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떨어진 인생
정년이 가까워지니 가끔 인사차 들리거나 식사 제의를 해오는 사람들이 있다. 고마운 일이다. 일전에 나보담 한 학기 먼저 정년한 L교수가 연구실로 찾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L교수는 손녀가 다니던 유치원 원장을 겸하고 있던 터라 손녀 때문에 막판에 나와 더욱 친교를 두텁게 나눌 수 있었다. L교수 왈 정년하니 연구실이 없어 가장 불편하다면서, 마치 끈 떨어진 실 같더라고 해서 실감이 났다.
사실 나도 아침에 밥만 먹으면 연구실에 나오는 게 거의 몸에 베여 있는 터. 특히 남자가 밥 먹고 집에만 있으면 부인이 싫어한다는 말은 이미 에둘러 집사람으로부터도 듣고 있다. 당장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찌할 건가? 아직은 별 묘책이 없다. 그냥 당하는 대로 살아보자는 심산이다. 딸 녀석은 제 어머니에게 한다는 말이 아버지는 도서관에 가시면 되겠다고 하더라나. 근데 L교수의 말이 집근처 도서관에 가보니 시설은 잘되어 있으나, 온통 아이들로 붐벼서 갈 곳이 못되더란다. 속으로 나는 대학도서관을 점지하긴 했으나, 실제로 얼마나 활용 가능할지 모르겠다.
끈 떨어진 인생이라... 나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겨울철에 연날리기를 즐겨해 봐서 안다. 어쩌다가 연 줄이 떨어지면 그 연의 운명은 둘 중 하나로 귀착된다. 끈 떨어져 날아 가다가 큰 고목이 있으면 나무에 걸려 쓸쓸히 매달린 채로 제 운명을 다한다. 또 연이 공중 높이 떤 채로 줄이 끊어지면 강 건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혼자 힘없이 집에 돌아온 추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어릴 때 낙동강 변에서 살아온 내게 강 건너는 그야말로 저 세상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것과 같은 그런 차원의 세계다.
어차피 끈 떨어진 삶이라면 그 끈을 놔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나처럼 40년을 같은 대학에서 정붙이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가당찮은 일이다.
근데 정말 현명하다면 끈 떨어지기 전에 그 끈을 스스로 놔버리면 떨어져 추락하는 신세는 면할 텐데.... 지금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자 시점인데, 판단이 확실히 서질 않는다. 나이 들수록 때를 아는 ‘시중’(時中)의 삶이 긴요하다는데. 그럼 어찌할 건가? 지금 대충 내 심정은 이렇다. 우선 정년하면 좀 간편(소위 simple life)하게 조용히 살자. 읽고 싶으면 읽고, 쓰고 싶으면 쓰고. 이제는 연구업적 따위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조용히 쉬고 싶으면 편하게 산책이나 하고 좀 더 한가히 혼자 있고 싶으면 수륜 밤산에 들어가고. 근데 집사람이 밤산은 혼자서 위험하고 잠자리가 너무 조악해 어렵단다. “내가 요량해서 할께”라며 받아 넘겼지만 산에서 혼자 있다는 게 내게는 일종의 모험이다. 그 모험을 편안하게 받아들일지 어떨지는 두고 볼일이다.
그럼 정년 후에 학교와의 관계(거리)는 어떻게 조절할까? 옛날 나의 석사 지도교수는 정년하고 캠퍼스에 발도 들여 놓지 않았다. 노년에 학과에서 대학원 강의를 의뢰하니 집으로 학생들을 불러 강의를 하셨다. 나는 도저히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우리 대학은 명예교수 자격으로 정년 후 3년간은 6학점까지 강의를 허용한다. 나는 학과 교수들에게 미리 선포했다. 대학원 강의 한 강좌만 하겠다고. 그것도 해 봐야 알겠지만. 근데 대학 도서관 만은 가끔 찾아가 이용하고 싶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대학은 명예교수에게도 도서관 이용을 개방하고 있다. 어제는 내 정년기념으로 낸 책『특수교육 담론․에세이』(2012) 다섯 권을 들고 기증한다는 명분으로 도서관에 가서 그 이용가능성을 확인해 두었다.
정년한지 일년이 지난 한 동료 교수는 일정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생활하는 게 좋겠다고 자기고백 겸 내게 조언 해 준다. 그냥 특별한 일거리 없이 막연히 소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공연히 일을 벌려가며 일 욕심낼 필요는 없겠지만 정년이랍시고 여행이나 다니고 공기 좋은 산을 찾아다닌다는 것도 하루 이틀 말이지 일상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말 여행을 좋아하고 등산을 즐기는 메니아라면 모를까. 내게는 그것조차도 어울리지 않는 일종의 사치다.
근데 정년하면 내밀하게 내가 하나 하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마누라가 뭐라고 할지 아직은 망설여진다. 인도에서는 60이 넘은 노년기에는 혼자 숲 속 여행을 하면서 인생을 관조하고 정리하는 그런 전통이 있다는데 납득이 간다. 내가 밤산 농막에 가서 혼자 쉬고 싶다는 것도 기실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생각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일종의 ‘심출가’(心出家) 같은 거다. 정년이 끈 떨어진 인생 같다는 게 당사자에겐 분명 하나의 심적 충격이다. 끈 떨어진 연이 나무에 댕그라니 걸려 있으면 보기에도 민망하지만, 강건너 피안(彼岸)으로 날아간 연은 그야말로 자유의 니르바나(涅槃)로 건너간 게 아닌가. 가세 가세 건너가세 피안의 세계로(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201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