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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에

평촌0505 2023. 1. 22. 12:11

2023년 계묘년 설날 새벽에 잠이 깼다. 어릴 적에는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설날에 새 옷 입고 어른들께 세배 올리는 게 아름다운 추억이자 의례였다. 설명절에 어머니가 손수해준 떡국과 강정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세배 올릴 어른들도, 맛 나는 강정을 만들어 주던 어머니도 계시질 않는다. 위로 형님 세분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위로 누님 한 분과 막내인 나만 남아 있다. 해방둥이인 내 나이가 올해 팔순을 내다본다. 영락없이 노년이다.

 

설날 첫 새벽에 살아온 세월이 안겨준 ‘의미의 수호자’로서 나 자신을 다시 반추해 본다. 늘그막에 내 삶의 지혜를 어떻게 갈무리할 건가? 설 날 아침에 새삼 떠오르는 화두다. 맹자는 사람의 길로 ‘존심양성’(存心養性)을 말했다. 내 마음을 다잡아 천명(天命/天明)인 본래성(즉, 本然之性)에 따르는 삶이 여전히 긴요하다. 해서 <중용> 첫 구절에는 하늘이 명령하는 것이 곧 인간의 본래성(天命之謂性)이랬다. 여기 하늘의 명령은 부단한 현재진행형이므로 이 본래성에 따르는 과정이 곧 사람이 가야할 마땅한 길(率性之謂道)이다.

 

날 때부터 타고난 본래성은 하늘의 지엄한 명령으로 품부된 것이므로, 내 삶에서 내면의 나침반으로 끊임없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게 사람됨(human being)의 길이자 삶이다. <중용>에는 본래성에 따르는‘솔성’(率性)이 온전히 발현되는 ‘진성’(盡性)으로 이어지는 게 이른바 ‘지성’(至誠)이랬다. ‘지성’(至誠)은 나의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발현하는 ‘진기성’(盡己性)에서 체현되어 다른 사람의 본성을 온전히 발현케 하는 ‘진인성’(盡人性)으로 나아가, 마침내 만물의 본성을 온전히 발현케 하는 ‘진물성’(盡物性)에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본래성이 외현으로 두루 발현되는 과정에서 나는 천지의 화육(化育)에 동참하는 존재가 되고, 천지와 더불어 온전한 일체가 되는 ‘천지인’(天地人) 삼합에 이르게 된다. 나의 존재성은 놀랍고도 신비롭다.

 

이처럼 내 존재의 본질은 존엄하고 장엄하다. 그 존엄과 장엄함은 ‘천지인’ 삼합의 일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두루 실현된다. <중용>에는 그 실현과정이 곧 ‘지성’(至誠)의 삶이다. 그래서 ‘지성능화’(至誠能化)랬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지극한 정성의 쉼이 없는(至誠無息) 체현이자 진화의 결과다. 마침내 ‘지성’은 영명하고 신통한 신성(神性)으로 승화된다. 해서 <중용>에는 ‘지성’은 하느님과 같다(至誠如神)고 했다. 이처럼 내 본성에는 신성(神性)이 내재하지만, 그것은 진성(盡性)의 부단한 과정에서 발현된다.

 

민족종교이자 철학인 동학에는 “하느님 마음이 곧 내 마음”(吾心卽汝心)이랬다. 이것은 ‘천인합일’의 담대한 선언이다. 우리에게 ‘동학하기’는 곧 ‘천인합일’의 체현과정이다. 그 체현의 방법론(즉, 修德論)으로 수운은 ‘수심정기’(守心正氣)를 말했다. 불퇴전의 믿음으로 천명인 본래마음을 굳게 지켜 내 몸이 우주기운과 하나로 통하게 하라는 게다. 수운은 수덕(수행)의 요체로 ‘선신후성’(先信後誠)을 말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하다.

 

올해 설날에는 특별히 <중용>과 <동경대전>의 가르침이 내게 와 닿는다. 좋은 설날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