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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현상

평촌0505 2011. 10. 4. 16:36

  영화 ‘도가니’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황동혁, 40)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폭발적 반응이 빨리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고 실토한다. 원래 「도가니」는 공지영 원작으로 2009년에 2005년에 광주지역 어느 청각장애학교(특수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실화 장편소설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되자마자 내가 읽었는데(2009.07.03), 이 작품을 통해 나는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로부터 나는 공지영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이 영화는 추석이 지나고 극장가가 좀 뜸한 시점에서 출시가 되었는데 나는 지난 월요일(9/26) 저녁 집에서 가까운 씨너스(경산)에 걸어가서 혼자 영화를 보았다. 월요일 저녁인데도 젊은이들 중심으로 극장 뒤편 좌석에서 중간까지는 거의 관람석을 다 메웠다. 개봉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관객이 1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황동혁 감독도 어제 처음으로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이 영화를 봤다면서 이렇게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초반에는 긴장감이 감돌다가 중반 이후에는 한숨 소리와 욕설이 여기저기서 들렸어요. 끝날 때쯤에는 우는 소리가 나오더군요.” 감독의 관람 평은 정확했다. 나도 관람 도중 손수건을 두 번이나 꺼냈다. 이 영화는 일반적으로 관람하기에 좀 ‘불편한 영화’다. 그래서 집사람은 손녀 핑계로 처음부터 보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고, 자기 친구들도 그런 영화는 보지 말아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나. 근데 젊은 여학생들이 많이 보러 온 게 과연 남자 주인공이 미남이라는 이유 때문만 일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이래저래 가슴앓이를 한다. 평생 교수노릇하면서 양지에서만 살아온 내 삶의 행운에 견주어 볼라치면 그냥 미안하다는 생각뿐이다. 달리 변명하거나 해명할 말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장애아동의 그늘진 삶에 드리운 성폭력, 장애인시설이나 특수학교를 운영하는 지역유지들이 관청이나 경찰과 끈끈하게 맺어진 공생의 유착,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물론 유전무죄(有錢無罪)의 관행 이런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 문제이다. 그러나 그런 자잘한 일상이 모여 한꺼번에 표출될 때, 건전한 양식으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은 분노할 줄 안다. 94세의 스테판 에셀(S. Hessel)은 「분노하라」(2011) 면서 우리를 격려했다. 그는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고 했다.

 

  과연 이 시대는 영상매체의 시대인가 보다. 영화 「도가니」의 파장은 엄청나다. 공지영의 소설 원작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도가니’의 흥분이 한 번 휩쓸고 가면 다시 쉽게 잊어버려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번에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하여 사회복지법인의 공익이사제 도입을 구체화하는 것은 늦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광주 인화학교가 폐교 조치될 것 같은 데 설립자의 건학정신에 비춰 볼 때 퍽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는 한 두 번의 시정조치로 쉽게 바꿔지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의식과 풍토의 개혁이 뿌리부터 철저히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결코 이와 유사한 일이 장애인계 내부에서 재발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회적 대응조치만으로는 역시 한계가 있다. 정치계와 법조계와 교육계가 총체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지금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장애인이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인심(人心)이다. 인심(人心)이 곧 천심(天心)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상처받은 장애인의 마음을 우리 모두의 천심(天心)으로 보듬어야 할 때다.(201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