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전』의 중심은 <동학론>이고, 동학론의 핵심은 21자 주문(즉, 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에 집약되어 있다. 다시 21자 주문의 핵심은 시천주(侍天主)의 ‘시’(侍), 즉 하느님의 모심이라는 그 한 자에 내축 되어 있다. ‘시천주’(侍天主)는 내속에 하느님을 모시고 있음을 말한다. 수운은 <동학론>에서 ‘시’(侍)를 이렇게 설명한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
모심, ‘시’(侍)라는 것은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 밖으로 우주의 기운과 하나로 통(소통)함이 있어, 세상 사람들 각자가 서로 소외됨이 없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라는 게다. 이 구절에 대해 도올은 『동경대전 2: 우리가 하느님이다』(2021)에서 해석하기를 “「시侍」라고 하는 것은 ‘받는다’, ‘모신다’는 뜻인데 그 궁극적 의미는 내 몸 안으로는 신령(神靈)이 있고, 내 몸 밖으로는 기화(氣化)가 있으니, 이렇게 모든 존재가 상호 교섭되는 세계에 있어서는 당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각자가 깨닫는다는 뜻이다.”고 했다.
이 구절의 풀이에서 ‘각지불이’(各知不移)라는 말에 대한 해석이 좀 구구하다. 지금까지 “각자가 마음대로 옮길 수 없음(즉, 어길 수 없는 것임)을 알라”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도올은 이런 종래의 해석이 잘 못 되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여기 ‘이’(移)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져 있다는 매우 소박한 의미이며, 이것은 실존주의철학에서 말하는 소위 ‘소외’((Estrangement, Alternation)와 같은 의미”라 했다. 필자도 도올의 해석에 좀 더 공감하는 입장이다.
‘나’는 하느님을 내속에 모신 신령한 존재이므로, 내 몸과 맘은 우주의 기운과 하나로 통하는 그런 영체(靈體)다. ‘나’라는 개체의 생명뿐만 아니라, 천지간에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는 신령한 존재다. 해서 해월은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에 이르는 삼경(三敬)을 말한 게다. 수운은 여기 ‘각지불이’(各知不移)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 상호간의 유기적 상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와 같은 것이다.
<도마복음>에서도 하느님은 내속에 거하면서 동시에 나를 초월하는 것이랬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같은 맥락에서 제 나인 ‘몸 나’에서 영적 존재로서 ‘얼 나’로 거듭 나기를 강조했다. 이것은 예수가 말하는 자기갱신으로서의 초월적 변혁(metanoia)이다. <동학론>의 ‘시’(侍)는 하느님과 나라는 존재성의 관계를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치시키고 있다. 하느님은 내속에 모신 포월적(包越的) 존재다. 그래서 동학의 가르침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