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300은 서구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발전해온 300년의 역사이다. 50은 우리나라(남한)가 서구의 300년에 맛 먹는 압축성장의 햇수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 근데 지금은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국력이 40배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계 속의 한국과 남북 간의 차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눠 짚어 보고자 한다.
코로나 환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세계가 다시 한국을 주목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은 세계적 선도국 반열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해방둥이인 내가 살아온 내력에 비춰보면, 우리의 ‘압축성장’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에 해당된다. 서구 역사에서 근대에서 탈근대 혹은 산업화에서 탈산업화는 순차적으로 이행되었지만, 우리의 경우 그것은 중층적이고 2중적이다. 우리에게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이행은 60년대 말에 어렵게 시작되었다. 70년대 중반 겨우 산업화를 향한 이륙을 하여, 그로부터 약 30년 동안 엄청난 고도성장 개가를 올렸다.
대학에서 내 연구실에 PC(개인용 컴퓨터)가 들어온 게 90년대 중반이다. 이때부터 나는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를 향한 지식정보 혁명에 떠밀려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그 변화속도를 소화하기조차 버겁다. 스마트 폰 사용도 꼭 필요한 부분만 최소한으로 한다. 그나마 책 구입은 인터넷으로 하고, e-book도 활용한다. 그리고 내가 쓴 크고 작은 글은 모두 블로그(다움 김병하넷)에 올려놓는다.
지금 한국사회는 근대와 탈근대가 동시다발적이면서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해서 경제성장은 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신문화적 숙성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부분이 숙제다. 우리에게 빨리 빨리 문화는 그 빛과 그림자가 함께한다.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2021)에서 대한민국은 ‘흉하면서 아름다운 나라’라 했다. 산업화된 선진국에서는 주력산업의 교체 주기가 30년 정도 라는 데, 우리나라는 불과3-4년 주기로 후딱 갈아치운다고 한다. 따라가기에 바쁜 나머지 그냥 속도전으로 달려온 게다.
미국 경제신문 통신사 블룸버그가 금년에도 한국을 전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꼽았다. 블룸버그 혁신지수는 연구개발(R&D)비용, 첨단기술기업들의 집중도, 생산능력 등에 가중치를 두어 국가별로 평가한다. 블룸버그 혁신지수가 발표된 9년 동안 한국은 7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 금년평가 순위에서 미국은 11위, 일본이 12위, 중국은 16위로 모두 10위권 밖에 머물렀다(한국경제, 2021.02.03).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 내의 강국에 들지만, 청년실업과 자살률이 높고 노인빈곤이 가장 높은 나라다. 빨리 성장한 빛과 그림자가 너무 선명히 드러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고, 남남갈등의 골조차 깊다. 참 특별한 나라다.
문화인류학자나 문명비평가에게 같은 민족의 역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온 남한과 북한이 오늘날 어찌해서 이처럼 현격한 이질성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 큰 관심사다. 남한이 최근 50년간 놀라운 압축성장을 해온 반면에 북한은 왜 경제적으로 여전히 어려움을 면치 못하는가? 그 주된 이유 혹은 원인이 내부적인가 외부적인가? 속단하기 어렵다. 북한의 단점이 남한의 장점이고, 남한의 단점이 북한의 장점일수 있다.
후삼국시대 이래로 15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통해 한반도는 단일민족국가체제였는데, 광복 후 분단된 75년 동안에 그 이질성이 너무 깊어져 버렸다. 이 이질성을 어떻게 완화․조정․극복할 것인가? 이 대목에서 필자는 불교 가르침의 본질인 ‘중도’(中道)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 ‘중도’는 절충이 아니라 ‘쌍차쌍조’(雙遮雙照)다. 양변의 모순을 버리되, 되비춰 회통하라는 게다. 해서 양변을 버리고 회통하는 차조(遮照)가 동시적이면서 둘이 아니라(不二)는 게다. 여기에 통일의 방법론이 내재한다.
종교적 지혜를 분단현실에 적용하는 방편으로 어떻게 역사화 할 것인가 하는 게 우리네 시대 살이 과제다. 300 대 50의 기적을 분단극복을 향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길로 누가 어떻게 닦을 것인가? 길은 닦아야 길이 된다. 당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화두이자 숙제다. 우리가 함께 가면 길이 된다. 하지만 그 길은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