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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

평촌0505 2012. 7. 9. 11:44

옛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

 

  내가 평생 대학에만 있다가 정년을 하게 되니 옛 제자들이 나와 같이 늙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과 함께 내 청춘이 저만큼 흘러 간지 모른다. 세월만큼 공평한 게 없다. 정년을 앞두고 옛 제자들이 시내 한정식당에 저녁 모임을 마련했다. 요즘 세태에 흔치 않은 일이다. 근데 옛날 제자들이 하는 일이 30년에서 40년 전에 하던 그 때 그 모습의 분위기가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 신통하게 그 때의 빛과 그늘이 교차된다. 어떤 식으로든지 교학(敎學)은 어김없이 베푼 대로 되돌아오는가 보다.

 

  나이든 제자 가운데는 동료 교수 또래 되는 사람도 있다. 언제 한 번 70년대 동문들과 만나 식사나 하자고 운을 떼서, 번거럽게 뭘 그러냐고 했다. 그러고 한 주 쯤 지나니 대구 지역 동문회 대표를 맡고 있다는 제자가 금요일 여섯시에 자리를 마련했다는 통보를 핸드폰 문자로 보내왔다가 내가 아무런 응신을 하지 않으니 다음날 확인 전화를 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다면서 수고한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분명히 나의 정년을 축하해 주는 자리인 데도 내게는 뭔가 의례적 모임 비슷하게 와 닿는 기분을 솔직히 지울 수 없었다. 또 다시 은근히 대접 받고자 하는 나의 끝 모를 채권의식이 발동한 탓인지도 모른다.

 

  당일에는 이미 식사 모임을 통보 했으니 알아서 오라는 식으로 아무도 기별이 없어, 역시 내가 시간 맞춰 차를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니 하고 그 정도는 나도 교직 40년에 이력이 나 있는 터다. 처음에는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갈까 싶었는데 제자들에게 나눠 줄 책을 가져 갈려니 아무래도 내 차를 가져가야 했다. 어쨌거나 속으로 반신반의하면서도 옛 제자들을 만나게 된다니 기다려지는 자리였다. 막상 모임자리에 도착해서 보니 하나 같이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제자 가운데는 금방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으나, 참석하게 된 연유를 듣고는 이해가 되고 반가웠다. 옛날 내 연구실에 있었던 제자는 마산에서 직접 차를 운전해서 조금 늦게 참석해 주어 속으로 놀라웠다. 약 20명 정도의 그야말로 순수한 자발적 참여에 의한 모임이었다.

 

  식순에 따라 동문회 회장이 주는 ‘공로패’도 받았는데, 첫 줄에 ‘큰 스승이신 김병하 교수님...’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의례적 표현일 수 있지만, 설마 의례적이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건배를 외치고 술잔을 들고 나누니 금방 대화가 무르익어 가기 시작한다. 술기운이 돌자 한 동문 교수가 제자들이 베푸는 이런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꺼 라며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예의 임간학교 뒷이야기, 농촌봉사활동하면서 있었던 일, 그리고 졸업여행 주변의 에피소드 등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70년대 말에 학과 대표로 일한 한 제자가 “우리가 학과장인 교수님 속을 많이 태우기도 해서 졸업여행 때 제주도에 모시고 가서 맘먹고 대접도 하고 호강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교수님이 바빠 함께 가지 못해 아쉬웠다”고 소주잔을 비우며 고백한다. 술기운을 받아 내뱉은 현실성이 의심스런 고백이긴 하지만 듣기에 좋았다. 속으로는 그 때 함께 가지 못한 게 나도 아쉬웠다.

 

  다들 아는 일이지만, 내가 모교에서 40년이나 교수노릇해서 누가 나보고 ‘지겹게 했다’더라고 하니 한 제자가 느닷없이 ‘그동안 돈도 많이 벌었겠네요.’란다. 그런다고 기죽을 내가 아니다. 아무래도 많이 받고 벌은 셈이지 라며 가볍게 받아 넘겼다. 옛 날에 내 강의를 아주 열심히 듣고 졸업 사은회 자리에서 읽어 준 글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내가 오랜 동안 책상 설합 속에 간직해 두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알 길이 없는 그런 추억이 있다.

 

  그 제자를 만날 때 마다 나는 그 얘길 생판 첨하는 것처럼 되풀이 한다. 그러자 제자가 하는 말이 그 때 교수님 강의가 참 진지하고 좋아 교수님을 흠모하는 (여자)제자들이 많았단다. 그래서 속으로 자네도 나를 흠모했느냐고 현장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 갔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음력설이 지나면 집사람이 어김없이 “올해도 여자 조심하라는 수가 나오더라.”고 귀뜸해 주었다. 그리고는 요 몇 년 동안은 그런 괘가 나오지 않더라면서 의아해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봄날은 간다’는 노래를 혼자 흥얼거린다.

 

  약 세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고 나니 분위기가 좀 가라앉는다. 그래서 내가 잔에 남은 술을 함께 비우고 일어서자고 제의하니 또 함께 건배를 외친다. 일어나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술도 고만하고 일단 내가 먼저 가야 뒷정리가 될 것 같았다. 소위 ‘고 맨 고 있어 맨 있어’다. 근데 대리 운전자가 당도 할 때까지 모두 도열하여 끝까지 나를 환송해 주어 막판에 회장님 부럽잖게 근사한 대접을 받았다. 이런 게 우리 동문 제자들의 모습이자 문화다. 그래서 갈 때 보다는 올 때가 훨씬 기분이 좋았다. 밤 10시도 체 되기 전에 집에 들어오니 집사람이 왜 이리 일찍 오느냐고 의아해 한다. 그리고 꽃다발을 받아 꽃병에 옮기면서 꽃향기를 맡으며 좋아한다. 나도 공로패를 꺼내 ‘큰 스승이신...’이라는 글귀를 다시 확인하여 눈도장 찍고 기분 좋게 잠들었다. (2012.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