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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항아리도 극락에 갈까요?

평촌0505 2025. 5. 10. 14:06

손녀가 부처님 오신 날에 절간에 들렸다가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절밥을 얻어먹고 싶어 캠퍼스 근처 사찰(연화사)에 갔다나. 이미 점심 공양은 끝난 터라 경내에 있는 도서관 겸 카페에 갔더니 분위기가 좋더랬다. 손녀는 절밥을 먹지는 못했으나,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더랬다. 나는 손녀의 블로그 글이 기특해 부처님은 이미 네 마음속에 와 있다. 좋은 경험이다. 내겐 네가 여래다!”라고 카톡을 날렸다.

 

손녀는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서 밝고 건강히 자랐다. 우리 집 오아시스였다. 아내의 손녀에 대한 내리사랑은 지극하다. 나도 손녀를 퍽 사랑하지만 결이 좀 다르다. 어버이날에 손녀가 내게 커피와 빵을 카톡 선물로 보내왔다. 그걸 보고 내가 내리 세 번이나 세상에!’라며 감탄하더라고 아내가 놀린다. 나도 모르게 그랬던가 보다.

 

내가 손녀 나이 때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퍽 힘들었다. 나의 대학 시절이 참 따분하고 불안정했던 터라 나는 결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 시절(1960년대 중반)에는 대학생이 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 손녀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비교적 안정된 대학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보기에 좋다. 물론 손녀 나름 자기 정체성 정립에 갈등과 고민이 적지 않을 게다. 그것은 젊어서 거쳐야 할 난관이자 특권이다. 특히나 손녀 세대의 미래는 이래저래 불안하다. 다중 위기(기후, ()전쟁, AI ) 시대에 지속 가능한 미래 자체가 불안정하다.

 

손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적극적으로 선택해 추진하는 편이다. 해서 자신을 욕망의 항아리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뭔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자신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낄 게다. 손녀가 고3 할아버지 탐진치의 반대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내가 계정혜라고 했더니 다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실천하는 가운데(), 마음을 가지런히 안정시켜(),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손녀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탐진치에서 계정혜로의 전환은 깨침의 과정이자 수행(修行)의 전형적인 삶이다. 손녀가 그걸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그렇게 말한 나 자신은 그런 삶이 얼마나 체현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끄럽다. 그 가능성과 실천은 나보다는 손녀가 더 잘 해낼 게다. 그게 진화하는 삶의 순리일 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