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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사람들

평촌0505 2012. 3. 19. 16:42

 

실성(失性)한 사람들

 

  나는 자랄 때 어머니와 같은 밥상에서 주로 밥을 먹었다. 밥상머리에서 어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말씀 중에 “사람이 좀 실성(失性)한 것 같더라”는 표현을 가끔 들은 기억이 난다. 누가 엉뚱한 일이라도 저지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사람이 실성한 것 같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으신다. 만약 어머니가 지금 살아계셔 이즈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본다면 틀림없이 “세상이 온통 실성한 것 같다”고 짐짓 결론을 내리시고 혀를 찰 게다. 사람들이 제 정신으로 살지 않으니 세상이 실성한 것처럼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실성한줄 알면 나부터 실성하지 말고 제 정신을 붙들어 놓아야 한다. 근데 우리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을 보는 기준이 어느 정도 내면화되어 있어, 스스로 본래성(本來性)을 편안히 잘 유지하면서 그리 장수를 했는가 싶다. 평균 수명이 30을 채 넘기지 못하던 시대에 공자는 74세를 살았고, 석가는 80세를 살았으니 요즘 기준으로 치면 100세를 훨씬 넘긴 나이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최소한 실성한 사람 축에는 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어 한 때는 나도 실성한 짓을 한두 번 저지른 게 아닐 터이다. 공자는 50줄에 들어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여 하늘의 명령(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했는데, 나는 60줄에 들어 이제(그것도 70줄을 코앞에 두고) 겨우 그 ‘知天命’이 조금 와 닿는다. 근데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말한 “실성(失性)한 것 같다”는 그 ‘실성’(失性)은 없던 걸 잊어버린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걸 내가 사는 동안 무엇에 끄달려 잊어버린 상태를 지칭한 것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말하자면 탐진치(貪瞋痴)의 수성(獸性)이 나를 지배하는 동안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성(失性)한 사람 노릇하면서 살아온 게다. 그러다가 이제 그걸 깨달았으니 이미 내가 저지른 업보(業報)는 스스로가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지만, 문제는 앞으로 더는 실성한 일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철 스님 같은 분은 깨쳤으면 당장 뿌리를 빼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말했지만, 나같이 깨침이 더디고 확실치 못한 사람은 점수(漸修)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깨침 자체가 완벽하고 철저하지 못하니 꾸준히 노력하는 점수(漸修) 혹은 오수(悟修)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나는 적어도 실성(失性)한 상태는 겨우 모면한 것 같으나, 하늘이 명한 본래성(本來性)을 완전히 회복한 복성(復性), 즉 ‘본성회복’ 상태를 완벽하게 유지한다는 확신은 서질 않는다. 정직하게 자위삼아 말하면, 우리의 삶은 어차피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다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성’한 쪽으로 기울었다가 아차 싶어 다시 ‘본래성’으로 되돌아오는 일을 되풀이 하는 못난이 같은 삶의 모습 말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요만큼은 깨달은 것 같다. 사는 동안에 우리는 어차피 때가 끼고 먼지를 일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때가 끼고 먼지가 앉은 상태를 그냥 버려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성’한 상태로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에야 즉각 때를 벗기고 먼지 걷어내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더는 미루지 않을 게다. 원천적으로 잘 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잘못을 가능하면 빨리 알아차리는 게 훨씬 종요롭다. 출가한 스님이나 독신자 신부는 일차적으로 때와 먼지가 끼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는 성직(聖職)에 전념하지만, 우리 같이 처자식과 함께 때와 먼지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재가인(在家人)이야 어쩔 수 없이 지성(至誠)으로 삶의 먼지와 때를 걷어내는 일을 낙(樂)으로 삼는 게 그나마 지복(至福)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적어도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실성한 사람 같다”는 걱정을 더는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둔다. 두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교수노릇 40년에 정년을 코앞에 둔 나의 철늦은 다짐이자 참회(懺悔)다. (2012.03.16)

 

<추신> 정년하고 10년이 지나 다시 나를 반추해 본다. 철늦은 다짐이자 참회가 80줄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게도 여전히 고만고만하다. 두번째 화살을 피하는 데에 만족할 게 아니라 원천봉쇄할 수는 없을까? 다만 지성(至誠)으로 노력할 뿐이다. 그게 사람 됨의 길이자 하늘의 명령이다. 어머니가 그립다.(202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