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신체적 노화에도 불구하고 영적(靈的; spiritual) 성장은 가능한가? 물론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화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나이 듦은 영성적/정신적 성장과 정적 관계가 있다. 『노인은 없다』(2019)에서 저자는 그 이유를 노년에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한 회복탄력성과 깊은 목적의식으로부터 찾는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노년의 삶이 “휘어질망정 부러지지 않는 이유”를 말한다. 나이 들면서 형성되는 ‘회복탄력성’이란 신체적․정신적으로 겪는 이런저런 역경에 대처하고, 역경 뒤에 다시 일어나거나 균형을 되찾는 일련의 능력이다.
나이 들어 ‘지혜’는 직면한 난관을 헤쳐 나갈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 저자는 “나이 든 사람이 느끼는 중대한 스트레스나 난관을 이해하려면, 평생에 걸쳐 나타나는 지혜의 원천과 발달과정을 훨씬 깊이 조사할 필요가 있다. 마치 야자나무가 허리케인 돌풍에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히기 전까지 기둥이 이리저리 휘어지고 뒤틀리며 유연하게 버티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러지지 않고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해 버틸 수 있는가를 확인함으로써 더 상세한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랬다.
내가 아는 K 교수는 정년 후에 간 기능이 나빠지고 심장 수술까지 받게되자 젊어서 일 때문에 무리한 것을 뉘우치면서 최근에 자전적 소설로 <부러진 독화살>(2022)을 냈다. 그는 이 소설을 이렇게 마무리 했다. “독이 묻은 화살은 적이 나를 향해 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리석게도 나의 심장을 향해 쏘는 것이다. 선비의 모범이 되라고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 선범(仙範)은 그 독화살에 가슴을 맞았다. 다행히도 그 독화살은 부러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독화살이 언젠가 다시 또 날아들 것이다.”
나는 K 교수에게 나 같으면 ‘부러진 독화살’ 대신에 제목을 ‘휘어진 화살’로 했으면 싶다고 했다. 듣고 보니 자기도 ‘휘어진 화살’이 맘에 든다나. 나는 K 교수가 두 번째 화살은 피했으면 좋겠다. 혹여 또 화살이 날아오더라도 ‘휘어진 화살’이 되길 빈다.
<노인은 없다>에서 저자는 노년에 끔찍한 ‘연령 점’이 닥칠지라도 ‘이 순간 너머를 보자’고 했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깊은 목적의식이 중요하다. 그는 “목적은 삶의 이유나 근거를 제시하고, 존재 이유와 행동해야 할 과업에 몰두하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다. 해서 목적의식은 곧 나이 듦의 이유가 된다는 게다. 내가 잘 아는 어느 선배 교수는 객관적 건강조건이 퍽 부실함에도 자신의 존재이유와 해야 할 과업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남다르다. 내가 보기에 그에게는 남다른 회복탄력성이 있고 철석같은 목적의식이 몸에 배어있다.
노인에 대한 장기연구에서도 “목적의식이 강한 노인일수록 나이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자기성장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단다.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인생의 9단계에서도 날마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갈 에너지가 여전히 왕성하게 작동한다는 게다. 우리에게 영적․정신적 삶의 성장에는 그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