)에 기반하여 서구 모델과 차별화되는 동아시아 통합교육 모델을 제기했다. 이어 제20회 아시아 지적장애국제회의(20th Asian Conference on Intellectual Disabilities, 2011)에서 교육본질 복원으로서의 동아시아 특수교육의 정립(Establishment of East-Asian Special Education for Rebuilding Educational Essentials)을 발표하고, 그 연장에서 동아시아문명론에 의거한 특수교육 본질복원과 교사론의 정립(김병하, 2012)을 제기했다. 교육본질의 복원으로서 특수교육론 정립은 장애아 교육에서 교육다움의 복원이자 후술하는 대등생극론의 반영과 맞닿는다.

 

3.2 ‘대등생극론에서 본 한국 특수교육학의 정체성 정립

 

 

대등생극론’(對等生克論)K-문화 정립에 이어지는 K-학문의 길이다. 조동일(2026)그릇된 세계사를 바로잡는 철학을 내놓는 것이 가장 긴요한 과업이다. 차등론의 횡포를 대등론으로 시정하고, 상극을 극대화하는 싸움을 생극(生克)의 원리로 해결해야 한다. ‘대등생극론이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고 분투한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대등생극론은 조동일 교수가 창조하는 학문의 길을 닦는 과정에서 마지막(최종적)으로 호명하는 포괄적 담론(이론)이다.

대등론은 만인대등에서 만생대등으로, 다시 만생대등은 만물대등으로 보편화된다. 즉 만물(萬物)대등만생(萬生)대등만인(萬人)대등이다. 이처럼 만인대등만생대등만물대등으로 대등론이 보편화되는 것은 인간의 힘이 너무 비대해져 지구 시스템에 균열을 초래한 인류세’(anthropocene)에 기후생태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시사를 제공한다. ‘만물대등생극론은 존재하는 모두를 대등하게 포괄하는 궁극의 총론이다. ‘만생대등생극론은 있음(존재) 가운데 살아 있는 것만 총칭하는 그 하위의 총론이다. ‘만인대등생극론은 다시 그 하위의 인간 존재만을 따로 떼어 논의하는 총론이다.

생극론은 상극이 상생이자, 상생이 상극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과정철학이다. 동아시아의 기()철학과 음양론에 기반한 생극론은 서구의 변증법과 다르다. 변증법에서는 상생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상극의 투쟁을 역설한다. 역사에서 계급 투쟁이 그 대표적이다. 상극과 상생이 대등하게 맞물려 순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창조가 발현된다. ‘대등론은 상생이 상극이고 상생이 상극이라는 생극(生克)의 과정에 내재한다.

 

대등생극론은 한국 특수교육론의 정체성 정립에 다음 두 측면에서 중요한 시사를 제공한다. 하나는 지금까지 특수교육은 차등을 넘어 평등의 실현을 그 목적으로 삼았다. 아직도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날’(420)차별 철폐의 날로 부른다. 법제도적 외형의 평등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경쟁의 결과로 장애인은 결국 차별의 늪에 빠져들고 만다. 사람 대 사람 관계에서 질적인 평등은 대등한 수평적 만남의 정립에서 존재한다. 장애아동이 사람 대접받는 진정한 통합교육은 물리적 공간의 통합을 넘어 대등한 관계와 소통의 체현이다. 특수교육은 분리에서 통합으로, 다시 일방적 통합에서 쌍방의 대등으로 나아가는 대등교육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헌법으로 불리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2026.04.23.),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과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규정한 것은 주목을 끈다.

생극론의 입장에서 장애와 비장애는 상극이면서 상생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비장애이면서 장애이고 장애이면서 비장애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누구나 장애인이다. 장애학(disability studies)과 특수교육의 만남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문다. 인도의 여성학자인 가야트리 스피박(G. Spivak; 1942-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1988) 라는 질문에서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성실하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장애학이 특수교육 쪽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교육본질의 복원으로서 특수교육은 장애아동이 자신의 목소리(언어)로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스피박이 지칭하는 서발턴은 인도 빈민계층 여성으로서 자기 목소리로 말하기를 하지 못하는 침묵의 집단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또 하나의 서발턴이다. 스피박은 그의 질문에서 부정적으로 답했지만, 우리는 서발턴니티(subalternity)로서 장애아동일지라도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로 발화할 수 있게 교육다움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에게 장애아동은 침묵하는 관리 대상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말 걸기 하는 것이 특수교육의 존재 이유다.

동시에 우리는 이 질문에서 당연히 따라붙는 우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으로 열린 채로 남아 있는 질문 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특수교육은 모든 장애아동이 자기 목소리(언어양식)로 말할 수 있게 해야 하지만, 동시에 모든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말을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인내(겸손)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서발턴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농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수어로 살아가는 농여성(곽정란 외, 2026)에서 잘 입증되고 있다. 농인에게 수어는 음성언어와 대등한 소통 수단이고, 우리에게 여성 장애인은 서발턴니티의 표상이다. 수어로 살아가는 농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 책으로 엮은 것은 세상을 향한 서발턴의 말하기다. 우리는 농여성이 그들의 삶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을 겸허히 들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대등생극론이 발현된다.

필자가 한국 특수교육론의 정체성 정립 과제로 대등생극론을 소환한 것은 한국 특수교육학이 수입학에서 자립학으로, 다시 자립학에서 세계 속의 특수교육학으로 창발적 보편성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가능성의 하나로 최근 통합교육에 대한 급진적 제안으로 현장 교사들 중심으로 특수에서 보편으로(윤상원 외, 2025)가 나온 것에 주목한다. 윤상원은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통합교육의 위기는 특수를 넘어 보편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목을 막고 있는 능력주의와 차별주의라는 거대한 장벽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은 장애아동의 특수성을 개별 장애학생 안에 가두는 것을 넘어서 인간 보편성의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한 것이랬다.

이 책은 차등에서 평등을 넘어 장애와 비장애의 대등생극을 두루 함의하고 있다. 앞에서 필자가 말한 특수교육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의 만남’(2025)교육본질 복원으로서의 특수교육론 정립‘(2014)도 장애와 비장애의 대등생극을 이론적 가정으로 깔고 있다. 향후 대등생극론에 의거한 한국 특수교육 담론이 총론과 각론에 걸쳐 다양하게 발현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이상에서 필자가 제기한 대구대 특수교육() 정체성 정립의 과제를 포함해서 더욱 다양한 과제가 논의될수록 그 담론은 더 풍부해지고 창발적 보탬을 줄 것이다.

 

4. 맺음(제언): 개벽의 한국 특수교육론

 

학문하기는 돈오점수‘(頓悟漸修). 홀연히 깨침을 얻으면 놓치지 않고 집중적으로 쓰고 발표해야 한다. 성철 스님은 밥 먹는 이야기 아무리 해봤자 허기를 면할 수 없다고 했다. 각자가 밥을 떠먹어야 허기를 면한다.

특수교육학은 삼각형처럼 밑변이 길어야 꼭지점이 안정되게 올라간다. 밑변을 길게 하기 위해서는 특수교육학을 밑받침하는 이론 세계의 폭을 넓혀야 한다. 앞에서 한국 특수교육론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 동아시아문명론에 기반한 유불론‘(儒佛論)을 수용하고, 그 위에 동학사상을 접목하자는 것도 보편성 위에 한국의 특수성에 따른 특수교육학의 전문성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21세기는 이른바 다중 위기시대다. 목하 우리가 보는 것처럼 핵전쟁 위기, 기후생태 위기, 기술혁신 위기와 불평등 위기가 중층으로 얽혀 있다. 이런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특수교육학인들의 담론은 부단히 재구성되고 반추되어야 할 게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당대의 시대 의식을 또렷이 견지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개벽‘(開闢)의 한국 특수교육론을 제기한다. ’개벽은 세상을 크게 새로 여는 것(cosmic open)이다. 우리는 고난의 역사에서 주체적으로 개벽사상을 생성했다. ‘개벽은 내면적으로 대등생극론과 만난다. 이것은 K-사상과 학문의 결실이다.

개벽을 삶으로 체현(’동학하기의 표상)한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4-1898)은 사람이 곧 하늘(人是天)이므로,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事人如天)하랬다. 특수교육은 장애아동을 하늘처럼 섬기는 교육이다. 성산 이영식은 장애아동을 세상의 빛으로 삼아 그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자기 존재 이유(自由)를 깨치게 하고자 대구 특수교육을 창도했다. 이처럼 대구대 특수교육()개벽의 특수교육 담론은 진즉에 내재해 있다. 개벽의 한국 특수교육론 총론과 각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당대 특수교육학인에게 주어진 책무다.

 

 

<이 글은 대구대 개교기념 70주년기념 국제학술 세미나(2026.05.12)에서 발표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