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찬석 선생(전 경북대 총장)은 <세계지리산책>에서 “르완다의 제노사이드”를 다루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의 호수지역에 있는 작은 나라이지만,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1994년에 르완다에서 엄청난 인종 학살이 자행되어, 100일 동안에 무려 110만 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박 총장은 르완다의 잔혹한 제노사이드를 이렇게 말한다.
르완다 제노사이드가 불과 30년 전에 일어난 사실이다. 치열한 전쟁 속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이 아니다. 정권을 노린 권력자가 불을 지른 일방적인 학살이다. 군중심리에 흥분하여 죄의식 없이 살육한 것 또한 인간이다. 포유동물은 종 내에서 자손번식, 먹거리, 서식지 때문에 동족을 물어 죽이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수십만 명을 집단으로 살해하는 포유동물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스탈린의 대숙청은 전쟁 때문이라고 하지만, 르완다의 학살은 1994년에 프랑스의 감시 하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르완다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들여다보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2022.05.10. 강의자료).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서도 전세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엄청나게 자행되었다. 21세기 문명시대에 제노사이드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성’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김민남 교수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제노사이드에 대해 일반적 해석도 필요하지만, 한편 ‘그 때 그 곳’의 학살에 대한 구체적 원인과 기제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집단학살을 역사의 문제로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공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문명사회에서 제노사이드도 문제지만, 기후위기와 더불어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학살)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인류 전체의 실존적 문제로 에코사이드의 보편적 확산이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티핑 포인트를 넘어 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1982년 유엔총회에서 ‘세계자연헌장’이 선포되었다. 이 헌장에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문명은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연계의 기능이 잘 작동해야 생명이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유엔은 2011년에서 2020년까지 ‘생물다양성 보전10년’에 이어 후속조치로 2021년부터 2030년까지를 ‘생태계 회복10년’으로 선포했다. 그만큼 에코사이드가 절박한 문제로 다가온 게다.
현위기를 기후위기에 국한해서 다루는 것과, 기후-생태위기로 확장해서 다루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현재의 위기를 기후-생태 복합위기로 간주한다면, 탄소감축은 기본이고 그것에 더하여 우리가 지구-자연을 대하는 방식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지구의 생태역량을 훨씬 초과하고 있는 소비지상주의와 무한성장의 문제까지 직시해야한다. 나아가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생태계의 자연한계 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선제적으로 공존을 위한 사회-생태 전환의 길을 구체적으로 열어가야 한다. 제노사이드와 에코사이드가 얽혀 야기되는 재앙이 참으로 두려운 시대가 바로 ‘인류세’(enthropocene)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