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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와 철학하기

평촌0505 2024. 1. 11. 15:47

정년 이후 나이 들어가면서 산책은 내 생활에서 몸과 맘의 활력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는 산책하기와 훨씬 친해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철학자의 걷기 수업: 두 발로 다니는 행복에 대하여』(2019/2023)를 손에 쥐었다. 저자(알베르트 키츨러)는 40년 전부터 열정적으로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인생철학을 다졌단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서양의 실천철학을 자신의 경험과 삶에 녹아들게 한 것이다. 그는 책에서 걷기와 실천철학 사이의 다양한 연관을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혜는 우리가 자기 자신, 세상, 주변 사람,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자연은 우리의 내면을 형성하고, 우리 외부를 둘러싸며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연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다. 자연 속에 있으면 우리는 마치 자신의 근원에 접근하는 느낌이 든다. 이 근원은 우리의 생명 그 자체이며, 개성이자 지혜다. 우리는 자연 속을 걸을 때 이런 경험에 다가간다. 자연 속을 걷는 일은 걷기와 지혜, 우리 삶의 철학을 연결해준다(13쪽).

 

이처럼 ‘자연’은 외부의 자연이면서, 우리 내부의 자연(본래성)과 하나 되는 통로다. 중국철학의 기본 개념인 도(道)는 ‘머리’를 뜻하는 수(首)와 ‘가다’를 뜻하는 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서 도(道)는 삼라만상의 길이자, 인간으로서 영적(정신적) 성장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삶의 길’이다.

 

저자는 사색을 동반하는 걷기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충만함으로 채우고, 우리 안의 본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묶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중대한 실존적 결정들은 걷다가 내린 것이랬다. 수많은 결심, 계획, 구상들도 자신의 모든 방랑길에서 떠올랐고, 그런 게 훗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단다. 하지만 우리에게 삶의 길은 굽이굽이 굴곡진 길과 우회로로 얽혀 있다.

 

책에서 “걷기에는 행복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고 했다. 삶에서 ‘행복’은 영혼의 안식과 평화, 내적 균형, 평정심(평상심) 유지, 내면의 평온을 아우르는 것이다. 틱낫한은 “걸으면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하고, 이럴 때 우리는 진정 지금 여기에 머문다. 걷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랬다. 우리가 자기 안에서 안식하는 것은 곧 지혜로운 삶의 목표이자 경로다. 저자는 천천히 걷다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안식에 이르고, 내면의 긴장이 이완된다고 했다. 그는 휴식시간에도 느리게 걷기를 즐긴단다.

 

마음의 평화는 우리가 얻는 최상의 행복감이다. 우리는 걷기를 통해 이런 경험을 체감할 수 있다. 우리에게 대부분의 심리적 문제는 너무 적게 움직이는 데서 비롯된다. 삶에서 ‘자기답다’는 것은 사람마다 각각 우선순위가 다른 필요와 가치기준의 집합이자 개인적 가치의 위계구조가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이를 인식하기는 어렵다. 그냥 자기가 살아오던 대로 삶을 습관적으로 되풀이(자동반응)하기 일쑤다.

 

내면의 중심잡기를 위해 우리에게는 잠시 살아온 일상과 거리를 두는 기술이 필요하다. 틱낫한은 “우리는 멈춤의 기술, 즉 휴식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홀로 성찰하는 시간은 마치 호흡처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요소(철학하기)다. 저자는 자기가 걷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해서 저자는 걷기와 철학적 사색을 통해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다시금 마음을 맑게 유지한다고 했다.

 

우리는 걷기로써 자신의 중심에 다가가고, 스스로를 다시금 반추한다. 걸으면서 일상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현재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문제를 더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자기의식은 행복한 삶의 기본 과정이다. 우리는 인생길에서 진아(眞我)를 깨치기 위해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정립하고자한다. 이게 ‘자기다움’의 길이다. 우리는 내면에 저울이 있는 것처럼 살아야 자기내면의 균형(평화)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중용』에서 말하는 ‘중화’(中和)를 다시금 떠올린다. 그래야 내 삶이 곧 천지 화육(化育)을 돕는 길로 통할 터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 책이 걷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걸음을 떼어볼만한 마음을 동하게 하고, 스스로 철학하기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학적 사고와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읊었다.

 

태양아, 내 가슴을 환히 비춰다오.

바람아, 내 근심을 날려다오!

이 지상에서, 내가 여행하는 것보다

더 깊은 희열을 알지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