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인류가 맞닥뜨린 가장 절박한 문제는 기후변화다. 해서 지금은 기후변화가 위기가 되었다. 그 위기는 전 지구적 도전이다. 기후생태 문제는 복합적인데다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난제다. 최근에 나는 『지구를 구하는 뇌과학: 뇌과학은 어떻게 기후위기를 해결하는가』(Ann-Christine Duhaime, 박선영 옮김, 2024)를 손에 들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무엇을 중시하는지 뇌과학적으로 접근한다. 심지어 현대문명을 이끌어 온 역사도 뇌의 작동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말하는 뇌의 작동방식은 곧 마음의 작용이다.
그는 우리의 뇌는 단기 결과를 기반으로 하는 의사결정을 선호하는 편이어서, 기후 문제는 뇌의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어려운 일이랬다. 이 책은 뇌와 환경문제의 연관을 보여주는 증거가 실제로 있는지, 있다면 환경보호를 둘러싼 우리 행동에 어떤 시사를 주는지에 주목한다. 이를 위한 실험 중 하나가 ‘친환경 어린이병원’ 프로젝트였다. 아이들이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지구를 넘겨주는 일이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방대하고 다면적이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의 삶과 행동에 맞닿아 있다. 인류세(Anthropocene)의 도래가 그것을 반증한다.
책에서 “뇌는 왜 우리가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진화했을까? 어떻게 해야 기후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신경생물학과 기후변화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새로운 시도다. 우주에서 지구 행성은 약 45억 년 전에 있었지만,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불과 20-25만 년 전이다. 지구는 인간보다 약 3만 배 이상 더 오래 존재했다. 인간 뇌의 진화과정은 인간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생명의 진화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우리 뇌와 신경계의 진화는 약 35억년 전 단세포생물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놀라운 진화의 여정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기후변화(인류세의 도래)는 40일에 걸쳐 미대륙을 가로지르는 여정에 비교했을 때, 마지막 1초에 나타났다. 지구 전체 역사로 따지면 기후변화가 무척 급속도로 진행됐지만, 우리 일상과 즉각적인 생존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 보면 그 속도가 무척 느리다. 따라서 인간의 보상체계 요소가 기후변화처럼 우리의 생존이 걸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느릴 뿐만 아니라 변화를 제대로 인지해서 반응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연하다(p.54).
우리에게 환경적(생태적) 위협과 이에 필요한 인간 행동의 인과관계는 직접적이지도 않고 분명하지도 않다. 해서 기후생태 위기에 대한 인간의 대응은 심리적으로 태평스럽고 소극적이다. 이 문제를 실존적 위기로 내면화한 소수의 깨친 시민을 제외하면 그런 반응은 당연하다.
성인의 뇌는 신경세포가 약 860억 개이고, 세포 각각은 시냅스에서 다른 신경세포와 수없이(1만 개 정도) 연결된다. 아이들은 노인보다 환경 적응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경세포끼리 더 많이 연결된다. 인간의 ‘가소성’은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변화의 바탕이며, 그것은 개인 당사자는 물론 사회 전체 변화까지 바꾸는 주된 요인이다. 책에는 “뇌의 구조와 기능은 기후변화처럼 엄청난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뇌의 가소성과 우리의 행동 선택을 이끄는 보상체계는 서로 얽혀 있다.”고 했다. 해서 기후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는 개인, 정치, 사회, 문화 차원에서 우리 행동을 얼마나 빨리 폭넓게 바꾸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의 뇌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고 어떤 기준에 따라 바꿀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신경계의 심리적 기능을 살펴봐야 한다. 기후생태 위기는 결국 우리가 화석연료와 과소비에 중독된 대가로 자초한 문제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저자는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는 모두 뇌세포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고 흔적을 남기며, 그 흔적은 우리가 내릴 의사결정을 조절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고유의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위협할 만큼 지구의 물리화학적 작용을 뒤흔든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우리가 지닌 능력과 보상체계는 여타 동물과는 확실히 다르다. 고도로 발달한 언어와 사고능력, 복잡한 사회구조, 뛰어난 적응력은 인간을 지구 시스템에 균열을 가져오게 한 인류세(Anthropocene)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책에는 인간의 고유한 보상체계로서 화폐사용, 친사회적 행동, 성취감, 새로움, 익숙함 등에 주목한다.
인간에게만 보상으로 작용하는 것은 음식이나 물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일차적 보상 외에 ‘이차적 보상’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돈’이다. 돈의 보상 가치는 학습될 뿐, 돈 자체가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보상이 되지는 않는다. 돈은 인간에게 보상 가치가 있는 대상을 결정하는 편리한 도구 중 하나다. 돈은 어릴 적부터 인간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한다. 인간의 행동은 그저 수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뇌는 특정 유형의 일에 반응하고 그 반응이 더 비중 있게 일어나도록 설계됐다. 해서 우리는 살아온 과거와 현재 상황에 따라 진화해 왔다. 우리가 진화한 방식은 개인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계되었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를 위한 요인도 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신경회로를 토대로 우리가 돈을 향해 드러내는 경향성과 그것이 기후변화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것 같지만 오랜 진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협동적이고 이타적 행동에 보상받는 메커니즘도 키워왔다. 용기, 공감, 끈기, 규칙 준수, 창의성 같은 특징은 인간의 다른 모든 특성처럼 사람에 따라 더 많이 혹은 덜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과제를 완수했을 때 얻는 ‘성취감’이 있다. 이것은 새로운 내용을 학습하는 과정과 연관해 매우 당연하다. 책에는 돈, 경쟁심, 위험 감수, 성취감 같은 요인이 특정 성향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힘으로 작용했을 때, 어떻게 기후변화를 앞당겼는지 보여주는 사례(‘스탠더드 오일의 역사’,1904)들이 있다고 했다. 성취감과 함께 새로운 자극이 보상으로 작용한다. 새로운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긍정적 강화를 ‘각성반응’이라고 한다.
새로움에서 느끼는 보상은 소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뇌의 보상체계는 우리가 언제나 새로운 것을 학습하게 잠깐만 작동하는 특징이 있다. 기업 광고주와 마케팅 담당자는 인간의 이런 성향을 이용해서 새로 바꿀 것을 끊임없이 설득한다. 하지만 이에 따른 보상이 지구를 더 건강하게 지키는 것은 아니다. 보상체계가 새로움에 더 이끌리도록 설계되었음에도 왜 우리는 익숙함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익숙함을 선호하는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두드러진다. 이것은 나 스스로 나이 들며 체감한다. 익숙함을 선호하는 경향은 새로움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부정적 결과를 걱정하는 성향과 연관이 있다.
뇌는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변하지만, 유전요인과 환경요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른바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이다. 최근 주목받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에 따르면, 선천성과 후천성의 상호작용은 훨씬 복잡하다. 우리가 ‘더 많은 자원’을 선호하는 경향은 우리 유전 코드에 새겨진 모든 영역에서 소비를 더욱 부추긴다. 이것은 자원뿐 아니라 성장 위주의 경제체제를 지향하고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활동과 연관된다.
사람들은 삶의 단계마다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무엇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또 어떤 보상 가치를 선호하는지 자기 자신의 입장을 세워나간다. 이런 학습 과정은 각 개인의 경험과 문화를 둘러싼 환경, 사회체제, 신념과 서로 관련되어 있다. 지금까지 다룬 보상 문제와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자연 자체는 보상 가치가 얼마나 될까?’라고 물을 수 있다. 책에는 이 질문에 대응해 ‘바이오필리아와 뇌’를 말한다.
저자가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에서 일 할 때, 따뜻한 날 점심시간에 병원 직원 수백 명을 건물 밖에서 볼 수 있었단다. 병동에서 쏟아져 나온 직원들은 병원 앞 혼잡한 도로를 건너 박물관 앞 잔디밭으로 몰려갔다. 가파른 잔디밭이어서 공간이 그리 넓지 않고 나무만 듬성듬성 서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잔디밭에 앉아 있는 것 자체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잔디밭을 ‘해변’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앞에서 음식, 돈, 새로움, 익숙함, 성취감 등에 걸친 보상 가치를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보상을 처리하고 느끼도록 진화해 왔고, 그 결과 환경위기를 자초하는 행동을 어떻게 서슴지 않았는가를 말해준다. 과거 우리 행동을 보면 자연을 파괴해온 경로를 지울 수 없지만, 우리는 자연이 그 자체로 보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생명 사랑’을 뜻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는 인간이 자연의 생명체에 끌리는 본능적 특성이 있다고 본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 O. Wilson)은 “인간에게는 유전적으로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본능이 있다.”고 했다. 나는 해방둥이로 낙동강변 시골(구미 고아 평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정년 후에는 경산에서 수목이 비교적 잘 조성된 아파트에 살면서 남매저수지와 남천에 나가 산책하기를 즐긴다.
작가 김훈은 <허송세월>(2024)에서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고 했다. 나이 들면 산책하는 동안 자연과 직거래할 때가 몸과 맘이 가장 편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연의 신비로운 혜택이다.
만약 바이오필리아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본능적 욕구로 작용해 왔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에 애착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편하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게 다른 모든 우선순위와 경쟁적이고 때로는 갈등적이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인류탄생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고,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 짧은 시기 동안 3분의 1배가 다시 쌓였다. 그 결과 요즈음은 ’환경 우울증‘, ’기후 우울증‘, 심지어 ’인류세 우울증‘도 겪는다.
21세기 인류세에서 인간의 뇌는 어떻게 작용할까? 한마디로 우리는 ’소비 가속화‘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과 기술혁신은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며 발전했다. 오늘날 과학기술에서 부는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보다 훨씬 빠르다. 덩달아 현대사회 문화도 우리 뇌의 적응과 관계없이 빠르게 변한다. 한 사람이 태어난 때와 중년이나 노년이 된 삶을 비교하면, 그 격차가 세대를 지날수록 더 벌어진다. 요즘은 기성세대가 청소년 세대에서 몇 달 전에 유행한 ‘은어’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당신이 고소득 산업국가에 사는 중산층이라면, 주택이나 아파트에 살 것이다. 당신의 하루는 해 뜰 무렵 스마트폰이나 알람 시계가 울리면 시작될 것이다. 당신 가족은 각자 다른 방에서 생활한다. 당신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종일 실내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전자매체로 전 세계 정보를 끊임없이 보고 들을 수 있다. 감각 밀도가 매우 높은 오락물과 광고를 보면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피하기도 어렵다. 사람들은 대부분 앉아서 생활하고, 하루의 90%를 실내에서 생활한다. 행동규범도 빠르게 변하고 사람마다 다양하다. 그런 와중에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많은 물자를 생산-유통-소비한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미지의 영역이 디지털 논쟁에 가세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파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사고팔았을지도 모르는 개인정보나 인터넷 검색기록을 토대로 우리가 선택하는 정보를 인공지능이 결정해 준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인식과 신념이 조정된다. 해서 우리는 과거보다 더 적은 소비로 살아가기 어렵고, 매체중독을 피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피로사회다.
산업화 이후에 청년기는 최소 10년에서 20년까지 길어졌다. 사회적 상호작용은 비슷한 나이 또래 안에서 일어난다. 평균 초혼 나이와 출산 나이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출산 기피도 늘어나고 있다. SNS에는 또래의 정보와 판단이 대규모로 빠르게 올라오므로, 그것은 ‘매가-또래’(mega-peer) 기능을 한다. 과거 젊은이들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 ‘롤모델’을 찾았다면, 지금은 거의 온라인 속 인물이나 미디어 캐릭터가 그 모델이 된다.
현대인이 쇼핑과 소비에서 얻는 즉각적 보상은 삶을 파괴할 만큼 심각한 중독은 아니지만, 짧게 반복되는 특징이 있다. 소비에서 얻는 보상은 습관성 약물의 내성 효과처럼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긴다. 현대인의 삶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기술혁신과 연결되어 있어, 결과적으로 환경위기를 부채질하는 행동을 계속 강화한다. 하지만 이런 즉각적 보상을 통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보상’은 ‘행복’과 같은 의미일까? 우리에게 행복은 상태라기보다 태도의 문제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나 외적 성공보다는 내면적 의식이나 관계망에 기인한다.
저자는 우리가 보상회로의 약점을 뛰어넘어 목표지향적으로 문제해결에 집중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연대하는 능력을 통해 인류세의 도전적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했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우리 행동(삶의 양식) 중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지, 나아가 뇌에 깊이 각인된 행동 패턴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종류의 위협이다. 화석연료의 과잉, 산업형 농업, 지나친 육식 문화, 정치부패와 불평등의 심화, 열대우림 파괴와 무분별한 토지개발,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한계 이런 것들이 서로 얽혀 기후생태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의 선택과 삶의 양식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하지만, 사회기반시설을 비롯해 정치경제적으로도 대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기후생태와 환경문제는 복합적이기에 그 처방 역시 다양하고 장기적이다. 화석연료 의존을 약의 효능에 비유하면, 사람들이 약의 효능으로 놀랍게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만 약의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은 약의 효과를 본 사람들이 아니다. 정작 지금까지 약의 혜택을 받지 못한 남반부의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다. 지금 중국은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미국을 앞지르고 있지만, 그간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총배출량을 따지면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 자원 소비량이 많은 개인과 나라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얼마나’ 달라져야 할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에서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지구온난화를 2도 이하로 제한하고 가능하면 1.5도 수준에 묶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지구온난화의 눈덩이 효과를 억제할 수 있는 임계점이다. 과학자들은 인구증가를 고려할 때 평균온도 상승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전 세계 연간 탄소 배출량을 당장 2배 이상 줄여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고소득 산업국가들은 현재 연간 일인당 탄소배출이 20톤 이상이므로 지금의 10배 이상을 줄여야 한다. 혁신적인 에너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난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배출량과 흡수량의 차이로 결정된다. 이론상으로는 인간이 대기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대기 중에서 없애버리거나 배출량을 제로로 하면 안정화할 수 있다. 숲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매우 효율적으로 탄소를 흡수하는 생태계의 자산이다. 산림벌채는 우리에게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안겨준다. 지구의 수목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구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탄소포집’ 기술을 들고 있으나, 위험부담이 크고 불확실하다.
개인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에너지 소비를 꾸준히 줄이는 삶의 양식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약 80%는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인구수, 소득수준, 기술 수준의 곱으로 나타낸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에너지 소비국이다. 세계인의 자원소비(생태용량) 평균치가 지구 1.7개, 미국 5.5개, 한국 3.5개 어치다.
개인의 생태발자국 측정(www.footprintnetwork.org)에는 육식 정도, 주택 유형과 크기, 재생에너지 사용, 동거가족, 승용차 주행 거리, 쓰레기 배출, 대중교통 이용, 비행기 여행 등을 포함한다. 내 경우도 한국 평균 수준을 웃돈다. 부끄럽다. 특히 육식은 환경과 건강에 이르기까지 이중 삼중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각 개인이 본인의 사회적 역할 안에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기후생태 위기에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을 바꾸고 타인에게 변화를 추동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기후생태 위기에 따른 행동 변화는 더욱 어렵다.
우리에게는 바꾸기 쉬운 행동과 바꾸기 어려운 행동이 있다. 인류세에 기후생태 위기를 한정된 기간에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아니 실제로 가능할까? 습관적 행동은 더욱 바꾸기 어렵다. 습관성 행동은 거기에 관여하는 신경망 연결이 쉽사리 변하지 않는 강한 패턴으로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화의 설계로 빚어진 습관의 동물이다. 그게 생존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습성도 길들이기 나름이다. 해서 공자는 사람의 본성은 서로 비슷(性相近)하지만, 사람마다 습성은 서로 멀다(習相遠)고 했다.
행동이 달라지려면 우리가 얻는 보상이 달라져야 한다. 뇌 차원에서 보면 과거 방식은 상대적으로 보상이 줄어야 하고, 새로운 방식은 보상이 커야 한다. 책에는 그 대안으로 긍정적 강화, 문화 변화, 사회적 학습, 넛지 전략에 대해 말한다. 넛지의 핵심은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내리도록 유도할 뿐, 강요하지 않는 데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에 대응하는 행동과 사고 변화를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인류세가 도래했고, 온실가스가 계속 쌓여 기후변화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현실이 절박하고 고통스러운 사안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것은 ‘거대한 도전’이자 ‘고약한 난제’라는 게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환경문제는 집단적으로는 불리하게 작용할지라도 개인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사회적 딜레마도 안고 있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다. 이 거대한 도전은 개인이 담배를 끊는 차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난제다.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맥락에서 서로 얽힌 행동을 변화시켜야 하는 난제다.
이 거대한 도전을 헤쳐가려면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 기관, 정부 차원의 총체적 변화가 긴요하다. 공공 이익을 위해 때로는 자기희생을 감수하거나 적어도 일상적 행동과 우선순위도 바꿔야 한다. 게다가 변화를 향한 의지는 여러 측면의 저항에 부딪힌다. 기후생태 위기에 따른 거대한 도전에 맞서려면 그 근본 원인이 되는 가치, 문화, 정치, 경제적 문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본질상 완벽하게 해결되기 어려우므로 그럭저럭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특히 힘든 도전인 이유는 현상 자체도 그렇거니와 해결책이 우리의 즉각적인 감각 인식이나 보상체계의 작동원리와 상당히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명백한 현실이지만, 고소득 선진국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기후변화를 인식한다손 치더라도 차차 예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환경문제의 우선순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생리적으로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감각기능이 없을뿐더러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피해를 경험하는 일이 흔치 않다(p.285).
우리 뇌는 명백한 생존 목표를 향한 행동을 잘 학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는 환경위기를 인식하거나 거기에 대응하도록 하는 진화압력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 위협은 주로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간접적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가 대부분이다. 기후생태 문제의 쟁점은 누가 어디까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일각에서는 기후생태 위기에 따른 행동 변화 영역을 거시수준(정치/경제), 중시 수준(산업/기업), 미시 수준(개인 소비자)으로 나누기도 한다.
결국 기후생태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이 더 많이 시행되려면,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시민, 기업 경영자, 정치 후원가, 작가, 전문가 등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정책 결정에 다양하게 개입해야 한다. 최근에는 기업이익-환경 지속성-사회적 책임이 기업실적을 평가하는 주요 요소로 강조된다. 정치나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중심은 결국 개인의 의식변화다. 손 씻고 운동하고, 중독성 약물을 끊는 것은 본인에게 직접영향을 미치지만, 기후생태 문제에 따른 행동은 바꾸기도 힘들고 그 보상도 막연하다.
기후생태 위기 차원에서 보면, 지구는 중환자이고 우리는 그 환자를 돌볼 책임이 있는 보호자다. 우리에게 필요한 조치는 단지 예방 차원이 아니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징후는 분명 더 나빠질 터이고, 회복 불능일지도 모른다. 인류세의 거대한 도전은 80억 지구 인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이슈이자 난제다. 우리 각자는 환경운동가로서, 의식 있는 소비자로서,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자로서 사회변화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기후생태 위기에 즈음해 우리의 희망은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를 바꾸도록 독려하지 않고도 스스로 좋은 쪽을 선택하도록 하는 일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의 측면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본래 좋은 쪽을 선택하는 성향이 있다는 게다. 그게 인간의 본래성(즉, 本然之性)이다. 이른바 하늘이 명령하는 본성(天命之性)이다. 기후생태 위기는 장기적이고 복합적이다. 마음의 문제도 그렇다. 저자는 이렇게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 스스로 달라지고, 다른 생명을 살리고, 삶을 지키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우선순위를 매겨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고유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게 뇌였다면,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희망도 뇌에 있다.” 뇌의 작용은 곧 마음의 문제다. 하늘이 우리 모두에게 품부한 ‘마음 안의 공덕’은 그 끝이 없다.
우리에게 기후생태 위기는 과학의 문제이자 영적(spiritual) 차원의 문제다. 동양의 체용론에서 보면, 정신(영성)은 체(體)이고, 과학기술은 용(用)이다. 체용(體用)은 둘이 아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