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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국 형을 추모함

평촌0505 2012. 12. 26. 11:29

병국(炳國) 형을 추모함

 

  눈 내리는 동지(冬至)날 기어이 이 세상을 떠나시는 구려. 형이 부르는 ‘고향설’(故鄕雪)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구성진 노래를 이제 들을 길이 없군요. 형은 나의 고향 부알 친구이자 우리 고향친우들 가요사의 추억이자 역사였습니다. 지난 늦가을 양산 통도사를 다녀오는 차 안에서 고복수의 고별무대 노래를 불러주시더니, 그것이 우리를 향한 고별사가 될 줄 어찌 알 수 있었겠나요.

 

  형은 가난한 시골에서 자랐지만, 클 때부터 재주가 있어 그림도 잘 그렸고 글씨도 잘 썼지요. 자라서는 기타를 메고 이 동네 저 동네를 거침없이 누빗지요. 그리고 골목만 나서면 형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지요. 방학 때 고향에서 형이 말아준 골연초로 나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지요. 그 때는 그 게 얼마나 멋지게 보이든지. 나이 들어 우리는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삶의 똬리를 틀었지요.

 

  형은 대신동 서문시장에서, 나는 대명동 맹아동산에서 그렇게 제각기 살림을 일구었습니다. 우리가 결혼해서 신접살림을 차렸을 때는 함께 동촌 유원지에 새 색시 동반해서 놀러가기도 했지요. 그리고 내가 1977년에 「특수교육의 역사적 이해」라는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에 참석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때 사진 속의 형은 젊고 예리한 눈매였습니다.

 

  우리는 ‘향성회’(鄕星會) 모임을 매개로 지금까지 만남의 인연이 이어져 왔습니다. ‘고향의 별’을 그리는 우리의 모임도 형이 맨 처음 붙여준 이름이었지요. 근데 세월이 가면서 고향의 별이 한 둘씩 지니 이 어찌된 일이요. 서울의 점태와 병학이 시인(詩人)이 낙엽처럼 지고, 사람 좋은 명기가 그 뒤를 따르더니 기어이 형마저 우리 곁을 떠나시는 구려. 강물이 흘러 바다에서 만나듯 그렇게 우리는 회귀(回歸)할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오늘 형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구려. 형이 가고 없어도 남은 고향친구들에게 ‘고향설’ 노래는 내가 불러 줄꺼요. 병국 형! 부디 하늘나라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소서. 그리고 이제는 편히 쉬어요.

 

2012년 12월 21일 동짓날 저녁

경산에서 병하(炳廈) 동생이 지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