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장애인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의 삶

평촌0505 2014. 12. 1. 16:59

장애인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의 삶

 

 

 

1. 문제 제기

 

마을은 농업중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삶의 공동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전통적 개념의 마을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마을공동체의 삶을 한 번 회상해 보자. 마을에는 어른이 있고, 그 어른은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자 권위의 상징이다.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정중한 요청에 의해 이 어르신께서 마을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준다. 따라서 마을의 아이들은 어르신께서 골목을 나서면 하루에 몇 번이고 공손히 인사를 올린다. 그리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마을의 아이들을 키운다. 마을에는 아침저녁으로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야생마처럼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노는 게 일이다. 필자는 1950년대에 이런 마을 풍경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몸과 맘이 함께 건강한 편이다.

노자(老子)는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목가적(牧歌的) 삶을 이렇게 읊었다.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어,

편리한 기계가 있으나 쓸 일이 없고,

백성들은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지만 쓸 일이 없다.

...(중략)

이웃 나라(마을)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어라.

 

이것은 노자가 그린 작은 이상 국가이자 전통적인 마을 삶의 풍경화다. 너무 목가적(牧歌的)이어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 지금 우리에게는 아득한 추억으로 마을에 대한 향수(鄕愁)만 남아 있다. 우리는 불과 50년 동안에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래서 남북이 갈린 분단국가임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발전’ 의 신화를 남긴 나라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압축성장’에 따른 빛과 그림자가 너무 대조적으로 공존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한강 대교가 내려앉는가 하면, 아파트가 폭삭 무너지고 백화점이 내려앉기도 한다. 훈련하고 돌아오던 군함이 갑자기 두 동강 나고,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을 태우고 연안을 항해하던 배가 뒤집혀도 속수무책이다. 멀쩡한 강줄기를 막아 돈을 쏟아 부어 토목 질을 하더니 고기들이 떼죽음하고 강물이 죽어가고 있다. 엄청난 생태파괴이자 교란이다.

무한경쟁의 교육풍토에서 학생은 점수병에 시달리고 선생은 점수제조기로 전락해 버렸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성적 땜에 비관 자살하는 학생 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교육열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지만 정작 교육은 그 머리 둘 곳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학벌사회의 이데올로기는 현대판 카스트제도를 재생산한다. 전 세계적으로 노인 빈곤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고 노인 자살비율 또한 가장 높은 나라이다. 대기업과 정치권력의 ‘갑’질은 그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마을공동체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딴죽 걸지 말기 바란다. 어째서 인가? 원래 우리들이 살아온 마을공동체에서는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지 않고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 편의시설이 전혀 없었지만, 장애가 없는(barrier free) 공동체적 어울림이 그들의 삶에 녹아 있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그와 같은 삶의 기록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구비문학에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해학(諧謔)의 언어가 질펀하게 담겨 있다.

『노자(老子)』에는 “되돌아봄이 도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라 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늘의 지엄한 명령(天命)으로 품부된 본래성(本來性)에 따라 살아가노라면 인간이 가야할 길(道)이 보이고, 그 길이 조금씩 열리기 마련이다. 이런 가능성이 계속 꿈틀거리고 뭔가 그 기운이 서서히 살아 작동하는 곳이 안심지역 ‘마을공동체’다. 이하에서는 안심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1) 장애인과 함께 살고자하는 마을공동체 형성의 배경과 그 성립, (2)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 형성의 계기와 그 과정, (3) 그런 관계유지에 따른 소통의 한계와 난점들, (4) 마지막으로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위의 연구 갈래에서 (2)항에서 (3)항의 내용은 「한사랑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센터」가 주관한 정기적 연구모임에 참여한 멤버들이 본 연구의 수행 목적을 위해 심층 면접한 기록물을 1차 자료로 활용했다.

 

 

2. 마을공동체 형성 배경과 성립

 

‘안심’(安心)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만한 곳인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곳에는 안심이 좋아서 사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도 그냥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안심지역은 ‘평범하지만 특별한’ 지역이란다. 안심지역은 대구 동쪽 끝자락에서 경산시와 접하고 있는 대도시 주변지역으로, 별로 깨끗지도 않는 금호강이 서쪽을 가로지르고 있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신시가지와 물류센터를 비롯해서 산업기능과 주거지가 혼재하는 구시가지가 확연히 구분되면서도 아직 농촌 경관까지 일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하늘에는 별보다 비행기 소리가 요란한 곳이다.

대구는 광복 후 장애인 교육과 복지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대구맹아학교(1946, 설립자; 이영식 목사)가 설립되었고, 그곳에는 장애영역별로 특수학교 5개가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것이 기반이 되어 장애인 교육·복지·재활 전문 인력을 길러 내는 데에도 대구대 대명 캠퍼스는 그 요람이 되었다. 이것은 외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모델이자 공간이다. 그래서 대명 3·7동은 대구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장애인들이 가장 밀집해서 사는 곳이란다.

계곡이 깊으면 결코 물이 마르지 않고 수목이 무성하다. 노자는 ‘곡신불사’(谷神不死)라 했다. 낮은 곳에 임하는 계곡과 같은 삶은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이어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대구에는 장애인 교사이면서 별난 운동가인 사람이 더러 있다. 이들은 특수교사로 제도권 안에서 양지가 보장되는 삶을 마다하고 특수교육의 혜택을 제때에 받지 못하는 장애유아들을 위해 음지에서「한사랑 어린이집」을 열었다. 그게 약 20년 전 일이다. 광복 직후에 대구 서쪽 끝자락에서 분리교육으로 특수학교의 깃발을 꽂았다면, 그로부터 약 50년 뒤 대구 동쪽 끝자락에는 몇 사람의 뜻이 밀알이 되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장애유아 전문 어린이집’을 출범 시켰다. 당시만 해도 취학전 장애유아에 대한 교육권 보장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글과 말로만 주장할 때였다. 「한사랑」 터주 대감 윤문주(2014)「한사랑 어린이집」설립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장애아동 조기교육에 대한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에 따르는 과중한 교육비가 장애아동 가정에 부담 지워지며 발생하게 된 부모 자살사건, 장애인 시설에서 일어나는 반인권적 행태 등 장애로 인해 소외당하는 장애인의 삶에 대한 고민과 빈민장애가정의 아동양육과 교육에 대한 고민이 대구대 특수교육과 졸업생 및 학과생 후원인들이 모여 ‘한사랑 어린이집’을 설립하게 되었다.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기만 하면 특수학교(급) 교사로 임용이 100% 보장되던 호시절에 그 양지를 마다하고 음지의 저소득층 장애아동 조기교육에 눈길을 돌려, 그 험난한 길을 닦아 온 게 오늘의 「한사랑」이다. 이런 뜻이 모여 자생적으로 안심지역 저소득층 장애아동의 조기교육을 위한 ‘장애전문 어린이집’으로 출범한 「한사랑」 출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감에 따라, 방과 후에 그들을 맡아 지도할 장애청소년학교를 2000년 3월에 아양(峨洋)교 부근에 열었다. 그것이 기틀이 되어 아양교 부근은 장애청소년들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가 되었다.

우연치 않게도 그것이 기틀이 되어 2천년대에 접어들면서 아양교 근처 그곳에서 「장애인지역공동체」가 결성되었다. 이 「장지공」의 실천사업으로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집(당사자의 표현에 의하면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던 장애성인들을 대상으로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이 대구에서 처음 문을 연 곳도 아양교 부근 그곳이다.

이때부터 아양교 부근 그곳은 대구에서 ‘장애인운동’의 산실이자 요람이 되었다. 이무렵 우리나라에서도 ‘장애학’(disability studies)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고, 장애당사자 중심운동(Nothing about us without us)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장애인운동의 주체로 다시 아양교 근처 그곳에는 장애인당사자 중심주의를 내걸고 「대구장애인연맹(대구DPI)」을 결성(2003.12)하였다.

이즈음 아양역 지하철 직원들과 질라라비장애인 야학학생들과는 이런저런 충돌도 많았지만, 지금은 대구에서 장애인들에게 이동권 편의를 가장 친절하게 지원해 주는 곳이 아양교 지하철역이란다. 당시에는 격주로 토요일 오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 중심으로 “함께 살아도 될까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극장, 운동장, 박물관 등을 돌며 문화탐방 기회를 조심스레 펼쳤다. 그러나 지금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당당하게 ‘장애의 벽’을 허물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운동의 주류는 신체장애인 중심으로, 휠체어 부대가 그 선발대가 되어 여기까지 왔다. 그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희생의 대가로 이만큼까지 오게 되었다. 이런 처절한 우리나라 장애인운동 20년 역사를 정리한 것이 『차별에 저항하라』(2007)는 책이다. 이것은 장애인 당사자가 착한 장애인으로 침묵하며 사는 것을 스스로 거부한 삶의 기록이다. 이런 힘의 결집으로 2007년에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기에 이른다.

장애인운동이라지만, 사실 장애영역의 특수성에 따라 그 요구와 목소리는 천차만별이다. 장애학 담론에서는 장애인운동을 ‘모자이크식’ 운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어째서인가? 이를테면 같은 감각장애이지만 농인들이 요구하는 권리주장과 맹인들이 요구하는 주장은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을 만큼 다르다. 맹과농 중복장애를 수반한 헬렌 켈러는 “눈으로 보지 못하면 사물과 단절되고 듣지 못하면 사람과 단절된다.”고 했다. 맹교육은 시각대신에 청각과 촉지각을 보상기능으로 적극 활용하는 반면에, 농교육은 청각대신에 시각적 의사소통 양식으로 수화(sign language)를 모국어처럼 적극 활용한다.

감각장애인과 신체장애인들은 당사자가 직접 나서서 ‘당사자배제불가’를 외치고 나설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당장 그게 어렵거나 퍽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처음부터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때문에 이들의 경우 제2당사자로서 부모운동이 적극 뒷받침되어 왔다. 그러나 대리인이 곧 당사자 주체일 수는 없다. 이런 자각에서 제기된 것이 발달장애인의 ‘자기권리 주장’ 혹은 사람이 먼저라는 ‘피플 퍼스트’(People First)운동이다. 장애학 담론과 그 운동에서 보는 ‘장애’(disabilities)는 그것이 결코 개인의 병리적 문제가 아니라, 당대 사회가 만들어 낸 ‘사회적 병리’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를 개인의 비극으로 환원지우지 말고, 근원적으로 당대 사회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에 걸쳐 구성한 병리적 모순을 질적으로 혁파하라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자기권리 주장을 지원하는 대표적 단체인 ‘통합인터내셔널’(Inclusion International)에서는 자기권리 주장의 원리로 ① 역량강화(empowerment), ②동등한 기회 제공, ③ 함께하는 배움과 삶, ④ 탈시설(시설은 나쁘다), ⑤ ‘장애’의 낙인금지 등을 제기 했다. 하지만 밥 먹는 이야기 아무리 해봤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다. 문제는 직접 밥을 떠먹어야 한다. 해서 「한사랑」은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를 직접 운영하기에 이르렀고, 작년 이맘때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자기권리 주장과 자립생활”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발달장애인들도 “말할 수 있는 힘과 권리”가 있음을 시연했다.

장애인의 거주, 고용, 여가활동 등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생활문제 전반을 고민하던 차에, 「한사랑」은 마을공동체운동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어 가고 있는 안심지역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한사랑」은 세월에 떠밀려 마을 속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어떻게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초기에 「한사랑」을 그쳐간 장애인들이 학교를 마치고 갈 곳이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라에서 공교육으로 실시하는 특수학교에서 고등부과정을 마치고 직업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전공과과정까지 이수하고도 대부분 장애학생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형편이라면, 결과적으로 그 교육은 참 무책임한 교육이다. 학령기 동안 한시적으로 위탁 받았다가 졸업하면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특수교육을 진정 ‘교육’이랄 수 있겠는가. 또 장애자녀를 평생 부모가 죽을 때까지 눈을 감지 못하고 무한 책임져야하는 그 사회를 과연 문명사회 혹은 정의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소망하는 사람은 두드린다. 「사회복지법인 한사랑어린이집」은 안심지역에 똬리를 틀어 지금 여기까지 왔기에 「한사랑」을 거쳐 간 발달장애인들도 이곳 ‘안심’(安心)에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한사랑」의 존재이유이자 지역 주민들의 차마 어쩌지 못하는 책무가 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안심지역에서는 ‘안심형’(安心型) 마을공동체가 이런저런 모습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안심지역 마을공동체는 공동체로서 하나의 네트웍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織造)되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한사랑」은 2008년부터 안심지역 중심으로 마을공동체 형성을 위한 마을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다. 2010년 살기 좋은 안심 만들기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의 미션으로 「동구행복 네트워크」가 결성되었고, 2012년에는 마을 사람들과 발달장애 청년들이 함께 참여하고 운영하는 마을카페 「사람이야기」가 문을 열었다. 같은 무렵에 안심주민 생활협동조합 마켓 형태로 「땅이야기」가 「사람이야기」와 나란히 문을 열었다.

이보다 먼저 2008년에는 아이들이 걸어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반야월 행복한어린이 아띠도서관」이 개관 되었다. 「아띠도서관」은 안심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지역의 공부방이다. 여기에도 발달장애인이 사서보조로 일을 돕고 있다. 2011년에는 LH 임대단지 안에 「행복한 아이들」마을학교 공부방이 문을 열어 문화교실, 사계절 들살이 캠프, 엄마손 밥상 급식사업 등을 실천하고 있다. 2013년에는 민간주도형 주민자치사업의 일환으로 방과 후 마을학교인 「둥지」가 탄생하였다. 이곳 「둥지」에도 발달장애아동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안심지역 마을공동체로 「마을에서 꿈꾸는 사람들」, 「대동계」, 「율하아나바다」, 도시락과 밑반찬을 공급하는 「웰도락」, 「달콤한 밥상」, 그리고 아파트 단지 유휴 공간을 활용한 「LH율하나눔텃밭」등이 운영되고 있다. 또, 발달장애인 공동가정 공간으로 「동해빌」과 「미르빌」에는 8명의 장애인이 공동생활가정을 꾸려 함께 살고 있다.

최근 「한사랑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발간하는 발달장애인 자립생활매거진(2014.09)에는 동네에 살면서 직장 다니는 한사랑 공동생활가정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준다. “대구시 동구 신서동에 생활한지 4년 , 이제 동네의 주민이 되었습니다. 마트 장을 볼 때에도 웃으며 인사를 해주시고, 한동안 가지 않으면 안부도 묻고, 자주 가는 노래방은 갈 때마다 서비스를 팍팍 줍니다.” 매거진에는 공동생활 구성원 마다 삶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듬직한 김동규는 카페 사람이야기에서 일합니다. 정량과 순서에 맞게 음료를 만들기에 속도가 느리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를 외치며 커피를 만듭니다. ...(중략))피자 만들기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기에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을 감시하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친절한 한호철도 카페 사람이야기에서 일합니다. 동규가 만든 커피를 손님에게 갖다 줍니다. 손님들이 가고 난 뒤에는 설거지도 하고 한가할 때는 카페 구석구석을 청소하기도 합니다. ...(중략)다른 일이 있어서 출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손님들이 먼저 찾기도 하고, 동네에서 마주치면 혹여나 출근 안하고 놀고 있을까봐 “출근 안 해?” 걱정도 해줍니다.

과묵한 한원호는 도시락 및 급식을 하는 웰도락에서 일합니다. 요리에 필요한 야채를 다듬고 요리가 끝난 뒤에는 뒷정리를 합니다. 도시락에 필요한 수저, 젓가락 등을 포장하고 급식 배달도 합니다.

꼼꼼한 이상묵은 달콤한 밥상에서 일합니다. 손님이 오기 전에 바닥을 쓸고 유리창도 닦습니다. 손님이 오면 주문에 맞게 수저 세팅을 하며 설거지를 합니다. ...(중략) 꼼꼼하게 재료를 다듬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똑같은 크기, 모양을 유지하며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매거진 Social, 2014.09.에서).

 

이곳 마을이 아니고는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 듣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이제 그 현장 상황을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보자.

 

 

3. 공동체적 관계형성의 계기‧유지‧한계

 

「한사랑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는 아양교에서 반야월 마을로 이전하는 것을 계기로 ‘발달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공동체’ 라는 주제를 걸고 지난 6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연구회 모임을 결성했다. 이 연구회 모임은 김병하(대구대 특수교육과 명예교수), 윤문주(한사랑 이사장), 박진영(커뮤니티와 경제), 김연희(아띠도서관 관장), 김정화(한사랑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신화성(대구대 특수교육학과 석사과정), 그리고 김용진(한사랑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 등으로 구성되어 그간 8회의 연구모임을 가졌다. 이 연구모임에서는 지난 8월 중순에 안심지역 마을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는 발달장애인들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연구회 모임에서는 마을공동체에 참여해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심층면담을 하기 위해 그 주요 골격을 구안하였다.

물론, 면담은 사전에 그 내용을 정해서 진행하지 않는 개방적 심층면담(opened deep-interview)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 진행의 대체적 방향 혹은 윤곽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즉, ① 당해 공동체 기관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 ②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면서 어려웠던 일이나 일화들, ③ 한사랑의 중개역할, ④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면서 얻은 느낌들(긍정적/부정적), ⑤ 스스로의 변화와 남은 과제들 등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합의하였다. 그러나 상황과 면담 참여자의 관심사에 따라 면담 진행과정은 탄력적으로 조정하면서 8월 하순에서 9월 하순까지 약 한 달간 면담이 실시되었다.

면담참여 기관은 동구지역 협동조합, 마을기업, 풀뿌리 단체들인 웰도락, 땅이야기, 사람이야기, 달콤한 밥상, 아띠도서관, 텃밭농장, 방과후 마을학교 둥지, 공동생활가정(동해빌, 미르빌)등이다. 이들 기관에서 일하거나 생활하는 발달장애인은 모두 17명(직장과 그룹 홈 주거인원 중복포함)이고, 인터뷰에 참여한 연인원은 발달장애인 고용주와 직장동료, 장애이아부모, 지역주민, 장애당사자 등 모두 16명이다. 사례별로 인터뷰에 참여한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00분 이상 소요된 경우도 있다. 이들 면담내용을 채록(採錄)해서 전사(傳寫)한 분량은 A4 용지 107매(200자 원고 약 600매 정도)였다.

 

(1) 마을공동체 참여 계기

 

우선 ‘마을공동체’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알아보기 위해 마을공동체 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물었다. 발달장애인과 이웃에 살고 있으면서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하는 40대의 「아띠 도서관」 운영자(사서봉사)는 이렇게 말한다.

 

목적에 동의하는 공동체 사업을 만든다 하더라도 다수 사람들은 그 의미에 동의하지 않거나 참여하지 않는다. 전체 마을주민 중에 1-2%라도 자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만들고 운영하는 공동체가 많았으면 한다. (마을공동체)는 먹거리공동체, 교육공동체, 문화공동체 등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 운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주민들이 공동의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이성적 사명감을 앞세우면 오래 못가는 것 같다. 현실 요구에 따른 실현 가능한 꿈이어야 한다.

 

‘마을공동체’에 실제로 참여하는 주민이 우선은 소수지만, 주민의 공동 관심사에 호소해야지 어떤 거창한 사명감을 내 걸어서는 오래 가지를 못한단다. 참여를 통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안심협동조합을 결성하고 「땅이야기」운영에 참여하는 A씨는 한 때 장애단체에서도 헌신적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고, 개인사업도 해봤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고 실패했지만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마을공동체에 뛰어들게 되었단다.

 

사회적 경제를 알게 되어 충격적이었다. 협동조합도 충격적이었다. 늘 돈을 벌어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사회적 경제를) 공부하면서 함께하면 돈도 같이 벌면서 같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구나 하는 것, 사회적 경제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같이 돈을 벌면서 같이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걸 생각하니깐 예전처럼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같이 돈을 벌어서 같이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길을 보람으로 사는 ‘사회적 경제’의 측면에서 협동조합 중심의 마을공동체사업에 적극 개입한 것이 그 동기다. 이런 그에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을 ‘자본의 신봉자’로 만든다는 데에 신물을 느끼게 했다. 그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를 모델로 하는 협동조합과 그에 기반하는 마을공동체에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마을카페 「사람이야기」와 인연을 맺어 그 대표직을 맡게 되기까지의 계기를 들어 보자.

 

처음에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좀 해보라고 제안을 받아 고민 끝에 한 번해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러 방면으로....사실 저희 아들이 발달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발달장애 성인을 보면서 우리아이도 크면 저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고.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일자리를 직접 구할 수 없을 경우에 엄마나 주위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간단하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당초에 마을공동체적 삶과 그 참여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나, 막상 성인 발달장애인이 마을카페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 자녀도 저렇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단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이런 동기로 협동조합기업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한사랑」과 인연 때문에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정의 주거지가 경산임에도 여전히 이곳 안심지역에 아이 교육을 맡기고 있다. 그 아버지의 말을 들어 보자.

 

J는 만 8세 남아인데, 한사랑 어린이집에 3세부터 다니기 시작하여 올해 졸업하기 전까지 6년간 다녔습니다. 아마 한사랑 어린이집 원생 중에는 가장 오래 다녔을 겁니다. ...(중간 생략)지금은 율하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통합학교죠. 일반학교인데, 장애아동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배정되어 있는 (특수)학급에 있습니다. ...(중간 생략) 이사를 했음에도 이 마을에서 주요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일단은 사람이 좋아서 적을 두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것 같구요. 공동체사회라는 게 사실 영리집단이 아니잖아요. 협동조합원들이 상부상조하고, 협조할 수 있는 관계가 좋지 않나 싶어서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산으로 이사를 하였음에도 아이는 율하초등학교 특수학급에 입급 되어 있고 방과 후에는 둥지에서 통합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J의 부모도 안심지역 협동조합 활동에 여기저기 기꺼이 참여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안심지역은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마을공동체가 자생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 계기의 배경에는 이런저런 모습으로 「한사랑」이 표방하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공동체적 삶”의 지향성이 지역주민들에게 스며들어 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흔히 ‘마을’은 “자연과 유무형의 건조물 그리고 주민으로 구성되고 이들 상호간의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공동체의 총체”로 규정된다.

따라서 ‘마을’이라는 개념에는 이미 ‘공동체’의 성격이 내재해 있어, ‘마을공동체’에서 ‘공동체’는 ‘마을’의 성격을 은유적으로 한 번 더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안심지역에서 ‘마을공동체’는 자연과 유무형의 건조물과 관련한 상호관계에서는 특별히 그 공동체적 유인가(誘因價)를 찾기 어렵다. 다만 지역주민과 지역에서 공동체적 삶의 유대를 이끌어온 「한사랑」문화가 곧 마을문화로 자연스럽게 침윤(浸潤)된 것이 주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측면에서 안심지역에서 ‘마을공동체’ 참여 계기나 그 동기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그것과 확연히 차별화 된다.

 

 

(2)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의 단면들: 빛과 그림자

 

장애아동이 일반학급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받는 것은 특수교육의 과제이자 일반교육이 당면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학교교육을 마친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통합(inclusion)되어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은 이상향(理想鄕)을 향한 끝없는 과정(過程; process)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이상향은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말미에서 추구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처럼, 인간의 노력에 의해 구현되어야 할 실재(reality)이다.

‘성’(誠)의 철학으로 대변되는 『중용(中庸)』에는 “성(誠) 그 자체는 하늘의 도(道)요, 성(誠)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道)”(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 했다. 이 구절에 대한 도올 김용옥(2011)의 해석이 탁월하다.

 

‘성지자’(誠之者)는 성(誠)해 지려고 노력하는 과정(process)이다. ...(중략) ‘성지자’(誠之者)는 성해지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인간의 노력이다. 그래서 이것을 ‘사람의 길’(人之道)이라고 말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결국 성(誠)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칙칙폭폭 끊임없이 달려가는 성지(誠之)호 열차의 모습이다. 그 역에 도달할지 안 할지는 여기 질문의 대상이 되질 아니한다. 왜냐 열차는 달리는 한에 있어서만 열차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과정이다. 인생의 목적이란 그 과정에 내재하는 것이다. ‘성자’(誠者)는 ‘성지자’(誠之者)에 내재하는 것이다(김용옥, 2011, p.278).

 

“인생의 목적이란 그 과정에 내재하는 것”이라는 도올의 언술은 장애인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의 지향성을 한없이 격려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안심지역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마을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 가능성의 빛과 그 한계의 그림자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방과후 마을학교인 ‘둥지’에서 발달장애 자녀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활동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J의 아버지는 그 한계를 이렇게 털어놓는다.

 

우리 아이를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비장애 학생들이기 때문에, 서로 융화가 되어서 놀이활동을 하든, 학습활동을 하든지 혼자 겉돌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걱정이 되고 그랬는데... 비장애학생들 중의 일부가 우리 J를 챙겨주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다 이렇게 인식을 해서 도와주는 부분도 있구요. 우리 아이도 거기에 대해서 고마워해서 말을 하지는 않지만, 서로 도움을 주고 하니까 좋은 것 같습니다. 우려했던 것은 소위 왕따를 당하거나, 어느 활동을 하는데 배제되는 것, 재는 원래 그러니까, 우리와 다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한번 씩 저희가 가서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해요. 근데 우려했던 수준만큼은 아니더군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우려와 걱정은 끝없이 이어지고 어쩌면 그것은 당연하다. J의 어머니는 “지금 ‘둥지’에 다니는 장애아이는 내 자식 하나뿐인데 함께 마음을 나누고 의논할 장애아 부모가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J의 사회성이 확장되기를 원한단다. 그 당연한 걱정을 덜어주는 게 열에 아홉인 비장애 아동들의 당연한 몫이기도 하다. 발달장애학생과 어울려 생활하는 동안 “재는 원래 그러니까, 우리와 다르니까”라는 선입견이 잘못된 편견이라는 걸 비장애학생 스스로가 깨치기 위해서는 장애학생과 함께 어울리는 경험이 상당한 정도로 축적되어야 한다.

「둥지」에서 아이들 간에도 그렇지만 어머니들 간에도 함께하는 ‘둥지’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적잖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둥지」 교육팀장은 그간의 어려움을 이렇게 고백한다.

 

둥지에 참여하는 엄마들이 대개 한사랑 어린이집을 거쳐 왔기 때문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음 깊숙한 곳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장애인 친구를 갈라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하고 만나야 할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르는 불편함입니다.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어떻게 잘 넘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내 아이하고는 관계와 행동이 다른데 어떻게 다가갈까? 우리 아이한테는 야단도 치고 하는데 이 친구한테도 야단을 칠 수 있을까? 더 잘해줘야 될 것 같은데, 더 잘해주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일까? 어려웠습니다. 차이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중략) 근데 그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발달장애를 둔 부모들과도 벽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좀 다가가면 “너희들은 잘 모른다. 장애아이가 없어서”라는 벽이 있었던 거죠.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벽은 두텁고 높다. 「둥지」는 모두에게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벽이 있다.”는 걸 가르쳐 준 실험장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제 그(장애아이) 친구가 우리 마을 애 같아요. 보호해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제는 마을 애로서 봐 줄 수 있는 것” 같단다. 이처럼 공동체적 삶의 목적은 그 과정에 내재한다. 발달장애인과 처음 일하게 된 「땅이야기」 매니저 S씨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저도 몰랐는데, 들어와서 보니 M가 있었어요. 그가 옆의 ‘사람이야기’에서 일하다가 여기 매장에 관심이 많아서 일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중략) M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더라고요. “했어요, 했어요.”, “아니요, 아니요.”, “맞아요, 맞아요.”이런 식으로. 처음 며칠 동안은 저도 집에 가면 따라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들이 “청소도 어떻게 지도해야 하고 관계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은 거의 한 식구죠.

 

‘한 식구처럼’ 느끼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고비를 넘겨야 했다. 「달콤한 밥상」에서 발달장애인 S씨를 고용한 매니저는 「사람이야기」에서 그가 일하는 것을 오래 봐 왔지만, 막상 함께 일해 보니 “저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밥집 일을 해보니 처음에는 완전 멘붕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받고 예민한 시기에 「한사랑」으로부터 조언을 얻은 게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용주로서 함께 가야한다는 마음가짐 이었다.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하는 거예요. 나도 힘든데 이 친구가 다른데 나가면... 얼굴 비치는 것도 있지마는, 다른데 나가면 이 친구들이 일자리가 없잖아요. 몸이 안 좋고 허약한데, 코피도 흘리고 맨날 그런데 한편 생각하면 딴 데 가면 어디 가겠노. 우리가 끌어안고 같이 가줘야지.

 

협동조합이라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려 있어서란다. 역시 함께 살아야한다는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다. 한편, 「사람이야기」에서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면서 처음에는 낯설고 당황한 적도 있었지만 점차 친숙해지게 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M가 예쁜 여자 손님이 오면 ‘예쁘다’, ‘귀엽다’, ‘곰돌이 예쁘다’ 그래서 ‘하지마라’그랬거든요. 지내다 보니 민우도 화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무서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자연적으로 만나고 M의 행동을 매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해야 겠구나”생각이 들었죠. 이제는 뭐 아무렇지도 않죠.

 

그럼에도 M과 함께 일하면서 당면하는 어려움이나 한계를 이렇게 고백한다.

 

2년 정도 같이 일해도 이 친구들은 안 변하는 게 있잖아요. 그럴 땐 저도 답답하지요. 제가 바쁘고 M에게 맡겨 놓으면 안 하거나 대충 하고 나서 “다 했어요.” 그러면, 내가 “여기 덜했잖아”하면, “다 했어요, 다 했어요” 그럴 때가 있어요. 내 입장에서는 내가 바쁠 때는 M가 알아서 해주었으면 싶은데, 안 되는 거는 끝까지 안 되더라고요. ...(중략) 선생님한테 상담을 하곤 했는데 잘하는 것만 시키라고 하더군요. M가 하기 싫다고 고집을 피우면, 기분이 풀릴 때까지 가만히 두어요. 그러면 M도 할 일을 아니까, “해야 되요, 해야 되요”하면서 해요.

 

이렇게 함께 살아오는 동안에 이제는 발달장애인 M를 한 ‘식구’처럼 대하게 된단다. “지금은 우리 식구이고...월급을 올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적어도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올려주고 싶단다. 그리고 지금은 고용의 생산성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한편, 경제적 효용성과 관련한 운영상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땅이야기」 매니저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식구이고 그가 없어서는 안 되죠. ...(중략) 가게가 어렵다고 M씨를 내 보내야 겠다는 생각도 없고 그런 안건이 나온 적도 없어요. 저희는 공동체라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저희 생각도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같이 살아가야 하니까.

 

협동조합의 공동체적 이념 때문에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란다. 이런 마음이 곧 맹자(孟子)가 말하는 ‘부동심’(不動心)이자, 사단(四端)의 발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그냥 제절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걸 이렇게 털어 놓는다.

 

저번에 M씨가 제 팔을 꼬집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땐 저도 당황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한사랑 센터) 김00 선생님이 “아무런 일없이 그런 일은 없는데, 그렇게 화 낸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같다” 그러더라고요. M씨가 화를 낸 거를 두 번 정도 봤는데 한 번은 제가 M씨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잔소리를 해서 화 낸 것 같고, 두 번째는 자기감정에 못 이겨서 어떤 음식을 이야기하며 “먹고 싶어요.”하는 거예요. 그래서 티격태격하다가 뭐가 안 좋았는지 화를 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욱 할 때도 있어요.

 

다투고 화내면서 함께 사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이다. 그래서 공자도 부부 간의 도리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문제는 그러는 중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 ‘성지’(誠之)의 과정이 중요한 게다. 마을카페 「사람이야기」 매니저는 발달장애인과 함께 일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돌발행동이 가장 걱정이 된다. 자기의 화를 잘 참지 못하는 D의 경우 손님들이 많이 왔을 때,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지시가 내려지는 경우 이럴 때 화를 잘 낸다. 화를 참지 못해서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자기 뺨이나 머리를 손님들 앞에서 때린다거나 자기 옷에 물을 뿌리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맡은 커피를 내리거나 하는 일들을 잘하고 있고, 요즘은 서빙도 조금씩 적응해 가는 것 같다.

 

돌발행동에 따른 위기중재는 전문가의 개입이나 자문이 필요한 부분이다. 중재역할과 그에 대응하는 실제 사례를 발달장애인 D의 경우 이렇게 대처했단다.

 

D의 경우 지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출근하다가 비가 와서 다시 그룹홈으로 돌아가서 우산을 들고 오느라 지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D는 돈에 대해 매우 예민한 거 같다. 한사랑 윤00 선생님과 협의한 결과 지각할 시에는 벌금을 내도록 했는데, 그 이후로 지각하는 경우가 없어진 듯하다. 천원 정도 벌금을 받았는데, 얼마 지나 지각을 하는 경우 당연히 천원을 주더라. 그래서 벌금을 올리니깐 지각을 하지 않더라. 나도 6,7개월 함께 일하다보니 아이들과 친근해지고 아이들을 알게 되어 서로 맞추어 가며 적응해 가더라.

 

지각하는 경우 벌금을 내게 한 것은 돈에 대한 애착이 강한 D에게는 하나의 부적(負的) 강화이긴 하지만 지각 사례가 교정되었단다. 하지만 “서로 맞추어 가며 적응해 가더라”는 매니저의 고백 속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노력이 있었다. 마을공동체의 문화가 흐르는 물처럼 자연히 사람들의 마음에 녹아들게 하는 게 또한 중요하다.

 

지금 율하는 다른 마을에 비해 공동체성이 너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이곳에 오래 살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협동조합과 공동체가 여기처럼 잘 되어 있는 곳이 없어요. ...(중략) 편견이라는 게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저는 장애를 가진 아이나 청년들을 보아 왔기에 익숙해요. 그리고 장애에 대한 의식을 가진 분들이 율하 쪽에는 많아요. 그리고 또 중간연결 이라고 해야 하나, 자립지원센터나 한사랑 어린이집 등 그런 기관에 소속된 친구들이 자주 오고 하니까. 그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집에 있다가 갑자기 취업하고 그런 경우가 아니잖아요. 주간보호나 자립지원센터에 있는 친구들이 여기를 오고, 일하러 오다가 졸업하면 여기로 취직하러 오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이곳 율하는 지역주민과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중간연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장애인과 함께 사는 공동체적 삶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단다. 해서 노자는 “도(道라)는 것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본받는 것”(道法自然)이라 했다. 이 마을에 오래 살았다는 「달콤한 밥상」의 매니저는 “이곳은 한 다리 건너면 또 한 다리 알고... 네트웍이 잘되어 있는 곳”이라고 평한다. 마을문화는 ‘새마을운동’처럼 단기간에 외양적 ‘개조운동’으로 형성되는 게 결코 아니다.

평소 사회적 기업 활동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동구행복네트워크 「웰도락」의 이00 팀장은 제대로 된 음식을 주민들에게 공급해 보자는 취지로 이 일에 신명을 바치고 있다. ‘웰도락’에서 발달장애인 W씨는 함께 일하는 팀장에게 형이라고 한단다. W와 팀장의 관계 단면을 들어 보자.

 

W에게 어제 저녁에 문자를 받았다. 초대를 하는 문자였다. 야구를 보러 가자고 했는데, 안 왔다고 삐지기도 하고. ...(중략) W가 우리 집에 와서 술을 먹기도 하고, 금요일 일을 하다가 어디를 가자고 연락을 하기도 하고. 함께 치킨도 먹고, 다음 날 다시 일하고. 두세 번 같이 자고 하기도 했다. 웰도락이 정말 바쁠 때 같이 일을 하고, 술을 먹기도 하고, 함께 자기도 한다.

 

함께 일하는 관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짝처럼 지나고 있다. 「제8요일」의 헤리(성공한 세일즈 기법 강사)와 발달장애인 조지(다운증후군)와의 관계를 엮은 아름다운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철학자가 “우리는 상대편에게 무엇인가 말해주고 싶어 할 만큼 충분히 다르지만,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비슷하다.”고 했다. 얼 쇼리스(E. Shorris)는 『희망의 인문학』(2006)에서 우리는 일란성 쌍둥이는 아닐지라도 분명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는 영혼의 가족이라 했다. 그는 인간 본능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인간 마음속에 있는 고상한 본능의 승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단다.

쇼리스의 홈리스 등 가난한 자를 위한 ‘클레멘트 코스’ 실험은 2008년에 「노들장애인야학」의 ‘수유너머와 함께하는 현장 인문학 강좌’로 이어졌다. 여기에 힘을 받아 이듬해에 ‘노들’(노란들판의 줄임말)은 탈시설-자립생활 권리쟁취를 위한 투쟁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사회적 협동조합 ‘동행’의 문화협력 담당 윤00 팀장은 장애인사업을 ‘돌봄사업’에서 ‘문화사업’으로 전환하는 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동네의 다양한 문화를 ‘동행’의 문화팀에서 접목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텃밭’ 활용도 사람들 간의 교류, 아이들의 놀이 등 문화적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3) 변화와 남은 과제들

 

흐르는 물처럼 세월은 가고, 사람 사는 세상은 제 갈 길을 간다. 세월에 멈춤이 없듯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게 없다. 오로지 ‘변화’(變化)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실재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연기적(緣起的)이다. 김종철(2014)은 생태론적 측면에서 생명의 순환(循環)을 말하면서 근대문명의 위기를 이렇게 적시한다.

 

자연 속에서 생명이 영구히 지속하기 위해서는 직선이 아니라 순환적인 패튼을 그리며 돌아가야 합니다. 즉, 생장소멸(生長消滅)의 사이를 말이죠. 남의 똥이 내 밥이 되고, 내 똥이 또 남의 밥이 되는 이런 구조, 이런 패턴, 이런 사이클이 계속되면서 지구상의 생명이 진화를 해왔거든요. 인간도 이 지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이런 식으로 순환적인 삶의 패턴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 순환적인 패턴에 균열을 만들고 그 대신 직선적인 진보라는 패턴을 만들어낸 것이 자본주의 근대문명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게 가능했던 것은 지하에 숨겨져 있던 광물자원, 특히 석탄과 석유라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분별없이 캐내어 대규모로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원래 우리의 생태적 삶은 순환적‧연기적 인데, 산업혁명 이후 탄생한 근대 자본주의는 직선적인 성장만을 추구해 왔던 게다. 그것도 재생 불가능한 석유자원을 분별없이 남용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성장의 한계’를 넘어 ‘성장의 종언’시대다. 해서 그 대안이 시급히 나와야한다. 물리학자로서 문명의 전환과 영성의 시대를 제기한 카프라(F. Capra)는 생명의 순환과 우리 몸의 연기적 ‘그물’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웅장한 생명의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중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분자는 이전에 누구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였고, 또 앞으로도 누군가의 몸 혹은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은 결코 소멸하지 않고, 지구상의 생명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다시 어딘가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의 분자단위만이 아니라, 내 몸을 꾸려가는 기본원리도 살아 있는 세상의 모든 나머지와 함께 같은 원리로 돌아가며 함께 호흡한다. 우리는 진정 우주에 속한 존재이며, 이 귀속감을 깨닫는 일은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그 깊이를 더해준다(김재희 옮김, 2014, pp.12-13).

 

여기서 카프라는 과학과 종교적 영성을 아울러, 생명의 순환과 존재의 연기적 그물망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고, 네가 넘어지면 나도 넘어지는 게 연기적 삶이다. 해서 우리에게 남(장애인)은 남이 아니다. 내 몸이 소우주이고, 그 우주 속에 내 삶이 존재한다.

19세기 중반에 동학(東學)은 우리에게 한울님을 내 몸속에 모시는 삶(즉, 侍天主)을 말했다. 수운 최제우(崔濟愚;1824-1864) 선생이 창도한 동학에서는 천지인(天地人) 삼위가 하나로 일체화되는 삶의 존재로 ‘나’와 ‘우리’를 규정했다. 그래서 ‘사인여천’(事人如千), 즉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란다. 동서고금을 통해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인간존엄의 극치다. 이런 동학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세상이 개벽(開闢)의 세상이다. 우리는 다시 세상을 여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안심협동조합 사무국장 안상진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 최저임금제도가 있는데, M의 작업능력이 최저임금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도 아는데, 민우의 월급은 얼마여야 할까? (부수적이지만) 첨예한 고민이다. 나는 최저임금을 맞추어 줘야 한다고 본다. ...(중략) 협동조합이 많이 생기면 좋기는 한데,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하면 결국에는 망하게 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본래)가치를 잃어버리고, 사람이 중요한데, 사람도 떨어져 나간다. 매장은 사람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효율을 따지고 하면 우리도 망한다. 장애인이 회사에 들어가면 재무재표를 내는데, 장애인을 고용했다는 선한 기업의 이미지로 비춰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게 아니다. 근본목적이 다르다. 마을과 더불어 살아가는 장애인이라는 목적을 위해 M을 고용한 것이다.

 

그는 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섬기는 그런 협동조합의 모델을 지금 ‘땅이야기’에서 만들어 가고 있다. 안상진은 ‘사회적 경제’ 지향을 강조하면서 장애인을 쉽게 해고하는 현실을 이렇게 나무란다.

 

협동조합이 왕성한 볼로냐에서는 6배의 규정이 있다. 전에는 3배였다. 연합회가 있는데, 제일 잘 나가는 협동조합의 최고 경영자 월급과 힘든 노동조합의 최저임금 차이가 6배를 넘기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이것은 너무 좋은 규정이다. ...(중략) 삼성은 신입사원과 사장의 월급이 100배 정도(실제는 그보다 훨씬 격차가 많을 테지만) 차이가 난다. 사장의 능력이 그렇게 뛰어날까? 신입사원들과 소비자들이 있어서 100배의 월급이 생기는 게 아닌가? 이건 아니라고 본다.

 

이즘 우리사회 일각에서도 ‘기본소득’ 보장문제가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보장은 「땅 이야기」에서 일하는 민우에게나 삼성회장 이건희에게나 꼭 같은 액수로 배당되는 ‘시민배당금’과 같은 개념이다. 이것은 양극화로 치닫는 경제 불평등을 최저수준에서 완화‧조정하기위한 공적 합의로서의 정의 실현이다. 지금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잠재적 실업’ 상태다. 아마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극심해 질 것이다. 안심지역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의 삶은 바로 이런 위기에 대응한 정의의 실험무대이자 현재진행형이다.

마을공동체가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지켜야 할 원칙으로 「둥지」 교육팀장은 세 가지를 든다. 첫째는 어렵더라도 오래 버틸 것, 둘째는 귀를 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오래 들어야 된다. 셋째는 조합운영에 필요한 교육비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무늬만 협동조합”이어서는 안 된단다. 결정해 놓고 의견을 구하는 식이 아니라, 동의를 얻기까지 논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단다. 그래서 목적은 과정에 내재한다.

 

 

4. 마을공동체의 정착 과제

 

필자가 보기에 장애인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가 우리들의 삶에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측면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즉, 그 하나는 장애인 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내면적 변혁이고, 다른 하나는 장애인이 몸담은 사회의 구조적 변혁 문제이다.

 

(1) 내면적 변혁 과제

 

우선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제기해 본다. 과연 발달장애인에게 ‘자립생활’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다. 누구보다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잘 아는 부모들부터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 된다는 전제가 묵시적으로 특수교사들에게도 깔려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순이다. 누구보다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앞장서 제기해온 부모들이 실제 속마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깔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특수교사들은 발달장애아의 역량제고(empowerment)를 위해 전문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주체가 아닌가. 본래 안 된다는 생각을 깔고, 발달장애아(인)에게 적극적으로 자립 가능한 경험을 체계적으로 구성해주지 않는 터에 어찌 그들에게 ‘자립생활’이 가능하겠는가!

일찍이 아테네 청년들의 지적‧영적 깨침의 산파역을 자임한 소크라테스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많은 것을 학습해 가는 과정을 보고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회상하는 것처럼 배운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아이들은 원래 알 수 있음에도 단지 모를 뿐이란 것이다. 더 요약하면 알면서 모른다는 게다. 모든 인간에게 무한한 학습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공자는 ‘유교무류’(有敎無類)라 해서 교육에는 그 부류가 따로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 말은 지금도 타이완의 지적장애아 특수학교 건물 앞에 커다란 글씨로 새겨져 있다.

『중용(中庸)』 20장에는 성(誠)해 지려고 노력하는 삶을 강조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진대 능하지 못하면 도중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중략)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대 독실하지 못하거든 도중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십시오. 과연 이 호학역행(好學力行)하는 도(道)에 능하게만 되면,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현명해지며, 비록 유약한 사람이라도 반드시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김용옥, 2011, 276).

 

필자가 보기에 『중용』의 이 말은 바로 발달장애아 교육을 향한 경구(警句)로 읽힌다. 가정에서 부모는 물론, 특수학교에서 교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발달장애아동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자료로 그들과 ‘동사’(同事)에 임하여야 한다. 옛날 붓다의 제자 중에 출라판타카라(周利槃特)라는 심한 지적장애(intellectual disabilities)인이 있었는데, 붓다는 여러 제자들에게 그의 교육을 당부하였으나, 너무 바보여서 모두가 그를 가르칠 수 없다고 포기했단다. 이를 본 붓다가 그를 불러 “마당을 쓸고 방을 닦는 일을 할 수 있느냐?”면서, 너는 앞으로 마당을 쓸고 방을 닦으며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면서 늘 외거라 했다. 그러나 출라판타카라는 이 간단한 말의 글귀조차도 외지 못했다.

그 후 붓다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출라판타카라를 만날 때마다 ‘먼지를 털고 때를 닦아라’고 하는 말을 인사처럼 해주도록 당부했다. 그는 매일 먼지를 털고 때를 닦는 일을 하면서 이 말을 외어 마침내 이것을 꿰뚫어 체화(體化)했다. 이렇게 출라판타카라는 매일 청소를 하듯이 마음을 닦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포기한 지적장애인에게까지 붓다는 깨달음으로 인도했다는 실화이다. 즉, 이것은 인류의 위대한 교사로서 붓다가 지적장애인에게 ‘희망의 특수교육’을 입증해 준 생생한 사례다.

이처럼 ‘한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특수학교는 ‘희망의 특수교육’을 끊임없이 실천하는 실험장이어야 한다. 이런 교육의 과정(the process of empowerment)을 통해 발달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에서 인권의 주체로, 마침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우뚝 서게 된다. 모든 나무는 본래 타는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누군가 불을 댕겨 주어야만 내면의 화력(火力)을 발휘한다. 진정 우리 사회가 정의사회라면, 열의 아홉은 하나를 위한 밑불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사는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도 ‘마을공동체’ 성원으로 의미 있는 참여자가 된다.

 

(2) 외적 변혁의 과제

 

앞에서 우리는 ‘장애’는 개인의 병리적 문제가 아니라 당대 사회가 가공한 ‘사회적 병리’문제로 규정했다. 근원적으로 사회 자체가 장애인이 ‘장애’를 느끼지 않는 그런 장애 없는 사회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장애인들은 자기를 ‘발달장애’ 혹은 ‘지적장애’로 낙인하지 말고, ‘민우’, ‘동규’, ‘호철’, ‘원호’, ‘상묵’씨처럼 자기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다. 제16차 아시아지적장애국제회의(2003, 일본, 츠쿠바)에 기조발표자로 나온 지적장애인 로버트 마틴(Robert Martin)은 이렇게 호소한다.

 

여러분!

왜 나의 인생은 여러분과 이처럼 달라야 하지요?

‘지적장애’로 불리는 우리를 이토록 다르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왜 우리는 별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거지요?

왜 우리들 대부분은 친구도 아닌 낮선 사람과 침실까지 함께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지요?

왜 우리는 형제자매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지요?

왜 우리는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일자리 얻기에 늘 마지막으로 밀려나야 하나요?

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나요?

왜 우리는 결혼해서 배우자와 함께 살지 못하나요?

 

필자는 회의장에서 마틴의 연설을 듣고 어느 발표보다도 큰 감동을 받았다. 역시 당사자의 목소리는 책에서 글로 읽는 것보다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왜 우리는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금까지 그의 말을 경청할 기회를 갖지 못했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특수교육학인으로 발달장애인이 마틴처럼 당당히 ‘자기권리 주장’을 하도록 내 스스로 불씨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때늦은 회한이었다.

벌써 오래된 실화이지만, 미국에서 어느 기자가 장애인 수용시설을 방문하여 취재차 그곳에 수용된 지적장애인에게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누가 당신을 가장 잘 이해해 줍니까?”라고 물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이렇게 내뱉더란다. “한 놈도 없어!( Nobody!)"라고.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ed)는 이제 해묵은 구호가 되었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장애인보호시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 그 시설 속에 반인권적 비리는 여전히 움쩍할 수 없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단언컨대 어떤 명분으로든 모든 ‘시설’은 나쁘다.

2010년부터 ‘한사랑 공동생활가정’에 살고 있는 H씨는 금요일 저녁에 본가 집으로 가서 월요일 오전에 다시 공동생활가정 ‘동해빌’에 돌아온다. ‘동해빌’에 사는 게 재미있냐고 물으니, “쪼금 재밌다. 컴퓨터를 할 수 있어 재밌다. TV 야구 보니깐”좋단다(집에서는 PC방에 가야지만). 친구들과 살면서 뭐가 좋은지 물으니, “D가 힘들 때 옷을 빨아주고, 설거지도 돌아가며 해주고, 일하고 오면 사람이 집에 있어서 좋고. 잘하고 왔느냐고 칭찬해 주는 것”이 좋단다. 그리고 “집에는 사람이 안 오는데, 아랫집 사람이 찾아 왔을 때 기분이 좋다.”고 한다. 발달장애인 H씨는 사람이 그리운 게다.

사회복지 재활교사가 저녁 9시 반까지 함께 있는 데, “잘 때는 우리끼리 자면 좋다. 하지만 윤마(윤oo이라는 야간지원교사)가 없으면 안 된다. 카드가 없다. 윤마가 있어야 한다. 카드 함부로 쓰면 혼난다.”고 털어 놓는다. 카드(즉, 보조금카드)는 윤마가 관리하고, 모든 회계처리는 카드로 해야 한다. 이들이 공동생활가정을 청산하고 결혼해서 가정생활을 꾸리는 건 언제쯤, 어떻게 가능할까. 물론, 서포터(supporter)가 있어야겠지만, 남은 숙제다.

장애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신체장애인들은 이동권과 접근권을 쟁취하는 투쟁에 자신들의 몸을 던졌다. 그리고 상당부분 쟁취해 냈다. 농인들은 수화통역을 통한 의사소통권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들이 선택한 대학총장(Gallaudet University)도 가지게 되었다. 맹인들은 이동권은 물론 정보접근권에서 취업독점권에 이르기까지 자기권리가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에게는 이제 겨우 ‘자기권리 주장’을 터주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기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사자가 당당히 ‘자기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성철 스님은 참선하는 수도승에게 “밥 먹는 이야기 아무리 해봤자 소용없다. 문제는 밥을 떠먹어야 허기진 배를 면한다.”고 했다. 그래서 크게 깨달았으면(頓悟), 단박에 뿌리를 뽑으라(頓修)는 게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다. 우리 발달장애인에게는 더디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점수’(漸修)가 제격이다. 열의 아홉은 하나의 점수(漸修)에 함께 동참하고 인내하면서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해서 그들과 함께하는 ‘마을공동체’가 오늘 우리의 화두다.

필자가 보기에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체제하에서는 근원적으로 ‘마을공동체’의 복원이 불가능하거나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구의 한정된 자원고갈에 따른 성장의 종언과 더불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그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평화적 절차에 의한 분단극복을 상정할 때, 우리에게 거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연적 대안으로 떠오른다.

이번 10월 18일부터 개최되는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모두의 축제”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개인의 기량도 물론 소중하지만, 근원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는 사회가 장애인을 불가능의 존재로 단정하는 속단 내지는 편견이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박경석은 이렇게 말한다.

 

장애인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려면 자본주의적인 삶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쓸모’를 기준으로 보면 중증발달장애나 정신지체장애인들한테는 기대할 게 없다. 우린 가장 간편한 방식으로 사람을 ‘처리’해 온 거다. ‘투자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어떤 장애인들은 생애에 걸쳐 갇혀 살고 어떤 기회나 선택권도 없이 사회적으로 그렇게 ‘폐기처분’되어왔다(한겨레, 2014.10.18. 21면).

 

박경석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장애인농성은 꼬박 2년을 넘기고도 아직 끝날 줄 모른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처럼. 문제는 인디언들처럼 사는 ‘열의 하나’가 아니라, 그냥 어정쩡하게 사는 ‘열의 아홉’에게 있다.

 

 

5. 맺음: 전망과 제언

 

이제 우리는 분배의 정의를 체계적으로 고민할 때다. 그리고 99%를 살리는 사회적 경제가 지역마다 마을공동체 중심으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롤즈(J. Rawls)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에서 다른 사람의 기본적 자유와 상충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불리한 처지의 최소 수혜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는 소위 ‘차이의 원리'로서 정의철학을 제기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이런 정의사회를 위해서는 1%의 99%를 향한 고귀한 도덕적 책임이 (자발적으로)발휘되어야 한다.

『노자』는 하늘의 도(道)를 활줄 당기는 것에 비유하여, 우리에게 분배 정의를 진적에 제시했다. “하늘의 도는 활줄을 당겨 매는 것 같다. 높으면 억누르고 낮으면 들어올리며, 남으면 덜고 부족하면 보태준다.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서 부족한 데서 덜어다가 남는 쪽에 갖다 바치나니, 남는 것을 덜어내어 천하를 봉양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도를 지닌 사람일 뿐이다.”(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老子』, 77장)고 했다.

하늘의 도는 마치 활을 쏘는 형국과 같아 높은 곳은 내리누르고 낮은 곳은 추켜올린다. 이것은 남아도는 것을 덜어주고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길은 그렇질 못하고, 오히려 부족한 데서 덜어다가(빼앗아) 남아도는 데에 채워준다. 누가 능히 남아도는 것으로 천하 사람들을 채워 줄 수 있는가? 노자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도(道)를 체득한 사람이라고 했다. 2500년 전에 말한 노자의 혜안이 놀랍다.

양극화의 괴리를 조정하기 위한 공적인 대안으로 우리는 시민배당금 차원에서 ‘기본소득’ 보장 문제를 제기 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노동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더라도 기본권 차원에서 ‘최저임금’ 수준은 충족 시켜줘야 한다는 게 당장의 현안과제다. 장애와 빈곤의 악순환 고리는 원천적으로 사회적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이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자 생존권 문제이다. 이것은 제도의 문제이다. 제도를 말하면 으례 우리는 선진국의 예를 들먹이지만, 우리도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 있다. 이제 선진국 타령은 설득력이 없다. 문제는 정치권력의 의식과 양식의 문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에 의한 낙수(落水) 효과가 확실히 보장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어발식 재벌구조가 과감히 혁신되어야 한다. 성장경제는 협동경제 혹은 생태경제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할 때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건가? 결국, 깨어 있는 민주시민의 손끝에 달려 있다. 우리가 ‘마을공동체’의 복원을 말하지만, 물성화(物性化)된 인심이 바꿔지지 않는 한 그 실현은 요원하다. 하지만 그 인심의 본래성은 곧 천성(天性)이다. 재야의 은둔 철학자인 다석(多夕) 유영모 선생은 “권력과 부의 중심을 깨고 서로 주체와 서로 살림의 공동체적 삶”을 중심으로 삼고자 했다. 다시「한사랑」과 안심지역 협동조합 네트워크는 지역주민의 밑불이자 불소시게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그 주민 한 사람마다 마을에 몸담은 발달장애인의 밑불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과 함께 안심(安心)마을공동체가 개벽(開闢)되는 날을 간절히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