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인류세'의 강을 건너지 말기를

평촌0505 2025. 4. 25. 16:35

 

지구에 홀로세의 안정기는 지났고, 이제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발을 딛고 있다. 홀로세의 안정적인 기후 덕분에 약 12천 년 전부터 인류는 수렵 채취를 끝내고 한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른바 농업혁명을 가져온 게다. 농업은 지구의 자연사에서 인류가 환경에 적응하는 대신 환경을 바꾸어 가게 했다. 벌판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고, 멀리 흐르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인간은 땅의 노예가 되었다. 농업혁명으로 식량 확보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수렵하던 시대에 비해 땅에 붙들려 훨씬 많은 노동을 바쳐야만 했다.

 

이정모는 찬란한 멸종(2024)에서 농업혁명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 첫 번째 혁명이라면, 두 번째 혁명은 산업혁명이랬다. 산업혁명 덕분에 인류는 물질적 풍요와 장수를 누리게 되었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기계의 노예가 되었다. 산업혁명은 석탄과 석유 채굴로 화석연료를 맘껏 낭비하면서 10억 명을 넘지 못했던 인구가 80억 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놀라운 변화다. 하지만 인류세에 기후생태 위기를 목도하면서, 과연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을 거친 걸 직선적 발전으로 볼 수 있는지 되짚어보게 한다. 게다가 그게 진정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 혁명인지 모르겠다. 지구 행성의 자연사, 즉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중심의 역사는 생명중심의 역사로 대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100년 이내에 인류는 멸망한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은 의지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인류 종말론 시점이 얼마나 정확할지 나는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이정모는 이렇게 말한다.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는 이전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화산 폭발, 소행성 충돌, 기후의 급격한 변화와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촉발된 이전의 대량 멸종과 달리,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은 전적으로 인간 활동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중략) 현재 진행 중인 멸종의 원인으로는 광범위한 서식지 파괴, 사냥과 낚시를 통한 생물 종의 과도한 착취, 대기·수질·토양 오염, 생태계를 교란하는 침입종의 유입 등 인간이 유발한 요인들이다. …(중략)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는 오로지 인류의 책임이다.

 

인류세는 인간이 초래한 실존적 곤경이다. ‘문제는 노력하면 대부분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곤경은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어려움을 유예 혹은 완화할 수 있을 뿐이다. 인류세에 기후생태 위기는 피할 수 없는 곤경이다. 이미 그 곤경은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인류세는 인류가 저지른 업보다. 해서 그 곤경은 우리 스스로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진정한 인류세’(authentic anthropocene)를 고민한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탐진치의 인류세에서 계정혜(戒定慧)의 인류세로의 전환이다. 그것은 자연 친화적(생태적 생명 중심적)이면서 영성적인 삶의 양식이다. 나는 진정한 인류세로 개벽세를 떠올린다. 그 연장에서 '인류세의 인간학'을 재정립하고 싶다.

 

손주 세대를 위해서라도 제발 인류세의 강을 건너지 말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전에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와 정의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상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