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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를 다녀와서

평촌0505 2014. 6. 2. 17:57

5월 광주를 다녀와서: 철학학술대회 참관기

 

 

  ‘한국철학의 시원은 동학’이라는 글줄에 끌려 대뜸 광주로 갔다. 아침 8시 40분에 금호고속버스로 동대구를 출발해 12시가 좀 지나 광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조선대학으로 가는 길에 금남로를 지나쳤다. 옛 도청 자리에 무슨 공사인지 어지러이 파헤쳐지고 있다. 5.18 금남로 도청의 아픈 역사가 어지럽게 떠돌고 있다. 금남로 그 자리는 이래저래 지워지고 있다. 조선대학 캠퍼스에 들어서니 장미화원이 눈길을 끈다. 빛고을의 명문사학답게 캠퍼스가 우람해 보였다. 약 10년 전쯤 여기 교육대학원에 특강하러 온 적이 있었지만, 그 때보다 캠퍼스가 많이 달라져 보인다.

  조선대학교에서 우리철학연구소와 대동철학회가 공동주최하는 학술행사 주제는 “우리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수입철학과 훈고학을 넘어서-이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도착해서 자료를 받아보니 내가 듣고 싶은 김상봉(전남대) 교수의 발표는 맨 마지막에 들어 있다. 주말이라 6시 표를 예매해 두었는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보통 이런 학술대회에 참가하면 아는 사람과 서로 인사를 하고 정담을 나누는 제미가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아예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편한 맘으로 앞쪽에 자리를 잡아 유인물을 훑어보았다.

 

  첫 번째 주제가 “한국철학의 현황과 반성 및 향후과제”(권인호 대진대)다. 발표자는 “현재 한국에서 철학의 ‘존재이유’를 밝히는 것에서부터 ‘시대정신의 정화(精華)’라는 명제를 강단철학이나 철학자 스스로 망각한 것”을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국철학과 우리철학에서 심도 있는 분석이나 논의가 없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오리엔탈리즘의 세례를 비판하면서 문사철을 아우르는 ‘유학’의 학문적 보고(寶庫)를 내세울 뿐 이렇다 할 논의의 진전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성리학과 양명학, 실학과 훈고학을 논하면서 유학의 르네상스로서 실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 학풍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논평자(최영진, 성균관대)는 오늘날 실학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긍정적, 부정적)을 두루 참고하기를 권고한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철학 연구가 당면한 과제로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와 같은 표준적 『한국철학사』가 없음을 문제 삼았다. 이를 위해 한국 고대부터 현대까지, 철학계와 사학계, 사회과학계 등 여러 학문분야를 비판적으로 종합하고, 한국의 원초적 사유와 유불도를 통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했다. 과제의 제기도 긴요하지만 문제는 밥을 직접 떠먹어야 한다. 밥 먹는 얘기 아무리 해봤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다. 남의 얘기 할 때가 아니다. 우리 특수교육학계에게도 단일 저자에 의한 필생의 과업으로『한국특수교육사론』 같은 게 나와야 할 터.

 

  두 번째 주제는 “서양철학 수입 후 철학수요의 폭증과 철학교육의 폭락”(홍윤기, 동국대)이다. 제목에 수입-폭증-폭락이라는 용어가 어지럽게 등장한다. 서양철학 수입에 따라 철학수요는 폭증했으나, 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철학교육은 폭락했단다. 우리에게 정녕 ‘철학’과 ‘철학함’이 있기나 했는지 헷갈린다. 해서 이번 학술대회의 주최측(조선대 우리철학연구소와 대동철학회)에서는 학술모임의 취지를 이렇게 말한다.

 

한국철학계는 내적으로 반성할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른바 서양철학 전공자들은 서양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하고 소개하는 데에 치중하였고, 동양철학 전공자들은 한문으로 된 원전을 맹목적으로 숭상하였다. 그들은 비주체적인 자세로 철학활동을 하였기에 그들 철학은 대부분 건조한 수입철학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복고적인 훈고학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철학활동은 당면한 시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사유를 통한 생명력 있는 이론을 생산하고 발전시키는 면에 제한적이다. 이것은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력이 매우 결핍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철학의 실제화’와 ‘현실의 철학화’에 제약이 된다. (조선대 인문학연구원 우리철학연구소 창립기념, 대동철학회와 공동학술대회 개최 안내 문건, 2014.04.21.)

 

  비슷한 반성은 사회학문 분야 쪽에서도 진적에 제기되어 왔다. 교육학이나 특수교육학 쪽에서 이런 학풍적 문제는 더욱 심각한지도 모른다. 발제자인 홍윤기 교수는 개인적으로 약 30년 전부터 ‘실천철학의 가능성’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 가능성의 고민이 지금에 와서 어느 정도로 개선되었는가?

  그는 한국 현대철학에서 서양철학 수용양상과 철학에 대한 수요 폭증 요인을 말한다. 먼저 사상 수용의 일반적 패턴으로 “사상인지와 원초적 평가(R1)-사상개괄과 수용자 관심촉발(R2)-응답적 논평(R3)-체계적 사상교육을 통한 원전대면(R4)-수용의 원시적 양상; 조류의 추종(R5)-담론 자체생산으로서 수용의 완성(R6)"을 든다.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서양철학을 수용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 철학계가 형성되고 대학교육을 기반으로 철학전문 인력의 유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학함의 목적에 비추어 서양철학 수용 양상은 여전히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백종현 교수는 ‘서양철학 수용에 대한 반성과 한국철학의 모색’(1998)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왜 이슬람 정신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가? 최근 100년 이래 한국에서 급속도로 신장되고 있는 기독교 문화는 한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삶의 지주로 여겨왔던 불교나 유교가 그랬던 것처럼, 당대 한국사회에 문화적․경제적․정치적․군사적으로 강한 영향을 미쳤던 세력의 도래와 함께 이식된 것이라 봄이 합당하다. 20세기 한국의 서양철학 수용확산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함이 옳을 것이다. ...(중략)예로부터 우리 상층문화 주도층의 대외자세를 ‘사대주의적’이라 지적해 왔는데, 이즈음에 와서 그것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심화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고 했다.

  발제자 홍 교수는 이런 사태에서 한국의 철학은 (1) 전통철학과의 단절, (2) 현실적 문제의식과의 단절, (3) 학문적 의존성 내지 종속성이 유지 심화된다면서 ‘한국철학부재론’이 아직도 지양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인문사회학문을 통틀어 우리에게 하나의 공통적인 숙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있어야 하지만 아직 있지 않는 바로 그 철학, 사대주의적이지 않고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의 양상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내용을 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맞닥뜨려 제기되는 역설적인 현상은 “한국적 특성을 가진 ‘한국철학을 모색’한다고 했을 때, 거기서 다루어져야 할 ‘철학적’이라는 문제가 굳이 ‘한국’철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한국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적 특수성이 세계적 보편성에 어떻게 의미 연관되게 하느냐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것은 특수성과 보편성의 쌍방적 소통 과제다.

  홍윤기 교수는 철학에 대한 학문적 탐구와 별개의 트랙으로 철학의 인문적 의사소통에 주목한다. 이런 시각에서 그는 철학적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함의 실행 또는 실연으로서 철학교육(哲學敎育; philosophy education)인데, 현대 한국철학에서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란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1995년 5.31 교육개혁 조처에 의해 지난 20년간 60개가 넘던 대학 철학과 수가 반토막 이하로 급락한 현실을 개탄한다. 이로 인해 대학에서 철학능력을 고도로 고양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계에 다다른 한국의 중등교육이 더 철저하게 붕괴하여 대한민국 교육활동이 자멸하는 일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 고 경고한다. 대학에서 철학과의 붕괴가 중등교육의 자멸로 이어진다. 철학과 교수이기에 그렇게 진단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내가 보기에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 위기를 기회로 교훈 삼아 ‘철학함’은 과연 불가능한가?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세 번째 주제는 “동양철학 연구방법론의 궁핍과 문제점, 그리고 모색”(홍원식, 계명대)이다. 발제자는 동양철학계에서는 연구방법론에 대한 고민 없이도 그간 많은 연구를 해왔다고 자평한다. 성현의 말씀이 담긴 경전(經典)을 연구한다는 태도와 방법에서 훈고학(訓詁學)적인 연구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다는 게다. 홍원식 교수는 한국에서 동양철학으로 중국철학을 연구하는 자들의 갈래를 세 부류로 나눈다. 즉, ‘철학’에 중점을 두어 중국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한국철학의 연원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국학(Chinese Studies)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등이다. 문제는 이들 간에 소통이 부재하고, 그에 따라 문제의식도 결여되어 있고, 그 필연적 결과로 관점과 방법론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해서 동양철학자들 간에 “관점과 방법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절실한 때”로 글을 마무리한다.

  논평자로 나선 이승환(고려대) 교수는 “관점과 방법론의 부재라는 커다란 문제를 내걸고서 큰 소리로 질타하기보다, 그 동안 시도된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에 대하여 세밀하게 그 득실과 공과에 대해 논하는 게 더 생산적이 아닐까? 눈앞의 파랑새는 몰라보고 산 너머 파랑새를 쫒는 격”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발표자가 “모두들(즉, 동양철학자들) 연구실에 박혀 마치 큰 공장에서 밤낮 쉼 없이 제품을 찍어 내듯이 진땀 흘리며 논문과 책을 쓰는 데에 골몰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는 지적에 공감을 표한다. 마치 신혼여행을 가서 식탁에 마주 앉은 신혼부부가 각자의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는 현실에 빗대어 말한다. 앞 주제의 발표와 토론에서 엄청 시간을 넘긴데 반해 이번 주제에서는 발표와 논평 모두 시간을 줄여 마무리해 주니 훨씬 깔끔해 보인다.

 

  네 번째 주제는 ‘북한철학의 패러다임 변화와 사상적 특징’(이병수, 건국대)이다. 내게는 더욱 생소한 주제다. 북한철학은 곧 주체사상이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사회주의체제의 지도이념이자 북한사회의 통치이데올로기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실천적 문제에 대응해 오면서 꾸준히 보완․수정되어 왔다. 발표에 나선 이병수 교수는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체하고 인류철학사상 최고봉이라는 절대적 신념체제로 치닫는 동력이 어디에 있으며, 그 실천적 과정과 귀결은 어떠한지, 나아가 주체사상의 사상적 특징을 유교나 기독교와의 유사성에서 찾는 논의들이 갖는 타당성과 그 한계를 비교적 꼼꼼히 다루고 있다. 내게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그는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구소련과 동구권사회주의와 달리 수령의 유일 영도체제, 인민대중 중심의 자립경제, 외세 영향을 벗어난 진정한 자주적 독립국가라는 점에서 그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게 그 핵심이라고 봤다. 주체사상의 변용론(즉, 대체론, 지속론, 쇠퇴론의 총칭)에서 빈번히 거론되는 실천이데올로기는 ‘선군정치론’과 ‘강성대국론’이다. ‘선군정치론’에서는 기존의 주체사상에서 혁명의 주력을 노동자와 농민중심의 인민대중으로 보았으나, 선군정치에서는 인민대중에서 인민군대로 대체되었다. 강성대국론에서 제기된 과학중심사상과 실리주의원칙은 기존의 교조적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기술지향의 이데올로기로 변용되었다.

  이병수 교수는 북한 주체사상의 ‘사상’적 특징을 (1) 탈식민적 열망에 경도된 나머지 주체사상을 과잉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역오리엔탈리즘과 자주성의 제약을 초래한 것, (2) 유교전통의 활용을 강력한 국가주의적 기획 아래 ‘만들어진 전통’으로 가공한 것, (3) 주체사상에서 ‘영성으로서의 주체의식’은 종교성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자칫 기독교의 근본주의와 상통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발표자는 ‘우리철학’이라는 말이 철학의 보편성을 제한하는 듯하지만 ‘우리철학’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든다. 그 하나는 철학의 관심과 지향성이 우리의 역사와 사회(문화)에 터 잡지 못하고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휘둘려 온 학문역사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란다. 다른 하나는 모든 사상이나 이론들이 그 발생과 문제의식 그리고 언어 등 자국의 문화적 배경을 암묵적으로 지니기 때문이란다. 그는 ‘우리철학’은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우리끼리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현실과 기초하여 우리에게 절실한 문제를 다룸으로써 ‘그들’에게도 통하는 보편적 사유의 지평을 열자는 의미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는 분단현실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빈곤을 든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토론에 나선 김재현(경남대) 교수는 발표자가 분단현실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빈곤을 말하면서 “분단극복의 철학적 사유는 분단체제에 제약된 남북의 이분법적 이념구도를 넘어서 위정척사, 개화사상, 동학을 위시하여 기독교 전통, 민족주의 전통, 사회주의 전통, 자유주의 전통, 주체사상 등 20세기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대두된 여러 철학사상들이 지닌 이론적․실천적 의의와 한계에 대한 반성적 평가 위에서 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토론자 자신도 동의하지만, 이 작업은 어떻게 가능할까? 라고 되묻는다. 토론자의 이 질문 속에는 사실상 이것은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자조적 의문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이 일을 감당할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 발표자나 토론자는 물론 필자까지 포함해서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다. 누군가 나서서 본격적(실질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모두가 자신의 십자가를 당당히 지고자 나서야 한다.

 

  마침내 오늘 발표에서 내가 가장 기대를 걸었던 김상봉 교수(전남대)의 “20세기 한국철학의 좌표: ‘우리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마지막 발표로 뚜껑을 연다.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이 한국철학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묻는 것이라면, 이는 마치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이 비몽사몽간에 언제 날이 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물음이라 했다. 그는 20세기 한국철학이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란다. 데카르트와 로크가 등장한 뒤에도 오랫동안 유럽대학의 철학교육과 연구가 기본적으로 스콜라철학적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 상기해 보면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것이 인정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게다.

  철학은 언제나 ‘세계관’으로서 일어난다. 해서 “만약 20세기에 한국에도 온전한 의미의 철학이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국의 대학에서 어떤 교수들이 어떤 책들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가르쳤느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철학적 사유의 활동을 통해서 열리는 새로운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통해 판단되어야 할 문제”란다. 그에 의하면 세계관은 역사에 대한 응답으로 얻어진다. 그래서 역사의 들판이 한국철학의 탄생지란다. 즉, 그는 광야의 철학, 거리의 철학을 한국철학의 발원지로 본다. 강단이나 책상머리가 아니란다. 바로 그 좌표계의 원점으로 그는 동학(東學)에 주목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학은 20세기 한국철학의 시원이다. 이 시원으로부터 수직과 수평으로 좌표축이 뻗어 나온다. 수직의 좌표축은 역사적 사건으로 한일합방과 6.25를 따라 이어지는 선이다. 이 선은 끝없는 절망으로 이어지는 선이다. 그 좌표축 위에서 철학했던 사람이 유영모와 박동환이었다. 수평으로 뻗은 좌표축은 3.1운동에서 4.19를 거쳐 5.18로 이어지는 선, 그리고 미래까지 연장하자면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져야만할 선이다. 이 선은 근․현대 한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민중의 저항과 봉기를 따라 이어지는 선이다. 그 좌표축 위에서 이루어진 철학은 만해(萬海)식으로 표현하자면 “절망적 현실에서도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는 자들”의 것이다. 그들 가운데 으뜸가는 정신이 함석헌이었다(김상봉, 2014, p.67).

 

  이런 맥락에서 그는 조선 성리학의 철학적 사유가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을 통해 그 철저성을 증명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철학적 사유에서 용(用)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일 뿐, 그 자체로는 아직 체(體)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철학이란 그 체(體)에서 보자면 어디까지나 세계관에 존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유의 철저성이 개성적인 세계관의 개방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신세계에서 성실한 노비나 하청업자의 노동일뿐, 자유인의 주체적 세계형성에는 까마득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역사에서 참된 의미의 철학이 출현한 것은 동학이 처음이라는 게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는 누구도 감히 자기 스스로 세계를 기투(企投)한다고 자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제우(崔濟愚)는 1824년에 태어나 중국이 서양세력 앞에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수 천 년 이어져 온 세계의 붕괴를 확인한다. 수운에게 그것은 개벽(開闢)이었다.

  19세기 한국인들에게는 자신의 세계가 타자적 세계에 의해 붕괴되어 버렸다는 의미에서 세계의 분열은 훨씬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동학은 바로 그런 절망을 딛고 정신의 주체적 자각으로 인해 현대 한국철학의 시원이 되는 것이다. 최제우는 “내가 또한 동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天道)이나 학인즉 동학(東學)이라. 하물며 땅이 동서로 나뉘었으니 서를 어찌 동이라 이르며 동을 어찌 서라고 이르겠는가.”라 했다. 해월 최시형은 “우리 도는 유(儒)와도 비슷하고 불(佛)과도 비슷하고 선(仙)과도 비슷하나, 실인즉 유(儒)도 아니요 불(佛)도 아니요 선(仙)도 아니라”고 했다.

  수운 최제우가 도(道)를 이 땅에서 받았지만 도 자체가 여럿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도(道)는 천도(天道)이니 그것은 하늘의 일이며, 그런 한에서 같다. 그는 서학과 동학을 구별하면서 일관되게 “도는 같지만 리가 다르다.”(道則同也 理則非也)고 주장한다. 동학과 함께 시작된 한국철학의 주체성이란 보편학으로서 철학의 지역성에 대한 자각과 같은 것이다. 동학 이후 류영모와 함석헌을 거쳐 박동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철학자들은 자신이 한국인이며 한국인의 관점에서 철학한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류영모에게는 한글의 신비를 파헤치는 것이 존재의 신비를 묻는 것이었고, 함석헌에게는 한국역사의 뜻을 묻는 게 곧 세계사의 뜻을 묻는 것이기도 했다.

  동학이후 한국철학의 특별한 개성은 철학과 종교의 만남이다. 동학은 철학인 동시에 종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종교인 동시에 철학이다. 수운에 이은 해월의 가르침이 더욱 철학적이긴 하지만 믿음을 강조한 것은 마찬가지다. 해월은 “우리의 도(道)는 다만 성(誠)․경(敬)․신(信) 세 글자에 있느니라”고 말한 뒤에 “사람의 수행은 먼저 믿고 그 다음에 정성 드리는 것”(人之修行 先信後誠)이라 함으로써 동학이 철학이전에 종교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류영모와 함석헌의 종교철학은 신과 인간 사이의 서로주체성(사람이 곧 하늘)에 바탕을 둔 동학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언어로 이어간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함석헌의 스승이기도한 류영모를 동학이후 한국어(모국어)로 철학한 첫 세대의 철학자(한일합방의 철학자)로 꼽는다. 그는 류영모 선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유영모는 자기 이전의 동학이나 자기 이후의 함석헌처럼 철학적 사유의 주체성을 추구하였으나, 그것을 나타내는 방법으로서 정치나 역사가 아니라 언어의 길을 택했다. 함석헌이 한국역사의 뜻을 묻고 더 나아가 현실 역사에 깊숙이 발을 담구고 실천적 참여의 삶을 살았던 데에 비해 유영모는 현실을 등지고 은둔과 수양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 속에서 고유하게 제시되는 존재의 진리를 더듬었던 것이다. 씨알이란 말부터가 그가 처음으로 노자의 『도덕경』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백성 ‘民’을 순 우리말로 옮긴 것이 거니와, 그는 수많은 한자어들을 순우리말로 옮겼으며, 이를 통해 오직 한국의 고유한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의 진리를 보이려 하였다(김상봉, 2014, pp.79-80).

 

  그는 류영모적인 철학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사성이 언어를 철학적 탐구의 중요한 방법(도구)으로 취하는 점이라 했다. 이것은 방법론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극소주의’(minimalism)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류영모는 은둔적 삶을 살면서 책 한 권 내지 않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자기를 극소화시키더라도 그 가운데서 세계를 전체로서 파악하는 것이 또한 철학자의 일이다. 류영모와 달리 평생에 걸쳐 저항과 개벽의 좌표축을 걸었던 사람이 함석헌이다.

  1901년에 태어난 함석헌에게 한일합방은 미증유의 파국이었다. 함석헌은 훗날 “어려서 받은 충격 중에 가장 큰 것은 열 살 때 나라가 망했을 때 받은 것”이라 했다. 3.1운동 당시 함석헌은 평양고보 3학년생으로서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약 2년간의 방황 끝에 정주 오산학교에 편입한 함석헌은 거기서 평생의 스승으로 류영모를 만나게 된다. 김상봉 교수는 이 때 류영모와의 만남을 통해 함석헌이 철학적 사유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계기로 본다.

  함석헌은 ‘역사의 뜻’을 끈질기게 물음으로써 어째서 우리 시대가 종말과 파국의 시대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새로운 세계의 개벽 앞에 서 있는 시대인지를 명확하게 보이려 하였다. 함석헌은 역사 속에서 고난의 보편성을 확인함으로써, 그것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끌어 올리고자 했다. 함석헌은 민중, 즉 씨의 철학자로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고, 그 역사 속에서 항쟁과 개벽의 좌표축은 그에게 3.1운동에서 시작하여 한반도 통일로 뻗어 있다. 함석헌에 의하면, 스스로 신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위 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본질이다. 그는 “종교란 다른 것이 아니요. 뜻을 찾음이다. 현상의 세계를 뚫음이다. 절대에 대듦이다. 하나님과 맞섬이다. 하나님이 되잠이다.”고 했다. 여기서 김상봉 교수는 “우리는 종교와 철학과 혁명을 하나로 통일하고 분리하지 않았던 동학의 정신이 함석헌의 정신 속에서 살아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고 했다.

  이렇게 이어지는 좌표축의 연장에서 그는 살아 있는 철학자 중 도올 김용옥에게 주목한다. 김상봉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함석헌과 같은 좌표축 위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아마 도올 김용옥은 다른 누구보다 함석헌과 비슷한 길을 걷는 철학자일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동양철학에서 출발했으나, 역시 동양철학의 한계에 갇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철학자로서 평가 받아야 하는 까닭은 그가 끊임없이 역사 속에서 역사와 함께 철학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치 박정희 치하에서 함석헌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김용옥은 대중들에게 먼저 다가가 “하나의 우는 씨”로서 말 건네는 유일한 철학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아직 길 위에 있는 철학자이므로, 우리는 그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후세의 몫으로 남겨 두려 한다(김상봉, 2014, p.92).

 

동학에서 시원하여 최제우 - 류영모 - 함석헌 - 김용옥으로 이어지는 현대한국철학의 계보가 주체의 개벽을 통한 후천개벽 세상을 열어가는 길잡이가 되기를 고대한다. 이들의 철학적 계보는 한국 철학계에서 결코 (강단철학의) 주류가 아니다. 우리는 한국철학의 특수성이 세계철학의 보편성과 어떻게 연관되어 ‘상호주체성’을 담론화 할 수 있는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 끊임없이 제기되어야 할 숙제다.

  오후 5시 반경에 세미나 장을 황급히 나왔다. 고속버스 예약 시간 때문에 종합토론을 놓치는 게 아쉬웠지만 역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넓은 캠퍼스에 지나가는 차들을 잠시 세우려 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당해보니 세상은 냉혹하다. 갑자기 바다 속에 남겨진 아이들 생각이 난다. 이런 게 자업자득(自業自得)인가. 겨우 정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광주터미널 고속버스에 허겁지겁 올랐다. 차창 밖 5월은 여전히 싱그럽다. 그리고 5월 광주는 결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김병하(2014.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