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심고! 내가 하늘

평촌0505 2021. 7. 10. 19:50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랬다. 『중용』은 하늘이 명하는 것이 사람의 본래 성(性)이랬다. 이른바, 인내천(人乃天)이고,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다. 그래서 내가 하늘임을 심고(心告)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내게 고하고, 하늘에 고하고, 땅에 고하고 살기는 쉽다. 그러나 심고한 대로 살기는 어렵다. 내가 하늘이라면, 유학에서 말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 내 삶속에 체화되어야 한다. 동양에서는 ‘천인합일’에 이른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했다. 그러나 그런 ‘聖人’은 관념상으로만 존재 할뿐이지 실존하는 인물은 아니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을 다시 ‘내가 하늘’이라는 말로 압축했을 때, 그것이 내게 함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내가 ‘하늘’일 수 있는가? 내가 곧 하늘인데 뭘 더 보태고 뺄게 있는가? 하늘은 무극이자 태극인데, 오히려 내 정체성이 애매하고 종잡기 어렵다. 나는 해방둥이로 70대 중반을 넘어선 중노인이다. 할아버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혹은 전직 교수(지금은 명예교수)로서 큰 흠결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도 물론 아니다. 어찌 보면 이만큼 살기도 쉽잖아 보이지만, 내가 하늘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아득하다.

 

내가 하늘이란 건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하늘의 지엄한 명령으로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천명’(天命)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동학농민 혁명이 일어나고, 3․1독립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나고, 광복이후 4․19 학생의거, 6월항쟁,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모두 천명에 의한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 정도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누리고 사는 게다. 그러나 내가 하늘이란 걸 지금 문제 삼는 것은 내 자신을 향한 내속의 ‘하늘’이다. 내속의 하늘은 하늘의 명령으로 내게 품부되어 있고 내장(內藏)해 있지만, 살아오는 동안 그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특별히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나는 지금 그것을 문제 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신비는 두 겹으로 쌓여 있다. 그 하나는 날 때부터 내가 하늘이라는 게 내 뜻과 관계없이 이미 내속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가시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수운은 불연(不然)이 기연(其然)이랬다. 다른 하나는 내가 모르고도 그럭저럭 살아 왔지만, 나이 들면서 어떤 계기로 우연찮게도 그것을 깨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깨침은 어쩌면 기존의 나를 깨지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내가 그 계기를 다른 사람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는 <대승기신론>과 <중용>과 <동경대전>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200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해평 도리사에서 어머니 49재를 올리고 나는 좀 더 불학에 끌리게 되었고, 그러던 차에 그 해 여름 나는 우연찮게도 <대승기신론통석>(이홍우, 2006)을 손에 들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대승기신론>을 열 번 이상 탐독했고, 대학원 강의 텍스트로 삼기도 하고, 특수교육저널에 논문도 한 편 남겼다. 기신론은 중생인 내가 곧 부처라는 큰 믿음을 일으키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런 바탕 위에 나는 『중용』을 만나 불교의 옷을 입은 유학의 형이상학적 담론을 음미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중용』은 유학의 4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가운데 형이상학적 이론이 가장 체계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해서 4서 가운데 가장 깨치기가 어렵다고 해서 예로부터 『중용』을 차돌 중용이랬다. 『중용』 첫 머리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는 구절은 천명에 의한 성(性)-도(道)-교(敎)의 연관을 명백히 그리고 커다랗게 제기하고 있다. 즉, 하늘이 명령하는 것이 사람의 본래 성(性)이고, 이 성(性)이 시키는 바에 따라 사람이 가야할 마땅한 길이 도(道)이고, 이 길을 제도에 의해 부단히 닦는 과정이 곧 교육이라는 게다.

 

정년 후에 나는 <지식과세상>사회적 협동조합에서 고전읽기를 하던 중에 수운 최제우(1824-1864)의 『동경대전』을 공부하는 기회를 가졌다. 도올은 <동경대전>이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성경이라 했다. 동학은 동방의 학문으로 유․불․선 3교를 회통하면서 기독교의 충격까지 흡수한 우리의 민족종교이자 개벽사상이다. 동학 가르침의 핵심은 ‘시천주’(侍天主)다. 즉, 하느님을 내 몸속에 모시고 있다는 게다. 왜냐하면 사람은 안으로 신령한 영성을 지니고 있고, 밖으로는 우주의 기운과 하나로 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해월 최시형은 사람이 하늘(人是天)임에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事人如天)하랬다. 같은 맥락에서 해월은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의 삼경사상을 말했다. 이것은 인간존엄과 생명사상의 극치다. 도올은 『동경대전』(김용옥, 2021)역주에서 “나는 코리안이다” (『동경대전1』),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이다”(『동경대전2』)고 했다. 해서 동학은 종교 중의 종교이고, 세계철학의 오메가 포인트라는 게다.

 

이처럼 ‘내가 하늘’이라는 명제를 내 삶으로 내화하는 데에는 『대승기신론』, 『중용』, 그리고 『동경대전』과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해서 ‘내가 하늘’이라는 명제는 내 삶에서 영원한 현재진행형이자 숙제이다.

 

심고(心告)!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지(萬事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