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류는 지구가 자기 시스템을 안정되게 유지하는 데에 적정한 것보다 1.7배나 생태용량을 초과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구에 사는 75억 인구가 소비하는 자원이 지구에 균열을 일으킬 정도로 생태용량을 초과(1.7배) 하고 있다는 게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 수준으로 살려면 지구가 3.5개 이상 필요하고, 미국 사람들 수준으로 살면 5개 이상의 지구가 있어야 한단다. 간단히 보면 이런 계산이 나온다.
인류 전체로 보면 월 200만원 수입에 지출이 340만이고, 한국인들은 200만원 수입에 지출이 700만원이고, 미국인들은 200만원 수입에 1,000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지구멸망에 어느 쪽의 책임이 더 큰가? 지구 전체적으로 이만큼이나 버티어 내는 것은 개발도상국과 저개발 국가들의 절제 덕분이다. 중국인들이 미국 사람들만큼 소고기를 소비하면 지구에 있는 소들의 씨를 말릴 정도란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미국 탓하고 중국 탓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타일러 라쉬는 <두 번째 지구는 없다>(2020)에서 이렇게 말한다.
1년 동안 우리에게 제공되는 에너지가 1이라고 생각하면, 그걸 1년 내내 나눠서 써야 한다. 사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 평균은 1을 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인류는 빚쟁이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지구가 재생할 수 있게끔 여력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2000년이 되자 지구가 제공하는 생태용량을 10월이면 다 당겨쓰게 되었고, 2019년에는 7월 말이면 지구자원을 모두 탕진하게 되어 무려 1.75개의 지구를 사용한 꼴이 되었다(타일러 라쉬, 2020, pp.28-29).
우리가 월세를 못 내서 쫓겨나면 다른 집을 구할 수 있겠지만, 지구에 빚진 것을 되돌려주지 않으면 쫓겨날 곳이 없다. 결국 우리 목숨으로 갚게 되는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환란의 고통을 겪고 있는 코로나 재앙도 결국 기후변화가 불러온 팬데믹이다. 세계인의 자원소비 평균치가 지구 1.7개 어치라면 내가 남기는 생태발자국은 어느 정도일까? www.footprintnetwork.org 에 들어가 육식정도, 주택유형과 크기, 동거 가족, 재생에너지 사용, 쓰레기배출량, 주당 자동차사용 거리, 대중교통 이용정도, 비행기 여행시간 등에 걸쳐 체크를 해본 결과 3.2 개 어치가 나왔다. 결국 나는 지구가 제공하는 연간 생태용량을 4월 하순까지 모두 다 써버리는 사람으로 판정되었다. 지구 전체인구의 평균 생태발자국보다 2배 가까이나 더 큰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산출된 결과를 보고 나는 속으로 놀랐다. 내 딴에는 기후변화에 비교적 민감히 반응하고 걱정하는 줄로 알았는데, 실제 내 생활방식은 산업사회의 소비성향에 그냥 푹 젖어 있는 게다. 그러니 몸 따로 마음 따로 이다. 속절없이 나는 지구에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인격자가 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지구에게 매년 엄청 부채를 남기는 호모사피엔스가 된 게다. 해서 지금 우리가 코로나 환란을 겪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코로나 환란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는 아직 ‘나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자들의 잇단 경고와 환경론자의 절박한 주장조차도 그냥 소비해버리는 ‘자본세’에 길들여져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탄소사회의 종말>(2020)에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인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했다. 실제로 코로나 환란은 죽음의 불평등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당장 미국의 경우 흑인과 히스패닉이 코로나에 감염돼 입원하는 비율이 백인의 4배에 달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자본주의’가 방역을 망치게 할 수도 있다. 코로나 자본주의는 여전히 시장원리와 경제적 성과를 금과옥조로 삼는다. 이를테면 의료기관들이 공공병상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경영수지 때문이다. 시민건강연구소의 <서리풀 논평>에 의하면 코로나방역 치료제, 신속항원검사, 국산 백신 문제 모두 기술과 산업이라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게다. 해서 기술과 산업이라는 수단이 안전과 건강이라는 본질에 앞서는 가치 역전을 경계한다. 그들은 이렇게 경고한다.
시장과 경제적 이익은 잠시도 쉬지 않고 방역에 개입한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금까지 그랬고 유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럴 것이다. 절대 지치지 않는다. 방역이든 백신이든 성공이라 할 궁극적 결과는 안전과 건강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자. 사익을 우선하는 코로나 자본주의,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경제를 치열하게 경계하고 또 비판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기준으로 우리가 ‘함께’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프레시안, 2020.12.21).
결국 문제는 ‘자본세’다. 자본의 확대재생산 고리를 차단․조정하지 않고는 지구에 탄소 발자국이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게다. 성장의 덫에서 헤어나 자발적 가난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