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담 두 살 아래인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영남대 영문학과 교수였던 김종철 교수가 별세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나는 대구에서 평생 교수 노릇해 온 탓에 <녹색평론>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계속 구독하고 있다. 내가 실제로 김종철 교수를 만난 것은 그가 영남대를 자진 사퇴하고 대구를 떠나고 난 다음 <지식과 세상>에서 기본소득 관계 주제로 특강을 하러 왔을 때였다. 직접 만나니 반갑기도 해서 “대구 시민사회에서는 김종철 교수마저도 대구를 버리고 서울로 갔다고 섭섭해 한다.”고 했더니 그는 그냥 빙긋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고 해를 넘겨 2016년 봄에 원광대에서 개최된 원불교100주년 기념학술대회에 기조 강연 차 왔기에 <지식과 세상>에서 만난 것을 말하니 용케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또 해가 바뀐 뒤에 내가 원불교를 창도한 ‘소태산 박중빈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글을 <녹색평론>에 투고 했더니, 내게 원고료 대신에 5년간(2022년까지)이나 <녹색평론>을 무료로 구독할 수 있는 혜택을 주었다. 내 짐작으로는 김종철 교수가 그렇게 챙긴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나는 <녹색평론>은 물론 한겨레신문이나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 등에 김종철 교수의 칼럼이 실리면 빠짐없이 정독을 했다. 특히 그의 생태사상문집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2019)는 그 내용이 맘에 들어 몇 군데 인용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코로나 환란 중에 내가 <오마이뉴스>에 투고한 글에서 인용한 김 교수의 마지막 칼럼은 지금 다시 봐도 압권이다.
「온갖 징조로 봐서, 앞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유사한 역병은 빈발할 것임이 틀림없다. …(중략) 현실이 이런데도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백신과 치료제를 찾느라고 허둥댈 것인가. 당장은 기술적 해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우리 모두의 정신적․육체적 면역력을 증강하는 방향이라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의 생태계 훼손을 막고, 맑은 대기와 물,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한 토양의 보존과 생태적 농법,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소박한 삶을 적극 껴안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스크도 손 씻기도 아니다. 또, 장기적인 고립생활이 면역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한겨레. 2020.04.17)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는 구절은 그의 녹색생태담론을 가장 집약적으로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김종철 교수가 하늘나라로 훌쩍 떠난 다음 날 <녹색평론>(173호, 2020.7-8월)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고인이 된 김 교수를 찐하게 생각하던 차에 그가 남긴 마지막 글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이번 호에는 코로나 사태로 그가 칩거생활 하던 중에 독백하듯이 적은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들이 실려 있어 애도하는 맘으로 읽었다. 일상 속에서 느낀 단상들이어서 더 친숙하게 와 닿았다. 그 중에 재일동포 지인과 통화하면서 동학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낸 구절이 눈에 띈다.
「…(중략) 동학은 정감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상이다. 정감록은 정 도령이라는 진인(眞人)이 출현해서 세상을 구한다고 했지만, 동학은 잘났든 못났든 우리 모두가 ‘진인’이라고 선언했다. 노력하면 진인이 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나 진인으로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그 점에서 굉장한 ‘혁명적 사상’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했다.」(<녹색평론>, 173호, p.154)
동학의 가르침은 누구나 한울님을 내 몸속에 모시고 있으니(侍天主), 우리 모두가 곧 ‘진인’이라는 게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놀라운 혁명사상이다.
나는 김종철 교수가 어떤 지병이 있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명재천’이라는 생사관>이라는 글에는 어쩌면 그가 죽음을 감지하는 느낌이 든다.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하다. 누워 있으면 좀 견딜 만하기는 해도 그리 편치는 않다. 왜 이럴까.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심란한 터에 몸이 이러니‘ 자연히 기분이 처진다. 소위 ’코로나블루‘가 내게도 이런 식으로 오는가.” 그는 여기서 몽테뉴의 죽음관을 이렇게 인용한다.
「그의(몽테뉴의) 결론은, 죽음은 미리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연에 맡겨둘 문제라는 것이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명상”이라고까지 했던 몽테뉴의 최종 결론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그런데 그가 얻은 결론은 사실은 동아시아의 전통에서는 오랫동안 극히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즉,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人命在天)”는 상식…. 내 생각에 이보다 더 고매한 철학은 실제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데 이토록 명쾌한 ‘철학’보다 더 좋은 약이 있을까.」(이 책, p.164)
그렇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그냥 하늘의 지엄한 명령에 따를 뿐이다. 김종철 교수!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그간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것도 선생님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