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교수(경희대)의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2021) 라는 두꺼운 책을 폈다. 주제의식이 비교적 분명했고 공부의 내공이 느껴졌다. 머리말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서>에 책의 논지가 잘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명전환의 방향과 진로에 대한 선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선명한 비전과 희망의 메시지에 이르는 길은 긴 우회로였다.
잃어버린 열쇠를 가로등 밑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라는 금언이 있다. 저자에게 이 책은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 작업이었다. 저자가 이런 느낌을 품게 된 것은 국내에서 1987년 6월 항쟁에서부터 1990년대에 구소련 동구권 붕괴와 냉전종식이라는 진동을 겪으면서였단다. 하지만 사태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해독해내기가 어려웠을 터이다. 기존의 습관적인 생각의 틀과 행동이 사태변화의 깊은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던 게다. 말하자면 가로등 불빛 아래엔 그 열쇠가 없었던 게다. 그에게 ‘가로등 빛’이란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서구중심 역사관․세계관․문명관이었다.
우리가 뭔가 본질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깨달을 때야말로 '철학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저자에게는 가로등 빛 밖으로 나가는 그 길이 ‘동아시아를 통한 우회로’였다. 길을 찾는 ‘발견의 방법’이었다. 그 우회와 탐사의 시간이 어언 30년이 지나 ‘동아시아 내장문명과 내장근대’의 실체와 그 함의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게다. 노자는 “멀리 돌았기에 온전하고, 굽었기에 곧다”(曲則全, 枉則直)고 했다.
이 우회로를 통해 단지 동아시아만을 새롭게 발견하자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바깥 세계를 다시 비추어 봐야한다. 동아시아의 내장문명과 서구의 팽창문명이 서로를 비추어 보는 것을 통해 인류문명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찾을 수 있다는 게다. 거기서 찾아낸 것이 내장과 팽창의 장구한 인류사 변증법이 이제 지구적 차원의 내장적 문명전환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결론이다. 여기 ‘내장’은 안(內)으로부터 스스로 성장하는(張) 것이고, ‘팽창’은 바깥으로부터의 포식(捕食)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다.
인류문명사 전체의 흐름을 통해 현대문명의 위기와 그 전환의 길을 숙고하는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동아시아의 내장문화를 소환해 제2의 축의 시대를 어떻게 열어갈까? 시대적 과제이자 소명이다. 인류세(Anthropocene)에 하나 뿐인 우리들의 집인 지구를 살리는 생명의식과 존재의식의 고양이 절실하다.
내장문명을 뿌리로 삼아 내장과 팽창의 변증법을 인류사 상승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작은 나에서 큰 나에 이르는 또 한 번의 성찰과 프락시스가 긴요하다. 이것은 21세기 인류문명사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