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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의 신비: 생명의 빛

평촌0505 2024. 6. 8. 20:01

기후생태 위기로부터 지구를 살려 낼 수 있을까? 인류세(Anthropocene)에 인간의 힘이 너무 비대해져 시구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인류는 멸망해도 지구는 건재하단다. 지구도 살리고 인류도 지속가능한 번영을 누리는 길은 없을까? 세계기상기구(WMO)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향후 5년 안에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아질 가능성이 80% 수준이라고 했다.

 

1.5도는 국제사회가 기후위기를 피하기 위해 파리기후협정(2015)을 통해 약속한 ‘마지노선’이다. 사실 나는 1.5도 상승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기후위기가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는 과정에서 인류는 엄청난 기후재앙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게다. 이런 비관적인 현실 앞에서 나는 『생명을 이어온 빛: 광합성의 신비』(라파엘 조빈, 이현숙 옮김, 2024)를 읽으면서 명백한(실현 가능한) 희망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실감난다.

 

‘광합성’이란 생명체가 태양 에너지를 포착해 물과 기체를 결합해 유익한 화합물로 전환함으로써, 성장과 번식 에너지를 공급하는 화학작용이다.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는 초록 잎을 가진 육상식물만이 아니라 물속에도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19세기에 와서(1862년, 독일의 J. Sachs) 식물이 햇빛에 노출되어 기공이 열리면 이산화탄소가 잎에 흡수될 뿐만 아니라, 그 이산화탄소가 녹말로 전환되는 걸 이해하였다.

 

1893년에 미국 식물학자인 찰스 반스(C. R. Barnes)는 물과 이산화탄소가 햇빛과 결합해 식물의 녹색 엽록체 안에서 당(포도당)과 산소로 바뀌는 ‘탄소 동화작용’을 설명했다. 그는 햇빛의 영향으로 탄소화합물을 합성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광합성’(photosynthesis)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빛을 생명으로 전환하는 마법 같은 과정은 가장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부터 가장 높은 산꼭대기까지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21세기에는 정교한 생물학 과정이 모든 제조와 생산업에 변화를 가져오며, 우리 자신을 더 효율적으로 보살피기도 하고 지구도 정화할 수 있다.”고 했다.

 

광합성은 대기와 바닷물의 탄소 농도 조정자이자, 모든 생명체를 위한 식량 생산자다. 약 100억 명까지 늘어날 인류에게 식량을 공급하면서 지구 물질들이 균형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광합성이 어디에서,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계절에 따른 광합성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광합성의 총량, 정확히 광합성의 ‘순 1차 생산량’(Net Primary Productivity; NPP)을 측정할 수 있다. 여기 NPP는 광합성 총량에서 생명체가 자신의 신진대사에 소비한 탄소의 양을 뺀 값이다. NPP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생물체의 유기물로 변환된 탄소의 양이다.

 

한 연구팀(1998, P. Falkowski 등)은 현재 진행 중인 광합성의 총량, 즉 NPP를 측정한 결과 탄소 생물량이 수생 NPP는 연간 48.5기가톤, 육생의 경우 56.4기가톤으로 발표했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거의 절반이 바다에서 생성되고 있다. 육상 기반의 전체 생물량 중에는 나무 안에 대부분의 탄소량이 보유되어 있다. 지구에는 식물우세의 육지풍경과 동물우세의 바다풍경이 어울려있다.

 

광합성을 위해 흡수된 지구 태양 복사 에너지의 양은 전체 태양광 에너지의 3〜6%에 불과하다. 광합성 생물들은 인간이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거의 20배나 많은 에너지를 수확한다. 그 에너지를 모두 흡수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햇빛 에너지 여분이 어마어마하다. 우리가 활용하기에 따라 광합성을 늘려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면서 대기 중의 탄소를 균형 있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도 있지만, 나쁜 소식도 있다.

 

농업 기술혁명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의 식욕과 경제발전에 놀라운 보조를 했다. 하지만 세계 농산물의 60% 이상이 가축의 배 속으로 들어간다. 선진국일수록 과거에 비해 먹는 데 돈을 덜 쓰면서 잘 먹고 산다. 이것은 광합성 생물들이 생산성을 늘리도록 크게 개량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인공 화학비료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내자 ‘공기에서 빵을 만든다’는 발상이 현실로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식물이 사용하는 햇빛의 양은 모든 인간 에너지 생산량의 몇 배를 넘어선다. 게다가 지구에는 지금보다 식물이 훨씬 많이 살 수 있고, 최고조에 달한 인구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한 광합성 생물량의 생산을 늘리는 데 이용할 햇빛은 차고 넘친다. 생산성 증진은 남아 있는 생물 다양성과 자원을 없애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게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의 생물 종으로서 번영을 누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함께 쓰는 지구라는 행성에서는 관심사도 함께하기 때문이다(127쪽).

 

우리가 인류생존에 관심이 있다면 지구상의 다른 종의 생존에도 대등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환경이 파괴되고 다른 생명이 멸종하는 가장 큰 요인이 ‘서식지’ 감소에 기인한다. 레이첼 카슨의『침묵의 봄』(1962)은 우리가 농약을 남용하고 도시화와 산업생산 제고를 위해 지구생태계에 얼마나 많은 자원을 착취했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는 동안 산호초 서식지, 열대초원과 삼림을 무차별로 파괴하면서 탄소흡수 시스템도 함께 파괴된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는 지구의 광합성 능력을 계속 떨어트리고 있는데, 우리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광합성이 모든 먹이사슬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매일 천연자원을 낭비하고 자연 서식지가 스스로 재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고, 그 결과 동식물 할 것 없이 많은 종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올해의 식용 작물을 늘리는 대가로 수천수만 년을 이어온 생태학적 풍요를 날려버리고 있다(135쪽).

 

급속한 문명발전과 인구증가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로 상호 연결된 자연환경의 안전장치를 풀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호수와 토양이 녹으면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엄청 내뿜자 탄소를 흡수했던 광활한 육지가 그 배출원이 된 게다. 우리는 마침내 악순환에 시동을 걸었고 이미 환경 악화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세계인구와 식량생산은 2배 이상 늘었다. 그와 함께 비만 인구도 영양실조에 걸린 인구를 넘어섰다. 인간의 몸을 값싼 칼로리로 채우는 과정은 산업화된 농업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석유생산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RE100으로의 대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향후 10년 정도는 석유 소비가 계속 증가할 것이란다. 전 세계에서 화석연료 개발에 지원되는 보조금은 한 해 5조2천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가 지속 가능한 기술에 매년 그만한 달러를 쓰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것도 해마다. 화석연료 보조금과 같은 엄청난 파괴적 관행에서 방향을 돌려 지속 가능한 미래 쪽으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광합성은 지구를 만들었던 것처럼 다시 지구를 구할 수 있다.

 

책의 결론에서 광합성이 세상을 구하는 길을 말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서사적인 영웅이자 악당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우리가 지구의 번영과 다음 세대의 목숨을 담보로 단기간에 성장을 이루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경제적 이득을 쫓아 악의 편이 승리하도록 둘 것인가? 아니면 햇빛과 생명이라는 지구의 근원에서 도움을 받아 지구를 구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인정사정없는 자본가에게 오로지 생태계와 경제라는 두 개의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 어떨까? 광합성이 세상 모든 생명과 우리에게 식량과 산소의 근원이 된다는 것 외에도 우리 경제를 안정되게 유지할 열쇠라는 사실을 증명하면 어떨까?”라고 되묻는다. 그는 광합성 없이는 생명도 생태계도, 하물며 경제도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랬다. 유엔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 토지의 1/3은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비옥한 토양은 해마다 240억 톤이 유실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기계화를 늘려도, 무기질 비료를 더 써도 농약에 강한 작물을 재배해도 소용없는 지점에 도달하고 있다.

 

산업화 이전 지구에는 6조 거루에 달하는 나무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그 수의 절반 정도인 약 3조 거루가 남아 있다. 주지하는 것처럼 나무는 다른 생태계를 부양하고 비를 만들고 땅을 보호한다. 지구에 삼림 손실의 절반은 1990년부터 2010년 사이에 급속히 일어났다. 저자는 맹그로브 숲, 산호초와 굴 서식지 같은 자연 시스템이 해안지대를 안정화하고 폭풍으로부터 해안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본연의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고 했다.

 

대규모 양식업은 이제 단백질과 식량의 주요 원천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조업으로 잡히는 물고기보다 더 많은 양이 양식장에서 자라고 있다. 물고기 양식은 그 수요를 맞추는데 다른 육류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양식 연어는 탄소 발자국이 소고기보다 20배나 적다.

 

저자는 “광합성 능력을 지닌 지구에서 산다는 장점은 우리가 유한한 제로섬 세상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랬다. 그는 “우리 모두는 광합성을 하는 생물량을 더 많이 재배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해낼 수 있다.”고 격려한다. 책의 말미에서 “혁신과 실험으로 수십억 년 동안 조정된 광합성은 우리가 세계를 복원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랬다. 이제 우리는 햇빛을 수확하여 지구가 다시 자라게 나서자. 문제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기후생태 위기에 따른 비관적 우려를 광합성의 신비에 따른 희망적 대안으로 전치할 수 있어 퍽 다행으로 여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복합적이고 다면적이어서 과학적 결정론으로 그냥 환원하기는 조심스럽다. 인류의 모든 문제를 기후위기 탓으로 돌리는 소위 ‘기후주의’(climatism)를 경계하는 입장도 있다. 마찬가지로 광합성의 신비가 인류의 복합적 위기를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만병통치는 아닐 터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 쓰레기 배출에 따른 '자본세'의 폐해를 줄이는 가운데, 광합성을 탄력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가는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