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론과 학문함
최근에 조동일 교수의 「학문론」(2012)을 읽고 새삼 학문의 길은 끝이 없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학문을 잘 하려면 학문론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조동일 교수의 학문론 골격과 그 배경은 이렇다.
한국문학에서 동아시아문학으로 세계문학으로 나아가고, 문학연구를 인문학문으로 학문일반론으로 확대하려고 나는 40여 년 동안 분투해왔다. 그래서 얻은 결단․ 자각․ 창조의 성과를 이 책에 집약해 학문론 정립에 내 나름의 기여하는 것을 학문하는 생애 막판의 일거리로 삼고자 한다. 학문은 끝이 없으나, 사람의 생애에는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73세는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시기를 더 늦추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아쉬우나마 일단 결론을 맺기로 한다(조동일, 2012, p.6).
조동일 교수의 학문세계를 내 입장에서 좀 더 분석적으로 들어다 보고자한다. 그는 한국문학에 발을 딛고 동아시아문학에서 다시 세계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그의 문학연구는 인문학(소위 文史哲)으로 나아가 학문일반론을 회통하면서, 이 일로 그는 정말 40여 년 동안 외길로 분투해 왔다. 학문하는 일에 분발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에게는 악조건 속에서 분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스스로 ‘분투해왔다’는 표현이 내가 보기에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조동일의 학문론에 내 자신을 반추해 본다. 한국특수교육에 발을 들여놓은 나의 학문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동아시아특수교육에서 세계특수교육의 보편성과 쌍방 소통하기에는 힘이 턱없이 부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렇게 하고자 하는 구상과 나름의 설계도는 가지고 있다. 내 경우 사회학문을 발판으로 인문학을 아울러 학문일반론으로 초도약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도약을 위한 발판 마련에 급급하다.
조동일 교수는 73세에 생애 막판 일거리로 학문론을 담론화하고 있다. 나는 그보다 나이가 5년 아래여서 그나마 다소 위안은 되지만 그건 별로 의미가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에게 학문하는 일에 관한 한 쉼이 없을 테니(無息) 말이다. 어쨌거나 조동일 교수가 학문의 여정에서 평생에 걸쳐 얻은 결단, 자각, 창조의 성과를 학문론이라는 이름으로 집약해 놓은 것이어서 정년에 즈음한 내게 각별한 의미로 와 닿는다. 학문하는 자세와 마음가짐, 나아가 내 스스로가 이룩한 학문의 성과에 대해 과연 나는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내 제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두렵다. 그래도 나는 간증하듯 고백해야 한다.
조동일은 학문은 축적이면서 비약이고, 불교식으로 말하면 점수(漸修)이면서 돈오(頓悟)라고 했다. 그가 전개하는 학문론에서는 비약이나 돈오를 더욱 중시한다. 그러기 위해 그는 탁월한 통찰력과 획기적 노력이 뒷받침된 ‘학문혁명’을 강조한다. 이어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자기에게는 엄격하면 학문을 크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학문에서 과대평가는 독이고 과소평가가 약인 줄 알면 도움이 된다 하니 우선 나에게 자위는 좀 된다. 그는 학문론에서 ‘통찰’(洞察; insight)을 강조하면서 그가 제기한 ‘생극론’(生克論; becoming-overcoming)이 통찰의 길을 연다고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상생이 상극이고 상극이 상생임을 거듭 강조한다. 생극론에 입각해서 근대 이후 21세기에는 ‘동아시아문명론’이 세계문명을 주도할 것으로 그는 진단한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학문이 막히면 어떻게 할까? 조동일은 “학문의 질병은 발생에서 치료까지 모든 것이 당사자 본인의 책임이고 의지할 데가 없다”면서 학문의 질병이 모두 아홉(九不宜病)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학문의 질병이 무엇인지 각자가 진단하고 스스로 치료를 강구하기 바란다.
(1) 공부를 계속해서 하기만 하고 학문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공부와 학문은 수동과 능동, 전수와 창조,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2) 여건을 탓하고 몰이해를 나무라고 알아주어야 학문을 하겠다고 하면서 최소한의 노력이나 하고 만다. 학문은 불리한 여건과의 투쟁이다.
(3) 자기 학문을 스스로 이룩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면서 본뜨고 흉내 내기를 일삼는다.
(4) 학문은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라고 여기고 이기기 위한 작전을 갖가지로 쓴다. 학계는 한 줄로 서서 달리는 경기장이 아니고, 각자의 장기를 살리면서 함께 어울리는 광장이다.
(5) 진행 중인 작업에 매몰되어, 연구 방향을 다시 점검하고 설정하지 못한다. 연구에는 단계가 있고 순서가 있는 것을 알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6) 계획생산은 하지 않고, 주문생산에 매달린다. 무엇을 할 것인지 자기가 판단해 연구를 진행하려 하지 않고 누가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그 쪽의 요구에 맞는 결과를 내놓아 유용한 학문을 한다고 인정받으려고 한다.
(7) 내심에서 우러나는 학문을 하지 않아 외면치레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학문 자체가 보람이고 가치임을 알고 성실한 작업을 충실하게 해야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8) 학문을 한다면서 시사평론이나 한다. 현실 문제를 넓고도 깊게 연구해 해결책을 찾는 이론 작업에 힘을 쏟아야 주장하는 바가 실현될 수 있다.
(9) 어느 정도 이룬 것이 있다고 인정되자 인기를 얻고 장사가 되는 쪽으로 쏠린다. 시장에서 얻은 일시적인 성공보다 학계의 지속적인 평가가 더욱 소중한 줄 알아 능력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조동일, 2012, pp.96-98).
이상의 아홉 가지 학문의 질병 중 어느 것으로부터도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특히 “계획생산은 하지 않고, 주문생산에 매달린다.”는 말이 와 닿는다. 대체로 외부 프로젝트 중심 연구는 주문생산에 해당되고, 자기 나름의 중장기 계획에 따른 연구 수행은 계획생산에 해당된다. 연구비 유혹에 끌리지 않고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될 혹은 꼭 하고 싶은 주제에 매달려 집중적으로 지적/학문적 에너지 관리를 해야 한다. 평생에 걸친 학문 로드 맵을 젊어서부터 가지면 더욱 좋다. 젊어서는 좁은 연구 주제에 매달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 연구들을 일반화하는 쪽으로 집중하면 좋을 듯하다. 즉, 젊어서는 논문 쓰기에 열중하고 나이 들어서는 폭 넓으면서 중량감 있는 저술에 집중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학문하는 사람이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여건 탓만 하고 학문하기를 뒤로 미루거나 종국에는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다. 대학에 자리를 잡고 신분이 안정되어야 학문을 할 수 있다는 우리의 현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나처럼 떡하니 40년간이나 대학에 머문 행운이 이즘 세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조동일은 학문은 불리한 여건과의 투쟁이라고 했다. 마냥 여건 탓만으로 돌릴 수 없는 게 학문이다.
최인호는 「소설 맹자」(2012)에서 맹자가 선왕에게 왕도정치를 펼 수 있는 경세책(經世策)으로 설법하였던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즉, ‘일정한 생산소득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다’는 이 유명한 명제를 맹자의 핵심사상 중의 하나로 지목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더 주목할 것은 이와 더불어 맹자는 항산(恒産)이 없더라도 결코 항심(恒心)을 잃지 말아야한다는 지식인의 삶의 자세에 대한 준엄한 원칙을 제시한 점이다. 그래서 맹자에 의하면 학문의 길은 곧 놓아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求放心)이다.
일반 민중들에게는 일정한 소득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지만, 지식인은 일정한 소득이 없더라도 결코 항심(恒心)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학문의 길은 한마디로 ‘구방심’(求放心), 즉 방심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중용」에서 ‘지성무식’(至誠無息)이라고 했는데, 맹자는 ‘구방심’(求放心)에 의한 쉼 없는 자기 독려로서 학문함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동아시아문명권에서 ‘학문함’의 요체가 맹자의 ‘구방심’(求放心)이라는 이 한 마디에 다 녹아들고 있다. 우리에게 학문함은 마음공부에 다름 아니다.
한편, 전국시대에 양주(楊朱)는 학문의 길에서 ‘다기다양’(多岐多羊)을 경계하고 있다. 이 ‘다기다양’(多岐多羊)이라는 고사성어의 출처는 이러하다. 학자로서 양자(楊子)의 고뇌를 드러낸 말로써, 어느 날 양자가 사는 이웃집의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이웃집 사람은 자기 집 사람들을 다 동원하여 양을 찾으러 나서도록 한 후 양주에게도 찾아와 사람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양주는 “양 한 마리를 찾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에 이웃 사람이 “양이 갈림길이 많은 길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양자는 갑자기 근심스런 표정을 짓더니 하루 종일 말도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에 어느 제자가 이렇게 그 진의를 전했다.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또 학문은 본래 근본은 하나인데, 그 말단(末端)에 와서 이처럼 달라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셨기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라고. 비슷한 맥락에서 노자(老子)는 ‘숭본식말’(崇本息末)을 강조했다.
원래 학문의 길은 하나인데, 너무 지엽적으로 갈라지고, 분파를 이뤄 그 본래의 진리가 다방면에 걸쳐 나누어져 오히려 그 말단적인 것에 구애될 수밖에 없어 학문의 목표인 진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여기서 양자는 백가쟁명의 전국시대를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누어진 다기(多岐)의 난세’로 보았으며, 학문을 ‘잃어버린 양’으로 비유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여러 길로 갈라진 지식 권력으로서 좁은 전공은 있어도 정작 학문의 길은 증발 된지도 모른다. 이것은 ‘학문함’에서 진정 우리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본말전도(本末顚倒)다. (201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