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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이영식의 인간관과 특수교육철학

평촌0505 2014. 12. 10. 13:02

성산(惺山) 이영식의 인간관과 특수교육철학

 

 

 

성산(惺山) 이영식(李永植; 1894-1981) 목사는 감리교 의료선교사 R. S. Hall이 평양에서 맹교육을 처음 시작한 해에 태어나서 유엔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IYDP)에 세상을 떠났다. 우연찮게도 그는 이 땅에 외국 선교사가 특수교육의 씨앗을 뿌린 해에 경북 성주 산골에서 태어났으며, 세계적으로 장애인의 복지와 교육이 한창 진흥되는 해에 당신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3년간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고막파열로 농인과 수화로 소통한 경험이 큰 감동으로 남아 ‘광복기념사업’으로 택한 길이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사업이었다. 1946년 그가 설립한 대구맹아학교(大邱盲啞學校)는 광복 후 민간독지가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학교이다. 이로부터 그는 평생 특수교육에 헌신하면서, 이 나라의 장애아동교육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왔으며, 그로인해 대구는 한국특수교육의 메카가 되었다.

 

인간 존엄의 이상: 인광(人光)주의

 

성산 이영식의 인간관은 ‘사람이 곧 세상의 빛’이라는 ‘인광’(人光)사상으로 집약된다. 그의 특수교육 실천 30년은 바로 ‘인광주의’의 체현(體現) 과정이었다. 인광주의는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사랑의 빛을 쪼이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나환자사업과 벙어리 봉사사업에 앞장서 그 깃발을 들게 된 게다. 그는 “빛은 먼저 어두운 곳에 밝혀야 하고, 사랑은 먼저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평소 생활신념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자면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사랑을 불어 넣어야 할 때가 있다. 특수교육이야말로 땀과 눈물과 사랑으로 실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중략) 나는 애락원 나환자 교회에서 인간의 사랑을 배웠고, 특수교육 사업을 통해서 사랑의 실천을 배웠다. 나는 마음이 교만해 질 때 소경의 눈망울을 보았고 벙어리의 입술과 손짓을 보았다. 그들이 나의 혈육(血肉)은 아니지만, 분명히 나의 아들이요 딸들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왔다(『사랑의 길 소망의 길』,1986, pp.30-31).

 

이것은 성산 이영식의 ‘인광주의’ 에 입각한 진솔한 삶의 고백이다. 그는 이런 인광주의로 살 때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고, 신성(神性)은 내 몸과 마음속에 내재하는 것이라 했다. 그의 인광주의는 지극한 인간존엄의 이상이자 그 실천 지표다. ‘인광’(人光)이라는 말은 사전에도 없는 인간 존엄에 터한 그의 독특한 주의(主義; ism)이다. ‘인광주의’에 입각한 자신의 인간관을 이영식은 이렇게 제시한다.

1. 인간은 우주의 주인이다.

2. 인간은 우주의 빛이다.

3. 인간의 정신(영혼)은 영원하다.

4. 인간의 낙원은 지금 이곳의 지상에 있다.

5. 인간의 세계는 하나이다.

6. 인간은 사랑의 사자(使者)이다.

7. 인간은 작지만 위대한 존재다. 이처럼 그의 인간관은 바로 인간존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천성(天性) 계발로서의 교육

 

성산 이영식은 자신이 강조하는 교육의 목표를 ‘인간본성의 자각’에 두고 있다. 그는 “내가 의도하는 교육은 인간의 타고난 천성(天性)을 계발(啓發)하는 것”이라 했다. 여기 ‘천성’(天性)은 날 때부터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품부(稟賦)된 본래성(本來性)이다. 이른바 『중용(中庸)』첫 구절에서 말하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의 그 성(性; human nature)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는 “타고난 천성을 계발”하는 것이 곧 교육이라 했다. 천성은 타고난 것이기에 없던 걸 개발하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을 복원하고 계발하는 것이다. ‘천성 계발’로서 그의 교육목적관은 앞서 말한 그의 ‘인광주의’(人光主義)라는 인간관에서 자연히 도출되고 있다. 그는 인간교육의 근본원리를 이렇게 말한다.

 

교육에서 ‘빛’을 보여주지 않으면 선량한 의지를 계발할 수 없고, ‘사랑’을 심어주지 않으면 진실한 인격을 계발할 수 없으며, 참된 ‘자유’를 향유하지 않으면 폭군이나 노예로 타락한다. 이 근본 초석 위에 삶을 위한 지식과 기능을 쌓아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근본원리다(『사랑의 길 소망의 길, 1986, p.96).

 

'천성계발‘로서의 그의 교육 원리는 다시 ‘사랑-빛-자유’의 이념으로 이어진다. 그가 설정한 ‘사랑‧빛‧자유’ 이념은 곧 ‘천성계발’로서의 교육이상 실현을 위한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천성계발’은 그냥 제절로 실현되는 게 아니다. 거울은 원래 투명한 것이지만, 때와 먼지가 끼어 있으면 거울 구실을 못한다. 본래의 천성을 계발하기 위해 때와 먼지 속에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그 때와 먼지를 걷어내는 일에 성(誠)을 다해야 한다. 또 그런 때와 먼지가 끼어 있어도 거울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교육의 본질이자 가능성이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서의 특수교육

 

성산 이영식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서,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교육의 등불을 밝힌 사람이다. 그는 감히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영원한 우주의 첫째가는 아들들은 나를 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는 농아들이다. 나의, 우주의 두 번째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도 없는 맹아들이다. 나의, 영원한 우주의 세 번째 아들은 장년이 되어도 혼자 설 수도 없는 지체부자유아들이다. 나의, 우주의 영원한 네 번째 아들은 평생 곁에서 보살펴 주어야 할 정신박약아들이다. 그러나 나의 혼(魂)은 언제나 한 결 같이 이 암흑의 아들들을 나의 품안에 꼭 껴안고 살아왔노라고 단언(斷言)할 수 있단 말인가?(『사랑‧빛‧자유』(1984), p.18).

 

필자가 보기에 성산 이영식은 자신의 영혼에 되물어도 한 줌 부끄럼 없는 그런 삶을 살아온 분이다. 그는 말한 대로 살아왔고, 살아온 대로 말한 사람이다. 그는 인광주의자였고, 특수교육주의자였다.

성산 이영식과 그의 장남 창파(滄波) 이태영(李泰榮; 1929-1995)은 부전자전(父傳子傳) 격으로 대명동 대구캠퍼스에 다섯 개의 장애종별 특수학교와 재활서비스 체제를 총합적으로 갖춘 세계 유일의 독특한 모델을 창출하였다. 이 모델은 국제적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성산 이영식은 “안 되다가도 되는 삶”을 살아온 ‘작은 거인’이다. 그의 삶은 이 땅의 모든 특수교육학인들과 실천가들에게 영원한 사표(師表)로 남는다.