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전적’ 글쓰기
1.
지난번에 우리는 자기성찰의 적극적인 공부 방편으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실천하는 글쓰기를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글쓰기의 형식 가운데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전적’ 글쓰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자기’(自己)라는 말은 이기적 자아 중심의 ‘아상’(我想)과는 구분되는 본래의 자기 혹은 본성으로서의 자기를 말합니다. 동양철학에서 교육의 목적은 ‘본성회복’의 과정이라 했습니다. 타고난 본래성을 다시 회복하는 게 곧 심성함양으로서의 교육목적이라는 겁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진정한 실체(reality)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따라붙습니다. 인간의 사회․정서적 발달과업에 대해 에릭슨은 나서 죽을 때까지 8단계의 발달과업을 겪는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청년기에 겪는 발달과업으로 ‘자기정체성’ 혼란을 어떻게 하면 안정되게 극복하느냐가 주요과제라 했습니다. 사실 청년기에는 결정해야할 주요 당면문제들이 집중적으로 제기되는 반면에, 스스로 해결해야 할 능력과 안목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일생을 통해서 정신적 혹은 정서적으로 가장 방황하고 자기혼돈을 많이 겪게 됩니다. ‘자기정체성’ 문제는 우리가 철들면서부터 평생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내 자신의 경우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 저학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심각한 자기정체성 혼란을 겪은 것 같습니다. 고2때부터 진로방향을 철학과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붙잡고 이런저런 고민들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무렵 이성 문제로 열병을 앓으면서 더욱 갈등에 빠졌습니다. 그런 저런 정신적 홍역을 치루는 동안 나는 대학을 5년이나 하고 전공도 철학과에서 특수교육 쪽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대학 졸업하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심한 위궤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수교육 쪽으로 발을 디디면서 차츰 정서적 안정을 회복해 갔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특수교육(학) 분야에서 평생 교수노릇하고 살아왔습니다. 내게 특수교육은 구세주였습니다. 하여 지금은 몸과 맘이 비교적 건강한 편입니다. 말하자면 지금은 자기정체성이 훨씬 안정되게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기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성찰적인 자기 서사(敍事)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객석에서 자기를 바라보기입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를 보듯이 자기를 반추해 보는 겁니다. 우리 인간에게 ‘이야기’는 생존 본능입니다. ‘이야기’라는 말의 한자 어원은 ‘이어약(利於藥)에서 유래했다는 군요. 즉, 먹는 약보다도 더 이로운 것이 이야기라는 게지요.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2015)에서 우리 인간에게는 약 7만 년 전부터 약 3만 년 사이에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 출현했는데, 그는 이것을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라 했습니다. 인간의 언어가 다른 동물의 언어에 비해 놀라울 정도의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서 다른 의미를 지니는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획득한 언어능력은 인간들로 하여금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주었지요. 그에 따르면,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는 허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의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라는 겁니다. 그는 언어사용 덕분에 생물학적 존재였던 인간이 문화적․역사적 존재로서 지구의 주인행세를 하게 된 연유와 그 위력을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뇌는 필요에 따라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 저장-처리하도록 적응해 왔다. 마침내 인간은 새로운 정보시스템으로 숫자와 문자를 읽고 쓰는 걸 고안해 냈다. 수메르와 이집트, 고대 중국, 잉카 제국이 달랐던 점은 이런 문화들이 기록을 보관하고 목록을 만들어 검색하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숫자와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들을 거대한 협력 망으로 엮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그것을 유지‧관리하는 문자 체계를 고안했기 때문이다.
인지혁명이 진화함에 따라 인간은 마침내 새로운 정보시스템으로 숫자와 문자를 읽고 쓰는 걸 고안해 내어 체계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역사적․문화적 존재로 변화해 오늘의 과학문명을 향유하기에 이르게 된 겁니다. 노엄 촘스키는 최근에 펴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What kind of creatures are we?, 2016)라는 책에서 인간의 언어가 서서히 생겨나지 않고 갑작스러운 ‘대약진’(두뇌의 배선이 살짝 바뀐 것)에 의해 “한없이 창의적인 사고의 토대를 제공했다.”는 겁니다. 다윈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유일한 점은 대단히 복합적인 소리를 생각과 결부시키는 능력이 거의 무한정 더 크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윈의 ‘거의 무한정’이라는 전통적인 표현을 촘스키는 이제 ‘사실상 무한정’으로 해석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인류문명의 혁명 과정은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길게는 7만 년 전에 시작된 ‘인지혁명’에서, 1만 3천 년 전에 일어난 ‘농업혁명’을 거쳐 집단적 공동체로 제국을 탄생 시켰고, 불과 5백 년 전에 일어난 ‘과학혁명’은 부와 물질문명의 극치를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는 겁니다. 그는 “숫자와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소리와 문자는 하나의 의사소통 도구로 고안되었지만, 언어 혹은 언어능력 자체가 인간의식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피엔스』의 말미에서 하라리는 21세기 문명위기를 이렇게 경고합니다.
오늘날 인간은 신이 되려는 참이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가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가 세상의 고통 총량을 줄였을까? 인간 역량은 엄청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 혹은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야기하는 잔인한 일들이 되풀이되었다.
다시 하라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있을까?” 그는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라 했습니다. 과연 그럴지 어떨지는 그도 모르고 우리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인류공동선을 향한 개인의 각성과 집단적 깨인 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전적 글쓰기를 고민하게 됩니다.
2.
지금 이 강의실에는 초등 5년에서부터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분포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노자는 어린아이는 도(道)에 가장 가까운 존재라 했고, 예수는 누구든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 세계에 초점을 둔 자전적 글쓰기를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아이들에게는 자기 세계 혹은 자기가 바라는 것에 대한 간절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간절하게 꿈꾸기는 아이들 세계의 특권입니다. 하지만 해방둥이인 내 자신이 자라온 과정을 회고해 볼 때, 어릴 때 내게는 간절하기는커녕 무슨 꿈이란 게 없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이후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 때는 모두가 가난하고 살기가 어려워 허기진 배를 채우고 그냥 들로 산으로 야생마처럼 뛰어 노는 게 모두였습니다. 그러니 별다른 꿈이란 것도 없이 그냥 맛있는 것 먹고 명절 때 새 옷 입는 게 원이었습니다.
이즘 아이들은 대부분 먹고 입는 일에 크게 부족함 없이 자라고, 과거에 비해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나름 꿈이 다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에 빠져 자라는 환경에서 그들에게 절실한 꿈이 과연 어떤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꿈이란 게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쪽으로 물들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자라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간절하게 품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당대 어른들의 중요한 책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먼저 간절한 꿈이 있어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이런저런 실천 방편을 나름 설계해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꿈을 소재로 자라는 과정에서 집에서 부모나 학교 등에서 가까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갖는 것이 퍽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먹는 약보다도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이롭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고등정신능력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공유하는- 동안 가장 활발히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꿈의 실천 방략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바뀌어 질 수 있습니다. 또 꿈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자 현실입니다.
땅에 걸려 넘어진 사람은 그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꿈은 현실적으로 좌절되거나 굴절되기가 다반사입니다만, 어쨌든 우리는 그 차가운 현실을 딛고 꿈을 가꾸고 실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멈춘 수레를 움직이게 하려면 그 수레를 끄는 말을 때려야지 수레를 아무리 때려 봤자 소용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이 처한 현실적 조건이나 환경만 탓할 게 아니라 그 현실적 조건을 바꾸는 것조차도 궁극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때로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믿을 것은 자기뿐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자화상’이란 시에서 자신이 미워서 돌아가지만,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진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일제치하의 엄혹한 현실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겁니다.
꿈은 현실에 토대하고 그 속에서 잉태되지만, 우리는 자신의 삶이 성숙해지면서 ‘꿈 너머 꿈꾸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철 스님은 자기 삶의 목적을 “영원한 진리에 대한 무한의 헌신”으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 속에 성철 스님의 ‘꿈 너머 꿈꾸기’가 자기 삶에 녹아들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칸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 두 가지를 든다면, 하나는 자기 속에 선험적으로 작동하는 정언명령으로서의 도덕성이고, 다른 하나는 밤하늘에 빛나는 무수한 별들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철학자로서 칸트가 형이상학적 차원의 세계를 얼마나 동경하고 중시했는가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제가 보기에 성철 스님이나 철학자로서 칸트는 ‘꿈 너머 꿈꾸기’를 가장 철저하게 문제 삼은 사람입니다.
저는 어쩌다 운 좋게도 젊어서부터 교수노릇하면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제게는 교수가 된다는 게 젊은 시절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용케도 그 꿈을 실천해 40년간이나 교수로서 일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행운이었습니다. 저는 정년 고별강의에서 다시 태어나도 교수가 되고 싶고, 그것도 특수교육학 쪽으로 교수노릇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대구대에서 특수교육을 배우고 가르친 걸 보람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수노릇은 그럭저럭해 왔다지만, 과연 내가 교수로서 ‘꿈 너머 꿈꾸기’를 제대로 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이 없을뿐더러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헌신적으로 가르치는 일에 몰입해왔으며, 그 가르침이 특수교사로서 학생들의 내면세계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꿈 너머 꿈꾸기’는 현실속의 실천적 삶을 위에서 조정하고 되짚어 성찰하게 하는 ‘초실천적’ 기준으로서의 메타프락시스(meta-praxis)입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세계입니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사변적 이성'입니다. 그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차원과 통하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에게는 신의 속성인 ‘신성’(神性)이 누구에게나 씨앗처럼 내재해 있습니다. 다만 그 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게 하는 정성과 노력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중용』에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을 사람의 길이라(즉, 誠之者 人之道也) 했습니다.
그 길은 곧 ‘성’(誠)의 길이고, 기신론에서 말하는 ‘진여’(眞如)의 길입니다. 이홍우 교수는 『대승기신론통석』(2006)에서 “사바(沙婆)가 열반(涅槃)이라는 말에서, ‘사바’는 열반에 들어가기 전에 중생이 참고 견뎌야 하는 이 세상(忍土)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사바를 떠난 다른 곳에서 열반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여 중생이 곧 여래라는 말 또한, 중생과 여래가 다르지 않다는 게 아니라, 중생의 마음 안에서가 아니고는 달리 여래의 마음을 찾을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사바가 열반이 되는 것은 오직 중생의 노력에 의하여, 또 그 노력의 정도만큼 가능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기신론의 가르침에서 우리가 ‘마음을 진여로 돌리는 일’에는 그 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는 겁니다. 하여 자신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일에 비추어 스스로 부족한 존재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꿈 너머 꿈꾸기’는 지난한 삶의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삶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인간의 운명입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우뚝 일어서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꿈의 실천은 바로 그런 삶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전적 글쓰기의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글쓰기의 전단계로 과거-현재-미래 속에서 자기 삶을 전체적으로 회고-분석-전망하여 반조(返照)해 보기입니다. 한 발 물러서서 자기 삶과 마음을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틱 낫 한 스님은 ‘마음 챙김’(mindfulness)이랬습니다. 자전적 글쓰기는 자기를 향한 마음 챙김의 이야기입니다. 나처럼 나이든 사람에게는 자전적 글쓰기에서 살아온 삶의 여정이 주된 소재가 되겠습니다만, 자라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는 앞으로 살아 갈 미래에 대한 소망의 이야기가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동기로 자전적 이야기를 쓰고자하느냐가 글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그리고는 쓰고자 하는 내용의 얼개와 생각의 그물 짜기를 해보면서 글쓰기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겁니다. 도형이든 메모 형식의 간단한 목차이든 자기가 편한 형식으로 나타내 보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그 밑그림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쓰고자하는 내용을 미리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프레이리는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자기 딸에게 그 내용을 미리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참동안 듣고 난 다음 딸은 프레이리에게 “아버지는 이미 그 글을 다 완성해 놓은 사람처럼 내게 말해준다.”고 했답니다.
이야기가 되는 만큼 글쓰기는 쉬워집니다. 즉, 이야기하듯 글쓰기가 잘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억지로 쓰는 글은 쓰는 본인에게도 부담스럽지만, 그 글을 대하는 사람은 더욱 지루하고 짜증스럽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공감필법’이 중요한 겁니다. 초벌 원고를 써놓은 다음에는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휴식을 취한 다음 새로 기분전환을 한 상태에서 다시 글을 찬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 문장을 끼워 넣기도 하고, 반대로 줄이거나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은 글을 줄이기보다 보태기 작업을 하는 게 유익했습니다. 글쓰기의 보태기에서는 평소 독서 목록의 활용이 중요 자원일 수 있습니다. 첨삭작업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편집 작업을 해야 합니다. 편집 작업 과정에서 글제목과 하위 제목을 손보거나 추가로 달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글자 크기와 쪽 번호 매기기 등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가 쓴 글을 평가해 보는 것입니다. 글의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유익하므로,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읽혀서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거치는 게 좋습니다. 저의 경우 쓴 글의 성격에 따라 가까운 제자에게나 딸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다른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는 게 내게는 적잖은 도움이 됩니다. 특히, 어휘 선택이나 한글 맞춤법 등에서 상당한 도움이 되곤 합니다. 한글은 쉽지만 바로쓰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외래어에 오염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오덕 선생은 『우리글 바로쓰기』(1989)에서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외국말과 외국말법에서 벗어나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다. 한번 병들어 굳어진 말은 정치로도 바로잡지 못하고 혁명도 할 수 없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남의 말, 남의 글로써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써 창조하고 우리말로써 살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3.
이청준은 단편 <자서전들 쓰십시다>(1976)의 서두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인기 코미디언 피문오-아는 이는 이미 알고 있듯이 그것이 우리 시대의 코미디언 피문어 씨의 본명이다-씨가 지욱(작품의 주인공)에게 그의 자전적 반생기《흐르지 않은 눈물》(가제)의 원고 집필을 의뢰해 온 것은 그러니까 가위 한 시대의 무대 우상이 그의 시대가 끝나고 난 다음까지도 의연히 그들의 우상으로 남아 살아 있고 싶은 욕망에서, 그의 관객과 청중들을 압도할 요지부동한 자기 동상을 지으려 함에 다름 아니었다. 혹은 지금까지의 그의 인기에도 오히려 아쉬움이 남아 그의 청중과 관객 앞에 한 불변의 우상으로 군림하려는 피문오 씨의 오만스런 자기다짐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이청준은 이 단편에서 살아생전에 자전적 반생기(半生紀)를 남기고자 하는 소위 출세한 사람들의 자기 우상화를 꼬집고 있습니다. 그런 우상화의 작업을 업으로 하는 ‘전기 작가’는 어쩌면 서러운 존재입니다. 하여 전기 작가 지욱이 꾸며온 수많은 회고록과 자서전들에 동원된 말들은 정처도 없었고 주인도 없었습니다. 자서전의 주인공들은 애초부터 지욱이 동원해온 말들과는 인연이 없는 위인들이었습니다. 말이 존재의 집이라면, 말의 집은 곧 존재의 실체일 수밖에 없지만, 지욱에게 그의 말글들은 이제 그 실체의 집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실체의 집을 떠난 남의 자서전 쓰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지욱은 골목 바깥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그의 귀를 울려오는 가련스런 자기 환청에 언제까지나 넋을 빼앗기고 앉아 있었답니다.
“자서전들 쓰십시다아. 자서전이요. 자서전, 자서전드을 써요....”
이청준은 이 단편의 작가노트에서 자서전에 대한 그 희한한 꼴볼견을 경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서전으로 그가 살아온 시대를 정직하게 증언하고, 자신의 자서전으로 그가 살아온 인생 역정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참회를 행해 보이는 것은 그것을 읽는 독자들이나 집필자 자신의 삶을 위하여 다 같이 값진 기여와 보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자기 시대에 대한 정직한 증언이 없는 자서전이란 물론 이 사회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뼈를 깍는 참회의 아픔으로 다시 들춰내 보일 수 있는 정직성이나 그럴 용기 없이 씌어져 나온 자서전이란, 그 자서전 집필자 자신의 삶마저도 과거의 상처나 아픔(실패와 아픔의 경험이 없는 삶이 있으랴)에서의 후련스런 해방을 마련해 주지 못한다. (‘자서전에 대하여’ 작가 노트 중에서, 1978)
우리는 자전적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얼마나 정직하게 증언할 수 있을까? 또, 우리가 자전적 글쓰기에서 얼마나 뼈를 깍는 참회의 아픔으로 정직한 글을 쓸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안겨진 ‘자전적 글쓰기’의 큰 숙제입니다. 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가 발표되고 40년이 지나 김병익 선생은 자신의 칼럼집 『시선의 저편-만년의 양식을 찾아서』(2016)에서 <‘자사전들 쓰십시다’를 재청함>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기자는 자신의 보도나 논평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나’의 정체를 되도록 숨기고 속내를 감춘다. 그런 기자들의 모임인 기자협회가 발간하는 신문에서 ‘자서전들 쓰십시다’란 제목(「기자협회보」2013.6.26)이 내 눈길을 끌 것은 당연했다. 필자 정재민은 미국 독서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전기․자서전 류가 차지하는 큰 비중을 소개하면서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 칼 번스턴과 밥 우드워드의 회고록 『워터게이트-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대학의 저널리즘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예를 들어 설명하며 우리의 기자들에게도 “영혼을 담아 진실을 기록하는 자서전들 쓰십시다”라고 제안한다.
오늘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또 한 번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국정농단에 따른 이 파국을 헤쳐가기 위해 이 나라의 기자들에게 ‘영혼을 담아 진실을 기록하는’ 고발정신과 글쓰기가 절실한 때입니다. 지금까지 시민들의 자생적 촛불집회가 2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도 어쩌면 JTBC 손석희의 기획보도, 경향과 한겨레 일간지의 고발성 보도가 미친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언론이 살아야 강한 민주주의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계 기자들을 향한 김병익 선생의 ‘자서전들 쓰십시다’의 재청은 시의적절합니다.
끝으로, 자전적 글쓰기의 한 예로서 여행 작가의 여행체험을 담은 정숙영의 『여행자의 글쓰기』(2016)를 간단히 짚어 보겠습니다. 저자는 2004년 여행 웹진 <노매드>의 기자가 된 것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여행 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정보를 모으고, 사람을 만나고, 감동 받은 것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내는 일을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몇 가지 보기를 예문으로 제시하면서 본인이 해당하는 항목이 몇 개나 되는지 꼽아 보라고 합니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
-남들이 써놓은 여행 기록을 읽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
-평생여행만 하고 살 수 있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사람
-여행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내는 ‘여행작가’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
-언젠가 여행의 순간, 밀려드는 기쁨과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길바닥에 주저앉아 마구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가본 적 있는 사람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감상을 공유해본 사람
-한번쯤은 장래희망에 ‘여행작가’를 적어본 사람 (등으로 21개의 예문을 적시하고 있음)
이 중에 본인에게 단 한 가지라도 해당되는 게 있다면, 여행작가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책 말미에 ‘여행작가로 살기 위한 마음가짐’ 열 가지를 다음처럼 제시합니다.
01 여행의 고단함과 일의 책임감 사이에서도 여전히 설렌다.
02 내가 경험한 세계를 재미있고 구성지게 늘어놓을 능력을 키운다.
03 초보 여행자의 ‘눈높이’를 잊지 않기, 여행작가의 초심이다.
04 여행 콘텐츠를 필요로 하며 대가를 지불하는 곳이면 어디든 활동할 수 있다.
05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다녀온 여행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06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들려줄 수 있다.
07 일단 책 한 권 치 분량의 글을 쓴다.
08 써놓은 글은 어디든 공개한다. 칭찬을 양분으로 삼고 비판으로 가지를 치다보면 글은 좋아진다.
09 첫 여행 책을 쓰는 일은 여행의 흥분과 감동을 고스란히 써내려 갈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다.
10 게으른 여행작가는 힘들다. 억지로라도 부지런해지자.
여행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생존법을 우리 스스로에게도 <마음으로 쓰는 여행기>의 지침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여행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그 설렘을 글로 남기면 읽는 사라들의 가슴도 함께 설레게 할 겁니다. 여행작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체험한 ‘여행기’를 남기는 것도 자전적 글쓰기의 좋은 자원이 될 겁니다.
<질문> 질문이라기보다는 건의하고 싶은 건데, <자전적 글쓰기>의 실제 사례를 통해서 좋은 자전적 글쓰기의 요건 같은 것을 함께 짚어보면 한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답변> 거기까지는 아직 준비가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간접적으로 이청준 작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 단편을 통해, 특히 작가노트에 제시된 것처럼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정직하게 증언하고 참회록으로 자전적 글쓰기를 하자고 제의하는 선에서 그칩니다. 그리고 김병익 선생이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영혼을 담아 진실을 기록하는 자서전들 쓰십시다”는 재청도 당대의 언론인들은 경청해야 할 겁니다.
차선책으로(질문 이후 이 글을 정리하면서), 자전적 글쓰기의 좋은 사례가 될 만한 하나의 방편으로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를 함께 감상해 보고자 합니다.
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울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
일제치하에 굴욕적인 삶의 치욕을 삼키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존재로서 ‘부끄러운 자기 미학’을 드러낸 한 편의 서정시입니다.
<질문> 자전적 글쓰기를 위해 일기를 쓰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 까요?
<답변> 그렇습니다. 일기는 자전적 글쓰기의 기초이자 기본형식에 해당됩니다. 근데 매일 일기 쓰기가 쉽지 않아요. 며칠 씩 몰아 쓸 수도 있지요. 다석(多夕) 류영모 선생은 일기 형식으로 자기 생각을 정리한 메모로 일지(日誌)를 남기셨습니다. 선생은 평생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만, 제자들에 의해 다석 류영모의 철학과 사상을 정리한 책들이 여러 권 출판되었습니다. 그런 책들이 나올 수 있었던 원전이 바로 다석 일지였습니다. ‘다석 일지’가 없었다면 오늘 날 우리가 한국철학의 큰 봉우리를 담론화 할 기회를 놓칠 번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다석 류영모 선생의 제자입니다. 도올 김용옥은 자기가 생전의 다석 선생을 한 번 직접 만나지 못한 게 평생의 회한으로 남는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개신교 의료선교사로 들어와 평양에서 여성진료와 함께 특수교육사업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한 로제타 홀(R. Hall; 1865-1951)의 전기 『닥터 로제타 홀』(박정희, 2015)이 약 500쪽 분량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선교사(宣敎史)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초기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성립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서평은 『특수교육저널: 이론과 실천』, 2015년 연말 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홀 의사의 자서전이 우리나라에서 빛을 보게 된 결정적 계기는 홀이 이 남긴 일기 덕분입니다. 이 자서전이 나오고 『로제타 홀 일기』(양화진문화원 엮음)가 모두 3권으로 나눠 원문과 함께 그 번역본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와 서간문 덕분에 로제타 홀의 삶은 역사가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