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동아시아문명론과 한국특수교육론의 형성

평촌0505 2011. 10. 20. 10:20

 

 

  ‘한국특수교육론’은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한 특수교육 담론이다. 필자는 「한국특수교육론: 우리나라 특수교육(학)의 정체성」(2011)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세계 속의 한국특수교육과 동아시아 모델’을 논의하였다. 그냥 ‘한국’을 앞세워 강조하다 보면 자칫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내가 몸담은 ‘한국’을 구심(求心)으로 삼지만 동아시아문명 속에서 그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리고 동아시아문명론을 기반으로 세계의 보편성과 소통하고 거기에 보탬을 주는 일에 당대 우리 학인(學人)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평소 내가 존경하는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의 저서 「동아시아문명론」(2010)을 최근에 읽고 동아시아문명론에 의거한 한국특수교육론 형성의 당위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동아시아문명의 본질과 그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에 따른 공부가 좀 더 체계적으로 축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우리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특수교육(학)계 내부 담론에만 의존할 때, 특수교육 내적 특수성이 외적 보편성과 소통될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다. 결국 우리의 특수교육 담론은 우물 안의 개구리 처지를 면치 못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 동안 조동일 교수가 꾸준히 제기해 온 ‘생극론’(生克論)은 역사발전과 문명론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적 틀로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상생(相生)이 상극(相剋)이고 상극이 상생이라는 이 ‘생극론’을 영어로 ‘becoming-overcoming'으로 표기해 보았지만, 서양인들은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조동일은 회고하고 있다. 아마 그의 생극론은 원효(元曉)의 회통론(會通論)과 상통하면서도 다른 듯하고, 그렇다고 유물변증법과 상통하는 것으로 혼돈하면 더욱 곤란하다. 그보다는 불학(佛學)의 중도(中道)나 불이론(不二論)에 가까운 듯하지만, 주역(周易)의 음양론(陰陽論)이나 이기론(理氣論)에서 기일원론(氣一元論)의 기화(氣化)에 훨씬 가까운 것 같다.

 

  생극론(生克論)에 대한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 동아시아학문의 오랜 원천에서 유래하고 있다. 생극론의 관점에서 조동일은 특히 공자(孔子)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말하고, 「주역」에서 ‘一陰一陽謂之道’(한번은 음이고 한번은 양인 것을 일컬어 도라고 한다. 繫辭傳, 1장)라 하고, 「老子」에서 ‘有無相生’(노자, 2장) 이라고 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어 그는 ‘기일원론’에서 서경덕(徐敬德)이 제기한 “一不得不生二 二自能生克 生則克 克則生”(하나는 둘을 생하지 않을 수 없고, 둘은 능히 스스로 생극하니, 생하면 극하고 극하면 생한다)고 한 것에 주목한다. 여기서 서경덕은 하나인 기(氣)가 둘을 낳아 음양이 생극의 관계를 가지고, 상생하면 상극하고 상극하면 상생한다고 했다.

 

  조동일(2010)은 상극의 투쟁으로 역사는 발전한다고 변증법에서 말하는 것도 일면 타당하지만, 투쟁하는 쌍방이 같은 조건을 지니지는 않아 재고가 요망된다고 보았다. 그는 생극론의 관점에서 선진과 후진이 교체되는 양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기존의 강자는 정도가 지나쳐 스스로 파탄을 일으키는 동안 뒤떨어진 쪽이 불리한 처지에 대한 자각을 발판으로 삼고 새로운 방식으로 분발해, 투쟁이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된 결과 선진과 후진이 교체된다고 생극론은 일깨워 준다. 이것은 상극이면서 상생이고, 상생이면서 상극이어서 진행되는 변화의 하나이지만, 논의를 확대하기 위해 갈라 말할 필요가 있다. 상생이 상극이고 상극이 상생이라고 하는 것과 함께 선진이 후진이고 후진이 선진이라고 하는 것이 생극론의 기본명제이다(조동일, 2010, p.62).

 

  조동일에 의하면, 선후의 교체는 일방적인 희망이 아니고 역사의 실상에 근거를 두고 파악된 사실이다. 문명의 관계에서 유럽문명권이 중세에는 다른 문명권보다 후진이었으므로 근대에는 선진이 되었다. 그에 비해 동아시아문명권은 중세에 유럽문명권보다 선진이었으므로 근대에는 후진이 되었다. 선진이 후진이 되고, 후진이 선진이 되는 변화는 다시 일어나 근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열 것으로 그는 예상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축적해 ‘생극론’으로 유럽의 근대학문을 넘어서서 다음 시대를 여는 인류 전체의 지혜를 마련하는 원천이 되게 동아시아학문론을 가다듬고자 분발한다.

 

  조동일은 동아시아의 공동문어인 한문을 잃으면 동아시아문명의 계승이 중단된다고 단언한다. 특히 사상의 근본을 문제 삼는 철학은 문명권 단위로 공동문어를 통해 문명권의 공유재산으로 성장해 왔다. 그래서 한문문명의 보편적 가치를 힘써 되찾아 새롭게 활용함으로써 우리 학문을 세계화의 반열에 들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유럽철학이 인류의 공유재산이 된 것은 중세문명의 공유재산이었던 라틴어철학을 민족어철학으로 이어받아 재창조하는 과정을 겪었듯이 우리는 한문철학을 민족어철학으로 이어받아 재창조하는 같은 과정을 거쳐야 동아시아의 공유재산을 인류의 공유재산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더불어 생성되고 수장(收藏)된 동아시아 보편적 사고의 유산에 천착해야 한다. 이 일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장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탐구의 대상과 방법의 전범(典範)으로 조동일 교수가 儒․佛․道 삼교(三敎)를 함께 아우를 것을 제안하는 것에 나 자신 크게 공감한다. 어느 하나를 교리로 삼아 절대화하면 편협해질뿐더러 그것은 동아시아문명이 함의하는 보편적 사고의 유산이 될 수 없다. 조동일은 儒․佛․道家의 사상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유가의 「論語」, 불가의 「金剛經」, 도가의 「老子」를 선정하여 들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철학적 담론의 깊이와 체계성에 비추어 유가의 「中庸」을, 그리고 불가의 「大乘起信論」을 들고 싶다. 道家는 儒家와 佛家의 중간 정도 위치에서 이치를 탐구하고 논의하는 데에 필요한 생각의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주목하는 데, 필자의 공부는 아직 거기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老子」에 대한 공부를 좀 더 집중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동일은 유․불․도의 3자 대면을 통해 유가는 ‘正名’, 불가는 ‘假名’, 도가는 ‘無名’을 내세워 차이를 분명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正名論은 인식대상과 언어의 능력을 함께 인정하는 긍정론인 데 반해, 假名論은 인식대상의 고정성과 그것을 전하는 언어능력을 함께 불신하는 부정론이며, 無名論은 그 중간에서 양면을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無名論만 들면 假名論과 같은 것 같으나, 無名과 有名을 함께 인정해 조동일은 無名論이 有名論이기도 하다고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이 相生한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조동일은 자신의 生克論을 다음과 같이 발전시킨다.

 

  부정을 부정하고 다시 부정하는 운동을 거듭해야 있음이 없음이고, 없음이 있음인 줄 안다. 있음과 없음이 상생한다는 것을 안다. 있음과 없음은 상생하면서 또한 상극한다. 상극한다는 것은 없는 말이기 때문에 보태 넣어야 한다. 상생에 치우친 편견을 바로잡아 상생이 상극이게 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생극 인식론이다. ...(중략) 생극의 인식론은 현상과 원리, 표면과 이면, 긍정과 부정, 질서와 혼돈, 아직 알지 못한 것과 이미 안 것을 함께 관장한다. 그러고 보니 무명유명론이 생극론이다. 무명이 유명이고 유명이 무명이라는 것이 생극론의 명제이다(조동일, 2010, pp.344-345).

 

  이처럼 생극론의 원천을 無名有名論에서 찾고 여기에 자신의 생극론을 보태 다시 더 큰 생극론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고전의 원천을 활용해서 오늘날의 생극론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이 논의의 성과라는 것이다. 조동일에 의하면, 이것이 고전에서 필요한 내용을 선택하고, 보충하고, 수정하는 고금학문 합동작전의 좋은 본보기라는 것이다.

 

  이런 본보기에서 길을 찾아 동아시아문명론에 의거하여 한국특수교육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것이 이 땅의 특수교육학인들에게 주어진 막중한 공부의 주제이다. 이런 일련의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하나의 학술담론으로 ‘한국특수교육론’을 정립하기 위한 탐구의 갈래를 다음 세 갈래로 제안한 바 있다(김병하, 2011).

 

그 하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이다.

그 둘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이다.

그 셋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한국특수교육론 정립이다.

 

  위의 세 갈래는 한국특수교육론 형성을 위한 방법론적 관점의 제시이기도 하다. 즉, ‘실사구시’의 한국특수교육론은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 기반 한 담론 형성을 강조한다. ‘화이부동’의 한국특수교육론은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통한 세계적 보편적 담론과 소통하는 것을 강조한다. ‘온고지신’의 한국특수교육론은 동아시아문명의 원천에 천착하면서 21세기 한국특수교육론을 창조적으로 생성하자는 것이다. 이 셋은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르다. 이 셋의 방법론을 아울러 횡적 비교론과 더불어 역사적(종적) 통찰을 얻어냄으로써 세계 속의 한국특수교육론 정체성을 정립해 가야 한다. 이제 한국특수교육론 정립을 위한 설계도랄까 그 방향을 나름대로 제시하였다. 문제는 그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이를 위한 학문공동체의 출현이 간절히 요망된다. 김병하(2011.10.18)

 

<추기> 이 글은 내가 정년 직전에 정리한 글이다. 벌써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이후 '한국특수교육 담론' 형성에 내가 어떤 보탬을 주었는가 자문해 본다. 정년 직후 나는 한국특수교육 담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유학, 불학, 프로테스탄티즘의 한국특수교육론>(2013)을 저술했다. 그리고 불학의 <대승기신론>, 유학의 <중용>, 동학의  <동경대전> 공부에 집중하면서 동아시아사상사에 기반한 한국특수교육론 정립에 관한 논문을 3-4편 발표했다. 그 대표적 성과로 '개벽의 한국특수교육 담론 형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하여 '동도서기(東道西器)의 한국특수교육 담론'(2020)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정년 후 '한국특수교육 담론형성'에 관한 나의 공부 여정이다. (2023.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