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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작가의 <전쟁과 사랑>

평촌0505 2023. 6. 22. 18:01

박도 작가의 『전쟁과 사랑』(2021/2023) 2쇄가 나왔다. 요즘 소설 책 2쇄를 찍어 낸다는 게 가뭄에 콩 나는 것보다 어렵단다. 디지털 시대에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추세가 우리나라는 유독 심한 것 같다. 박도 작가는 개인적으로 나와는 구미중학 동기다. 몇 안 되는 나의 옛 친구다. 그는 80줄에 드는 노작가이지만 지금도 글 쓰는 일을 몸에 붙이고 산다. 그가 쓴 많은 책 가운데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다.

 

작가는 이 책을 집필한 동기로 고려대 국문과 재학시절 정한숙 교수를 소환한다. “한국인은 6.25전쟁으로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이 땅의 작가에게는 오히려 축복이다. 국토분단에다 골육상쟁의 전쟁, 이보다 더 좋은 작품제재가 어디 있느냐? 너희 가운데 누군가 6.25전쟁을 깊이 공부하고 대작을 쓰라.” 대학시절 은사의 이 말은 작가 박도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작가는 『전쟁과 사랑』후기에서 “나는 이 한 편의 작품을 쓰고자 76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이 말속에 작가가 평생 간직해 온 심경이 농축되어 있다. 해서 그의 허다한 작품 중에 『전쟁과 사랑』은 필생의 대표작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의 전반부는 대체로 논픽션에 기반을 둔 생생한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소설의 픽션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 작품의 자료수집에 남다른 공을 들였고, 직접 발로 작품배경 장소를 두루 답사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남과 북의 두 남녀가 인민군과 인민의용군으로 입대한다. 이들은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만나 살벌한 전쟁 와중에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진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의 끈질긴 노력 끝에 다시 재회하고 미국으로 이민해 다복한 가정을 이룬다. 그리고 40여년 만에 북의 부모를 찾아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한 가정의 ‘작은 통일’을 그려 내고자했다. 작은 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한 가정의 작은 통일이 마침내 큰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랬다. 이 소설의 끝자락에서 미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나는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빛과 그림자가 묘하게 엮인다.

 

나는 작가와 해방둥이 동년배로 6.25전쟁을 여섯 살 때 몸으로 겪었다. 다부동 전투를 보루로 낙동강 전투가 치열해지자 우리 가족은 고향(고아읍 괴평1리)에서 군위 효령을 거쳐 영천에서 청도까지 고단한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그 피난길이 내게는 얼마나 무리였던지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한 달가량 걷지도 못하고 그냥 누워 지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모진 피난살이의 후유증이었다. 그리고 1952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책걸상도 없는 맨바닥에서 한글을 익혔고, 1,2,3,4를 배웠다. 1953년 휴전협정이 되고 꼭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정전상태’로 분단은 고착되고 있다. 분단이 하나의 체제로 굳어지면서 우리나라는 지구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다.

 

모든 전쟁은 오판과 오산의 비극적 산물이라는 말이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6.25전쟁은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지만, 맥아더 장군이 무리하게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격함에 따라 결국은 중공군의 개입을 초래했다. 이로써 한국전쟁은 국제 전쟁으로 휘말려들었고, 그 후유증으로 휴전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독한 고난의 역사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분단의 끝자락이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남북의 허리가 잘린 것만도 억울한데, 남남갈등까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분단이라는 괴물이 우리역사/사회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게다.

 

작가는 『전쟁과 사랑』에서 가족끼리 내부의 작은 통일을 발판삼아 큰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자고 했다. 그만큼 작가에게는 민족통일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숙제였으나, 통일은 여전히 미완의 꿈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 넘어 꿈까지 포기할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통일은 차치하고라도 남북 간 민족내부의 문화적‧경제적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에 쌍방 간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도 언론에 자랑삼아 내세울 게 아니라 조용히 하는듯 마는듯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내 마음이 평화로워야 평화통일이 가까워 질 게다. 『전쟁과 사랑』이 당대 우리들에게 주는 엄중한 교훈은 민족이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는 일이다. 그건 천명(天命)이다. 이 땅에 하늘의 지엄한 명령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